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카오에서 제공하는 여러 서비스가 불통되는 사태가 한 주 전에 있었습니다. 이곳 티스토리 블로그 역시 그 여파로 인해 접속 불량, 방문자수 감소 등을 겪었습니다. 본문이나 댓글을 작성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했고요. 다시는 이러한 일이 없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뒤로하면서... 조선시대 동래 지역의 수군진(水軍鎭, 수군 부대) 배치에 관한 글을 올려봅니다. 위 지도는 조선 후기 동래도호부(東來都護府) 지역의 수군(水軍) 배치를 나타낸 간략 지도입니다. 지도에서 '동래도호부'가 표시된 곳은 현재 부산광역시 동래구(東萊區)와 연제구(蓮堤區) 일대입니다. 그리고 그 남쪽으로 부산진구(釜山鎭區), 동구(東區), 중구(中區), 서구(西區) 등이 연속해 있습니다. 절영도첨사진 지역은 영도구(影島區), 서평포와 다대포..

위 사진의 관인(官印), 즉 관청의 인장(印章. 도장)은 1897년 겨울 무렵부터 1908년 11월까지 약 11년간 사용되었던 평안남도 은산군(殷山郡)의 군수(郡守) 직인(職印)입니다. 은산군은 본래 종6품 현감이 부임하던 은산현(殷山縣)이었는데, 제2차 갑오개혁이 시행되던 중이던 1895년(고종32) 윤5월 1일자로 군수가 부임하는 은산군으로 승격됩니다. 다만, 이 당시 승격은 23부제 시행에 맞춰 전국 팔도의 부목군현(府牧郡縣)을 군(郡)으로 일괄 개편한 것이었기 때문에 명칭 변경 이외에 행정구역 조정과 같은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참고로 은산군은 평양부(平壤府, 평양관찰부)에 속한 27개 군 가운데 하나(군을 규모에 따라 나눈 5등급 가운데 4등군)였으며, 이듬해인 1896년 6월에 23부제가 13..
앞의 글 '경상좌수영, 동래도호부... 이야기'에서 부산(釜山) 지역에 설치했던 관청인 동래감리서(東萊監理署)에 대해 잠시 알아봤습니다. 그 감리서에서 서기관(書記官), 방판(幇辦) 등의 관직을 역임했던 인물인 민건호(閔建鎬, 1843-1920)가 작성한 『해은일록(海隱日錄)』의 1885년(고종22) 기록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 (1885년 12월) 15일 기묘일, 맑고 동북풍이 잠시 불다. ○ 돛을 걸자 곧 남해(南海) 노량포(露梁浦)를 지났다. 포구에 충무공(忠武公, 이순신)의 사당[祠宇]이 있는데, 임진년(壬辰年)에 이 포구에서 일본군[日本兵]을 물리쳤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이 사당을 세웠다고 한다. ..
※ 최근 몇 년 사이에 각 지역에서 조선시대 관찰사(觀察使)가 근무하던 관청인 감영(監營) 시설을 복원하거나 국가지정문화재(사적)로 지정해 관리하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전주(全州)의 전라감영이 얼마 전에 복원되었고, 공주(公州)와 원주(原州)에서 충청감영과 강원감영 구역에 대한 정비를 본격 추진하고 있으며, 조선 전기에 경상감영이 있던 상주(尙州)는 감영 건물을 복원해 공원을 조정하는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지방에서 가장 격이 높았던 관아 건물(랜드마크)을 내세워 지역 주민들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높이거나 자치단체장이 스스로 치적을 쌓기 위한 목적일 것입니다. 물론 가장 큰 목표는 관광객 유치겠죠. 이번 글은 이러한 감영 건물에 걸려 있었던 편액(현판) 글씨에 대한 이야기입..
서설. 지난해(2018년) 6월에 본 블로그(아정)의 글을 일부나마 공개 문서로 전환하고 다시 운영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이후 새로 올린 글들은 주로 조선시대 중앙 관청(관아)의 형태, 변천, 자료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때 계획하기를 한 달에 최소 하나의 새 글을 올리려 하였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지켜나가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느덧 해가 바꿔 2019년, 새해 1월을 맞이하여 '이미지 위주의 글'을 급조해 올려봅니다. (쓰다 보니 내용이 길어졌고, '역사-관아' 카테고리가 아닌 '역사-일반' 카테고리의 글이 되었습니다.) 이하 본문. 조선왕조의 법궁(法宮) 경북궁(景福宮) 광화문(光化門) 앞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뻗어가 서울특별시청과 숭례문(崇禮門, 남대문)을 거쳐 서울역(驛..
우리나라 산야(山野)에 무수히 존재하는 석비(石碑)에는 그 비석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글귀가 새겨져 있기 마련인데, 역사적으로 이름을 남긴 인물인 경우에는 대개 직함(職銜, 관직명)과 성명(姓名, 이름)이 함께 나란히 새겨져 있다. 한문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므로, 대부분 한자로 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비석의 인물이 조선시대 사람인 경우에는 대개 직함의 서두에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이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다. 신라 시대의 인물이면 '유당신라국(有唐新羅國)', 고려 시대 인물이면 '유원고려국(有元高麗國)'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식의 표기는 고위 관직을 지낸 사람의 신도비(神道碑)나 묘갈(墓碣)인 경우에 특히 많은데, 이 '유명(有明)', '유당(有唐)' 등의 단어와 관련하여 풀이가 ..
공식 석상 등에서 대통령를 호칭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 '대통령님'이다. 그런데 도통 이 호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냥 '대통령께서' 정도로 하면 어감도 좋고 뜻도 충분히 전달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대통령이라는 단어에 이미 최고 존칭으로서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물론, 일반적으로 '님' 자를 붙여 장관님, 국회의원님, 사장님, 선생님 하고 있기에, 대통령에게만 안 붙이면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혹은 지나친 격식 파괴라고 생각되어서 '님'을 붙인 것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제5공화국까지는 '각하(閣下)'라는 경칭을 붙여 '대통령 각하'라고 했고, 제6공화국, 즉 '보통사람'을 강조하던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면서 대외적으로 각하 호칭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대통령 비서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