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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일로 연재가 약간 늦어졌습니다. 지난 11월에 올린 '영천읍성 남문 위치 비정' 글에서 영천읍 남문(南門)의 소재지 및 외형에 관한 내용을 간단히 살펴봤습니다. 이번 편은 앞서 예고한대로 조선시대 영천군(永川郡)의 동헌(東軒) 및 객사(客舍)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미지 번호는 이전 글에서 이어집니다.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천군 읍내 전경
8번 사진 - 경상북도 영천군 읍내 전경 (1916년)


위 8번 사진은 일제강점기 시기인 1910년대 영천읍(永川邑) 전경입니다. 『경북사진편람(慶北寫眞便覽)』이라는 책자에 수록된 영천군 사진 가운데 하나로서, 영천읍 서북쪽의 마현산(馬峴山) 기슭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1916년 12월에 발행된 『경북사진편람』 책자는 당시 경상북도 관내 주요 군(郡)의 전경, 군청, 경찰서 등 사진을 수록하고 있는, 경북 지역 조선시대 관아(官衙) 건축 연구에 있어 보물과도 같은 사진집입니다. 경상북도 지역 관청 건축사 연구에 있어 가장 기초적인 자료이기에 모를 수 없고 몰라서도 안 되는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문 위치 비정 글에서 '자체 확보한 다른 자료 없이...'라고 적었었네요) 국립중앙도서관 사이트에서 원문을 공개 제공하고 있습니다.

화살표 표시 건물은 아래와 같습니다. 사진 왼쪽이 북쪽입니다.

1) 빨간색 화살표 : 영천읍성 남문
2) 노란색 화살표 : 조양각(朝陽閣) 및 청량당(淸凉堂)
3) 녹색 화살표 : 객사 (영천공립보통학교)
4) 파란색 화살표 : 동헌 대청 추정
5) 보라색 화살표 : 왼쪽 도소(都所), 오른쪽 군사(郡司), 도소와 군사 사이에는 관청(官廳, 식사 담당 건물) 건물지

전편에서 남문 위치를 비정할 때 살펴본 것처럼 객사, 즉 객관(客館)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길 위에 남문이 뚜렷하게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객사와 청량당 사이에는 영천군 관아 건물군에 속하는 길청, 장청, 장방 등의 여러 건물이 보이고, 동헌과 객관 사이에는 동헌 내삼문(內三門), 외삼문(外三門)으로 보이는 구조물이 관찰됩니다. 파란색 화살표 건물이 동헌 대청이 맞는다면(거의 확실), 동헌 건물의 측면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이미지 품질이 매우 아쉬운 상황입니다.

경상북도 영천군 역사 지도 (일제강점기)
9번 그림 - 경상북도 영천군(永川郡) 읍내 지도


위 9번 그림은 일제강점기 때의 영천시 읍내 지도 4장입니다. 각 설명은 아래와 같습니다.

1) 1910년 측도(測圖), 1912년 제판(製版) 지형도
2) 1915년 측도, 1916년 제판 지형도
3) 1926년 영천-청송간 3등도로 예정 지도
4) 1932년 영천군 『군세일반(郡勢一班)』 수록 지도

1910년 지형도에서 군역소(郡役所)가 객사 자리에 소재하고 있습니다. '군역소'는 일본에서 군청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지형도를 일본제국육지측량부(日本帝國陸地測量部, 일본 육군 참모본부 육지측량부)에서 제작하였기 때문에 일본식 명칭이 곳곳에 붙었습니다. 지형도를 보면 당시 경찰서는 군역소 동남쪽(객사 옆에 있던 군기고 위치?)에, 우편국은 조양각 북쪽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한제국 시기에 근대 행정 체계 도입으로 인해 넓은 사무 공간이 필요해지자 기존 동헌을 벗어나 객사로 군청을 옮겨 설치하는 경우가 여럿 있었습니다. 영주(榮州, 永川), 삼척(三陟), 영월(寧越) 등이 대표적입니다. 객사가 고을에서 가장 큰 규모(면적)의 건물이었기 때문에 군청, 보통학교 등의 용도로 많이 활용되었습니다. 때로는 일본군이 동헌을 차지하자 군청이 객사로 밀려난 경우도 있었습니다. 군역소(객사) 남쪽에 남문이 '옥문(屋門, 건물 문)'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1911년 7월에 영천공립보통학교(永川公立普通學校)가 설립되자 군청이 객사 공간을 보통학교에 내어주고 원래 동헌 터로 이전합니다. 1910년 지형도보다 정밀하게 제작된 1915년 지형도를 보면 학교를 뜻하는 '文(문)' 자가 객사 자리에 있습니다. 군청을 의미하는 타원형 표시가 동헌 자리에, 경찰서가 군청 남쪽에 있는데, 경찰서가 처음부터 이 자리(작청)에 있던 것인지, 아니면 1910년경에는 객사 남동쪽 군기고(軍器庫) 자리에 있다가 군청 이전과 맞물려서 이사한 것인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합니다. 우체국 위치는 동일하고, 우체국 남쪽 조양각 터에 일본인 학생들을 위한 소학교(小學校)가 들어섰습니다. 남문이 '옥문'에서 '성문(城門)'으로 변경 기재된 것도 눈에 띕니다. 노란색 화살표와 초록색 화살표는 동헌 외문루(外門樓, 육명루), 외삼문(外三門, 군청 정문)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1920년대 중반에 영천과 청송(靑松)을 잇는 3등도로가 신설됩니다. 도로 등급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1등도로는 경성(京城, 서울)과 도청(道廳) 소재지를 연결하는 주요 도로, 2등도로는 도청과 관내 군청을 잇는 도로, 3등도로는 군 단위를 오가는 도로입니다. 즉, 영천군과 청송군(靑松郡) 사이의 신작로 건설을 위해 작성한 도면이 9번 그림의 왼쪽 아래 1926년 3월 작성 「영천군 소재양여물건 용도폐지에 관한 건」 문서 수록 지도입니다. 보통학교 부지를 관통하는 형태로 도로 예정 부지가 점선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보통학교(객사) 왼쪽(서쪽)에 등기소와 금융조합(금조)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8번 사진의 도소 또는 관청(등기소), 군사(금융조합) 위치입니다. 1915년 지형도에서 남문 근처 보관청(保管廳, 죄수 대기 공간) 추정지에 있던 영천면(永川面) 면사무소가 1021년 8월 3일에 영천읍성 서문(西門) 방향의 성내동(城內洞) 19번지로 이전되어 있습니다.

1932년 지도를 보면 3등도로가 개설된 이후의 영천읍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객사 자리에 있던 보통학교는 도로 건설을 기점으로 현재 영천초등학교 주소지인 금호강(琴湖江) 남쪽 금노동(金老洞) 504-1번지로 신축 이전합니다.


1928년 발행 영천군 『군행정일반(郡行政一班)』 기록에 따르면, 영천초등학교의 전신인 영천보통학교는 1909년 6월 1일에 영천항교에서 사립명륜학교(私立明倫學校)로 건립되어 1910년 6월 1일에 사립봉명학교(私立鳳明學校)로 개칭되고 1911년(명치44) 7월 24일에 영천공립보통학교로 개편(인가)됩니다. 이후 1924년(대정13) 7월 28일에 학교 위치 변경을 인가 받고 이듬해 1925년에 금노동 신교사로 일부 학급을 이전하였습니다. 3등도로 개설을 기해 본격적인 금노동 교사 증축 사업이 시행되어 학교 이사가 최종 완료된 날짜는 1929년 12월 5일이라고 합니다.

조양각 앞마당에 있었던 영천소학교는 1909년(명치42) 5월 1일에 심상고등소학교(영천일본인회 설립)로 시작되어 1910년(명치43) 6월 9일에 소학교(영천학교조합 설립)로 개칭되었다가 1912년(명치45) 4월 1일에 영천공립심상소학교로 개편되고 1916년(대정5) 3월 18일에 고등과(高等科)를 병치(倂置, 증설)합니다. 1945년 8월 해방 후에 소학교 시설을 기반으로 다시 개교하였으며, 현재 교명은 영천중앙초등학교입니다.

경상북도 영천군(영천시) 객사 및 영천경찰서
10번 사진 - 영천군 객사 및 작청 (영천공립보통학교 및 영천경찰서)


위 10번 사진은 영천군 객사와 작청(作廳)입니다. 사진 촬영 당시에는 각각 영천공립보통학교와 영천경찰서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회색 사진은 남문 비정 글에서 살펴본 사진엽서 수록 사진이며, 오른쪽 아래는 9번 사진과 같은 『경북사진편람』 수록 사진입니다.

객사 영양관(永陽館, 迎賓館)의 건물 규모는 중앙 정청(正廳)이 정면 3칸, 오른쪽 동익헌(東翼軒)과 왼쪽 서익헌(西翼軒)이 각 5칸인데, 동익헌의 기둥 간격이 서익헌보다 약간 넓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파란색 화살표로 표시한 동익헌 앞 건물에 주의합니다. 객사 정문인 외삼문도 일부지만 형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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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경찰서(永川警察署)는 우리말로 '질청' 또는 '길청'이라고 부르기도 했던 작청에 소재하고 있었습니다. 작청은 고을 동헌에서 일하던 아전(衙前)의 근무 장소로 인리청(人吏廳)이라고도 합니다. 행랑채에 있는 대문이 1칸이며, 경찰서 본청 건물로 사용되던 작청 대청은 정면 5칸 규모로 추정됩니다. 경찰서 사진 서쪽(남쪽)에는 영천우체국이 있었습니다. 경찰서 사진엽서 사진에 우체국으로로 보이는 건물 일부가 보이네요. 지방 수령(사또)를 보좌하는 장교의 장청(將廳, 將官廳)과 연계된 장방(將房) 지역으로 추정합니다. 기록에 따르면 1910년 즈음의 영천우체국 부지 면적은 287평이었으며, 아래 12번 그림 지적원도의 창구동 34번지 면적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경상도 영천군 동헌 건물 및 객사 도면
11번 사진 - 영천군청 전경 및 영천객사 도면


위 11번 사진은 영천군 군청(동헌) 사진과 청사 배치도, 그리고 영천보통학교 도면 자료입니다. 왼쪽 위 사진은 『경북사진편람』 수록이며, 중앙 아래 작은 사진은 사진엽서, 그리고 오른쪽 아래 큰 사진은 1917년 2월 20일자 『부산일보』 수록 영천군청 사진입니다.

1916년 『경북사진편람』 사진은 군청 남남서쪽(7시 방향)에서 찍은 것이고 촬영일 불명의 사진엽서와 1917년 『부산일보』 수록 사진은 남남동쪽(5시 방향)에서 찍은 것입니다. 사진엽서와 『부산일보』 사진은 완전히 동일합니다. 신문사에서 영천군을 방문해 사진을 찍지 않고 시중에서 구한 사진엽서 이미지를 그대로 신문에 게재했기 때문으로 추정합니다.

이 두 사진에 보이는 건물 형태를 바탕으로 건물 배치를 분석하면 영천군 동헌의 진입 체계를 추론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외문루, 외삼문, 내삼문, 동헌 대청이 일직선상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외문루를 거쳐 외삼문으로 들어간 후, 약간 왼쪽으로 틀어서 내삼문으로 진입하는 형태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1931년 영천군청 청사 배치도면을 보면 표문(表門, 정문)과 본청(군청)이 일직선상에 있지 않습니다. 기존 동헌 건물의 배치 형태가 1932년 12월 신축된 군청 설계에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도면에서 북쪽 문이 동문으로 표기된 것이 특이합니다.


오른쪽 영천공립보통학교 실측도면은 9번 그림의 3등도로 개설 지도와 같은 목적으로 제작된, 동일 문건 수록 도면입니다. 영천보통학교(객사) 중앙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도로가 계획되면서 보통학교를 다른 곳으로 이전할 필요가 있기에 이를 위한 검토(객사 부지 매각 및 학교 이설 점검) 차원에서 도면을 만든 것입니다. 이 보통학교 도면 오른쪽에 '영천군 영천면 창구동(倉邱洞) 90번지'라고 기재되어 있으며, 도면 외곽이 1912년 지적원도의 창구동 90번지 필지와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따라서 영천군 객사가 어느 곳(현재 영천시 창구동 90-22 일대)에 있었는지는 분명합니다. 참고로 건물 부분의 분홍색은 필자 채색이며, 해당 문건에는 금노동 소재 보통학교 이전(移轉) 증축 평면도가 함께 수록되어 있습니다.

도면의 보통학교 교사(校舍) 건물 평면에서 측면 폭 일부에 의문이 있지만 사진 자료와 도면상의 건물 가로 너비를 감안하면 1926년까지도 별도의 신축 없이 본래의 객사 건물을 부분 개수한 상태에서 학교 건물로 계속 사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앞의 3등도로 예정 및 보통학교 도면 수록 문건에도 '구객사건물(舊客舍建物) 3동(三棟) 129평(百貳拾九坪)'이라고 적혀 있습니다(부지 실측면적은 1,561평). '3동'은 정청과 동익헌, 서익헌으로 구성된 건물 3채를 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역(逆) 디귿자(ㄷ) 모양의 공수(公須, 객사 공수청) 건물이 객사 서남쪽 모퉁이에 있었고, 10번 사진에서 살펴본 파란색 화살표 건물이 도면에도 그 위치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오른쪽(동쪽) 목조 건물도 조선시대부터 존재하던 것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1927년 11월 신문 기사에도 '구객사 앞[舊客舍前]'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영천군 관아 건물 배치 (영천시 1912년 지적원도)
12번 그림 - 경상도 영천군 동헌 및 객사 건물 배치도 (1912년 지적원도)


위 12번 그림은 1912년 측량 지적원도에 영천군 동헌 및 객사 건물을 표기한 것입니다. 빨간색 글자는 조선시대 건물, 보라색 글자는 일제강점기 용도, 녹색 글자는 현재 건물 명칭, 검은색 숫자는 당시 필지 번호(지번 주소)이며, 객사와 군사(금융조합), 작청(질청), 청량당, 동헌 등의 건물 위치 및 칸[間]은 필자 추정입니다. 동헌 부지는 문내동(門內洞) 152번지로 원래 한 필지였는데, 군청 앞에 도로가 나면서 군청 부지(152-1번지)와 군청 앞 공터(152-2번지)로 분할되었습니다. 이 남쪽 공터를 군청 앞 광장[郡廳前廣場], 영천군청 정원(庭園) 등으로 호칭한 신문보도 기록이 있습니다.

동헌 건물은 앞 11번 사진 설명에서 추정한 것처럼 외문루-외삼문-내삼문-동헌 진입로가 일직선에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동헌, 외문루 위치 등은 추정인데, 실제 동헌은 신축 군청 건물이 있던 ㉠ 자리에 있었을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외문루인 폐문루(閉門樓)도 약간 남쪽인 ㉡ 자리에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확률 낮음). 동헌 건물은 최소 정면 5칸, 측면 2칸 정도로 추정되는데, 정면 7칸, 측면 4칸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쩌면 7x4칸이 전후좌우 퇴칸(退間)을 포함한 것일 수도 있겠네요.

국가기록원 소장 1917년 영천군청 청사 건물 목록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번호 건축 년월 구별 구조 평수 비고
1 명치44년(1911) 7월 사무실(事務室) 1 조선식
와즙 목조
25.69 內 숙직실 3평
군수실 3.68평
2 개국320년(1711) 동(仝) 분실(分室) 1 상동 41.36 -
3 명치44년(1911) 7월 회의실(會議室) 1 상동 8.40 -
4 상동 인민공소(人民控所) 1 상동 7.29 -
5 개국390년(1781)? 문장옥(門長屋)? 1 상동 16.73 內 소변실 3평
물치겸용
6 명치44(1911) 7월 변소(便所) 1 상동 2.40 -
7 대정5년(1916) 11월 창고(倉庫) 1 상동 7.50 -


구조 항목의 '조선식(朝鮮式) 와즙(瓦葺, 기와지붕) 목조(木造)'는 한옥(韓屋) 기와집 건물임을 나타냅니다. 1917년 당시 영천군청(永川郡廳) 건물 7동(棟) 가운데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1911년 이후에 신축된 건물이 5동입니다. 객사 자리에 있던 군청(군역소)이 영천보통학교에 터를 내어준 후 동헌 터로 복귀하면서 사무 공간 확보를 위해 여러 동의 건물을 급히 마련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시대 건물은 2번 사무실 분실(分室)과 5번 문행랑(門行廊)이며, 특히 2번 사무실 분실은 영천군 동헌 건물로 추정됩니다. 4번 인민공소는 민원인 대기실입니다.

동헌인 목애당(牧愛堂)의 건물 면적 41.36평(136.7제곱미터)은 동헌 건물 그대로일 수 있지만 군청 사무실로 사용하기 위해 출입문이나 퇴칸, 복도 등을 일부 확장 혹은 개조한 상태에서 측정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즉, 실제 조선시대 동헌은 30평 후반이었을 수 있습니다. 41평이라는 면적 자체는 청주목 동헌인 정면 7칸, 측면 4칸의 청량각(淸寧閣)과 거의 비슷한, 전형적인 고을 동헌의 건물 규모입니다. 5번 문행랑은 1917년 당시 남아 있던 동헌의 내삼문 또는 외삼문(유력) 행랑채일 것입니다. 비고 항목의 '물치(物置)'는 일종의 창고 공간입니다.


1934년 『익양지(益陽誌)』, 135년 『영양지(永陽誌)』 등에 따르면 아사(衙舍) 앞, 즉 동헌 남쪽에 '육명루(六鳴樓)'가 있었다고 하는데[六鳴樓 在衙舍前], 동헌과 별도 건물이 아니라 동헌 외문루(폐문루)의 2층 누각에 걸린 편액 글자가 육명루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됩니다. 외문루 이름이 육명루였다고 해도 조선시대에 육명루였는지, 동헌 문루로서의 기능이 사라진 후(대한제국 또는 일제강점기 이후)에 그러한 명칭이 부여된 것인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후자 유력). 1917년 청사 건물 목록에 외문루가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볼 때 1916년 전후로 철거되었던 것 같습니다. 외문루는 제외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에 그냥 목록에서 빠진 것일 수도 있지만요.

작청 자리에 있던 영천경찰서는 1972년에 재건축되었다가 1991년 8월에 금호읍(琴湖邑)으로 신축 이전하였으며, 부지 일부(초록색 채색 범위)가 경북영천경찰서 중앙파출소로 현존하고 있습니다. 동헌과 객사 부지 사이의 문내동 158번지와 186번지도 국유지(관유지)인데, 정확한 용도는 미확인입니다. 아병당(牙兵堂) 또는 노방(奴房), 교방(校房) 공간으로 추정됩니다.

영천시 항공사진 (조선시대 건물 배치도)
13번 사진 - 영천군 동헌, 객사, 작청, 조양각 등 관아건물 위치 항공사진


위 13번 사진은 12번 그림의 지적원도를 현대 항공사진에 그대로 겹친 것입니다.

객사 전청(殿廳)과 정문을 남북으로 통과하는 도로 천문로(天文路)가 보이고, 옛날 동헌 자리에 영천시보건소가 넓게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보건소를 건축하는 과정에서 지하를 깊게 공사했을 것 같아서 발굴조사를 해도 별다른 흔적이 남아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동헌 북쪽의 우물 터에는 혹시 유구(遺構)가 있을 것 같기도 하네요. 청량당 건물 복원은 고화질 사진 자료가 전해지고 있으므로 조양공원(朝陽公園) 정비 차원에서 충분히 진행 가능해 보입니다.

지도 아래쪽 '중앙사거리'의 별칭이 '남문사거리' 또는 '남문통(南門通)', '남문통 사거리'입니다. 전편에서 비정한 남문 위치가 바로 중앙사거리 남쪽 약 50미터 지점입니다. 남문이 그 자리에 있었기에 그러한 명칭이 계속 이어져 지금까지 동네 사람들에 의해 그처럼 불리고 있는 것이겠지요. 지명 뒤에 '통(通, 길)'이 붙는 것은 일본식 명칭입니다.

영천군(永川郡) 동헌(東軒) 건물 배치도


위 14번 그림은 지난 4월에 올렸던 '한옥 용어 및 관아 건물 배치' 글에서 한 번 소개했던 것입니다. 각 건물 간격을 고증(11번 사진 참조)에 맞춰 추가 조정하였습니다.


이상으로 약 1년 가량 틈틈이 수집하고 확인한 자료를 토대로 작성한, 경상북도 영천시 소재 영천군 동헌 건물군 및 객사 건물에 관한 글을 마칩니다. 각 고건축 건물의 위치, 배치, 형태 등에 대해 알고자 하는 분들께 약간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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