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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는 1908년(융희2/순종2) 1월 1일부터 대한제국 종언시까지 시행된 관직 증직(贈職) 규정이다. 포달(布達) 제175호에 의한 '증직규례' 개정으로, 이전 규례(1905년 증직규례)와 비교할 때 증직 시행 기준이 대폭 개정되어, 규장각 관직을 증직하는 것으로 제도가 간소화되었다. 1908년 5월 7일자 관보4067호에 실린 내용에 근거하였다. 이미 설명한 '주(註)'는 생략하였으므로, 이전 문서 '대한제국 광무4년 관직 추증규례 (클릭)' 및 '대한제국 광무9년 관직 증직규례 (클릭)'를 참고할 것.
증직규례(贈職規例)
제1조. 증직은 특증(特贈:특별 추증)과 추증(追贈)의 2종(種)으로 정한다.
제2조. 특증은 군공을 세운 자와 전사[軍功及戰亡]한 자와 충효(忠孝), 학행(學行)이 탁월한 자에 한하되, 본직(本職)에 따라 승품 또는 초품[陞品或超品]으로 상당(相當)한 관직[官]을 증직한다. 명을 받들어 사신(使臣)으로 나아가[奉命出彊] 외국에서 사망한 자[身歿異域者]도 또한 같다[亦同]. 단, 제1항의 공로와 행적이 있으되, 본직이 없는 자는 상당한 품계와 관직[品職]을 증직한다.
제3조. 추증은 현재[現] 친임관주1 및 칙임관[親任官及勅任官]의 직에 있는 자와 예전[曾]에 동일한 관직에서 공무를 수행한 자의 죽은 아버지 이상 3대[考以上三代]에 한하여 증직한다.
제4조. 친임관의 선대추영(先代追榮)은 다음의 갑표[左開甲表]에 의하고, 칙임관의 선대추영은 다음의 을표[左開乙表]에 의한다.
제5조. 출계(出繼)한 사람으로 입후된 집안의 선세[后家先世]가 자궁(資窮)주2한 경우에는 태어난 선대[本生先代]에 옮겨 시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제6조. 수증인(受贈人)의 처(妻)는 남편의 직에 따라[從夫職] 법전[典] 규정에 준해 시행한다.
부칙(附則). 제7조. 본령(本令)은 융희2년 1월 1일부터 시행한다. 제8조. 광무9년 4월 29일 주하(奏下) 증직규례는 본령 시행일로부터 폐지(廢止)한다.
다음(左開). 갑표(甲表). 고(考), 규장각대제학(奎章閣大提學). 조(祖), 규장각대제학. 증조(曾祖), 규장각제학(奎章閣提學), 부제학(副提學) 정1품 친임관의 추영은 대제학을 대광보국(大匡輔國) 품계, 대제학을 숭정(崇政) 품계, 제학을 자헌(資憲) 품계로, 종1품부터 정2품 친임관의 추영은 각 관직[已職]에 준하되 대제학을 숭정 또는 자헌 품계, 제학을 자헌 또는 가선(嘉善) 품계, 부제학을 가선 또는 통정(通政) 품계로 한다.
을표(乙表). 고. 규장각제학. 조. 규장각부제학. 증조. 규장각직각(奎章閣直閣). 정2품 이상 칙임관의 추영은 제학을 자헌 품계, 부제학을 가선 품계, 직각을 통정 품계로, 종2품부터 정3품 칙임관의 추영은 제학을 가선 푸몌, 부제학을 통정 품계, 직각을 통훈(通訓) 품계로 한다.
주1) 친임관(親任官)은 황제가 친히 임명하는 관원이다. 정1품에서 종2품 사이의 고위 관료군인 칙임관(勅任官) 중에서도 특별히 중요시되던 대신(大臣)급 관직을 말한다.
주2) 자궁(資窮)은 품계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는 뜻이다. 정3품 당하관 품계(통훈대부, 어모장군 등)를 말하나, 여기에서는 증직될 관직이 정2품일 경우에 생전에 정2품 관직을 지냈거나 증직으로 이미 정2품에 도달한 상황을 의미한다. 양자(養子)로 들어간 양부모[養父母] 집안의 선조에게 증직을 시행할 때 증직을 받는 수증인(受贈人)이 자궁이면 친부모[生父母] 선조에게 대신 증직을 시행한다는 조문 내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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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는 1905년(광무9/고종41) 4월 29일부터 1908년(융희1/순종1) 4월 2일까지 시행된 관직 증직(贈職) 규정이다. 종전에는 법령 명칭이 '추증규례(追贈規例)'였는데, '증직규례'로 개칭되었다. 1905년 6월 1일자 관보3154호에 실린 내용에 근거하였으며, 붉은 글자로 추가 및 삭제된 부분은 1907년(광무11) 4월 10일자 관보3736호의 정오(正誤)로 정정된 내용이다. 이미 한 번 설명한 '주(註)'는 생략하였으므로, 이전 문서 '대한제국 광무4년 관직 추증규례 (클릭)'를 참고할 것.
증직규례(贈職規例)
제1조. 정1품 대광(大匡)으로 의정대신(議政大臣)을 증경(曾經)한 자와 보국(輔國)으로 참정대신과 판돈녕(判敦寧)을 증경한 자는 다음[左開]에 의하여 증직한다[事]. 고(考), 의정부(議政府) 의정대신. 대광(大匡)의 고(考)는 대광 품계, 보국(輔國)의 고는 보국 품계. 조(祖), 의정부 참정대신. 종1품 숭정(崇政) 품계. 증조(曾祖), 각부(各部) 대신(大臣). 정2품 자헌(資憲) 품계.
제2조. 종1품으로 각부부(各府部) 대신, 내대신(內大臣)주1, 시종원경(侍從院卿), 의장(議長), 대학사(大學士)를 증경한 자는 다음에 의하여 증직한다. 고, 의정부 참정대신. 종1품 숭정 품계. 조, 각부 대신. 정2품 자헌 품계. 증조, 각부 협판(協辦). 종2품 가선(嘉善) 품계.
제3조. 정2품으로 첨사(詹事), 학사(學士), 부장(副將), 경(卿), 부의장(副議長)을 증경한 자는 다음에 의하여 부직(附職)한다. 고, 각부 대신. 정2품 자헌 품계. 조, 각부 협판. 종2품 가선 품계. 증조, 비서감승(秘書監丞). 정3품 통정(通政) 품계.
제4조. 종2품으로 부첨사(副詹事), 부경(副卿), 참장(參將), 협판(協辦), 총판(摠辦), 판윤(判尹), 관찰사(觀察使)를 증경한 자는 다음에 의하여 증직한다. 고, 각부 협판. 종2품 가선 품계. 조, 비서감승. 정3품 통정 품계. 증조, 예식원(禮式院) 좌장례(左掌禮). 종3품 통훈(通訓) 품계.
제5조. 수증인(受贈人)이 문과(文科) 급제자로서 홍문관[玉署], 세자시강원[春坊]을 증경한 자이면 대학사, 학사를 품계에 따라 예겸하고[隨品例兼], 산림(山林)주2으로 자의(諮議)주3와 남대(南臺)주4를 증경한 자는 경연관(經筵官)을 품계에 따라 예겸하고, 규장각[閣職]을 증경한 자는 규장각 직함[閣銜]을 품계에 따라 예겸하고, 군함(軍銜)주5을 증경한 자는 부장, 참장을 또한 품계에 따라 예겸한다.
제6조. 정3품으로 부첨사, 부경, 협판, 총판, 부윤, 관찰사를 증경한 자는 종2품 예(例)에 의해 증직한다.
제7조. 군공을 세워 전사한 자[軍功戰亡人]와 충효(忠孝), 학행(學行)이 탁월한 자[卓異者]는 그 본직에 따라[隨其本職] 승품, 증직한다. 명을 받들어 사신(使臣)으로 나아가 외국에서 사망한 자도 같다[奉命出彊身歿異域者同].
주1) 내대신(內大臣)은 궁내부(宮內府)에 속한 칙임관(勅任官) 관직이다. 궁내부 대신을 의미하기도 하나, 여기에서는 통상 시종원경(侍從院卿)이 겸직하는 궁내부 소속 내대신관제(內大臣官制)상의 별도 관직인 '궁내부 내대신'을 의미한다. 국새(國璽)와 어새(御璽) 등을 관리와 고문(顧問) 역할을 담당하였다.
주2) 산림(山林)은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재야에 숨어 사는 선비를 말한다. 특히 학문과 덕행이 뛰어나 국정이나 여론 방향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인물을 의미한다.
주3) 자의(諮議)는 산림을 우대하기 위해 설치한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정7품 관직이다.
주4) 남대(南臺)는 천거로 관직에 나아가 사헌부 관직에 임명된 경우를 말한다. 산림의 주요 출사 관직에 속한다.
주5) 군함(軍銜)은 군사 관계 관직이다. 즉, 무관직(武官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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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는 1900년(광무4/고종37) 6월 21일(양력)부터 1905년(광무9/고종42) 4월 29일까지 시행된 관직 추증(追贈) 규정이다. 보라색 글자 부분은 1903년(광무7/고종40) 10월 19일자 관보2647호의 정오(正誤)로 추가된 내용, 하늘색 글자 부분은 동년 동월 27일자 관보2654호로 추가된 내용, 갈색 글자 부분은 1904년(광무8/고종41) 8월 2일자 관보2894호로 추가된 내용.
별단(別單) 추증규례(追贈規例)
제1조. 정1품 증경(曾經)주1 의정(議政)주2인 자는 다음에 의하여 증직(贈職)한다. 증경 보국(輔國)주3 참정(輔國參政)과 판돈녕(判敦寧)인 자도 이에 의하여 증직한다. 고(考)주4, 의정(議政). 대광(大匡)주5의 고(考)는 대광 품계, 보국(輔國)의 고는 보국 품계를 증직한다. 조(祖)주6, 참정(參政). 종1품 품계. 증조(曾祖)주7, 찬정(贊政) 또는 각부(各部) 대신(大臣). 정2품 품계.
제2조. 종1품 증경 참정, 대신, 대학사(大學士), 의장(議長) 및 경(卿)과 판돈녕(判敦寧)인 자는 다음에 의하여 증직한다. 고, 참정. 종1품 품계. 조, 찬정 또는 각부 대신. 정2품 품계. 증조, 참찬(參贊) 또는 협판(協辦). 종2품 품계.
제3조 정2품 증경 대신, 찬정, 부장(副將), 관각학사(館閣學士)주8 및 경과 지돈녕(知敦寧)인 자는 다음에 의하여 증직한다. 고, 찬정 또는 각부 대신. 정2품 품계. 조, 참찬 또는 협판. 종2품 품계. 증조, 비서원승(秘書院丞). 정3품 품계.
제4조. 종2품 증경 참찬, 협판, 경, 첨사(詹事), 좌장례(左掌禮), 소경(少卿), 동돈녕(同敦寧), 참장(參將), 재판장(裁判長), 전권공사(全權公使), 판윤(判尹), 관찰사(觀察使)인 자는 다음에 의하여 증직한다. 고, 참찬 또는 협판. 종2품 품계. 조, 비서원승. 정3품 품계. 증조, 홍문관시독(弘文館試讀) 또는 장례. 종3품 품계.
제5조. 종2품 증경 찬정, 참찬(參贊), 정3품 증경 협판, 판윤, 관찰사인 자는 각각 그 거친 관직에 의하여 증직한다. 이상 수증인(受贈人)주9의 처(妻)는 남편의 관직에 따른다.
제6조. 수증인(受贈人)이 증경 관각(館閣) 직임자인 경우에는 품계에 따라 겸증(兼贈)한다. 추증 세칙(細則)은 통편(通編)주10을 참고하여 시행한다.
제7조. 증직안(贈職案)은 궁내부(宮內府)에서 주하(奏下)주11한다.
주1) 증경(曾經)은 관직 역임 경력을 말한다. 전직(前職)과 동의어로서, 여기에서의 '증경의정'은 '전현직 의정(議政)'을 의미한다.
주2) 의정(議政)은 의정부의 정1품 관직인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의미한다. 대한제국 시기에는 의정대신(議政大臣)이다.
주3) 보국(輔國)은 정1품 하계(下階)인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품계이다.
주4) 고(考)는 아버지이다. 즉, 증직 시행 대상자의 부(父).
주5) 대광(大匡)은 정1품 최고 품계인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를 말한다.
주6) 조(祖)는 할어버지이다. 즉, 증직 시행 대상자의 조부(祖父).
주7) 증조(曾祖)는 증조할아버지이다. 즉, 증직 시행 대상자의 증조부(曾祖父).
주9) 관각학사(館閣學士)은 규장각의 학사(學士)를 말한다. 관각(館閣)은 홍문관, 예문관, 규장각 관청의 통칭이나, 대한제국 시기에는 규장각 또는 홍문관을 지칭하는 단어로 쓰였다.
주8) 수증인(受贈人)은 증직을 받는 사람을 지칭한다. 즉, 위에서 열거된 의정 이하 증경자의 고(考), 조(祖), 증조(曾祖) 3대(代).
주10) 통편(通編)은 1785년(정조9) 9월에 반포된 [대전통편(大典通編)]이다.
주11) 주하(奏下)는 신하가 황제에게 보고하여 재가(裁可)를 얻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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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왕조 왕실 계보도 정리 작업이 마무리되어 한글판 버전을 아래 사이트에 등록함(2007.11.24).
* 사이버 조선왕조 - 한성부 : 좌측 하단의 '종묘' 클릭 후, 화면 상단에서 '조선왕조 계보도' 클릭
+ 한문판 버전을 아래 사이트에 등록함(2008.01.01). 내림(2008.06).
* 작은 세상 - 조선왕조 - 왕실 : 제2면, 제3면의 수록 내용 및 '종묘' 메뉴의 컨텐츠를 아울러 참고
* 이하 본문은 2007년 6월 3일에 등록한 내용
 조선왕조 왕실 계보도 (未) 일전에 책을 읽다가 조선왕조 왕실 계보가 궁금해졌다.
을사오적 이지용(李址鎔)이 고종, 순종과 어떤 관계였고, 헌종의 후계로 거론되었던 이하전(李夏銓:1842-1862)이 선조 임금의 아버지인 덕흥대원군의 후손이라고 하던데 헌종과의 촌수가 어떻게 되었는지 하는 것들이 순간 궁금했던 것이다.
* 계보도 제작 결과, 이지용은 흥선대원군(대원왕 추존) 이하응의 형인 흥인군 이최응의 손자이고, 헌종과 이하전(경원군 추봉) 사이는 혈연상으로 25촌이다. 철종 및 문조익황제(효명세자)와 고종 사이는 호적상으로는 11촌이지만, 혈연상으로는 17촌. (2007.11.24 추가)
그래서 여기저기에서 자료를 끌어다 조선왕조 왕실 계보도를 끄적거려 만들기 시작했다. 위 그림은 작업중인 왕실 계보도의 말단 일부분이다. 일종의 샘플(오류 있음).
그런데, 나름대로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부분이 몇 있었다.
생전에 군호(君號)를 받지 못했거나 그 군호가 삭제된 경우는 그냥 이름만 기재할 것인가, 아니면 추봉(追封)된 군호까지 표기할 것인가, 대한제국으로 승격된 후에 친왕(親王)에 봉해진 인물은 왕호(王號)를 기준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군호를 기재할 것인가 등등... (이 문제들은 추봉 군호까지 적는 것으로 대충 확정했다)
그리고 또 하나 난감한 것이, 대한제국 시기에 황태자로 책봉되었던 영친왕(英親王)의 둘째 아들 이구(李玖:1931-2005)씨를 어떻게 표기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흔히 이구씨를 '황태손(皇太孫)'이라고 지칭한다. 황태자의 아들이자 황제의 손자라는 뜻이다. 혹자는 황세손(皇世孫)이라고도 하는데, 황세손보다는 황태손이 보다 적절한 표현이다. 중국 명나라 제도에 의하면 친왕의 장자는 세자(世子), 장손은 세손(世孫)이긴 하다. 고증을 더 해봐야 하겠지만, 그래도 여느 친왕이 아닌 태자(太子) 계통은 태손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그런데 이구씨가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황제국 대한제국은 망했고, 일제 강점하에서는 단지 일본의 왕족 신분으로 격하되어 이왕직(李王職) 통제하에 있었다.
그래도 고종, 순종은 황제로 즉위했고 순종이 살아 있었을 때까지는 그럭저럭 황실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 1926년에 순종이 승하한 후에 이왕(李王) 자리를 계승했던 영친왕의 경우는 황제 즉위식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호칭상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사실, 황제 즉위식은 고사하고 왕위 즉위식이라도 했는지 순종실록(부록)에 기록이 없다. 그저 일본의 왕공족(王公族) 제도에 따라 자동으로 그 지위를 계승했을 뿐.
다시 말해, 이구씨는 순종 황제가 승사하고 난 지 5년 후에 태어났다. 이 경우에, 과연 황태손이라는 명호가 합당한 것일까? 순종의 계후 윤씨가 살아 계셨으니 황태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황제국에서 이왕가로 강제 격하된 후이고, 영친왕의 황제 즉위식도 없었으므로 친왕(親王)의 아들 또는 계승자라는 의미에 충실하게 단지 '세자(世子)' 또는 '왕세자(王世子)'라고만 해야 할까? 이왕직의 건의를 거쳐 계후 윤씨로부터 세자 승인은 받았다고 하는 소리도 있으니 말이다.
어쨋든, 이런 저런 생각 끝에 일단 '세자(世子)'로 표기하기는 했으나, 이것이 얼마나 적합한 표현인지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이구씨 이하는 계보도에 수록하지 않았는데, 대한제국의 황통(皇統)은 이구씨를 마지막으로 종언을 고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구씨의 양자라는 이원씨가 있지 않느냐 하겠지만, 사후 양자 입적은 대한민국 민법(民法)에서 인정하지 않는다. 법적 효력 없음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대한민국이다. 혹자는 명종-선조, 철종-고종, 은신군-남연군의 사후 입적을 예로 들어 말하기도 하나, 그 때에는 그러한 결정을 내릴 주체(왕실)가 엄연히 있었고, 그런 결정이 곧바로 국법(國法)으로서의 실효성을 갖게 되는 국가 시스템이었다.
참고로, 조선시대에 양자를 주거나 들일 때에도 문중에서 그냥 결정하고 시행하는 것으로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모두 관청의 정식 허가를 받았다. 이를 입후(立後)라고 하며, 관청의 승인서인 입안(立案)을 받는다(통상 예조 관청).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이 은신군의 양자로 사후 입적될 때에 받은 입안 문서도 전해지고 있다(繼後禮曹立案). 조선시대에도 주먹구구식으로 양자 관계가 공인되지 않았는데, 오늘날 역시 대한민국 현행법에 근거해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판단이고 의견이지만, 그 양자라는 이원씨는 굳이 따진다면 사손(嗣孫)이 아닌 사손(祀孫)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군주제 아래에서라면 적통(嫡統)과 종통(宗統) 같은 것이 분리될 수 없지만, 지금은 민주공화정 대한민국이니.
즉, 제사를 맡아 주관하여 지내고 족보 같은 사문서에는 '계자(繼子)'라는 식으로 표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한 것들은 가문이나 문중 안에서 개별적으로 하는 것들이고, 현행 법령상으로는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하물며, 양자 입적을 주도하여 추진한 '대동종약원'이라는 단체가 곧 황실(왕실) 자체가 아닌, 한낱 사단법인인 다음에야.
이원씨를 이구씨의 양자로 설정한 것이 황족 어른들의 의견이 합치된 결과에 따른 것이라면 혹시 그런 주장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은 여황제까지 추대된 상황이니 이건 뭐...
결론은, 이원씨는 황손을 대표하여 선대에 제사를 지내는 사람일 뿐이지, 고종-순종으로 이어지던 황실의 적통은 이구씨를 마지막으로 단절되었다는 판단이다.
제사 지내는 사람에게 황실의 적통이 승계된 것이 아니냐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그네들 주장이자 생각이고. 가문이란 원래 자손이 없으면 대가 끊기기도 한다. 신라나 고려 왕실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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