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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7일, 전주(全州)에 있던 전라감영(全羅監營) 건물 일부를 복원한 준공기념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 전라도 지역의 행정을 총괄하던, 오늘날의 도청(道廳)과 비슷한 기능을 하던 곳이 바로 전주 소재 전라감영입니다. 현재 전라북도 도청 역시 전주에 있죠. 감영의 중심 건물인 선화당과 그 옆 누각인 관풍각, 관찰사와 그 가족이 거주하던 내아, 연신당, 선화당 앞 내삼문 등 7동(棟)의 건물이 넓은 전라감영 부지에 복원되어 있는데, 역시나 그 복원 내역에 일부 의문이 있습니다.

현재 복원 완료된 전라감영 건물 목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선화당(宣化堂) : 종2품 관찰사(觀察使)의 공식 업무 공간
2) 관풍각(觀風閣) : 관찰사 업무 및 휴식 공간
3) 내아(內衙) : 관찰사 및 관찰사 가족 거주 공간
4) 내아 내행랑(內行廊) : 내아 공간과 선화당 사이의 행랑채
5) 연신당(燕申堂) : 관찰사 근무 및 휴식 공간
6) 내삼문(內三門) : 선화당 앞 내부 출입문
7) 외행랑(外行廊) : 전라감영 동쪽 도로에 접한 행랑채

전주 전라감영 선화당 관풍각 복원 건물 사진
1번 사진 - 복원 전라감영 선화당 및 관풍각 건물


위 1번 사진은 2022년 11월에 촬영한 전라감영 복원 건물인 선화당과 관풍각 전경입니다. 노란색 화살표를 보면 선화당 지붕의 용마루를 비롯한 기와 부분이 양성바름(兩城바름)으로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한 7번 사진 설명을 참조)

선화당 오른쪽(동쪽) 건물이 관풍각입니다. 빨간색 화살표를 보면 건물 아랫부분이 꽤 높은 돌기둥으로 되어 있습니다. 파란색 화살표 부분은 건물 기단부입니다. 역시 단단한 돌로 만들어져 있네요.

사진 중간을 보면 현재 관풍각에 걸려 있는 복원 편액과 원래 존재하던 편액 형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편액의 글자 크기는 논외로 하고, 글자 사이에 간격이 상당히 넓은 모양으로 변형되어 제작된 상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 지금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전주 전라감영 관풍각 지도 자료
2번 이미지 - 전라감영 관풍각 복원 자료 (전주 옛날 지도)


위 2번 이미지는 관풍각 복원을 위해 참고한 사진과 지도 자료입니다.

위쪽은 1928년경 제작된 전북도청 회엽서(繪葉書, 사진엽서) 사진의 일부이고, 아래는 조선시대에 작성된 지도 2종인 19세기 후반의 〈완산부지도(完山府地圖)〉 및 18세기 후반의 〈전주지도(全州地圖)〉입니다. 이러한 자료는 전라감영 복원 과정에서 관계 기관 및 연구자에 의해 당연히 참고되었습니다.

위쪽 회엽서 사진에서 보이는 선화당 건물과 관풍각 건물의 높이를 감안하면, 구한말-대한제국 시기의 관풍각은 1번 사진에서 살펴본 것(복원 건물)처럼 장초석(長礎石, 긴 주춧돌) 형태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둥으로 인해 관풍각 지붕 높이가 너무 높게 올라섰기 때문입니다.

아래 두 지도에서 묘사된 관풍각 건물의 차이점을 살펴보면,

ㄱ) 〈완산부지도〉 관풍각 : 일반 단층 건물 형태
ㄴ) 〈전주지도〉 관풍각 : 기단을 갖춘 2층 누각 형태

이 두 지도가 모두 완벽한 고증에 기반하여 그려진 것이 아니기에 실제 형태는 얼마든지 달랐을 수 있습니다. 즉, 18세기 관풍각이 다소 높은 마루 아래 기둥으로 지어진 단층이었을 수 있고, 19세기 관풍각이 2층인데 그냥 1층으로 그렸을 수 있습니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높은 2층 누각이 한층 멋들어지게 보였기 때문인지) 복원 과정에서 아래 오른쪽의 18세기 전주지도 형태를 채택하여 장초석을 갖춘 누각 형식으로 복원되었습니다.

1912년 전주 전라감영 지적원도 1917년 지형도
3번 이미지 - 전주 전라감영 건물 배치도


위 3번 이미지는 1912년 제작 전주 지역 지적원도와 1917년 측량 지형도입니다. 지적원도는 1912년 작성된 그대로가 아니라 필자가 조선시대 골목길 일부를 보정한 것입니다.


왼쪽 지적원도에 전라감영 건물들을 표시하였는데, 선화당과 관풍각은 1828년 '전라북도청사 기타증측공사 계획배치도' 도면을, 내삼문과 중삼문(中三門, 중문), 비장청(裨將廳, 막부), 응청당(凝淸堂), 영리청(營吏廳), 장방(長房) 등의 부속 건물 오른쪽 지형도 및 경무부 관련 공사 도면 등을, 본관(本官)의 풍락헌(豊樂軒, 飮醇堂)과 내아, 내삼문 등은 1910년경 '전주 자혜의원 부속 병실 신축 배치도' 도면을 참고하였습니다.

'본관'은 전주 지역의 행정을 담당하던 종2품 전주부윤(全州府尹) 또는 종5품 전주판관(全州判官)이 근무하던 관아입니다. 즉, 본관은 전주부(全州府)의 동헌(東軒)입니다. 전주부윤은 오늘날 전주시장에 해당하며, 전라감영이 도청이라면 본관은 오늘날의 전주시청이라고 볼 수 있죠. 전주부윤을 전라도 관찰사가 겸직하던 시기에는 그 아래 판관이 실질적으로 부아(府衙, 본관)를 이끌었습니다.


오른쪽 지형도를 보면 1917년 당시에는 전라감영 선화당에 전라북도 경무부(警務部)가, 관풍각에 전주헌병대(全州憲兵隊)가, 비장청에 전주면(全州面) 면사무소가, 선화당 서쪽의 영리청 일대에는 경찰서가, 본관에는 전주군청(全州郡廳) 및 전라북도 자혜의원(慈惠醫院)이, 본관(전주부 관아) 남쪽의 수성창(守城倉), 고마고(雇馬庫) 등 창고 부지에는 전주 제2보통학교(第二普通學校)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관찰사 내아 지역에는 일본식 도장관(道長官, 道知事) 관사가 있었으며, 내아 동쪽에 있던 연신당은 도장관 응접실 신축 또는 관사 증축을 위해 1912년 10월경 훼철(철거)되었습니다.

원래 전라감영 선화당 자리에 있던 전라북도 도청은 1911년 9월에 경원동3가(당시 花園町) 70-1 필지에 있던 전주 재무감독국(財務監督局) 청사 자리로 이전하였다가 1921년 11월에 다시 선화당 앞의 신축 건물로 돌아옵니다. 여러 소개 자료에서 세무감독국이라고 되어 있는데 재무감독국이 맞습니다. 본관 자리에 건립되었던 자혜의원은 1922년경 경원동3가 도청 부지의 대각선 맞은편 지역으로 새 건물을 짓고 이전합니다. 현재 한국전통문화전당 소재지입니다.

전주 전라감영 관풍각 편액(현판)
4번 사진 - 전라감영 관풍각(觀風閣) 편액


위 4번 사진은 1942년에 출판된 『전주부사(全州府史)』에 실려 있는 관풍각 편액 사진입니다. 1번 사진에 작게 포함한 편액 이미지의 원본 출처입니다. 이처럼 실물 촬영 사진이 존재하기 때문에 편액을 더욱 완전하게 복원할 수 있었을 텐데,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1번 사진에 걸려 있는 편액처럼 제작되었습니다.

관풍각 건물은 전라북도 경무부 시기에 회의실로 사용되었고, 1921년에 전북도청으로 환원된 후에는 도청 부속건물로 사용되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1920년대에는 순사교습소 건물로 활용되고 있었다고도 합니다. 이 관풍각은 1928년에서 1929년 사이에 선화당 남쪽의 도청 본관을 북쪽으로 확장 증축하는 과정에서 철거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편액 일부만 남아 전주시 역사를 기록한 책자에 실리게 되었네요.

전주 소재 전라감영 관풍각(觀風閣) 사진
5번 사진 - 전주 전라감영 관풍각 사진


위 5번 사진은 1920년 10월 간행된 『경무휘보(警務彙報)』 제185호에 수록된 '전북사법경찰강습회' 기념사진입니다. 『경무휘보』는 조선경찰협회가 발행한 경무총감부(警務摠監部) 기관지이며, 관풍각 편액 상단 부분은 4번 사진의 이미지를 편집한 것입니다.

이 사진의 존재가 바로 현재 관풍각 복원 오류의 증거입니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기 관풍각은 2층 누각 형태가 아니었습니다. 일반 단층 건물에 비해서 마루 위치가 다소 높아 보이지만, 전체적인 건물 형태가 어떠했는지를 짐작하기에 충분합니다.

빨간색 화살표는 관풍각의 마루 아래 공간이며, 파란색 화살표는 돌로 된 기단부입니다. 1번 사진의 빨간색, 파란색 화살표 부분과 분명하게 대비됩니다. 사진에 찍힌 당시 사람의 키 높이를 감안하면 기단 높이(50~60cm?), 마루 높이(50~60cm?), 편액 크기(가로 약 2.2m?), 평주(平柱, 바깥 기둥) 간격, 건물 규모, 구획 등을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원주 소재 강원감영 관풍각
6번 사진 - 원주 소재 강원감영 복원 관풍각


위 6번 사진은 2018년 10월에 복원된 원주시 소재 강원감영(江原監營) 후원의 관풍각의 2020년 9월 촬영 사진입니다. 이 원주 관풍각은 비교적 충실하게 복원된 것입니다. 앞의 5번 사진을 참고하면 전라감영의 관풍각의 건물 아래 기둥 부분은 1번 사진의 장초석(돌기둥) 복원 모습이 아니라, 위 강원감영 관풍각 복원 건물에 가까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즉, 건물 기단부가 1번 사진의 선화당처럼 없거나 만일 있더라도 위 사진의 빨간색 화살표 부분처럼 매우 낮은 형태로 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관풍각을 돌기둥의 2층 누각 형태로 복원하면서도 (2번 회엽서 사진을 참작하여) 건물의 전체 높이를 선화당보다 높게 만들 수 없었기에 최종 단계에서 편액 크기를 그에 맞춰 조정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편액 크기와 글자 배치를 원본과 다르게 만들 수밖에 없게 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전라감영 비장청은 관련 자료 미비를 이유로 일단 복원이 보류되어 현재 공터로 그 공간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관풍각도 왜 그처럼 보류하지 않고 굳이 복원했어야 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전라감영 건물 다수가 대한제국와 일제강점기에 관공서 건물로 활용되었기에 시간을 두고 기다리다 보면 사진, 도면 등의 자료가 언젠가는 추가 발견될 것이기 마련인데 말이죠.

설령 당장에 추가 자료가 없더라도 2번 이미지의 1928년 사진엽서 자료와 관풍각이 관청 부속 건물로 활용되었다는 여타 기록을 보면 돌기둥의 2층 누각보다는 사무실로 개조하기 쉬운 나무 기동 건물 혹은 단층 건물로 추론하는 것이 합리적이었을 텐데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냥 '18세기 관풍각으로 복원했습니다'라며 넘어갈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919년 촬영 전라감영 선화당(宣化堂) 사진
7번 사진 - 1919년 하반기 전라감영 선화당 전경


위 7번 사진은 1920년 1월 발행 『경무휘보』 제176호에 실린 선화당 사진입니다. 일본인 순사(巡査) 석천종사랑(石川宗四郎, 1891~?)에게 공로기장을 수여하는 광경을 1919년 하반기에 촬영한 사진입니다. 당시 선화당 공간을 경무부가 사용하고 있었기에 이 장소에서 기장 수여식이 진행된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공로기장 수여가 결정된 내용은 1919년 7월 24일자『조선총독부관보』 제2086호에 실려 있습니다(1919년 7월 22일 결정).

빨간색 화살표로 표시된 선화당 왼쪽 뒤로 보이는 건물이 향후 전라감영 복원시 중요한 참고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초록색 화살표로 표시된 어두운 부분은 내삼문의 그림자인 것처럼 보입니다. 내삼문에서 선화당으로 이어지는 출입로(돌길)에 놓인 판석 색상도 현재 복원은 흑색인데 내삼문 그림자 색이나 등장인물 복색과 비교하면 실제는 밝은색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현재 전라감영 선화당은 기와지붕 용마루를 회반죽으로 하얗게 칠한 양성바름(양성마루)으로 형태로 복원하였는데, 위 사진의 노란색 화살표 부분을 보면 복원 관풍각 및 원주 관풍각의 지붕처럼 평범한 적새기와 용마루 지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원주 강원감영 복원도 같은데, 강원감영 선화당과 외문루(外門樓, 포정문)는 건물을 보수 또는 정비하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에 양성바름이 도입되었지만, 전주 전라감영은 허물어진 건물을 새롭게 세우면서 기록 사진 자료와 다르게 복원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선화당이라는 건물이 가지는 위상을 생각하면 복원 과정에서 이 정도의 변형은 충분히 이해될 여지가 있습니다.

전주 전라감영 선화당 편액 비교
8번 이미지 - 전라감영 복원 선화당 편액 (상단)


위 8번 이미지는 위쪽은 전라감영 선화당의 2020년 10월 복원 편액이고 아래는 필자가 2020년 7월에 그렸던 것입니다.

복원 사업단에서 그린 것처럼 선화당 사진엽서 사진을 토대로 그렸는데, 어느 것이 맞느냐는 논외로 하고 현재 복원된 편액은 글자 테두리가 너무 '오돌토돌'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붓글씨 획이 나가면서 저런 식으로 글자가 써지는 게 과연 자연스러운가 싶은 것입니다. (전체적인 글자 형태는 복원 편액이 맞겠죠. 아무래도 필자보다 고해상도 이미지를 기반으로 작업했을 테니까요.)

전주 전라감영(全羅監營) 건물 배치도
9번 이미지 - 전라감영 복원 건물 항공사진 비교


위 9번 이미지는 3번의 1912년 지적원도와 2022년 국토지리정보원 항공사진을 비교한 것입니다.

내삼문 복원 위치가 특히 다른데, 발굴 조사 결과를 토대로 복원한 항공사진의 내삼문 위치가 실제에 가까웠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능성이 작지만, 7번 공로기장 전달식의 선화당 사진에서 초록색 화살표 부분이 내삼문 그림자가 맞다면 1910년대에도 내삼문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을 것이므로(=1917년 지형도의 내삼문이 원형 유지 상태였음을 의미) 이 경우에는 필자 추정이 사실에 근접할 수 있습니다.

응청당, 중삼문, 장방, 영리청 및 본관 풍락헌, 내아 등의 추정 위치와 면적은 비교적 정확하며, 1917년 지형도를 따라 그린 비장청 및 비장청 동쪽 행랑은 상대적으로 부실합니다. 비장청 동쪽 행랑 바깥쪽의 짧은 행랑채는 도면 자료에 기초한 것입니다.



※ 2022년 3월경에 관풍각이 잘못 복원된 것을 알았는데, 현지 방문과 사진 촬영이 늦어서 지금에서야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전라감영의 복원 관풍각, 이대로 만족하고 그냥 두어야 할까요? 왜 이처럼 조급하게 옛 건물을 복원하는 것인지 답답한 마음입니다.

※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던 전주 한옥마을과 경기전(慶基殿)은 사람 물결로 바다를 이루던 반면, 전라감영에는 방문객이 거의 없어서 관광객 유치 측면만 볼 때 과연 관아 복원이라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인가 하는 회의감이 거듭 들었습니다. 한적해서 건물 사진 찍기에는 좋았지만요. 앞으로 잘 활용했으면 좋겠습니다.

※ 한동안 지방 관아에 대해서 다뤘네요. 다음 관아(官衙) 카테고리 글에서는 서울(한성부)에 있던 관청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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