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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왕조 왕실 계보도 정리 작업이 마무리되어 한글판 버전을 아래 사이트에 등록함(2007.11.24).
* 사이버 조선왕조 - 한성부 : 좌측 하단의 '종묘' 클릭 후, 화면 상단에서 '조선왕조 계보도' 클릭
+ 한문판 버전을 아래 사이트에 등록함(2008.01.01). 내림(2008.06).
* 작은 세상 - 조선왕조 - 왕실 : 제2면, 제3면의 수록 내용 및 '종묘' 메뉴의 컨텐츠를 아울러 참고
* 이하 본문은 2007년 6월 3일에 등록한 내용
 조선왕조 왕실 계보도 (未) 일전에 책을 읽다가 조선왕조 왕실 계보가 궁금해졌다.
을사오적 이지용(李址鎔)이 고종, 순종과 어떤 관계였고, 헌종의 후계로 거론되었던 이하전(李夏銓:1842-1862)이 선조 임금의 아버지인 덕흥대원군의 후손이라고 하던데 헌종과의 촌수가 어떻게 되었는지 하는 것들이 순간 궁금했던 것이다.
* 계보도 제작 결과, 이지용은 흥선대원군(대원왕 추존) 이하응의 형인 흥인군 이최응의 손자이고, 헌종과 이하전(경원군 추봉) 사이는 혈연상으로 25촌이다. 철종 및 문조익황제(효명세자)와 고종 사이는 호적상으로는 11촌이지만, 혈연상으로는 17촌. (2007.11.24 추가)
그래서 여기저기에서 자료를 끌어다 조선왕조 왕실 계보도를 끄적거려 만들기 시작했다. 위 그림은 작업중인 왕실 계보도의 말단 일부분이다. 일종의 샘플(오류 있음).
그런데, 나름대로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부분이 몇 있었다.
생전에 군호(君號)를 받지 못했거나 그 군호가 삭제된 경우는 그냥 이름만 기재할 것인가, 아니면 추봉(追封)된 군호까지 표기할 것인가, 대한제국으로 승격된 후에 친왕(親王)에 봉해진 인물은 왕호(王號)를 기준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군호를 기재할 것인가 등등... (이 문제들은 추봉 군호까지 적는 것으로 대충 확정했다)
그리고 또 하나 난감한 것이, 대한제국 시기에 황태자로 책봉되었던 영친왕(英親王)의 둘째 아들 이구(李玖:1931-2005)씨를 어떻게 표기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흔히 이구씨를 '황태손(皇太孫)'이라고 지칭한다. 황태자의 아들이자 황제의 손자라는 뜻이다. 혹자는 황세손(皇世孫)이라고도 하는데, 황세손보다는 황태손이 보다 적절한 표현이다. 중국 명나라 제도에 의하면 친왕의 장자는 세자(世子), 장손은 세손(世孫)이긴 하다. 고증을 더 해봐야 하겠지만, 그래도 여느 친왕이 아닌 태자(太子) 계통은 태손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그런데 이구씨가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황제국 대한제국은 망했고, 일제 강점하에서는 단지 일본의 왕족 신분으로 격하되어 이왕직(李王職) 통제하에 있었다.
그래도 고종, 순종은 황제로 즉위했고 순종이 살아 있었을 때까지는 그럭저럭 황실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 1926년에 순종이 승하한 후에 이왕(李王) 자리를 계승했던 영친왕의 경우는 황제 즉위식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호칭상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사실, 황제 즉위식은 고사하고 왕위 즉위식이라도 했는지 순종실록(부록)에 기록이 없다. 그저 일본의 왕공족(王公族) 제도에 따라 자동으로 그 지위를 계승했을 뿐.
다시 말해, 이구씨는 순종 황제가 승사하고 난 지 5년 후에 태어났다. 이 경우에, 과연 황태손이라는 명호가 합당한 것일까? 순종의 계후 윤씨가 살아 계셨으니 황태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황제국에서 이왕가로 강제 격하된 후이고, 영친왕의 황제 즉위식도 없었으므로 친왕(親王)의 아들 또는 계승자라는 의미에 충실하게 단지 '세자(世子)' 또는 '왕세자(王世子)'라고만 해야 할까? 이왕직의 건의를 거쳐 계후 윤씨로부터 세자 승인은 받았다고 하는 소리도 있으니 말이다.
어쨋든, 이런 저런 생각 끝에 일단 '세자(世子)'로 표기하기는 했으나, 이것이 얼마나 적합한 표현인지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이구씨 이하는 계보도에 수록하지 않았는데, 대한제국의 황통(皇統)은 이구씨를 마지막으로 종언을 고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구씨의 양자라는 이원씨가 있지 않느냐 하겠지만, 사후 양자 입적은 대한민국 민법(民法)에서 인정하지 않는다. 법적 효력 없음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대한민국이다. 혹자는 명종-선조, 철종-고종, 은신군-남연군의 사후 입적을 예로 들어 말하기도 하나, 그 때에는 그러한 결정을 내릴 주체(왕실)가 엄연히 있었고, 그런 결정이 곧바로 국법(國法)으로서의 실효성을 갖게 되는 국가 시스템이었다.
참고로, 조선시대에 양자를 주거나 들일 때에도 문중에서 그냥 결정하고 시행하는 것으로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모두 관청의 정식 허가를 받았다. 이를 입후(立後)라고 하며, 관청의 승인서인 입안(立案)을 받는다(통상 예조 관청).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이 은신군의 양자로 사후 입적될 때에 받은 입안 문서도 전해지고 있다(繼後禮曹立案). 조선시대에도 주먹구구식으로 양자 관계가 공인되지 않았는데, 오늘날 역시 대한민국 현행법에 근거해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판단이고 의견이지만, 그 양자라는 이원씨는 굳이 따진다면 사손(嗣孫)이 아닌 사손(祀孫)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군주제 아래에서라면 적통(嫡統)과 종통(宗統) 같은 것이 분리될 수 없지만, 지금은 민주공화정 대한민국이니.
즉, 제사를 맡아 주관하여 지내고 족보 같은 사문서에는 '계자(繼子)'라는 식으로 표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한 것들은 가문이나 문중 안에서 개별적으로 하는 것들이고, 현행 법령상으로는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하물며, 양자 입적을 주도하여 추진한 '대동종약원'이라는 단체가 곧 황실(왕실) 자체가 아닌, 한낱 사단법인인 다음에야.
이원씨를 이구씨의 양자로 설정한 것이 황족 어른들의 의견이 합치된 결과에 따른 것이라면 혹시 그런 주장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은 여황제까지 추대된 상황이니 이건 뭐...
결론은, 이원씨는 황손을 대표하여 선대에 제사를 지내는 사람일 뿐이지, 고종-순종으로 이어지던 황실의 적통은 이구씨를 마지막으로 단절되었다는 판단이다.
제사 지내는 사람에게 황실의 적통이 승계된 것이 아니냐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그네들 주장이자 생각이고. 가문이란 원래 자손이 없으면 대가 끊기기도 한다. 신라나 고려 왕실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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