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24일에 블로그 방문자 20만을 달성했습니다. 10만 달성 때처럼 기념하는 글을 올릴까 하였지만, 달리 생각해 보니 수많은 검색 로봇이 들락날락하는 현실 아래에서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정도로 특별한 일일까 싶어 날짜만 기록해 두고 그냥 넘어갑니다.매월 한 편씩 주요 컨텐츠를 담은 글을 올리려 하고 있는데, 이번 글은 월말이 되어서야 겨우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무더운 여름입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시원한(?) 남쪽 바닷가 끝, 조선시대 동래도호부(東萊都護府) 지역의 관아 건축물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제목은 부산진(釜山鎭)과 왜관(倭館) 사이에 있던 초량객사(草梁客舍) 및 성신당(誠信堂) 건물의 위치 비정에 관한 탐구입니다.초량객사 터에 관해서는 본 블로그에서 이미 두 차례 다룬 바 있습니다. ..

위 일러스트 이미지는 1892년(고종29) 7월에 낙성된 부산항 동래감리서(東萊監理署) 청사의 외삼문(外三門) 문루(門樓) 전경을 감리서 청사 안쪽에서 그린 것입니다. 본래 초량(草梁) 객사(客舍) 문루의 편액도 '공해루(控海樓)'였는데, 감리서 청사에도 같은 이름의 편액이 걸려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추정이지만, 과거 초량객사 문루의 편액을 그대로 옮겨서 걸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앞의 글 '경상좌수영, 동래도호부, 동래감리서, 부산진 및 다대포진 객사 이야기'에서 살펴본 것처럼, 초량 객사 중문에 있던 편액 '영원문(寧遠門)'이 최초 부산항감리서(동래감리서) 내삼문(內三門)에 걸려 있던 것을 참작하면, 초량 객사 외문루(外門樓) → 제2차 부산 판찰소 문루 (= 두모포진 외대문 = 최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