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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문/논변

단식론(斷食論)

도필리 2007. 5. 11. 00:10

'단식(斷食)'이란 절곡(絶穀), 절식(絶食)이라고도 하는데, 곧 '음식을 끊는다'는 뜻이다. 무의식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아무런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것이니, 대개 어떤 뜻을 강하게 표출하거나 기필코 스스로 죽고자 할 때 결행하는 행동이다.

옛날에 단식하던 사람들은 반드시 죽을 각오로 하였다. '단식'이라는 두 글자를 생각하고 결심하였을 때 곧바로 실천으로 옮겨 끝까지 고수하였으니, 이를테면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단식 절사(節死)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겉으로 단식을 내세우면서도 속으로는 이런저런 궁리와 대책을 끊임없이 한다.

단식하기에 앞서 건강진단을 받아 혹시 건강에 조금이라도 무리가 있지 않을까 점검하기도 하고, 단식에 임해서는 편안한 자리에 누워 의원(醫員)의 정성스러운 예우를 받기도 한다. 또 어떤 자는 단식 중에 영양제를 맞거나 영양분이 담긴 음료를 마시는 경우도 있으니, 이를 옛날 사람들의 단식과 비교하면 어떠한가.

'식음(食飮)'은 '먹고 마신다'는 뜻이다. '단식'에는 '식(食)' 자(字)만 있으므로, 이를 근거로 면피하여 '단수(斷水)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급수(給水)'가 포함된 것은 아닌데 어찌하여 마음껏 마시는 것인가. 혹여 물 정도는 때에 따라 마실 수 있다고 하더라도 어찌하여 영양분을 아울러 섭취하는 것인가.

심지어는 단식 기간이 수십 일에 달하여 기내수책(技內秀冊:Guinness Book)에 오를 지경에 이르기까지 하니, 단식하는 사람마다 본래 초인(超人)이었던 것인지, 대체 무엇을 위하여 단식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단식하다 죽었다'는 소리를 들어본 지 오래된 것은 물론이고, 적당한 때가 되면 작은 명분에 기대어 단식을 중지하기 위해 궁리하는 데 여념이 없다. 즉, 옛날 사람들은 단식할 때 반드시 죽고자 하였는데, 요즘 사람들은 단식을 반드시 살고자 한다. 옛날에 단식하던 사람들이 '뒷일을 기약하네'라고 하였던 것은 살아서 남을 사람들에게 당부하는 말이었는데, 요즘 사람들이 '뒷일을 약속하네'라고 하는 것은 본인의 단식 중단 명분 제공이나 단식 중단 후 회복을 위하여서 하는 말이다.

회복할 때에도 입원 치료를 받아 극진하게 하니, 그 때문에 곁에서 보는 자는 간혹 단식하는 자를 보고 안타까워하거나 눈물을 흘릴지라도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오히려 조롱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단식이 아니라 신체 단련을 위한 소식(小食)이나 극기 체험이라고 해야 옳다. 이는 단식이 아니라 체면치레 내지 대외 홍보용 요식 행위라고 해야 옳다.

정해(2007년) 5월 초10일, 선성(宣城) 김하은(金河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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