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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인사동길 소재 충훈부(忠勳府) 청사 배치 평면도 추정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대표적인 서울시내 관광 명소인 '인사동길(Insadong-gil)'은 남쪽으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仁寺洞), 북쪽으로 역시 종로구의 관훈동(寬勳洞)에 걸쳐 있다.

인사동길의 북단, 그러니까 율곡로(栗谷路)와 우정국로(郵政局路)가 만나는 안국동(安國洞) 사거리에 인접한 공간에 '북인사마당(北仁寺마당)'이 있는데, 그곳에 충훈부 터의 위치를 알리는 표지석과 해방병단 결단식 터 기념석이 설치되어 있다. (아래 지도 참고)

충훈부 표훈원 위치 (현대 지도)
1번 지도 - 현재 지도상의 충훈부 터 위치 (Daum 지도)


충훈부(忠勳府)는 조선시대 관청의 하나로서, 나라에 공을 세운 신하를 지칭하는 공신(功臣)을 우대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본래는 한성부 북부(北部) 광화방(廣化坊, 현재의 종로구 원서동 일대, 즉 창덕궁 궁궐 서쪽 지역)에 있었으나, 중종(中宗) 초년에 중부(中部) 관인방(寬仁坊) 지역으로 이전되었다. 이 관인방의 충훈부가 바로 위 지도상의 충훈부 터 위치가 된다.

충훈부 청사가 있던 곳을 조선시대에는 충훈부내계(忠勳府內契) 또는 훈동(勳洞)이라 하였으며, 상급 행정구역인 관인방의 '관(寬)'가 훈동의 '훈(勳)'을 한 글자씩 따서 관훈동이라 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4월 1일의 동명(洞名) 개편시 지어진 이름이었다. 이어 1936년 4월 1일에 일본식 명칭인 관훈정(寬勳町)으로 개칭되었다가, 광복 이후인 1946년 10월 1일에 다시 관훈동으로 환원된 바 있다.

충훈부 터의 지번 주소는 종로구 관훈동 118번지이고, 현재 사용되는 도로명 주소로는 종로구 인사동16길 3-10(또는 3-8)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이다.

1912년 경성부지적원도(京城府地積原圖) 관훈동 118번지 충훈부 터
2번 지도 - 관훈동 118번지 충훈부 터 (구한말)


위 지도는 1912년에 제작된 〈경성부지적원도(京城府地積原圖)〉를 기본으로 구성한 것이다. 도시계획이 체계적으로 적용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지적도를 만든 1912년 당시와 조선시대 말엽 - 구한말(대한제국 시기) 사이에 기본적인 대지(垈地, 집터) 구획, 거리 위치(특히 골목길) 등은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위 지도에서도 현재의 율곡로 부분(1번 지도 참고)은 1912년 당시에도 조선시대(19세기 후반) 시절보다 약간 확장 및 정비된 상태였다. 반면, 인사동길과 우정국로는 거의 변화가 없는 상태.

지도 왼쪽 위에 표기된 '안동사가(安洞四街)'는 구한말(舊韓末) 지명이다. 본 블로그에서 자주 언급된 단어 '구한말'은 구한국(舊韓國) 시대 말기, 즉 조선왕조 말기와 대한제국 시기를 통칭하는 말이다. 시기적으로는 대략 고종(高宗)이 즉위한 1860년대 중반부터 1910년까지를 의미하며, 약칭 한말(韓末)이라고도 한다.


안국동 네 거리[四街] 바로 오른쪽 위에 고종(高宗) 연간에 여러 왕실 행사가 열렸던 안동별궁(安洞別宮), 즉 안동(安洞)의 별궁(別宮)이 있었다.

정식 명칭으로 안국동별궁(安國洞別宮)이라 하였던 안동별궁은 1879년(고종16) 11월부터 공사를 시작해 이듬해 9월에 완공한 조선왕조의 별궁이다. 이 안동별궁 터는 1936년에 일반인에게 낙찰되고 이듬해 대표적인 친일반민족행위자 민영휘(閔泳徽, 1852-1935) 일가에게 넘겨져 교육기관이 들어섰다. 1937년의 경성휘문소학교(京城徽文小學校), 해방 전후 시기 이후의 풍문여중고교(豊文女中高校, 풍문여고)가 그것이다.


지도 오른쪽 위의 '외국어학교(外國語學校)'는 1907년경에 당시 통감부(統監府)가 주도하여 서울에 있던 5개 외국어학교를 통합해 개설한 관립외국어학교(官立外國語學校, 관립한성외국어학교)가 들어서 있던 곳의 일부분이다. 일제강점기 경운동 경성여자사범학교(京城女子師範學校) 부속보통학교(附屬普通學校, 부속여자보통학교, 부속소학교)의 운동장 부지를 거쳐, 현재는 1번 지도처럼 종로경찰서가 위치하고 있다.

지도 왼쪽 아래의 '시천교당(侍天敎堂)'은 동학(東學) 계열 중 하나로 천도교(天道敎)에서 분파된 친일계 신흥 종교인 시천교(侍天敎)의 경성본교당(京城本敎堂)이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이용구(李容九,1868-1912)가 1907년에 창건하고 스스로 초대 교주가 되었으며, 1908년에 위 지도상 위치의 견지동(堅志洞, 靑石洞) 교당을 신축하였다.

도성대지도 관인방 충훈부 위치
3번 지도 - 도성대지도 관인방 충훈내계 부분


위 지도는 18세기 중반(1753년-1759년 사이)에 제작된 채색필사본 〈도성대지도(都城大地圖, 서울역사박물관)〉의 한성부 관인방 충훈내계(忠勳內契, 충훈부내계) 부분이다. 괄호 안의 안동별궁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1880년(고종17)에 완공되었으므로 지도 제작 당시에는 없었다. 율곡로, 우정국로, 인사동길 등의 도로명 표기 역시 현대의 것이다.

〈도성대지도〉에 표기된 관청은 기본적으로 실제 해당 관청의 대청(大廳, 중심 건물) 또는 대문(大門) 방향으로 글자가 기재되어 있기 때문에, (본 글의 뒷부분에서 추정한 충훈부 건물 배치도와 달리) 실제의 조선시대 충훈부의 건물 또는 대문이 서향(西向)이었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냥 표기할 공간이 부족해서 세로로 길게 적은 것일 수도 있지만, 〈도성대지도〉가 조선시대에 제작된 지도 가운데 가장 정확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그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렵다.


이처럼 관인방 충훈부내계(훈동)에 있던 충훈부는 1894년(고종31) 7월에 의정부(議政府) 소속 기공국(紀功局)으로 개편되었다가 대한제국이 성립된 이후인 1899년(광무3) 9월에 표훈원(表勳院)으로 재차 개편되었다. 표훈원은 훈장(勳章), 포장(褒章) 등의 수여와 제작에 관한 사무를 보던 대한제국 시기의 관청이다. 공신을 예우하던 충훈부 관청의 영속성이 기공국과 표훈원으로 이어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표훈원으로 개편되기 직전인 1898년(광무2)에는 충훈부 건물이 당시 조정 관원 및 선비들의 회합 장소로 쓰였다. 충훈부가 폐지되고 기공국이 되었지만 마땅히 할 업무가 없어 사실상 빈 청사가 되었고, 사람들이 이 공간을 빌려 고종 황제에게 상소를 올리기 위해 여론을 취합하고 글월을 작성하는 일종의 소청(疏廳)으로 활용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세태를 지적하는 고종의 말이 『고종실록』과 『승정원일기』에 실려 있다.)

관훈동 118 충훈부 터 (1934년 필지분할)
4번 지도 - 충훈부 터의 1934년 필지분할


2번 지도에서 확인한 충훈부 터 부지(관훈동 118번지)는 1934년 7월 14일을 기해 당시 서울(경성)에서 유행하던 도시형 한옥 건설을 위해 필지(筆地, 지번이 부여된 토지 구획)가 분할된다. 118번지를 118-1과 118-2번지로 분할하고, 다시 오른쪽의 118-1번지를 21개(또는 22~23개) 필지로 나눈 것이다. 이렇게 분할된 소형 필지에는 전통 한옥으로 착각될 수 있는 근대형 도시한옥(개량한옥, 연립한옥)이 들어섰으며, 오늘날에도 약 7채가 현존하고 있다(왼쪽 아래 작은 지도 참고).

지도 왼쪽 위의 보라색 필지는 1916년에 설립된 서점 겸 출판사인 이문당(以文堂)의 소재지이다. (이문당에 대해서는 본 글의 후반에서 다시 언급한다.)

민간에 매각된 118-1번지(21필지)와 달리, 왼쪽의 118-2번지는 계속 국유지(또는 조선총독부 관유지)로 남아 있었으며, 1921년 무렵부터 친일유림단체인 대동사문회(大東斯文會)의 활동 공간으로 쓰여지고 있었다. 충훈부(표훈원)의 대청 건물이 118-2번지에 계속 남아 있었고, 대동사문회에서는 이를 홍도당(弘道堂)이라 이름하였다. 참고로 대동사문회는 1927년 7월 말일에 재단법인이 되었다.

관훈동 118 충훈부 터 (1955년 필지분할)
5번 지도 - 충훈부 터의 1955년 필지분할


충훈부 자리는 1955년에 다시 한번 필지가 분할된다. 118-2번지가 12개(또는 13~14개) 필지로 분할된 것으로, 위 지도에서 하늘색으로 표시된 부분이다. 민간에 매각된 소형 필지에는 역시 1930년대와 마찬가지로 도시한옥이 건립되었고, 현재도 약 8채가량이 남아 있다(왼쪽 아래 작은 지도 참고). 외형만 도시한옥일 뿐, 상당수는 상점, 식당, 카페 등의 근린생활시설로 내부가 개조되었지만.

1955년에 이처럼 필지가 분할되면서 기존의 충훈부 터는 국유지(또는 관유지, 공유지)에서 벗어 민간 소유가 되었다. 구한말 관청 부지, 왕실 소유 부지의 상당 부분이 현재까지도 국공유지로 남아 정부기관이 들어서 있거나 학교용지, 공원 등의 공공성을 띠고 있는 것을 보면 꽤 아쉬운 부분이다. 30여 개의 필지로 분할되면서 충훈부(표훈원)에 대한 체계적인 발굴조사나 복원 가능성이 거의 차단된 때문이기도 하다.


이처럼 1955년에 필지가 분할되기 전인 1945년 11월 11일, 그러니까 8월 15일 해방으로부터 약 3개월이 지난 시점에 충훈부 터에서 기념비적인 일이 생긴다. 1번 지도에서 잠시 설명하였던 '해방병단 결단식'이 열린 것이다.

해방병단(海防兵團)은 손원일(孫元一) 제독이 주도하여 창설한, 현재 대한민국 해군(海軍, ROKN)의 모체가 되는 조직이며, 해방병단 결성식이 열린 11월 11일을 대한민국 해군의 창설 기념일로 지정하여 매년 기념식을 거행하고 있다.


해방병단 결단식이 거행된 장소가 '관훈동 표훈전(表勳殿)'으로 기록되어 있다. 결단식 직후에 촬영한 사진도 남아 있는데, 이 장소(건물)가 바로 충훈부의 대청 건물이다. 앞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대동사문회 홍도당이었고, 그 전에는 표훈원의 대청이었다. '전(殿)'이라는 글자는 본래 궁궐이나 사찰의 대형 건물에 붙이는 이름이기에 표훈전이라는 명칭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허나 해방 직후에는 일부에서나마 그렇게 불렀던 모양이다.


이제 충훈부 건물 배치를 살펴볼 시간이다.

한양지도 한양도성도 한국경성전도 경성지형도
6번 지도 - 한양지도, 한양도성도, 한국경성전도, 경성지형도


위 지도들은 1799년경 제작된 〈한양지도(漢陽地圖, 筑波大学附屬圖書館)〉, 19세기 초에 제작된 〈한양도성도(漢陽都城圖, 삼성미술관 리움)〉, 1903년에 일본 경부철도주식회사에서 발행한 〈한국경성전도(韓國京城全圖)〉, 1921년경에 조선총독부 육지층량부에서 인쇄한 〈경성지형도(京城地形圖, 京城圖)〉의 충훈부 부분을 편집한 것이다.

좌상단 〈한양지도〉를 보면 충훈부 건물이 그려져 있다. 남향(南向)으로 그려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우상단 〈한양도성도〉에는 서향으로 그려져 있다. 3번 지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은 방향이다. 좌하단 〈한국경성전도〉는 간략한 묘사로 건물 윤곽을 표시하고 있다. 남향보다는 서향에 가까운 형태임을 알 수 있다. 우하단 〈경성지형도〉는 상대적으로 정밀한데 남향의 건물 2동(棟)이 뚜렷하게 보인다. 이 두 건물 가운데 좌측이 충훈부(표훈원)의 중심 건물인 대청으로 추정된다.


녹색 글자로 표기한 문희묘(文禧廟)는 정조(正祖) 임금의 첫째 아들인 문효세자(文孝世子, 1782-1876)의 사당(祠堂, 祠廟)으로 1789년(정조13) 4월에 의빈묘(宜嬪廟) 옆에 건립되었다. 문희묘가 1870년(고종7)에 다른 곳으로 이전되면서 그 정확한 터를 확인할 길이 없게 되었다.

문희묘가 〈한양지도〉에서는 충훈부의 왼쪽 위, 그러니까 안동별궁의 왼쪽 맞은편(㉢ 위치)에 표기되어 있고, 〈한양도성도〉에서는 안동별궁의 동쪽(㉠ 위치)에 표시되어 있다. 또 안동별궁 터(㉡ 위치)에 문희묘가 있었다고 판단하는 연구 내용도 있다. 필자가 여러 문헌, 사료, 지도 등의 내용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 지역에 문희묘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90% 이상이다. 쉬어가는 차원에서 문희묘 위치에 관해 잠깐 알아봤다.


충훈부 건물은 서향이었을까, 남향이었을까. 다음 이미지를 보자.

일제강점기 1928년 촬영 항공사진 (관훈동 일대)
7번 사진 - 일제강점기 촬영 항공사진 (관훈동 일대)


위 사진은 1928년 간행된 『경성도시계획조사서(京城都市計畵調査書)』 수록 항공사진의 관훈동 일부분이다.

적색 테두리 안으로 충훈부(표훈원) 건물의 형태가 확인된다. 6번 지도에서 살펴본 1921년 〈경성지형도〉와 동일하게 2동의 남향(南向) 건물이 분명하게 드러나 보인다. 또 작은 부속 건물, 나무, 담장 등의 모습도 부분적으로 식별 가능하다. 왼쪽 위로 창덕궁별궁(안동별궁), 오른쪽 위로 여자사범학교 부속보통교의 운동장이 보인다. 운동장 위치가 2번 지도에서 살펴본 외국어학교 소재지였다.

만약 조선시대 충훈부의 건물 또는 대문이 서향(西向)었다면, 대한제국 시기에 각 관청의 건물을 개수, 정비, 개축하면서 기존의 중추부 부지와 건물에 대대적인 변화(남향으로 중건)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왕조 조정이나 대한제국 정부의 당시 재정 여건을 감안할 때, 잘 있던 대청 건물을 허물고 다시 지었을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대문(정문) 방향은 혹시 서향이었을지 몰라도 청사를 구성하는 주요 건물은 본래부터 남향이었을 것이다.

1954년경 촬영 항공사진 (경복궁 동편, 북촌 일부)
8번 사진 - 1954년경 촬영 항공사진 (경복궁 동편, 북촌 일부)


위 사진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경 촬영된 항공사진이다. 충훈부 터 오른쪽 부분에 1934년 필지 분할 이후에 건설된 도시한옥(연립한옥)이 조밀하게 들어차 있다. 1955년에 2차 필지 분할 직전의 모습이기 때문에 충훈부(표훈원)의 왼쪽 부분에는 대청 건물 1동이 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적색 화살표). 이 남향 건물이 바로 1945년 11월 11일에 해방병단 결단식이 열렸던, 이름하여 표훈전이다.


충훈부 터 위쪽 안동별궁 터에는 풍문여중여고가 있었다. 안동별궁의 대형 한옥 여러 동이 규모를 드러내며 신식으로 지어진 학교 건물 앞에 있다. 경연당(慶衍堂), 정화당(正和堂), 현광루(顯光樓) 등의 이들 한옥은 1965년 8월에 해체 또는 이전되었다. 풍문여중고 위로 보이는 공터에는 덕성여중고교(德成女中高校) 운동장이다. 참고로 2017년 3월에 풍문여고가 강남구 자곡동 내곡지구로 이전하면서 남녀공학으로 전환되었으며, 그 부지(안동별궁 터)는 서울특별시가 매입하였다.

보라색 화살표로 표시된 3층 건물은 4번 지도에서 살펴봤던 이문당(以文堂)의 사옥(社屋)이다. 1943년에 3층으로 신축된 이 건물은 좌익의 서울시 인민위원회로 잠시 사용되다 곧 우익의 반공연맹본부가 들어섰던 역사의 현장이다. 또 1965년 4월 5일부터는 윤보선(尹潽善, 1897-1990) 총재의 민정당(民政黨) 당사로 쓰였다. 1967년부터 1977년까지 신민당(新民黨) 안국동 당사로 특별히 유명했던 건물이다.


적색 화살표로 표시된 충훈부 대청 건물은 바로 오른쪽의 도시한옥 및 필지 분할 지적도 등을 토대로 그 위치를 특정할 수 있다. 정확한 위치는 발굴연구를 해 봐야 알 수 있겠지만, 아래와 같이 추정해 본다.

관훈동 충훈부(표훈원) 건물 배치 평면도
9번 지도 - 관훈동 충훈부(표훈원) 건물 추정 위치


위 지도에서 정확한 건물은 대청(大廳, 正堂) 하나이다. 기공각(紀功閣)으로 표기한 것은 최근 118-2번지 부지의 건물 신축 과정에서 시행된 발굴조사에서 나온 유구(遺構) 형태를 참고하였고, 수정청(修正廳)은 대청과 수정청이 비슷한 규모의 건물일 것으로 판단한 결과물이다. 대문 위치는 대청이 남향이라는 점과 〈임오사마방회첩(壬午司馬榜會帖)〉에 실린 충훈부 그림의 구도에 따른 것이다. (이들 내용은 어디까지나 필자의 추정이기에 당연하게도 오류 가능성이 높다.)

비교적 정확도가 높은 충훈부(표훈원)의 대청 위치는 관훈동 118-25번지로서, 이 건물과 그 앞뜰이 대한민국 해군의 창설지가 된다. 현재 건물 모습은 기와를 얹은 도시한옥이지만 내부는 카페로 변형되어 영업중이다.

기타 충훈부 연혁, 충훈부 및 표훈원 각 건물에 대한 설명, 사진 자료 등은 아래의 링크를 참고하기 바란다.


※ 참고 자료 링크 : 사이버 조선왕조 충훈부(忠勳府) 홈페이지 - 충훈부 안내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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