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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관아 건축물의 배치와 형태를 추론할 때, 우연히 발견한 한 장의 사진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진이 없었을 때는 문헌 기록이나 회화에 등장하는 건물의 묘사, 그리고 근래에 실시된 발굴조사 결과만을 가지고 실제 건물의 형태와 배치를 추정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고, 보고서나 논문으로 나온 결과물 자체의 정확성에도 의문을 품게 하는 사례가 많다. 사진이 단 한 장이라도 있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오늘 살펴볼 내용은 그 대표적인 예가 되겠다(?).


경상북도 청하군 군청 및 외문루
1번 이미지 - 경상북도 청하군 군청 전경 사진 (1914년 이전 사진엽서)


위 1번 이미지는 경상북도 청하군(淸河郡)의 군청(郡廳) 전경을 보여주는 사진이다. 2018년에 일본 경매 사이트에서 상당한 가격에 낙찰된 회엽서(繪葉書, 사진엽서) 가운데 하나인데, 이 엽서와 같이 낙찰된 사진엽서 한 장이 2021년에 국내 언론에 소개된 바가 있기에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이 해당 경매에 참여해 낙찰받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만약 그렇다면 어서 정식으로 공개되기를!)

청하군은 조선시대 청하현(淸河縣)이다. 1895년(고종32) 윤5월 1일(양력 6월 23일) 단행된 제2차 갑오개혁(甲午改革)으로 23부제가 시행되면서 현(縣)에서 군(郡)으로 개편되었으며, 일제강점기인 1914년 3월 1일에 부군면(府郡面)의 통폐합 실시로 말미암아 폐지되었다. 이때 청하군, 흥해군(興海郡), 장기군(長鬐郡) 등 3개 군이 영일군(迎日郡)으로 편입되었고, 청하군 군청 소재지였던 현내면(縣內面)은 청하면(淸河面)으로 개칭되었다.

즉, 위 사진은 1895년부터 1914년까지 존재하였던 청하군의 군청 사진이다. 그리고 청하군은 청하현의 후신이므로 조선왕조 청하현의 동헌(東軒) 일대를 찍은 사진이기도 하다. 화살표로 표시된 각 부분을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1) 파란색 화살표 : 청하군 군청 청사 (조선시대 청하현 동헌)
2) 보라색 화살표 : 내아(內衙) 건물 추정
3) 초록색 화살표 : 동헌 내삼문(內三門)
4) 빨간색 화살표 : 동헌 외문루(外門樓)
5) 노란색 화살표 : 객사(客舍) 건물 추정

앞에 기술한 것처럼, 청하군 군청 청사는 청하현 동헌이었다. 대한제국 시기 각 지방의 군청 건물은 여러 관원이 근무해야 하는 근대적 행정 체계의 도입으로 인해 더욱 넓은 공간을 찾아서, 예전 지방관(사또)이 행정을 보던 동헌 건물에서 벗어나 객사 또는 신축 건물에 입주하는 경우가 제법 많았는데, 사진에 내삼문-외문루가 있는 것을 보면 청하군 청사는 기존 동헌 권역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청하군 동헌은 칠정헌(七政軒) 또는 칠정당(七政堂)으로 불렸으며, 마지막 명칭은 육청헌(六淸軒)이었다.

군청 건물 정면 앞에 큰 나무(회화나무?)가 한 그루 보인다. 초록색 내삼문에서 빨간색 외문루까지 'ㄴ' 자 형태의 보도(步道)가 나 있고, 외삼문 너머 멀리 노란색 화살표에 큰 규모의 건물이 있다. 작은 고을에서 동헌 대청(大廳) 건물보다 큰 건물은 보통 객사밖에 없다. 따라서 사진에는 비록 일부밖에 보이지 않지만, 노란색 화살표 건물을 청하현의 객사인 덕성관(德城館)의 서헌(西軒, 서대청)이라고 강하게 추정할 수 있다. 참고로, 청하객사 동헌(東軒, 동루)에는 관해루(觀海樓)라는 별도의 명칭이 붙어 있었다.

사진엽서 하단에 '청하군청 및 무봉루[淸河郡廳及舞鳳樓]'라고 표제된 것을 보면 사진의 외문루 명칭은 무봉루(舞鳳樓)이다. 문헌에 따르면 청하현 동헌의 외문루, 즉 폐문루(閉門樓) 이름은 원래 우양루(嵎暘樓)였다가 1872년경 중수(重修), 즉 고쳐 지으면서 근민루(近民樓)로 개칭하였다. 아마도 대한제국 시기 또는 일제강점기 초기에 ('근민'이라는 전통적인 지방관 통치 단어에서 탈피한) 무봉루로 문루의 편액을 바꿔 단 것이 아닐까 한다.


경상도 청하현 관아 건물 배치 (추정도)
2번 이미지 - 청하현 동헌 건물 배치 및 청하읍성 항공사진


위 2번 이미지의 왼쪽 위 A 그림은 1번 이미지(사진엽서)에 등장하는 건물의 평면을 그려본 것이다. 외문루, 내삼문의 건물 칸[間]은 비교적 정확하지만 다른 건물들은 대략적인 추정이다. 조선시대 관아 건물은 대부분 남향이었으므로 북쪽부터 남쪽으로 내아, 동헌, 내삼문, 외문루를 배치하고 외문루 앞에는 회색으로 도로를 표시하였다. 문헌 기록에 동헌, 내아, 객사 등 각 건물의 칸수(間數)가 전해지지 않으므로 객사 건물의 규모 역시 적절한 상상이 가미된 것이다.

왼쪽 아래 B 이미지는 1910년 측도(測圖, 현지 실측)하고 1913년 제판(製版, 인쇄판 제작)한 일본 육지측량부의 1:50,000 지형도 중 청하읍성(淸河邑城) 부분이다. 읍성 안에 군청이 기재되어 있고 동문(東門), 서문(西門) 위치도 비교적 뚜렷하다. 청하읍성 동문의 명칭은 부옹루(孚顒樓)였다. 1915년에 측도하고 이듬해 1916년에 제판한 지형도도 있는데, 청하군이 폐지된 이후에 제작된 것이라서 그런지 각 건물의 개별 배치는 1910년 측도 지형도보다 자세하지만, 읍성 윤곽은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 C 사진은 1954년 촬영된 청하읍성 일대 항공사진이다. 하늘색 화살표는 당시 청하면 면사무소 건물이다. 이 청하면사무소는 1933년에 신축된 것으로, 이곳에는 현재 청하면 행정복지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읍성 남쪽에 노란색으로 테두리를 친 부분은 청하국민학교(=청하초등학교)이며,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청하공립보통학교(淸河公立普通學校), 청하공립심상소학교(淸河公立尋常小學校) 등의 교명을 가지고 있었다. 노란색 화살표 부분에 본교사(本校舍, 본관), 증축 교사(校舍, 교실) 등이 있었는데, 한국전쟁 시기에 소실되었기 때문인지 이 항공사진에는 터만 남아 있다. (이후 교사 자리에 그대로 학교 건물이 다시 건축됨)

직원실(교무실)과 교실이 있던 북향(北向)의 본교사 터와 교직원 숙사(宿舍, 숙소) 건물 사이에 우물이 있었다. 이것이 바로 청하읍성 내에 2개 있었다고 하는 우물 가운데 (1920년대에 남아 있던) 하나일 것이다.


경상북도 청하군 지적도 (1913년 측량)
3번 이미지 - 1913년 측량 경상북도 청하군 지적원도


위 3번 이미지는 1913년에 제작된 청하읍성 일대 지적원도이다. 2번 이미지 A의 '사진엽서 건물 배치'를 지적원도 위에 올려 대략적인 위치를 가늠해 보았다. 사진엽서를 확인하기 전에는 청하읍성 내의 필지가 이상한 모양으로 분할되어 있던 것이 의문이었는데, 아직 추정에 불과하지만 사진엽서를 통해 작성한 건물 배치도를 위치시키고 보니 '山' 자 모양으로 돌출된 332번지의 형태가 어느 정도 이해되었다. (객사 남쪽 및 동쪽과 동헌 외문루 앞을 지나는 옅은 분홍색은 추정 도로임)

위 지적도에서 '국유(청)'은 지적도에 '垈(广)'으로 표기된 국유지[國] 대지[垈]이다. 같은 국유 건물지라도 관청(官廳) 건물을 의미하는 '청(广=廳)'이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뉜다. 다른 지적도에서는 '垈(官)'으로 되어 있기도 한 곳이다. 산림[林], 수림[樹], 초지[草] 등의 지목(地目) 역시 대지와 마찬가지로 기재하지 않았다.

청하군 군청, 즉 청하현 동헌은 332번지 필지의 왼쪽 돌출부에, 동헌 내아는 동헌 북쪽인 333번지 서쪽에, 객사(덕성관)는 332번지 중앙 돌출부에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사진엽서에 등장하는 건물 배치를 토대로 짐작한 것이기는 하지만 정확도는 최소 50% 이상일 것으로 판단한다(내아, 동헌, 문루가 위 지적도에 표기한 것보다 약간씩 남쪽에 위치해 있었을 수 있음).

1929년에 출간된 『영일읍지(迎日邑誌)』에 청하공립보통학교가 '청하군 구읍에 있다, 본래 객사 옛터이다[在淸河舊邑 元客館舊址]'고 기재되어 있다. 청하보통학교가 공립(公立)으로 인가된 것이 지적 측량 이전인 1912년 3월(개교는 7월)이므로 지적도 제작 시점인 1913년에는 객사 건물이 보통학교로 사용되고 있었을 확률이 높다(1910년 6월 사립학교 설립 시절에는 청하향교 공간을 활용하였다고 한다. 혹시 객사 정원의 착오가 아닐까?). 그래서 객사 구역의 필지가 다소 이상한 모양으로 그려진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332번지와 333번지가 이런 형태로 나뉜 궁금함이 말끔하게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군청 부지와 (보통학교로 사용 중이었을) 객사 부지가 동일한 필지로 묶여 있고 동헌과 내아 공간을 분리하였으며, 동헌 외문루 앞과 객사 진입로의 지목이 길[道]이 아닌 대지[垈]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학계 전문가의 연구가 있어야 하겠다.

333번지에서 객사 북쪽의 하늘색 화살표로 표시한 옅은 보라색 사각형은 2번 이미지 C의 항공사진에 있던 면사무소 건물 위치이다. 1915년 지형도를 보면 동헌 자리에 당시 면사무소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1933년 8월 조선총독부 관보에 실린 청하면사무소 주소 이전 고시(경상북도 고시 제92호)가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청하군이 폐지된 1914년 이후에도 계속 동헌 건물을 면사무소로 사용하다가 1933년 10월에 이 하늘색 화살표 위치로 신축 이전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면제(面制)가 본격 도입된 때(1910년 경술국치 이후)부터 군청이 아닌 제3의 장소(향청, 군관청 등 청하현의 다른 관아 건물)에 면사무소가 존재하다가 이곳으로 신축한 것일 수도 있지만.

332번지 내에 밤색 화살표와 점선 원으로 표시한 부분은 1번 이미지의 촬영 장소로 추정되는 곳이다. 동시에 청하읍성 내에 있었다고 하는 유명한 문루(門樓)인 해월루(海月樓)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장소이다. 사진엽서를 촬영한 곳의 위치를 감안하면 2층 문루 높이일 가능성이 높고, 각종 읍지(邑誌) 기록에도 해월루가 '동헌 남쪽에 있다[在東軒南]', '객사 서쪽에 있다[在客舍西]'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겸재(謙齋) 정선(鄭歚, 1676-1759)이 그린 〈청하읍성도(淸河城邑圖, 淸河城邑)〉를 보면 초록색 화살표와 점선 원으로 표시된 지역에 해월루(로 보이는 누각 1채)가 그려져 있었다. 해월루가 여러 차례 중건되고 개축된 기록이 있으므로, 초기에는 초록색 화살표 지역에 있다가 밤색 화살표 지역으로 이건(移建)되었을 수 있다.

덧붙이자면, 〈청하읍성도〉 그림이 청하군청 사진엽서의 건물 배치 및 1913년 지적도상 위치 추정에 기본 자료가 되었다. 또 〈청하읍성도〉에는 외문루 대신 외삼문(外三門)이 그려져 있으므로, 동헌 문루(우양루)가 건축된 것은 겸재 정선이 청하현감으로 재직한 1733년부터 1735년 사이 기간 이후이다.


북쪽의 빨간색 화살표로 표시된 190번지 지역의 건물은 청하현 향교(鄕校)이다. 진입로 북쪽 향교 정문은 천화루(闡化樓)인데, 원래 문루는 한국전쟁 때 파괴되었고 현존 건물은 1968년에 복원한 것이다(1964년 1차 건립). 향교 바로 남쪽의 분홍색 화살표 필지는 284번지인데, 지적도에 '垈(广)', 그리고 '덕성리'로 표시되어 있었다. 관아 용도 건물이 있었던 곳이고, 지적도 측량 당시에는 필지 소유자가 '덕성리' 마을이었다. 현재 덕성2리 회관 및 경로당이 있다.

동문 동쪽의 200번지 역시 관아 건물이 있던 국유지이며, 현재는 포항 청하우체국이 자리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청하군청 시기였던 1911년 7월 16일에 청하우편소가 설치된 곳으로 이듬해 3월 11일부터는 전신과 전화통화 업무까지 담당하였다.


경상북도 청하면 청하읍성 관아 건물 배치
4번 이미지 - 경상북도 청하면 소재 청하현 관아 건물 배치도 (추정)


위 4번 이미지는 2021년 촬영 청하읍성 일대 항공사진이다. 3번 이미지의 지적원도에서 추정한 동헌, 내삼문, 외문루, 내아, 객사 등 각 건물 배치를 항공사진에 겹쳐본 것이다.

옛날 읍성의 동문과 서문을 가로지르던 도로 대신 동서를 관통하는 왕복 2차선 도로(청하로217번길)가 개설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2번 이미지의 항공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 이 도로는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것이다. 정확한 도로 확장 시기를 파악하지 못했으나, 이 신작로가 놓이면서 인접 부지에 있던 (보통학교로 활용되던?) 객사 건물이 철거되고 내아, 동헌을 비롯한 관아 건물들이 헐려 나갔을 것으로 생각된다. 여담이지만, 청하읍성 내부 구획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도로 개설 날짜를 추정하는 데에는 청하공립보통학교 증축 낙성 시점인 1928년 4월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이때 재래 건물인 객사를 허물고 신축한 것인지, (객사는 진작에 도로를 내면서 철거된 상태이고) 객사 부지에 존재하던 신축 교사가 협소하여 대대적인 증축을 한 것인지가 관건이겠지만 말이다.

읍성 안팎이 전부 국유지이고 조선시대에는 그 부지에 동헌, 내아를 위시하여 향청(鄕廳), 장관청(將官廳), 군관청(軍官廳), 현사(縣司), 인리청(人吏廳), 형리청(刑吏廳) 등의 관청 건물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그 영향으로 현재에도 면사무소, 보건지소, 포항북부소방서 119 청하지역대 등의 공공기관이 읍성 내부 북단에 소재하고 있다. 남쪽에는 청하초등학교와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있다. 또 앞서 기술한 것처럼 동문 밖 200번지에는 우체국도 자리하고 있다.

하늘색 화살표는 현재 면사무소(행정복지센터) 정원에 있는 수령 300여 년의 회화나무이다. 청하면, 청하읍성을 소개하는 다수 자료에서 이 회화나무가 오래전부터 이 자리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1954년 당시 항공사진에서 보듯 이 나무가 있던 자리에는 예전 면사무소 건물이 있었다. 정확한 날짜를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1980년대 또는 1990년대 초에 면사무소를 신축하면서 조경을 위해 읍성 내 다른 곳에 있던 회화나무를 옮겨다 심은 것이 아닐까 한다. (1954년과 그 이후 1970년대까지의 항공사진 해상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면사무소 건물 바로 옆에 회화나무가 있었는데 촬영 시점이 겨울이라 나뭇잎이 없어서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일 가능성도 있음)

1번 사진엽서의 촬영 위치를 갈색 화살표로 추정하였지만, 만약 이 자리에 누각(해월루)가 없었다면 빨간색 화살표로 표시한 청하읍성의 남쪽 성벽 위에서 사진을 찍었을 수 있다. 사진 구도상으로는 쉽지 않은 곳이라고 생각되지만.


본 글에서 추정한 동헌, 내아, 문루, 객사 등의 위치가 얼마나 정확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각에서 제기되는 청하읍성 복원에 앞서 청하초등학교 부지 일부와 119 청하지역대 서쪽 부지에 대한 시굴 내지 발굴조사를 시행한다면 동헌, 내아, 객사 일부의 주춧돌 정도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우물 터는 분명히 나올 것 같다. 그리고 건물 일부만 보이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렇게 사진 자료가 존재하고 있으므로 동헌을 중심으로 한 전통 건물 복원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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