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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忠武與鄧子龍 夾擊石曼子 滄海掀動 風雲失色, 終古水戰之壯 莫京於此. 嘗見其紀實之文 草草無可觀. 予欲製其碑 以鋪張之. 大抵我國人物 若數文武兼備者 忠武一人惟當之.

이충무공(李忠武公)이 등자룡(鄧子龍)과 함께 석만자(石曼子:島津義弘)를 협공할 때 창해(滄海)가 치솟아 오르고 풍운이 아연실색하였으니, 수전(水戰)의 장대함이 자고로 이보다 큰 적이 없었다. 일찍이 그에 대한 사실을 적은 글[紀實文]을 보았는데 초라하여 볼만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그의 비문을 지어 그의 공로를 기술하여 드러내려고 하였다. 대체로 우리나라의 인물 중에 문무(文武)를 겸비한 사람을 꼽는다면 충무공 한 사람만이 해당된다고 하겠다.


至於李舜臣 眞千古以來忠臣名將. 若使出於中原 漢之諸葛孔明 亦未知孰爲雄而孰爲雌也. 至於壬辰討倭之功 百世永賴 而制置邊防方略具在 其風聲義烈 尙令人凜凜然起慕. 列聖朝이贈之典 至矣盡矣, 刊刻之文字頗疎漏. 予自臨御以後 每欲彙撰一篇成書, 又臨篆首 竪牲石於墓道 尙未遑爲 近始留意於此事.

(전략) 이순신(李舜臣)의 경우는 참으로 천고(千古) 이래의 충신이고 명장이다. 그가 만약 중국[中原]에 태어났더라면 한(漢)나라의 제갈공명(諸葛孔明)과 자웅을 겨룬다 하더라도 과연 누가 우세할지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임진왜란 때 왜구를 토벌한 공로는 백세토록 영원히 그 덕택을 입고 있고, 변방의 방비를 규획하는 데 방략(方略)이 두루 갖추어져 있으며, 그의 명성[風聲]과 의열(義烈)은 아직도 사람에게 늠연히 흠모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한다. 열성조께서 하사하고 추증하는 은전은 더할 수 없이 극진하였으나, 문자로 새겨서 기리는 것은 아직 부족한 점이 있다. 내가 등극한 이래로 늘 사적을 모아 한 편으로 편찬하고, 또 묘에 비석을 세우고 생석(牲石)을 세우려고 하였으나 아직까지 겨를이 없다가 근자에 와서야 비로소 이 일에 뜻을 두게 되었다.


- 출전, 『홍재전서(弘齋全書)』 권173. 일등록(日得錄)13 「인물(人物)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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