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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동래도호부 동헌 건물 배치를 다룬 글에 조선 전기(前期), 즉 임진왜란 당시 동래도호부 읍성인 동래읍성(東萊邑城)의 주요 성문 위치를 궁금해하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동헌, 객사 등의 건물 배치와 만년대 소재지 등에 관한 내용을 다룬 적이 있었기에 관련 자료를 수집한 적이 있으므로 그 내용을 토대로 조선시대 동래읍성 배치에 관해서 (간략하게) 알아보겠습니다.

동래읍성은 1731년(영조7)에 크게 개축되었습니다. 이때 축성된 읍성이 조선후기 읍성이라고 불리는, 현재 남아 있는 읍성이며, 그 이전 읍성을 전기 읍성으로 구분합니다. 종전 이후 130여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여러 변화가 있었을 수 있지만 대체로 1731년 개축 이전의 읍성을 임진왜란 당시 동래읍성이라고 봅니다.
필자가 1912년경 지적원도 작성 당시 필지 형태와 도로망 구조, 기타 발굴조사 보고서 등의 자료를 토대로 조선전기 동래읍성을 추정한 것이 위 이미지입니다. 진한 갈색은 후기 동래읍성이고 옅은 갈색이 전기 동래읍성 추정 위치입니다. 동래읍성 역사를 설명하는 여러 내용을 보면 역사학계 또는 건축역사학계에서는 보라색으로 채색된 선을 조선전기 읍성 자리로 판단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자료에 따라서는 이보다 더 안쪽으로 그 위치를 추정하기도 합니다.
조선전기 동래읍성의 동문(東門) 위치는 파란색 화살표로 표기한 수안동 334-31(동래구 충렬대로255번길 30) 지점이 유력하고, 북문(北門) 위치는 빨간색 화살표가 가리키는 복천동 80-4 근처로 판단합니다.
동문 위치는 1731년에 읍성을 개축할 때 본래 동문 터에서 외부로 이어지는 도로 선상에 후기 동문인 지희루(志喜樓)를 건축했을 것이라는 추정에 의거한 것이며, 북문 위치 역시 후기 북문과 동북쪽의 인생문(人生門)으로 이어지는 길을 참작한 것입니다. 학계에서 추정하는 구(舊) 북문 소재지는 암문(暗門, 夜門)인 은일루(隱一樓)로 향하는 경로의 복천동 262번지(노란색 화살표 지점) 일대로 보고 있는 것 같은데, 〈동래부순절도(東萊府殉節圖)〉와 같은 회화에서 묘사된 북문 방향을 보면 일견 합리적인 추론으로 보이지만, 전기 성곽을 기준으로 성안과 성밖의 도로가 매끄럽게 분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위치 특정을 어렵게 합니다. 초록색 화살표로 표시하는 곳도 성안 도로가 닿는 곳이지만 성밖에서 멀리 이어지는 길을 찾기 어렵습니다. 물론, 1731년 이전에는 활발하게 기능하다다가 읍성과 성문이 이전된 후에는 용도가 사라져 주변 지리와 지형에 많은 변화가 있었을 수 있습니다.
이상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필자 개인 추정이므로 상당한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참고로, 위 지도에서 옥사(獄舍)는 형옥(刑獄)인데, 약 500제곱미터(150여 평) 면적의 필지가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옥사 형태를 띠고 있었기 때문에 해당 지점을 동래도호부 옥사 자리로 기재하였습니다. 현재 주소는 수안동 303-3 및 303-4(동래구 충렬대로 245-6) 지역입니다.

위 사진은 1번 이미지에서 추정한 조선전기 동래읍성 추정도를 현대 항공사진에 합성한 것입니다. 비교 차원에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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