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사진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독일 장교 헤르만 산더(Hermann Gustav Theodor Sander, 1868-1945) 수집 사진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진 제목이 '마을 전경'으로 되어 있으며, 민속박물관 '독일인 헤르만 산더의 여행' 전시도록에는 의미 불명인 'Antoken'으로 표제되어 있습니다. 사진 뒷면에 적힌 글귀라고 합니다. 사진에 보이는 여러 건물, 풍경 등을 고찰하면 곧 서묘(西廟) 아래에 있었던 평양진위대(平壤鎭衛隊) 병영(兵營, 군부대)과 그 병사들의 훈련 모습입니다. 진위대 병영 북쪽에 있던 서묘(西廟)는 중국 삼국시대 인물 관우(關羽, ?-219)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祠堂)인 관제묘(關帝廟)입니다. 중국 청나라 때 관성대제(關聖大帝)로 추존하였고 대한제국에서도..

위 사진의 관인(官印), 즉 관청의 인장(印章. 도장)은 1897년 겨울 무렵부터 1908년 11월까지 약 11년간 사용되었던 평안남도 은산군(殷山郡)의 군수(郡守) 직인(職印)입니다. 은산군은 본래 종6품 현감이 부임하던 은산현(殷山縣)이었는데, 제2차 갑오개혁이 시행되던 중이던 1895년(고종32) 윤5월 1일자로 군수가 부임하는 은산군으로 승격됩니다. 다만, 이 당시 승격은 23부제 시행에 맞춰 전국 팔도의 부목군현(府牧郡縣)을 군(郡)으로 일괄 개편한 것이었기 때문에 명칭 변경 이외에 행정구역 조정과 같은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참고로 은산군은 평양부(平壤府, 평양관찰부)에 속한 27개 군 가운데 하나(군을 규모에 따라 나눈 5등급 가운데 4등군)였으며, 이듬해인 1896년 6월에 23부제가 13..
조선시대 각 도(道)의 행정, 사법을 책임지던 관청이 감영(監營)이다. 감영은 오늘날의 도청(道廳)이라 할 수 있고, 감영의 수장(首長, 長官)이 바로 관찰사(觀察使)였다. 관찰사의 품계는 종2품으로 현재의 차관급에 해당하며,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겸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군사 권한까지 관찰사가 가지고 있었다. 감영의 정청(政廳)을 선화당(宣化堂)이라 하였는데, 이 명칭은 팔도(八道)의 모든 감영이 동일했다. 경기도의 행정을 맡고 있던 경기감영(京畿監營)의 선화당 건물에 관해서는 2018년 7월에 올린 '조선왕조-구한말-대한제국 시기 한성부 관청 편액(현판) 이야기' 문서에서 짧게나마 한 번 다룬 바 있다. 이번 글은 그 선화당 건물의 1902년경 모습에 관한 짧은 이야기이다. 위 사진은 대한제국 주재..
※ 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안팎으로 조금은 바쁜 나날들이었습니다. 환절기 건강에 유의하세요~!! ※ 작년 6월에 블로그 운영을 재개하고 지금까지 주로 올린 글의 주제가 조선시대 및 대한제국 시기의 관청(官廳, 관아) 청사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이번에 다룰 '호조(戶曹) 관청 청사의 건물 배치 및 변천에 관한 소고(小考)'는 그러한 여러 편의 글 가운데 가장 중요한 내용이 될 것입니다. '언젠가는 호조 청사에 관한 글을 정리해 올려보겠다'는 마음을 가졌던 것이 불로그 재개의 원동력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짐과 기대가 컸던 것에 비해 내용이 많이 부실할 수 있지만, 하여간 2018년 여름에는 제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_~; ※ 본 글은 지난 2월에 올린 '광화문 앞 육조거리 6조 관청 청사..
※ 같은 제목의 글 상편(링크)에서 이어지는 사재감(司宰監) 청사 이야기입니다. (상편과 달리 이번에는 문체를 원래대로 써 보겠습니다.) 지난 상편에서 재정을 담당한 호조(戶曹) 관청의 속아문(屬衙門, 소속 관청)인 사재감의 위치를 살펴봤다. 이번 하편은 사재감 청사 터의 변천을 중심으로 하는 내용이다. 위 8번 지도는 1915년에 측량된 〈경성지형도(京城地形圖)〉의 일부분이다. 상편의 6번 지도와 동일하게 일본 참모본부(參謀本部) 육지측량부(陸地測量部)에서 제작한 1만 분의 1 축적 지형도이다. 사재감 터를 하늘색으로 표시했는데, 상편의 7번 실측 도면에서 살펴본 건물 3채가 표시되어 있다. 빨간 화살표로 표시한 것이 그것으로,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신당(神堂, 부군당), 대청(大廳), 주접실(住接室)이..
1910년 8월 29일 11시에 한일병합조약(韓日倂合條約)을 발표한 후, 같은 해 9월에 당시 한국통감부(韓國統監府) 제3대 통감(統監)이던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内正毅, 사내정의]가 창덕궁(昌德宮)을 방문하여 순종(純宗) 황제를 '이왕(李王)'으로 봉책(封冊)하는 문서를 전달[獻]한 후 복귀하던 모습을 촬영한 사진입니다. 단, 통감부와 일본 본토 사이의 전신(電信) 기록, 기타 관련된 사람들이 남긴 기술에 의하면, 경술국치(庚戌國恥) 직후인 9월 1일에 일제가 창덕궁에 칙사를 파견하여 일왕(日王, 일본 천황)의 한일 병합에 관한 조서(詔書) 사본과 하사품을 순종에게 전달할 때 별도로 이왕(李王) 책봉(봉책) 의식을 시행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실제 위 사진과 같은 행동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
※ 본 글은 작년 7월에 올린 '세종로 광화문 앞길 육조거리 의정부 및 육조 관청 배치도' 문서를 보완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앞으로 올리게 될(?) 육조거리 소재 주요 관청에 대한 개별 분석을 예정하는 글이기도 합니다. (일신상의 이유로, 이번 2월에는 이렇게 간략한 글을 올려봅니다.) 위 이미지는 1908년(융희2) 무렵 광화문 앞 육조거리에 있었던 여러 관청의 건물 배치도를 담고 있는 〈광화문외제관아실측평면도(光化門外諸官衙實測平面圖)〉이다. 1907년부터 1910년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제작 시기를 넓게 추정하기도 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확대됨) 현재의 광화문 앞 세종대로(세종로)는 조선시대에 육조거리[六曹街]라고 불렸을 정도로 조선왕조의 주요 관청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이조(吏曹),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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