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은 UMC Digital Galleries, 즉 미국 연합감리교회(United Methodist Church) 디지털 사진 갤러리 사이트에서 공개하고 있는 사진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진 제목은 'Shoveling with a nine-man shovel(9인용 삽으로 삽질하기)' 및 'Shoveling in Korea(한국에서 삽질하는 모습)'이며, 사진 설명처럼 좌우 4명씩의 인부가 삽에 연결된 줄을 양쪽에서 당기는 형태로 삽질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진 뒤로 보이는 건물들이 궁금했는데, 여러 자료를 검토한 결과 (99.98% 확률로) 사진 촬영 장소를 한양도성(漢陽都城) 서대문(西大門)인 돈의문(敦義門, 새문) 밖 경기감영(京畿監營) 인근으로 추정합니다. 사진 왼쪽에 보이는, 지붕 용..
※ 최근 몇 년 사이에 각 지역에서 조선시대 관찰사(觀察使)가 근무하던 관청인 감영(監營) 시설을 복원하거나 국가지정문화재(사적)로 지정해 관리하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전주(全州)의 전라감영이 얼마 전에 복원되었고, 공주(公州)와 원주(原州)에서 충청감영과 강원감영 구역에 대한 정비를 본격 추진하고 있으며, 조선 전기에 경상감영이 있던 상주(尙州)는 감영 건물을 복원해 공원을 조정하는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지방에서 가장 격이 높았던 관아 건물(랜드마크)을 내세워 지역 주민들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높이거나 자치단체장이 스스로 치적을 쌓기 위한 목적일 것입니다. 물론 가장 큰 목표는 관광객 유치겠죠. 이번 글은 이러한 감영 건물에 걸려 있었던 편액(현판) 글씨에 대한 이야기입..
조선시대 각 도(道)의 행정, 사법을 책임지던 관청이 감영(監營)이다. 감영은 오늘날의 도청(道廳)이라 할 수 있고, 감영의 수장(首長, 長官)이 바로 관찰사(觀察使)였다. 관찰사의 품계는 종2품으로 현재의 차관급에 해당하며,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겸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군사 권한까지 관찰사가 가지고 있었다. 감영의 정청(政廳)을 선화당(宣化堂)이라 하였는데, 이 명칭은 팔도(八道)의 모든 감영이 동일했다. 경기도의 행정을 맡고 있던 경기감영(京畿監營)의 선화당 건물에 관해서는 2018년 7월에 올린 '조선왕조-구한말-대한제국 시기 한성부 관청 편액(현판) 이야기' 문서에서 짧게나마 한 번 다룬 바 있다. 이번 글은 그 선화당 건물의 1902년경 모습에 관한 짧은 이야기이다. 위 사진은 대한제국 주재..
이 사진은 대한제국 시기에 촬영된 한성부(漢城府) 관청의 청사 사진이다. (사진 제일 오른쪽에 등장한) 외국인이 한성부 청사를 방문한 후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데, 많은 자료나 논문, 문헌에서 이 사진을 광화문 세종대로(육조거리)에 있던 한성부 청사인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실제는 돈화문(敦化門, 서대문) 밖, 지금의 서울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3, 4번 출구 인근에 있던 경기감영(京畿監營)의 본청인 선화당(宣化堂) 건물이다. 즉, 한성부 청사가 (사진을 촬영하던 1902년부터 1908년 사이의 어느 시기에) 예전 경기감영이 있던 자리로 옮겨 있었던 것이다. 경기감영은 경기관찰부(京畿觀察府)로 개편되어 1896년(고종33)에 이미 수원(水原) 화성행궁(華城行宮)으로 이전한 상태였다. ※ 위 한성부 청사 사..
+ 본 관청 청사 배치도는 조선시대 지도, 읍지, 문헌 및 관련 논문, 전문 서적, 언론 보도 등의 자료를 토대로 제작함.+ 각 감영(監營, 관아)의 상세 배치도는 아래에 링크한 사이버 조선왕조(http://www.1392.org) 각 지역별 관청(감영)의 안내 메뉴에서 확인 가능.* 사조 - 한성부 홈페이지 : http://www.1392.org/hsb (경조 안내 메뉴 클릭)* 사조 - 경기감영 홈페이지 : http://www.1392.org/ggd (기영 안내 메뉴 클릭)* 사조 - 충청감영 홈페이지 : http://www.1392.org/ccd (금영 안내 메뉴 클릭)* 사조 - 경상감영 홈페이지 : http://www.1392.org/gsd (영영 안내 메뉴 클릭)* 사조 - 전라감영 홈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