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朝廷)이 세워져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이 있다. 특히 유학(儒學)을 근본으로 하는 동양(東洋) 국가의 경우가 그러한데, 궁궐(宮闕)을 중심으로 좌묘우사(左廟右社) 체제를 취하고 관제(官制)와 법령(法令)을 세워 나라의 기틀을 안팎으로 확고히 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에 더하여 중시되는 것이 '역사(歷史)'이니, '천명(天命)을 받아 백성을 다스린다'고 하는 유교적 치도(治道) 개념에 가장 잘 부합되고 국초의 건국(建國) 이념이 오래 전승될 수 있도록 독려하고 견제하는 것이 바로 역사 기록이기 때문이다. 성곽(城郭), 법전(法典), 군신(君臣), 삼군(三軍) 등을 창업(創業)의 필수 요건이라 한다면, 역사는 선례(先例)와 포폄(褒貶)을 분명하게 새겨 후세(後世) ..
한 왕조(王朝)가 세워져 그 기틀이 반석(盤石) 위에 오르기까지는 국좌지재(國佐之材)의 재능을 가진 많은 인물이 국궁진력(鞠躬盡力)으로 힘써야 한다. 창업(創業)의 시기를 지나 종사(宗社)를 만세(萬世)에 전(傳)하는 수성(守成)의 시기에 이르러서도 역시 진충결사(盡忠決死)의 뜻으로 결심하고 호학애민(好學愛民)의 자세로 노력하는 인재들이 많이 요구되는데, 이러한 창업과 수성 사이에 필요한 인재들은 다른 시대에서 빌려올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반드시 당대(當代)에서 구(求)할 수밖에 없다. 한낱 초야(草野)에 묻혀 사는 선비의 말일지라도 사직(社稷)에 약간이나마 도움 되는 바가 있다면 조정(朝庭)에서 일체 듣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사서(史書)에 이르기를, '대개 나라가 망하는 것은 사람..
단양군(丹陽郡) 읍치(邑治) 동쪽으로 상진(上津)이 있는 곳에 천(川)의 지류가 흐르는데, 그 상류에 사인암(舍人岩)이 있다. 또 읍치 서쪽으로 흐르는 지류에는 상선(上仙), 중선(中仙). 하선(下仙)의 세 바위가 있는데 모두 팔경(八景, 단양팔경)에 든다. 사인암과 상선암(上仙岩) 사이가 바로 운선구곡(雲仙九曲)으로, 이름하여 유곡(酉谷) 또는 운암(雲巖)이라 부르는 곳이다. 이 운선구곡의 혈치(血峙)를 바라보는 좌산(左山)에 갑좌경향(甲坐庚向)의 묘(墓)가 있으니, 곧 진사(進士) 운암(雲巖) 이공(李公)의 묘이다. 본관이 전주(全州)인데, 공의 대(代)에 이르러 비로소 적성(赤城)에 세거(世居)하였으므로 선대(先代)를 자세히 상고(上考)할 길이 없으나, 간략히 전(傳)하는 가첩(家牒)에 의하면 4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