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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일반

각하(閣下)

도필리 2007. 7. 29. 14:42

공식 석상 등에서 대통령를 호칭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 '대통령님'이다.

그런데 도통 이 호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냥 '대통령께서' 정도로 하면 어감도 좋고 뜻도 충분히 전달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대통령이라는 단어에 이미 최고 존칭으로서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물론, 일반적으로 '님' 자를 붙여 장관님, 국회의원님, 사장님, 선생님 하고 있기에, 대통령에게만 안 붙이면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혹은 지나친 격식 파괴라고 생각되어서 '님'을 붙인 것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제5공화국까지는 '각하(閣下)'라는 경칭을 붙여 '대통령 각하'라고 했고, 제6공화국, 즉 '보통사람'을 강조하던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면서 대외적으로 각하 호칭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대통령 비서실, 경호실 등에서 대내적으로 계속 사용되었으며, 국민의 정부라고 하는 김대중 정권 때부터 공식적으로 각하 호칭을 폐기하고 '대통령님'이라는,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드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청와대에서 '각하' 호칭을 폐기한 명분은 대략 2개로 압축된다.

하나는 권위주의 청산,
나머지 하나는 '각하'라는 호칭 사용이 일본 제국주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군사독재 이미지가 강한 권위주의 청산이야 잘 알려진 명분이니 그렇다 치고, 곁가지로 이야기되는 일제 분위기 청산 이야기는 무엇일까?

일제시대에 '각하' 호칭이 일본국 고위 관료(일본 천황이 임명하는 칙임관 및 육군소장 이상)에게 사용되었고, 해방 후에도 그러한 시스템이 그대로 남아 대한민국 고위 관리에 대한 경칭으로 널리 사용된 것은 사실이다.

또 실제 조선시대에는 '각하' 호칭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일반적이지는 않았다.


'각하'는 본래 중국에서 사용된 단어로, 중국 조정의 고위 관원에 대한 경칭이다.

폐하(陛下), 전하(殿下)라는 경칭이 그러하듯, 각하 역시 각(閣)에서 근무하는 고위 관원을 지칭할 때, 그 관원을 직접 지칭할 수 없으므로 각 아래에서 그 대상을 모시는 사람(하인 등)을 불러 말을 전달하게 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즉, 보통 알려진 것처럼 '호칭자가 각 아래에서 고하는 것'을 두고 각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각 아래에 있는 사람을 불러 고하는 방식'에서 유래되었다.

중국의 서적 『사물기원(事物起源)』이라는 책에 각하 호칭의 유래가 나와 있다고 하는데, 원문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폐하가 황제(皇帝), 전하가 제후(諸侯)를 지칭하는 것처럼, 각하는 중국 역사에서 고위 관료를 지칭하는 것으로 쓰인 것은 분명한 듯 보인다.

참고로,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을 보면, 황제국 체제였던 고려시대에도 각하 호칭을 신하들 사이의 경칭으로 사용한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도 중국을 방문하거나 중국인과 교류한 사람들의 서신, 기록 등에서 각하 호칭이 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일부는 합하(閤下)와 혼동 or 혼용되기도 하지만.

이 각하 명칭은 일본에도 수입되어 중국에서처럼 고급 관리에 대한 경칭으로 사용되었다. 유교 문화권의 변방에 위치한 탓에 다른 제도들이 엉성하게 정착된 것처럼 각하 호칭 역시 특이하게 정착된 측면이 강하지만, 하여간 대마도주 등이 올린 문서에 각하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으며, 조선에서도 이 호칭을 그대로 사용하여 일본과의 외교에 사용하였다.

조선왕조에서는 주로 외국의 고위 관료에 대하여, 특히 외교 문서 등에서 각하 호칭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조선왕조 내부에서 전혀 사용례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 1649년(인조27)에 왕세손(王世孫)에 대한 경칭으로 이 '각하'가 사용된다.

다음은 『인조실록』 인조27년(1649년) 2월 19일 무신조 기사이다.

강서원(講書院)에서 아뢰기를,
"왕세자는 신하들이 저하(邸下)라 칭합니다만, 세손은 어떤 명호로 칭해야 하며, 본 세손강서원의 관원이 말하거나 글을 쓸 때는 또한 어떻게 자칭(自稱)해야 합니까? 예관(예조 관원)을 시켜 결정하게 하소서."
하고, 예조가 아뢰기를,
"전례(典禮)에는 세손의 칭호에 관한 글이 없으며, 우리나라에 책봉한 적이 있기는 하나 문적(文籍)이 없어져서 상고할 만한 증거가 없습니다. 신들이 고루하여 감히 경솔히 결정할 수 없으니, 대신(大臣)을 시켜 의논하여 정하게 하소서. 또 임진왜란 이전에는 강관(講官)이 왕세자 앞에서도 소인(小人)이라 자칭하였으나 그 뒤에는 신(臣)이라 칭한 것이 그대로 규례가 되었습니다. 세손 앞에서는 소인이라 칭하는 외에 다시 의논드리기 어렵습니다."
하니, 임금이 따랐다.
영의정 김자점(金自點), 좌의정 이경석(李景奭), 우의정 정태화(鄭太和)가 아뢰기를,
"왕세손의 칭호는 의거할 만한 전례가 없으므로 의리에 따라 정하지 않을 수 없으니, '각하(閣下)'라 칭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의논대로 하라고 명하였다.


세자(世子)와의 차별화를 위해 합당한 호칭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각하'라는 호칭을 채택한 듯하다.

저하는 세자의 호칭이고, 그렇다고 정1품 신하의 호칭인 합하(閤下)를 세손에게 사용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동안 조선 내에서는 그리 많아 사용되지 않았던 각하 호칭을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인 추측임)

이렇게 잠시 각하 호칭이 사용되다가 1752년(영조28)에 다시 실록에서 각하 호칭이 언급된다.

다음은 『영조실록』 영조28년(1752년) 6월 28일 정사조 기사이다.

임금이 승지와 유신(儒臣)을 불러 「편집절목(編輯節目)」을 강정(講定)하라 명하였다. 승지 이익보(李益輔)가 말하기를,
"세손궁(世孫宮)의 경우 '상서(上書)'를 '상장(上狀)'으로, '저하(邸下)'를 '각하(閣下)'로 부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지금 세손은 없지만 절목을 만들어 후세에 전한다면 명료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인조조의 전례를 감안하여 왕세손에 대한 경칭을 '각하'로 결정한 것이다. 이 전교에 따라 영조 말년에 당시 왕세손이었던 정조에게, 순조 연간에 당시 왕세손이었던 헌종에게 각하 호칭이 사용되었다.

...

대한제국 시기에 들어서 2품 이상 대신급 관료에 대한 경칭으로 '각하' 단어가 확대 사용되었다. 외국 각국과 교섭통상시에도 사용되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국가 체제가 황제국 체제로 개편된 때문일 것이고, 세계 각국과 앞서 수교했던 일본(과 같은 칙임관 체계 도입)의 영향도 어느 정도는 있었을 것이다.

...

아, 결국에는 언제나 횡설수설이 되고 마는 이 글을 어떻게 수습한다? 어떠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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