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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또는 대한제국 시기 관아(官衙, 관청) 건물에 대한 내용을 자주 올리고 있습니다. 틈틈이 관련 자료를 검색하고 수집하고 있는데, 지난 3월 초에 일본 국립공문서관(國立公文書館, 国立公文書館) 사이트에서 공개하고 있는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관유재산목록(官有財産目錄)' 기록물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국립공문서관은 우리나라의 국가기록원(國家記錄院)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기관이라고 보면 됩니다.

국립공문서관 사이트에서 검색되는 '관유재산목록'은 크게 일본 연호로 대정(大正) 11년인 1922년본, 그리고 소화(昭和) 7년인 1932년본의 2개로 나뉘는데, 본 글에서 중점적으로 다룰 내용은 1932년본보다 이른 시기에 제작된 자료인 대정11년본입니다. 1922년(1921년 3월 31일 기준)과 1932년(1931년 3월 31일 기준)의 10년 차이에도 적지 않은 현황 변화가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정11년본의 자료 명칭은 『各省所管官有財産目録並其ノ異動報告ノ件 · 朝鮮総督府』으로, 번역하면 '각 성(省, 부처) 소관 관유재산목록 및 그 이동보고의 건 · 조선총독부 편' 정도가 됩니다. '관유재산(官有財産)'은 관청(국가) 소유의 토지, 산림, 건축물, 선박 등 재산을 뜻하며, 요즘으로 치면 국유재산과 같은 의미입니다.

자료 표지에는 일본 연호로 대정(大正) 10년, 즉 1921년 3월 31일에 생산된 것으로 되어 있으나, 기초적인 내용은 아마도 일제(日帝)에 의한 1910년 8월 29일 강제 한일병합(韓日倂合, 경술국치) 직후에 한국(韓國, 대한제국) 정부로부터 인계받은 토지, 건물 등 재산 자료 서류에 근거했을 것이며, 이후 각 지역별로 수집 및 정리하여 보완한 내용들이 1921년(특히 1919년과 1920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최종 편집된 후 일본측에 보고된 것이 아닐까 추정합니다. 《신한민보(新韓民補)》, 《매일신보(每日申報)》 등 언론 보도에 따르면 1911년부터 1913년 사이에 관유재산조사가 진행되었다고 되어 있기도 합니다. 국립공문서관 자료 목록의 분류 연도는 전술한 바와 같이 대정11년(1922년)입니다.

1921년에 조선총독부에서 일본 내각(內閣) 및 제국의회(帝國議會)에 보고한 1922년본 『조선총독부 관유재산목록(朝鮮總督府 官有財産目錄)』은 모두 5권으로 각 권의 표제 명칭은 아래와 같습니다. 뒷부분은 건명(件名, 제목) 일부입니다.

『公文雜纂·大正十一年·第十二券·內閣·內閣(官有財産目録並異動報告六)』 : 『朝鮮総督府ノ一(조선총독부 제1권)』
『公文雜纂·大正十一年·第十三券·內閣·內閣(官有財産目録並異動報告七)』 : 『朝鮮総督府ノ二(조선총독부 제2권)』
『公文雜纂·大正十一年·第十四券·內閣·內閣(官有財産目録並異動報告八)』 : 『朝鮮総督府ノ三(조선총독부 제3권)』
『公文雜纂·大正十一年·第十五券·內閣·內閣(官有財産目録並異動報告九)』 : 『朝鮮総督府ノ四(조선총독부 제4권)』
『公文雜纂·大正十一年·第十六券·內閣·內閣(官有財産目録並異動報告十)』 : 『朝鮮総督府ノ五(조선총독부 제5권)』

이후 『공문잡찬·대정11년·제17권·내각·내각(관유재산목록병이동보고11)』은 대만총독부(台湾總督府) 제1권, 『보고12』는 대만총독부 제2권 등으로 이어집니다.


1922년본 『조선총독부 제1편』은 경성부(京城府), 경기도(74면부터), 충청남도(124면), 충청북도(155면), 전라남도(170면), 전라북도(204면), 경상남도(235면), 경상북도(299면), 강원도(351면), 황해도(375면) 순서로 각 지역에 있던 관유재산의 통계 및 각 부지(敷地, 토지)의 용도와 면적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소재지, 지도 번호, 토지(명칭), 부속물(용도), 수량(면적), 가격, 국유지 편입 또는 건설 날짜 등에 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죠. 면적 단위는 평(坪)인데, 주로 1912년에서 1917년 사이인 1910년대 만들어진 지적원도(地籍原圖)의 면적과 일부 차이를 보이는 것이 있는 것을 볼 때 지적원도 작성 이전에 측량 및 기재된 부분이 일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또는 시기에 따라 필지 통합 또는 분할이 이뤄지면서 각 지역의 지적원도와 오차가 발생한 것일 수 있습니다.

『조선총독부 제2편』은 전편에 이어 평안남도(6면), 평안북도(31면), 함경남도(61면), 함경북도(83면)를 수록하고 있으며, 이외에 세관(稅關), 재판소, 감옥, 관립학교, 관측소, 체신국 등의 관유재산 내용을 부지 용도 위주로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334면부터는 앞서 수록한 각 부지에 실제 설치된 영조물(營造物), 즉 개별 건물의 용도와 면적을 싣고 있는데, 특히 경성부(한성부) 이외 지역인 경우에는 동헌(東軒), 내아(內衙), 객사(客舍), 작청(作廳), 향청(鄕廳), 포청(砲廳), 통인청(通引廳), 관노청(官奴廳), 군기고(軍器庫), 진영(鎭營), 부군당(府君堂), 옥사(獄舍), 사직단(社稷壇), 서기청(書記廳), 위관실(尉官室), 하사실(下士室) 등 조선시대 및 대한제국 시기 각 관아 소속 건물의 명칭을 다수 (충실하게 조사 및 채록하여) 수록하고 있습니다. 397면 경기도 고양군(高陽郡)부터입니다.

『조선총독부 제3편』은 충청남도(5면), 충청북도(43면), 전라남도(129면), 경상남도(173면), 경상북도(266면), 강원도(341면), 황해도(390면), 평안남도(437면), 평안북도(479면)의 관유지 소재 건물 목록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조선총독부 제4편』은 함경남도(5면), 함경북도(45면)의 관청 건물 현황을 담고 있으며, 75면부터는 세관, 재판소(법원), 감옥, 관립학교, 우편국, 등대 등의 내역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조선총독부 제5편』은 관사(官舍)를 중심으로 한 가옥 및 부속물을 경성부, 경기도, 충남, 충북, 전남, 전북, 경남, 경북, 강원, 황해, 평남, 평북, 함남, 함북 순서도 다루고 있습니다. 총독부 관리 숙소인 관사는 대부분 목조로 신축된 것이기 때문에 5편의 수록 내용은 자료 가치가 낮은 편이며, 후반부에는 선박 내역, 역둔토(驛屯土) 현황, 제언(堤堰, 제방)과 보(湺) 등의 수리시설, 산림 통계, 미개간지[國有未墾地] 내용 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소화 6년(1931년) 3월 31일 기준 현황을 담고 있는 1932년본 『조선총독부 관유재산목록』 역시 5권 분량이며, 1922년본과 비슷한 체계로 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 및 대한제국 시기의 각 부지별 용도 및 건물 명칭이 1931년 목록에도 제법 남아 있으며, 1922년본과 달리 지번 주소가 상당수 정확하게 기재되어 있고 보존 상태양호한 부분이 상대적인 강점입니다.


원본이 연필로 작성되었거나 종이 품질이 좋지 못한 결과 시간이 지나면서 변질되었기 때문인지 많은 페이지가 선명하지 않고 또 부분적으로 스캔 또는 촬영 작업이 정밀하지 못해서, 혹은 웹에 올린 파일을 지나치게 경량화한 때문에 이미지 품질이 낮아져서 일부 내용이 명확하게 식별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1922년본은 각 토지(부지)의 주소(번지)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표기되어 있지 않아서 1932년본 및 다른 자료, 지적도를 토대로 원래 위치를 추정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점 또는 미비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에 알려진 일반 사료를 통해서는 알 수 없었던 조선시대 각 관아 건물의 위치, 즉 관아지(官衙址)를 파악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 있는 내용이 수없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을 한 줄로 덧붙이자면, 그야말로 엄청난, 옛날 관아 건물 고증 및 복원 분야 연구에 있어 '보물'과 같은 자료입니다.

國立公文書館 朝鮮總督府 官有財産目錄
일본국립공문서관 소장 - 각성소관관유재산목록 조선총독부편


위 이미지는 『각성소관관유재산목록 및 그 이동보고의 건 - 조선총독부』 제1권의 표지(오른쪽)와 내용 일부인 제3권 381면의 삼척군(三陟郡) 건물 목록 일부(왼쪽)입니다. 사료 활용 사례를 제시하기 위해 왼쪽 내용을 올려봅니다.


삼척군 삼척면(三陟面) 성내리(城內里) 5번 건물로 동헌 21.17평, 변소(便所) 0.5평, 잡인고(雜人庫) 8.70평, 문간(門間) 2.10평, 사령직방(使令直房) 10.98평, 목조문(木造門) 등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동헌과 잡인고, 문간, 사령직방 건물은 모두 조선식 기와지붕[朝鮮式瓦葺]을 뜻하는 '조와(朝瓦)'로 표시되어 있고, 변소는 명치 43년인 1910년 8월에 건축된 목조[木板, 널판] 건물입니다. 변소를 제외한 건조물은 건설연월(建設年月) 항목이 모두 1591년인 '개국(開國) 200년'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개국기년 표시 연도는 대부분 인근 대표 건물을 기준으로 임의 기재한 것이라서 고증에 있어 특별한 의미는 없습니다. 오래된 한옥(韓屋)이라고 간주하면 됩니다.

제1권 371면을 보면 삼척군 동헌 부지가 604.32평으로 수록되어 있으므로 본 블로그의 '삼척도호부 동헌 이야기(새창 링크)' 글의 7번 그림 지적원도에서 살펴봤던 동헌 부지 면적과 일치합니다(7번 그럼 A 지도에 14-1번지를 543평으로 표기했는데, 543평은 일부 면적이 도로로 편입된 후의 14-1번지 면적이며, 그 이전에는 604.32평입니다.). 따라서 14-1번지 동헌 자리에 동헌 대청(大廳), 잡인고, 사령직방 등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1963년 『진주지(眞珠誌)』에 따르면 사령청(使令廳)이 '在三門'이라 하여 동헌 삼문(三門, 내삼문)에 있었다고 되어 있으므로 그 기록과도 일치합니다.

『관유재산목록』에 기록된 조선시대 토지 및 건물 용도 내용은 1910년경에 한국 정부로부터 인수한 문서에 의거한 것이거나 추가 자료를 수집하면서 지역 사람들에게 청취한 증언, 구슬 등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그 명칭이 읍지(邑誌), 문집(文集) 등에 수록된 단어와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습니다. 1910년이라는 시점 자체가 지방관인 수령(守令, 사또)이 각 지역에 부임해 아전(衙前)을 이끌던 전근대적 관아(官衙) 기능에서 새로운 행정 체계인 군청(郡廳)으로 정비된 지 10여 년 가량 지난 이후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따라서 (중복 명칭이 등장하지 않는 한)  『관유재산목록』의 '사령직방'과 『진주지』의 '사령청' 정도 차이는 사실상 동일한 기능을 하던 건물을 지칭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판단합니다.

참고로, 『관유재산목록』 1932년본 제1권 339면에는 성내리 14-1번지가 군수관사부지(郡守官舍敷地) 543평으로 수록되어 있고, 1932년본 제4권 336면에 관사 건물 목록이 아래와 같이 실려 있습니다.

삼척군 삼척면 성내리 14-1
군수관사(郡守官舍) 조선식기와지붕[朝鮮式瓦葺] 21.17평
변소(便所) 목조널판지붕[木造板葺] 0.5평
부속가(附屬家) 조선식기와지붕 2.10평
부속가 조선식기와지붕 10.98평
목조문(木造門)

1922년과 비교할 때 창고로 사용되었을 8.7평 규모의 잡인고 건물이 철거된 상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짧게 결론하면, 이들 『관유재산목록』 수록 내용과 『진주지』 기록에서 일치하는 부분이 확인되었으므로, 2023년 5월 글에서 살펴봤던 삼척도호부 동헌 복원 문제에 대한 필자 추정(14-1번지 소재 건물이 조선 후기 동헌 건물이라는 주장)이 강화되었습니다.


삼척군 예시 외에 본 불로그에서 다뤘던 내용을 한두 개 더 살펴보면, 제1권 308면에 수록된 영천군(永川郡) 부지 항목에서 영천면(永川面) 문내동(門內洞) 교방(敎房)과 관노청(官奴廳)이 각 118.49평, 152.04평으로 기재된 것을 토대로 지적원도에서 같은 면적의 국유지를 비교하여 186번지를 교방 터로, 158번지를 관노청 자리로 비정할 수 있었으며, 청량당(淸凉堂) 넓이까지 확인했습니다. 또 울릉도에 설치되었던 울도군(鬱島郡)의 객사, 향청, 사직단 터가 각각 도동리 250, 254, 556번지였음을 알 수 있었죠. 서울 지역 관청 하나를 보자면, 제2권 243면에 수하정(水下町) 46번지가 도화서(圖畵署) 부지라고 되어 있습니다. 나무[樹木]가 13그루 있었고 면적이 384평이었는데, 현재 도로명 주소로는 중구 을지로5길 19, 지번 주소로는 수하동 66번지 지역입니다. 지번이 통폐합되고 대형 건축물이 들어서면서 지금은 예전 흔적을 찾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기타 『관유재산목록』 수록 내용 가운데 필자 관심 지역 몇 곳을 추려 그 내용을 간략하게 적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기재 면적을 미터법 단위인 제곱미터로 환산할 때에는 해당 숫자에 3.3을 곱하면 됩니다.

ㄱ) 표훈원(表勳院) 훈공각(勳功閣) 35.88평, 대청(大廳) 35.42평 : 관훈동 118번지 충훈부(忠勳府) 중심 건물 2동(棟)
ㄴ) 경기도 고양군(高陽郡) 동헌 13.23평
ㄷ) 충청도 충주목(忠州牧) 객사 16.50평
ㄹ) 충청도 천안군(天安郡) 동헌 추정 군청사(郡廳舍) 39.68평, 객사 37.80평, 영성관(寧城館) 18.14평, 화축관(華祝館) 25.20평, 사직단 기지(基地)는 읍내리 160, 161, 162번지(현 사직동 114-11번지 일대)
ㅁ) 충청도 단양군(丹陽郡) 동헌 26.76평
ㅂ) 경상도 동래부(東萊府) 동헌의 내아 32.63평, 사정(射亭) 만년대(萬年臺) 33.12평
ㅅ) 경상도 성주목(星州牧) 군청사(동헌) 44.30평, 내아(a) 23.32평, 사시헌(四時軒) 추정 내아(b) 34.96평
ㅇ) 경상도 청하현(淸河縣) 동헌 원청하군청(元淸河郡廳, 前청하군청) 25.96평, 내아 24.50평
ㅈ) 전라도 남원부(南原府) 동헌 추정 군청사 35.88평(유력) 또는 회의실(會議室) 26.93평
ㅊ) 전라도 나주목(羅州牧) 동헌 추정 구군청사(舊郡廳舍) 54.22평 (또는 24.22평)
ㅌ) 강원도 금화현(金化縣, 김화군) 동헌 45.60평
ㅍ) 강원도 홍천현(洪川縣) 동헌 26.25평(희망리 151번지), 객사 45.71평(진리 5번지)

다음은 지방 진영(鎭營)입니다.

ㄱ) 경기도 강화(江華) 덕진진(德津鎭) 동헌 6.29평, 내아 10.50평, 진해루(鎭海樓) 10.71평
ㄴ) 경기도 강화 초지진(草芝鎭) 동헌 11.34평, 내아 11.00평
ㄷ) 경상도 거제(巨濟) 장목진(長木鎭) 별장청 및 이청[別將廳吏廳] 24.14평, 사령청 7.40평, 내아 6.80평 (부지 776.52평)
ㄹ) 경상도 거제 가배량진(加背梁鎭) 동헌 55.50평 (가배량진 부지는 1,739.35평)
ㅁ) 경상도 거제 율포진(栗浦鎭) 이청(吏廳) 13.55평 (율포진 부지는 718.93평)
ㅂ) 경상도 거제 둔덕면(屯德面) 학산리(鶴山里) 소재 영등진(永登鎭) 부지 1,117.88평, 포청기지(砲廳基地) 64.40평
ㅅ) 경상도 거제 이운면(二運面) 조라리(助羅里) 소재 조라진(助羅鎭) 부지 708,66평, 객사부지 229.06평
ㅇ) 전라도 옥구(沃溝) 고군산진(古群山鎭) 동헌 25.55평, 객사 34.80평
ㅈ) 평안도 박천(博川) 고성진(古城鎭) 아사(衙舍, 동헌?) 15.53평
ㅊ) 평안도 강계(江界) 만포진(滿浦鎭) 동헌 21.21평
ㅌ) 함경도 회령(會寧) 고령진(高嶺鎭) 장청(將廳) 36.55평 (고령진 부지는 2,683.50평)

이처럼 몇 가지 사례를 간단히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이 『관유재산목록』 자료가 얼마나 유용한지를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국내 학술 논문, 발굴조사 보고서, 블로그, 카페 등에서 인용되거나 언급된 예를 아직 찾지 못했는데, 역사 및 관아건축, 고건물 연구 또는 복원 분야에 있어서 이를 사료를 널리 활용한 관련 논문, 발표가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이미지 품질이 좋지 못한 부분이 제법 있으니, 학계 전문가가 일본 국립공문서관을 방문해서 원본 문서를 직접 확인하고 정밀 사본을 획득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네요.



아래 사이트에서 '朝鮮総督府 官有財産目録' 등의 검색어로 검색하면 관유재산목록 자료를 열람할 수 있습니다. 또 '朝鮮総督府 官有財産'으로 검색하면 위에서 다룬 1922년본 및 1932년본 『조선총독부 관유재산목록』 외에 1924년도(대정13), 1925년도(대정14), 1926년도(대정15), 1927년도(소화02), 1928년도(소화03), 1929년도(소화04), 1931년도(소화06), 1932년도(소화07), 1933년도(소화08), 1934년도(소화09), 1935년도(소화10), 1936년도(소화11) 『관유재산증감이동목록』 또는 『관유재산증감보고서』 등의 관유재산 관련 문건을 찾을 수 있기도 합니다.

※ 일본 국립공문서관 사이트 링크#1 : 国立公文書館デジタルアーカイブ (국립공문서관 디지털 아카이브)
※ 일본 국립공문서관 사이트 링크#2 : 国立公文書館 アジア歴史資料センター (국립공문서관 아시아역사자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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