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화면으로
태그 | 지역 | 미디어 | 방명록 | 관리   
 
충무공 이순신의 무과 과거 급제 이야기

+ 2004년 11월 20일, 네이버 블로그 등록 (삭제)
+ 2005년 08월 12일, 엠파스 블로그 이전 (삭제)
+ 2007년 03월 25일, 티스토리 이전


가끔 웹상에서 벌어지는 논란을 보면, 그 가운데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의 무과(武科) 과거 급제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늦게 급제했다 = 무관 소질이 없었다', '합격 등수가 낮았다 = 역시 별 볼일 없었다' 등의 이야기인데, 어떤 사람들은 '최하위 등급 합격으로, 오늘날의 하사급밖에 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군사편찬연구소에서 2003년 8월에 발행한 『군사(軍史)』 제49호에 「무과합격, 군관생활, 전술능력에 나타난 이순신의 무학연구(論.張學根)」라는 논문이 실려 있다. 이 논문의 내용을 토대로 몇 자 적어 본다.


1) 너무 늦게 급제했다는 논란

위 논문에서 분석한 바에 따르면, 해당 과거 급제자들의 평균 연령은 34세였다. 이순신의 급제 당시 나이가 32세였으니, 평균 연령으로만 따지면 오히려 2년이나 빠른 셈이 된다. 인원수로는 전체 29명의 급제자 가운데 17명이 이순신보다 연장자였고 1명이 이순신과 동년배, 10명이 이순신보다 어렸다(최연소 23세 박대남과 성영길, 최고령 52세 구사직).

급제자 평균 연령이 높은 것은 이순신이 급제했던 과거만 특별했던 것이 아니다. 조선시대 전기간에 걸쳐 실시되었던 문과, 무과, 소과(생원, 진사)의 급제 및 입격자 연령이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높았다.

일례로, 이제까지 파악된 무과 급제자(모든 무과 급제자 명단이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파악된 인원 가운데 조선후기 16,000명만 분석)들의 평균 연령은 33.2세이다. 또 조선시대 전체 소과(小科, 생원 진사 선발) 입격자 평균 연령은 34.5세, 대과(大科, 문과) 급제자 평균은 33.7세이다. 즉, 이순신의 무과 급제 당시 연령은 그저 그런 평균 연령대에 속해 있었다는 결론이 된다.


2) 급제 등위가 매우 낮았다는 논란

아시다시피, 이순신의 무과 급제 등급은 '병과(丙科) 제4인(第四人)'이다. 여기에서 '병과'란 '과거 급제 등급'을 말하는데, 등급순으로 갑과(甲科)-을과(乙科)-병과(丙科)로 되어 있었다. 단순히 외면만 본다면 가장 낮은 3등급인 셈이다. 갑과 1등은 '장원(壯元)'이라고 하고 종6품 품계를 주며, 나머지 갑과 인원에게는 정7품, 을과는 정8품, 병과는 정9품의 품계을 준다.

그러나 법제상의 선발 인원이 갑과, 을과, 병과 모두 동수였던 것이 아니라, 갑과는 3인, 을과는 5인, 병과는 20인이었기 때문에 병과에서 가장 높은 사람(병과 제1인)은 종합 9위가 되고 최하위자(병과 제20인)는 종합 28위가 된다. 즉, 이순신은 병과 제4인이었기 때문에 12등이다. 28명 중에 12등이면 중간(+) 정도가 된다.

이순신이 급제한 1576년(선조9)의 병자식년(丙子式年) 무과에서는 29명(갑과 3, 을과 5, 병과 21)을 뽑았기 때문에 상위 42% 성적이다. 그리 높은 등급은 아니지만,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무과 급제자 29인 중에서 이순신 등 4인을 제외한 '25인'이 현직 군관(軍官, 하급 장교 등 현역 신분)이었다. 음직(음서제도)이나 천거, 자원, 징집 등의 형식으로 이미 군문(軍門)에 들어선 사람들인 것이다.

조선시대의 문과와 무과 과거 시험에는 정3품 당하관 이하 전현직 관리도 응시할 수 있었는데, 급제하면 정식 관직에 임명하거나 품계를 승진시켜 주는 특혜를 주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이미' 관직에 있었음에도 과거에 응시했다. 아무리 개인적인 능력이 뛰어나도 문과 또는 무과에 급제해야 선망받는 관직이나 고위 관직에 오를 수 있었기 때문에 특히 그러했다.

독학(獨學)으로 (혹은 장인 방진의 조력이 있었다고 해도) 무예를 연마한 이순신이 전현직 군관들 속에서 상위 42%를 차지한 것은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래도 실전 무예 기술을 익히기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현직 군관들은 자연스럽게 부대에서 언제나 무예를 연마할 수 있으나, 조선시대에는 무과 기술을 익히기 위한 별도의 교육 기관 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무과 독학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문과는 동네 서당이나 향교, 서원 등이라는 공간이 있기라도 함).

활 쏘는 것이야 그냥 활터에 가서 하면 된다지만, 말 타고 훈련하는 과정은 일단 말(馬)을 부릴 수 있는 여건이 되어야 한다. 그 때문에 당시 경제적으로 어렵던 이순신 가족이 아니라, 이순신의 장인(보성군수를 역임한, 재력이 있었다고 알려진 방진)이 이순신의 무과 연마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무과는 3단계 시험으로 되어 있었는데, 지방에서 치르는 1단계에서 무예(무술 실력)를 보고 여기에 합격한 인원을 대상으로 2단계 시험을 시행해 무예 + 학문 + 군사학을 본다. 2단계 시험에서 급제할 인원 28명을 선발하고(2단계 시험까지 합격하면 과거 급제는 기정사실화됨), 최종 3단계 시험에서 급제 등급만을 결정하는데, 이 3단계 시험이 이순신에게는 불리할 수밖에 없던 말 타고 활쏘기, 달려가며 활쏘기, 격구(擊逑) 등으로 되어 있었다. 다년간 말을 타며 연습해야 하는 종목이니, 아마 그냥 활쏘기나 군사학 같은 것으로 등위를 결정했으면 결과는 달랐지 않았을까 싶다.

하여간, 이순신의 급제 나이나 등수는 최고 수준은 아니었지만, 낮은 수준 역시 아니었다는 것이 본 글의 결론 되겠다. 설령 나이가 많고 등수가 낮았으면 어떤가. 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고 모두 명장이 아니고, 꼴등 혹은 현지임관을 했어도 명장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 많거늘.


ps1. 이렇게 따지고 보면, 수군절도사와 병마절도사를 두루 역임한 원균의 아버지 원준량(元俊良)은 원균의 무과 급제에 참 큰 힘이 되었을 것 같다. 원준량의 아들 8인 가운데 장남 원균과 다섯째아들 원지가 무과에 급제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ps2. 여건이 되시면 「무과합격, 군관생활, 전술능력에 나타난 이순신의 무학연구」라는 위 책의 논문을 구해서 읽어보는 것을 권장한다. 이순신이 조산보만호 겸 녹둔도둔전관으로 있을 때 상관이 경흥부사 이경록(이순신과 무과 동기생으로, 이순신보다 4년 연하)이었으며, 당시 사건 때문에 같이 백의종군 처분을 받았다는 등... 흥미로운 부분이 일부 있다. 군사편찬위 서적이 원문 서비스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도 웹상에서 공개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참, 이 논문에서 '신흠(申欽)'이라는 인물에 대한 내용은 동명이인에 의한 착오이다.

ps3. 종9품이 조선시대 관직 중에 최하위라지만, 그렇게 낮은 관직이었을까? 종9품과 지금 공무원 계급 체계하에서의 9급 공무원이나 하사급 군인과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타당할까? 모든 관리를 문과나 무과 과거로 뽑지 않아서 의외로 관직에 진출하는 길(음서제도나 천거, 수령취재 등)이 많이 있었기는 했지만, 역시 엘리트 코스를 가려면 문관은 소과를 거쳐 문과에 급제해야 했고, 무관은 무과에 급제해야 했다.

     그런데 이 문과나 무과라는 것이, 정규 선발 인원은 3년에 30명 남짓이었다. 물론, 왕의 생일이다 뭐다 해서 별시(別試) 같은 특별 과거가 상당히 많이 시행되었고, 무과의 경우에는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만과(萬科)라고 해서 1회에 수천 명을 뽑기도 했지만, 적어도 3년마다 시행되는 정기 과거에는 정규 인원(30명 내외)를 선발하려고 노력했다. 이순신은 그러한 과거의 무과에 급제한 것이다(병자년 식년 무과).

     조선시대에는 양반들이 달리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없었고, 고향 마을에서 학문에 몰두하는 것이나 향리에서 유지 노릇을 하는 것을 나름대로 '좋아라' 했을 수는 있지만, 일단 거의 모든 양반과 상당수 평민이 과거 급제를 통한 '일신의 영달' 쟁취를 위해 매진했다. 전국적으로 아무리 낮게 잡아도 수천, 수만 명의 경쟁자가 있었던 셈이다. 여기에서 급제하기란, 오늘날에 사법고시나 행정고시를 패스하는 것보다 힘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종9품 무관직에 권관(權管)과 초관(哨官)이라는 관직이 있는데, 초관은 1개 초(哨)의 지휘관으로 대개 80-125명의 군졸로 편성되어 있었다. 조선시대의 말단 종9품 무관 관직이 지금으로 따지면 중대장(대위)급 장교인 셈이다.

     물론, 이렇게 힘들게 급제하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부모의 공로나 연줄을 통해 쉽게쉽게 관직을 얻는 사람들도 있고 또 임진왜란을 전후로 무차별 실시된 무과에 덩달아 급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가면 과거 급제 여부에 따라 관직에서 격차가 벌어진다. 본인에게 특별한 하자가 없으면 승진하는 기간에서부터 차이나 나고, 결정적으로 중요한 관직이나 높은 관직에 부임할 수 있느냐 마느냐가 과거시험 급제 경력에서 갈리니까... 예를 들면, 문과 급제자 출신이 아니고서는 청현직, 청요직이라 불리는 핵심 관직에 임명되기가 거의 불가능했을 정도였다. 특히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중앙 관청의 2품 이상 고위직에 오르려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문과, 무과 급제 경력이 필요했다. 終.

, , , , ,
[안내] 본 저작물은 저작자의 명시적 허락 없이는 복제·복사·게시·배포·전시·공연·전송 및 매체 전환, 포맷 변경 등을 할 수 없습니다. (저작권법에서 보호하는 범위의 인용 또는 보도·비평·교육·연구 등을 위한 정당한 범위 내에서의 공정한 관행에 따른 '인용'은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andrew | 2019.10.02 16:35 | 수정/삭제 | 쪽글 달기
강력 추천합니다. 전체적으로 정확한 정보요 분석입니다. 개인 블로그 대부분이 엉터리인 현실에서 모처럼 식견있는 내용을 접하고 반갑습니다.

필명   비밀번호   홈/블로그
비공개
※ 누구나 댓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로그인 불필요) 
사이버 조선왕조 이 블로그는 대한민국 인터넷 조정(朝廷) - 사이버 조선왕조를 후원합니다. 사이버 조선왕조는 400여 년 전의 조선시대를 구현한 역사 기반 가상사회입니다.

<< 이전  [1]  [···]  [42]  [43]  [44]  [45]  [46]  [47]  다음 >>
BLOG main image
도필리의 블로그 아정
刀筆吏之不路居 雅亭
도필리지불로거 아정
 공지
아정기(雅亭記)
 분류
분류 전체보기 (47)
일반 (8)
작문 (9)
역사 (30)
갤러리 (0)
 태그
인민일보 육조거리 조선왕조 임진왜란 노무현 조선시대 의정부 추증 한성부 돈화문 손카 증직 사이버 조선왕조 비변사 아정 도필리 티스토리 대한제국 창덕궁 세종대로
 달력
«   2019/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최근 문서
호조(탁지부) 관청 청사의..
육조거리 의정부(議政府) 청.. (1)
예비역 장성, 예비역 장군이..
도필리(刀筆吏)란 무엇인가
경복궁 서편, 서촌(西村)에..
경복궁 서편, 서촌(西村)에..
창덕궁 돈화문 앞 비변사 청..
광화문 앞 육조거리 6조 관..
목포 모처의 카페 달몬트(da..
조선시대-구한말 시기 서울..
시흥 모처의 카페 언와인드(..
창덕궁 돈화문 앞 비변사 청.. (2)
창덕궁 돈화문 앞 비변사 청.. (2)
창덕궁 돈화문 앞 비변사 청..
블로그 타이틀 이미지 교체
 최근 댓글
강력 추천합니다. 전체적으로..
andrew - 10.02
귀한 글 감사합니다. 찾는 자..
혜성처럼 - 09.28
보다 알찬 글로 보답하겠습니..
도필리 - 2018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정말..
스니쯜 - 2018
근래 오마이뉴스 기사를 보고..
gildong7 - 2009
려 명예교수가 두음법칙 폐지..
도필리 - 2008
여씨가 아니라 려씨인가요.
천어 - 2008
오늘하루종일 육조판서 생각..
벽계수 - 2008
방문과 리플, 2중으로 감사드..
도필리 - 2008
그래도 궁굼한 것은 어쩔 수..
도필리 - 2008
 최근 트랙백
태왕삼신기
무한찌질공간
 월별
2019/11 (1)
2019/08 (2)
2019/07 (2)
2019/06 (1)
2019/03 (1)
2019/02 (1)
 링크
사이버 조선왕조
어물전 (舊천어망)
무운정(霧韻亭)
nasica (나시카의 뜻은?)
舊nasica (나시카의 뜻은?)
Board & HISTORY
팬더 아빠의 전쟁사 이야기
미육군 편성 및 개편
행동경제학 Sigmalpha
게렉터블로그
초록불의 잡학다식
임진왜란 사료연구소
兵者國之大事 不可不察也
외계인 마틴
대한민국 문화재청
 통계
전체 : 94,505
오늘 : 9
어제 : 20

사이버 조선왕조
rss

외계인의 무분별한 지구침공을 반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