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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섬시(內贍寺) 및 내수사(內需司) 청사 터 이야기

※ 작년 6월에 올린 글에서 경복궁(景福宮) 서편에 있던 '사재감(司宰監) 관청의 청사 위치에 관한 내용'을 다룬 바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와 비슷한 역할과 규모의 조선시대 관청인 내섬시(內贍寺) 관아 터 자리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


내섬시(內贍寺)는 각 궁과 전[各宮各殿]에 올리던 공상(供上) 물품과 기름[油], 식초[醋], 소찬(素饌) 등의 공급을 담당하던 관청이다.[각주:1] 담당 업무를 보면 짐작할 수 있듯, 대체로 사소한 물자를 취급하던 관청이었기에 조선왕조 관직 체계에서 전형적인 한직(閑職)이었다.

관청 수장의 관직도 초기에는 정3품 정(正)이었으나 국가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불필요한 관원[冗官, 용관]을 축소하는 과정에서 종6품 주부(主簿)로 낮아졌다. 현대 공무원 직급으로 따지면 2급에 상당하는 중앙 행정기관 국장급의 정3품 당하 아문(衙門)에서 5급 사무관 정도의 종6품 아문으로 격하된 것이다.

서부 인달방 내섬동 내섬시 측량 평면도1번 이미지 - 서서 인달방 내섬동 내섬사(內贍司) 측량도


위 1번 이미지는 내섬시 청사의 평면도이다. 1908년(융희2) 5월에 정리국(整理局) 기수(技手) 이계홍(李啓弘)이 작성한 〈실측도(實測圖)〉이며, 당시 행정구역으로 서서(西署) 인달방(仁達坊) 내섬동(內贍洞)에 있었다. 서서는 서부(西部)를 1894년(고종31)에 개칭한 것이고, 내섬사(內贍司)는 내섬시를 뜻한다. 대한제국 시기를 전후로 각 관청의 명칭에 사(司)가 붙은 경우가 많았는데 그 때문에 생겨난 착오로 보인다.[각주:2]

내섬시 평면이 위 실측도에서 간단히 확인되었으므로, 이제 이 필지의 외곽 형태와 축적이 일치하는 곳이 실제 지도에서 어디에 있었는지만 살펴보면 내섬시 청사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게 된다.[각주:3]

조선시대 육조거리 서편 일대 지도2번 이미지 - 육조대로 서편 일대 (1912년 지적도 기준)


위 2번 이미지는 1912년에 작성된 〈경성부지적원도(京城府地積原圖)〉를 토대로 육조거리(육조대로) 서편 일대의 여러 관청 위치를 표기한 것이다.[각주:4] 육조거리는 오늘날의 경복궁 광화문(光化門) 앞 세종대로이며, 이 육조거리를 중심으로 좌우에 이조(吏曹), 호조(戶曹), 예조(禮曹), 병조(兵曹), 형조(刑曹), 공조(工曹) 등의 6조 관아와 의정부(議政府), 중추부(中樞府), 사헌부(司憲府) 등의 주요 관청이 늘어서 있었다.

위 지도에 수록된 관청 가운데 육조거리 서편에 있던 예조, 중추부, 사헌부, 병조, 형조, 사역원(司譯院)과 경희궁(慶熙宮) 정문인 흥화문(興化門) 앞에 있던 훈련도감(訓鍊都監), 비변사(備邊司)[각주:5] 정도가 주요 관청이고, 내자시(內資寺), 장흥고(長興庫), 내수사(內需司), 의영고(義盈庫), 봉상시(奉常寺), 내섬시(內贍寺) 등은 2급 또는 3급 수준의 소규모 관청이었다.


장흥고 아래에는 사재감의 공상 대상인 각궁각전(各宮各殿)에 포함되는 청평위궁(淸平尉宮)이 보인다. 효종(孝宗) 임금의 3녀가 살던 숙명공주방(淑明公主房)을 그 남편의 관직인 청평위(淸平尉) 심익현(沈益顯, 1641-1683)의 직함을 따서 청평위궁(淸平尉宮)이라고 불렀다. 청평위궁 자리를 어의궁(於義宮)이라고 기재한 도면과 지도가 있는 것을 보면, 1906년에서 1911년 사이에 효종 임금의 봉림대군(鳳林大君) 시절 잠저였던 어의궁이 동부(東部) 숭교방에서 이곳 청평위 궁가(宮家) 자리로 이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내자시, 장흥고, 청평위궁에 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알아볼 예정이다.)

지도 중앙을 상하로 가로지르며 백운동천(白雲洞川)이 흐르고, 중앙에 송첨교(松籤橋)가 있다. 송첨교는 종침교(琮沈橋) 또는 종교(宗橋)라고도 불렀는데, 자료에 따라서는 장흥고 대문 앞에 있던 다리에 종침교 명칭이 붙어 있기도 하지만 그 가능성은 극히 낮다. 청평위궁 아래에 있던 다리는 승전색교(承傳色橋)이다.[각주:6] 송첨교에서 승전색교 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 서쪽으로 가면 지도 바깥쪽 바로 앞에 사직(社稷)이 있다.

지도 오른쪽의 사역원 왼쪽 붉은색 ⓐ 지역은 1905년(광무9) 4월에 사립(私立) 양정의숙(養正義塾)이 들어선 곳이다. 양정의숙은 순종의 후궁인 순헌황귀비(純獻皇貴妃) 엄씨(嚴氏)의 재종질인 7촌 조카 엄주익(嚴柱益, 1872-1931)이 건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사학이다.


1번 이미지의 내섬시 청사 〈실측도〉를 위 2번 이미지의 〈경성부지적원도〉와 비교하면 내섬시 청사의 위치가 곧바로 드러난다. 상대적으로 넓은 부지를 가지고 있었던 봉상시 바로 앞에 있었다.[각주:7]

내섬시 청사는 본래 북부 준수방(俊秀坊) 지역에 있었는데, 어느 때인가 서부 인달방 위치로 옮겨졌다.[각주:8] 아마도 임진왜란(壬辰倭亂) 전후 또는 내섬시가 내자시, 의영고 등에 일시 통합되었다가 다시 분리 재설치되던 과정에서 청사 소재지에 변동이 있었을 것이다.


내섬시 청사에 대해 더 알아보기 전에 잠시 내수사 청사의 위치에 대해 알아보면, 〈칠궁명례궁간략도(七宮明禮宮間略圖)〉 도면, 18세기 중반에 제작된 〈도성대지도(都城大地圖)〉 등의 고지도에서는 ㉠ 위치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1848년(헌종14)에 만들어진 〈청구요람(靑丘要覽)〉 도성전도(都城全圖)에서는 ㉡ 위치에 내수사가 있었다고 추정한다. 현재 내수사 터 표지석 역시 ㉡ 위치에 있는데, 일제강점기 시기의 〈동아일보(東亞日報)〉 지면에서는 내수사 위치를 ㉢의 '수창동 184번지'로 적고 있다.

동아일보 수창동 내수사(內需司) 기사동아일보 1924년 7월 30일 기사 - 내동리명물, 수창동 내수사(內需司)


위 이미지가 1924년 7월 30일자 동아일보 지면이다. '내동리명물(내 동네 명물)' 코너에 '수창동(需昌洞) 내수사(內需司)'라는 소제목으로 내수사 관청에 대한 짧은 글이 실려 있다.

내수사 대문 사진과 함께 '옛대문이 남아 있고 옛현판이 달려 있을 뿐입니다'라는 내용을 수록하고 있으므로 (184번지의 면적이 104평으로 협소하지만 내수사 부지가 민간에게 매각될 때 여러 필지로 분할된 때문일 수 있기에 내수사 청사의 마지막 위치를) ㉢ 필지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다만, 기록에 따르면 내자시 건물 별도로 왕비의 산실에 깔았던 거적을 보관하던 권초각(捲草閣) 건물이 있었는데, 만약 내자시 본청과 권초각이 서로 다른 필지에 존재하고 있었다면 내자시 본청이 ㉢이고 권초각이 ㉠ 또는 ㉡일 수 있다.[각주:9] 1911년에 발행된 〈경성부시가도(京城府市街圖)〉에는 ㉣ 위치[각주:10]에 내수사 지명 '內需寺'로 표시되어 있기도 하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 위치의 동향(東向) 청사가 실제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내섬시(內贍寺) 청사 배치 평면도3번 이미지 - 종로구 당주동 내섬시(內贍寺) 청사 지도


위 3번 이미지는 1912년 〈경성부지적원도〉에서 내섬시 청사 부분을 확대한 것이다. 내섬시 청사 위치는 현재 주소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당주동(唐珠洞) 95번지[각주:11]이며, 보라색 숫자는 지번, 녹색 글자는 조선시대와 대한제국 시기의 주소 체계인 통호(統戶) 번호이다. 파란색 번호는 〈실측도〉에 기재된 녹색 숫자의 이웃 통호와 〈토지조사부(土地調査簿)〉 기록을 바탕으로 추정한 것이다. 봉상시 터는 당주동 128번지[각주:12], 훈련도감 터는 신문로1가 58번지임을 알 수 있다.

1882년(고종19) 12월 30일자로 내섬시 관청이 폐지된 이후 내섬시 청사 자리는 동제학교(同濟學校)[각주:13], 찬문야학교(贊文夜學校)[각주:14], 동제측량학교(同濟測量學校)[각주:15] 등의 교사(校舍)로 활용되었기 때문에 종래의 건물 배치 및 구조에 일부 변형이 가해졌을 수 있다. 그 때문에 1908년 5월 실측한 도면을 조선시대의 내섬시 청사 평면이라고 확신할 수 없지만, 그래도 367평 면적에 10칸[間] 규모의 대청, 퇴(退) 2칸을 포함한 7칸 규모의 건물, 부군당(府君堂, 신당) 또는 측간(廁間. 화장실)으로 볼 수 있는 2칸 건물 두 채, 대문과 행랑 등이 확인된다. 진입 도로 위치와 필지 형태를 감안할 때, 행랑 북단의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칸에 대문이 존재했을 가능성도 있다.

조선시대 내섬시 청사 위치 지도4번 이미지 - 내섬시 청사 위치 (2020년 현대 지도 비교)


위 4번 이미지의 지도는 내섬시 청사 부분을 현재 지도와 겹친 것이다. 내섬시 터에 현재 어떤 건물이 들어서 있는지를 간략하게나마 알 수 있다.

아직 내섬시 터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데, 1980년대에 세종빌딩 및 세종아파트가 들어선 이 부지[각주:16] 모퉁이에 조선시대 내섬시 청사가 있었음을 알리는 표시판 하나를 설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중요도가 낮은 관청이었기에 굳이 필요성을 못 느낄 수도 있겠지만.


참고로, 내수사 터 기념표석은 2번 이미지에서 [내]로 표시된 지점인 종로구 내수동 72번지[각주:17]에 있으며, 봉상시 터 기념표석은 4번 이미지에서 [봉]으로 표시된 지점인 당주동 128-27번지[각주:18]에 설치되어 있다.


  1. 궁중에 공물을 공급하는 대표적인 관청 6개를 공상6사(供上六司)라고 한다. 내섬시(內贍寺), 내자시(內資寺), 사도시(司䆃寺), 사재감(司宰監), 사포서(司圃署), 의영고(義盈庫)로 구성된다. 봉상시(奉常寺), 내자시, 내섬시를 따로 삼사(三司)라고 한다. [본문으로]
  2. 당시 신문지면의 주소 표기에 '內贍司' 명칭이 관측된다. 내섬시(內贍寺)의 한자 '寺'를 '시'가 아닌 '사'로 읽고 그것이 말에서 말로 전달되어 내섬사로 기재되었을 수 있다. 보통 절 이름에 붙는 한자 寺가 관청 이름으로 사용될 때에는 '사'가 아닌 '시'로 발음한다. [본문으로]
  3. 내섬시 터 위치는 이미 학계 논문에서 (본 블로그에서 살펴본 위치에) 비정된 바 있다. [본문으로]
  4. 1912년 지적원도 자체가 일제강점기 초기에 작성된 지적도이므로 조선 후기의 도로 구성, 필지 위치와는 일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본문으로]
  5. 비변사는 창덕궁(昌德宮) 돈화문(敦化門) 앞에도 있었는데, 돈화문 앞 비변사가 제1청사, 흥화문 앞 비변사가 제2청사 비중으로 시기에 따라 활용되었다. 지도에 표기한 비변사 위치는 대략적인 것이다. [본문으로]
  6. 별칭 승전교(承傳橋), 승전빗다리. [본문으로]
  7. 봉상시(奉常寺) 정문 사진이 1934년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 발행 『경성부사(京城府史)』 제1권에 수록되어 있다. [본문으로]
  8.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 비고편(備考篇).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考)』 권1. 〈경도(京都)〉의 내섬시(內贍寺) 항목. "처음에는 준수방에 있었는데 후에 인달방으로 옮겼다[初在俊秀坊 後移仁達坊]." [본문으로]
  9. 반대로 권초각이 ㉢이고, 내자시 본청은 ㉠ 또는 ㉡에 있었을 수도 있다. [본문으로]
  10. 수창동 110번지. 1912년 당시 3,559평 국유지. [본문으로]
  11. 당주동은 법정동이다. 행정동은 종로구 사직동(社稷洞).] [본문으로]
  12. 1,882평 면적으로 내섬시의 5배 이상 규모였다. 1912년 당시 소유는 구한국 재산 관리 기관인 이왕직(李王職). [본문으로]
  13. 은사교사(恩賜校舍),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1906년 09월 19일. [본문으로]
  14. 〈황성신문(皇城新聞)〉, 1906년 11월 06일. [본문으로]
  15.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1908년 06월 16일. [본문으로]
  16. 지번주소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당주동 100번지이다. 지번 통폐합 과정에서 원래 필지의 지번인 당주동 95번지는 현재 소멸되었다. 도로명주소로는 종로구 세종대로23길 54. [본문으로]
  17. 도로명주소 종로구 사직로8길 34 [본문으로]
  18. 도로명주소 종로구 새문안로3길 15 [본문으로]
※ 이 글의 주소 : lembas.tistory.com/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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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무케이 | 2020.11.17 21:03 | 수정/삭제 | 쪽글 달기
재미있는 글 읽었습니다. 최근 경희궁의 아침 3단지 아파트 건너편 내수동교회 앞에 문화재 발굴이 이루어 지고 있는데 아파트에서 내려다 보니 뭔가 엄청난 유적이 발견되는 듯해 보입니다, 내수사와 관련이 있는 곳이 아닐까하여 인터넷을 뒤지다 선생님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지도 그리고 조선시대의 지도를 보면 이곳이 필시 뭔가 관련 있는 곳이 아닐까 싶네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BlogIcon 도필리 | 2020.11.17 23:24 신고 | 수정/삭제
잠시 찾아보니, 발굴조사 지역이 경희궁 터 바로 윗쪽의 조선시대 관유지(국유지) 권역이네요. 위 글의 2번 이미지에서 ㉣로 표시된 곳의 일부 필지입니다. 조선후기에 궁방 또는 관아 소유로 활용되었던 곳이기에, 말씀하신 것처럼 소중한 발굴 결과가 나올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댓글을 달아주신 분처럼 우리 문화재에 관심 있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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