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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7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의 유명(有明)에 대한 소고(小考)
2008/02/11   숭례문 화재에 한탄하며 - 충숙공 이상길 신도비
2007/11/15   티스토리의 어설픈 이벤트 진행을 한탄함 (6)
2007/03/25   파코즈 2만 점을 자축하는 글
2007/03/25   엠파스의 스팸 메일 폭주를 한탄함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의 유명(有明)에 대한 소고(小考)
은신군(恩信君) 묘비

은신군(恩信君) 묘비


산야(山野)에 무수히 존재하는 석비(石碑)에는 그 비석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글귀가 새겨져 있기 마련인데, 역사적으로 이름을 남긴 인물인 경우에는 대개 직함(職銜)이 이름과 함께 나란히 새겨져 있다. 한문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이었으므로, 대부분 한자로 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비석의 인물이 조선시대 사람인 경우에는 직함의 서두에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이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다. 신라 시대의 인물이면 '유당신라국(有唐新羅國)', 고려 시대 인물이면 '유원고려국(有元高麗國)'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식의 표기는 고위 관직을 지낸 사람의 신도비(神道碑)나 묘갈(墓碣)인 경우에 특히 많은데, 이 '유명(有明)', '유당(有唐)' 등의 단어와 관련하여 풀이가 제각각이다.

어떤 사람은 '명나라에 속한 조선국'이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명나라의 조선국'이라고도 한다. 또 혹자는 '명나라 시대의 조선국'이라고도 하는데, 과연 어떤 해석이 적절한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한자 '유(有)' 자(字)의 뜻에 착안하여 '명나라의 속국(屬國)인 조선'이라는 식으로 설명한다. '명나라에 있는 조선국'이라는 해석으로, 사대주의(事大主義)의 한 단면이라는 것이다. 국사편찬위(國史編纂委)의 문답 게시판 답변은 '유(有)는 위대하다, 크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어 대명(大明)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명나라를 높이고자 한 표현이지, 조선이 명의 속국임을 부각하기 위해 쓴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전문 서적이나 고문헌 국역본에서는 그와 같은 식으로 '유명(有明)'이나 '유당(有唐)'을 한글로 풀어서 쓴 사례를 찾기 어렵다. 그렇게 풀이할 필요성이 적어서일까, 아니면 그런 식으로 풀이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때문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 연원을 살펴보던 과정에, 유명(有明)의 '유(有)'가 발어사(發語辭)에 불과하다는 내용을 접할 수 있었다. 유 자는 명사 앞에 붙는 접두사의 하나로서, 옛날에는 여러 단어에 사용되었으나 점차 유주(有周), 유당(有唐), 유송(有宋), 유명(有明)과 같이 국명(國名) 앞에만 붙는 발어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발어사는 문장을 시작하기 위해 사용하는 어조사의 하나로, 아무런 뜻이 없다.

그냥 '명조선국(明朝鮮國)'이라고 하면 '밝게 빛나는 조선국'인지 '명나라 조선국'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명(明)'이 '명나라'라는 것을 확실하게 표현하기 위해 '유명(有明)'이라는 단어를 쓴 것이다. 바로 앞 문단에서 언급된 것처럼, 유당(有唐), 유명(有明) 등은 국명을 나타내는 일상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특별히 명나라를 높이거나 조선을 폄훼한 표현은 아니다.

결론하여 말하면, '유명(有明)'은 그냥 '명나라'로 풀이하는 것이 타당하다. '유명조선국'은 '명나라 시대의 조선국[明代朝鮮國]' 정도로 풀이하면 되며, 굳이 '명나라에 속한'이나 '명나라에 있는' 등과 같이 적극적으로 사대주의적 의미를 내포할 필요는 없다.

'조선국(朝鮮國)' 또는 '대조선국(大朝鮮國)'으로 썼으면 되었을 것을 하필 '유명조선국'으로 하였으니, 이것 또한 사대주의적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황명조선국(皇明朝鮮國), 대명조선국(大明朝鮮國) 등의 표현이 금석문(金石文)에 종종 보이는데, 이렇게 하지 않고 유명조선국이라고 적었던 것이, 그리고 그것이 보편화 되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유학(儒學)의 논리에 따르면 천하(天下)에 황제국(皇帝國)은 단 하나이고 나머지는 모두 제후국(諸侯國)이다. 따라서 신라나 조선이 스스로 황제를 칭하지 않는 이상, 국명과 직함을 자세히 기술함에 있어서 황제국의 국명을 제후국 앞에 쓰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마치 지금 '민주주의'가 최선(最善)의 정치 체제이고 다른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적어도 동양의 전재군주제 질서 아래에서는 그렇다. 특히 성리학(性理學)이 통치 이념으로 작동하던 당시 사회라면.

명나라가 망한 후에 '유청조선국(有淸朝鮮國)'이라고 하지 않고 '유명(有明)'을 계속 썼던 것은 오랑캐라고 멸시하던 청나라를 상국(上國)으로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숭명의리(崇明義理)에 입각한 것이든, 소중화(小中華) 의식의 발로이든, 조선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한계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유명조선국'으로 표기한 것을 두고 필요 이상으로 우리 선조들을 답답하게 생각하거나 탄식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하여간, 이러한 해석이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이유를 추가해 보면, 조선왕조 때 국왕이 승하하면 그 신위(神位)를 종묘(宗廟)에 모시는데, 위판(位版)에 명나라에서 준 시호(諡號)를 적을 때 그 시호 앞에 '유명증시(有明贈諡)'라는 글자를 썼다. '유명조선국'을 '명나라에 있는'으로 풀이한다면 '유명증시'를 풀이할 길이 없다. '유명증시'의 뜻이 '명나라가 준 시호'이니, '유명(有明)'을 역시 '명나라'라고 하는 것이 합리적이겠다. 첨언하면, 조선 태조 건원릉(健元陵)의 묘비명은 '유명시강헌조선국태조(有明諡康獻朝鮮國太祖)...'이다.

또 중국(中國)의 관직을 얻은 인물인 경우에는 중국 관직과 고려 또는 조선의 관직을 모두 표기하기도 하였는데, '유원자선대부태상예의원사 고려국...' 또는 '유명수군도독 조선국...' 등이 그 일례이다. 이 역시 '원나라의 자선대부 태상예의원사이며, 고려국의 ...'이나 '명나라의 수군도독, 조선국의 ...'으로 풀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따라서 '유명(有明)을 '명나라에 속한'이나 '명나라에 있는'과 같은 식으로 풀이해야 할 근거가 약하다는 것이 이 글의 결론이다.

[이하는 점검이 필요함] 국사편찬위의 말대로 '유명(有明)'을 '위대한 명나라'와 같이 풀이할 수도 있겠으나,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의 후학(後學)들이 명나라가 망한 후의 청나라를 두고 '유청(有淸)'이라고 한 사례가 있는 것을 보면 그렇게 해석할 여지는 거의 없다고 하겠다. (어떤 문헌에서 '有淸'을 본 기억이 있는데, 다시 찾지 못하겠음. -_-?)

무자(2008년) 4월 초7일, 선성(宣城) 김하은(金河銀)


부(附). 한학(漢學)에 약간이라도 지식이 있다면 이런 의문은 바로 결론을 낼 수 있었을텐데.
유당신라국, 유명조선국, 유원고려국, 유청조선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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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화재에 한탄하며 - 충숙공 이상길 신도비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충숙공 이상길 신도비각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충숙공 이상길 재사


지금은 한성부에 속하는, 옛 양주목 노원면(蘆原面)의 한천(漢川) 오른편으로 태릉(泰陵)과 덕릉(德陵) 사이에 중종 연간에 세워진 한글영비(靈碑)가 서 있는 작은 길목이 있는데, 그 어귀에 즈음하여 충숙(忠肅) 이공(李公)의 묘(墓)가 있다. 충숙 이공의 신도비(神道碑)를 비롯한 여러 기(基)의 묘와 재사(齋舍) 동천재(東川齋)가 있고 그 주변에 몇 채의 가옥이 위치하니, 곧 성주(星州)에서 나온 벽진(碧珍) 이씨의 충숙공파 선조 묘역이다.

충숙 이공, 즉 충숙공(忠肅公)은 병자호란(丙子胡亂)을 당하여 강도(江都:강화도)에서 자결한 공조판서 이상길(李尙吉)이다. 자는 사우(士祐), 호는 동천(東川)이며, 명종 병진(1556)년에 태어나 선조 을유(1585)년에 문과(文科) 갑과(甲科) 제2인으로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이후 호조좌랑, 병조정랑, 회양부사, 안주목사, 호조참의, 병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는데, 관직에서 물러나면 노원의 촌사(村舍)에 거처하였다. 아마도 현재의 묘역 인근일 것이다.

수(壽) 80세가 되던 인조 을해(1635)년 2월에 노직(老職)으로 자헌대부에 올라  6월에 특지로 공조판서에 제수된 후 기로소(耆老所)에 들었고, 그로부터 1년 후인 병자(1636)년에 호란이 발발하자 강화도에 들어가 이듬해 정월 26일에 자결하였다. 죽기에 앞서 유언하기를 "종묘사직이 끊어지게 할 수 없다. 나는 나라의 정경(正卿)이니, 나라가 파괴되면 마땅히 사직에서 죽어야 한다(宗祀不可殄也, 我國之正卿 國破當死於社)."고 하였다.

사후 의정부좌의정이 추증되었으며, 문충공(文忠公) 김상용(金尙容) 등과 함께 강화 충렬사(忠烈祠)에 배향되었다. 문정공(文貞) 잠곡 김육(金堉)이 시장(諡狀)을 지으니 나라에서 '충숙(忠肅)'의 시호를 내렸다. 문정공(文靖公) 택당 이식(李植)이 공을 위한 제문에 '의리에 입각하여 목숨을 끊었다(引義自靖)'고 평하였으니, 신도비의 비문을 문정공(文正公) 송시열(宋時烈)이 친히 짓고 문정공 송준길(宋浚吉)이 정서하고 전자(篆者)가 문충공(文忠) 김수항(金壽恒)인 것은 추앙의 격에 들어맞는 것이다.

문화재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멀리에 있지 않다. 가까운 산천 곳곳에 비문(碑文), 비명(碑銘), 비각(碑閣), 정문(旌門), 서원(書院), 고적(古蹟), 사적(史蹟) 등이 남아 있으니, 웅장하게 지어진 궁궐(宮闕)이나 능원(陵園), 국보(國寶), 보물(寶物)만 찾을 일이 아니다. 우리 조상들의 삶, 그 흔적이 남아 있는 이러한 유적들을 보고 있노라면 수천 년간 이 땅 위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행적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 하다.

숭례문(崇禮門)주1이 무너진 오늘, 그 참담함을 애써 추스리고자 이러한 글을 써서 남긴다.

무자(2008년) 2월 11일, 선성(宣城) 김하은(金河銀)


주1) 숭례문(崇禮門)은 한성부 성곽의 남문(南門)이다. 남대문(南大門)이라고도 하는데, 1396년(태조5)에 공사를 시작하여 1398년(태조7) 2월 8일에 완성되었다. 1961-1963년에 대대적인 해체 보수가 있었는데, 이때 나온 상량문(上樑文) 내용과 실록 등의 문헌에 의해 1447년(세종29)에 전면 개축되고 1479년(성종10)에 한 차례 중수(重修)되었음이 확인된다. 1907-1908년에 성문의 좌우 성곽이 헐려나갔고, 한국전쟁 기간에 부분 파손된 것을 전쟁 직후에 졸속으로 보수하였다가 1960년대초에 중수하였다. 1962년 12월 20일에 국보 제1호로 지정되었으며, 2008년 2월 10일 20시 50분경에 방화범에 의해 화재가 발생, 5시간에 걸쳐 불타다 이튿날 새벽 02시경에 편액과 석축을 제외한 본체(목조) 상당 부분이 소실되었다.

숭례문, 신도비, 이상길, 충숙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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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토리의 어설픈 이벤트 진행을 한탄함
면남방담의 어설픈 행사 진행을 한탄함

면남방담(綿南方談:tistory)에서 백일장(白日場)을 성대하게 개최하였으니 그 때가 정해년(2007) 9월 21일이다. 10월 21일까지 한 달 동안 설행(設行)하였는데, 배타(培打:beta) 기간을 마치고 정식으로 공간을 개방하기에 앞서 그 거주민들에게 재미를 주고자 여는 행사라고 하였다.

경품(景品)을 적지 않게 걸었으니, 손휘(孫徽:Sony)씨의 노는역(Playstation) 1대, 논탄도(論嘆道:Nintendo)사의 너도사라(NDSL) 3대, 그리고 수정(crystal) 책도장 500개 등이 그것이었다. 또 응모작에 댓글을 달아 평한 사람 50인에게 유애수비(有愛授備:USB) 기억장치를 준다고 하였다.

그러나 홍보 부족 등으로 인해 무려 한 달 동안이나 작품을 접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참여한 작품 수가 560여 건에 불과하였다. 가작(佳作)이 적지 않았으나 보잘 것 없는 내용 또한 많았으니, 한두 줄에 불과한 장난 글로 행사에 응한 경우가 다수 있었고 혼자서 여러 작품을 제출한 경우도 여럿이었다. 10월 31일에 결과를 발표하기에 앞서, 응모자 대다수가 '책도장 정도는 받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나 역시 조촐한 문장으로 '면남방담기(綿南方談記)' 한 편을 지어 백일장에 참여하였으니, 결국 책도장을 하나 받게 되었다.

그 31일자 결과 방문(榜文)에 이르기를, '11일까지 경품을 받을 연락처 및 주소를 알려주지 않으면 책도장 제작이 어렵다'고 하고, '다음 주 초에 자세한 안내 서찰(E-Mail)을 발송하겠다'고 하였다. 10월 31일은 수요일이므로 '다음주 초'라고 하면 곧 11월 초5일이나 초6일이 된다.

그러나 시일이 지나서 안내 서찰은 도착하지 않았다. 이에 몇몇 사람들이 댓글로 문의하거나 양식도 모른 채 무작정 자신의 연락처와 주소를 담아 발송하였다. 또 어떤 자들은 기다리다 지쳐 발길을 끊었다. 나 또한 초7일에 '안내 서찰은 언제 오는 것일까. 내가 먼저 보내야 하는 걸까. 기본적인 것부터 확실하게 했으면 하는 소망...'이라는 내용의 댓글을 달았으니, 당시의 답답한 마음이 이와 같았다.

결국 서찰이 발송된 것은 11월 초8일인 목요일 오후 3시경이었다. 그런데 그 서찰의 내용 가운데 '11일까지 주소를 보내지 않으시면 책도장 제작 및 경품 배송이 불가능합니다'라는 문장이 있었다.

내가 이 서찰을 확인한 시각이 13일 자정이다. 이미 답장 기한인 11일이 경과된 다음이니, 어디에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결과 방문에도 11일 운운하지 않았던가.

하여 '절감된 책도장 제작 비용은 회식에 사용하든지 하라'는 식의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이튿날 행사 담당자에게 다시 서찰이 왔는데,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 '주소와 연락처를 알려주면 제작하여 보내주겠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나는 책도장 수령을 거부한다는 요지의 답장을 다시 보냈다.

어찌하여 이러한 내용의 서찰이 오가는 것인가.

아직도 백일장 결과 방문에는 '11일까지'라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주소 수집 기간이 연장되었다거나 경품 발주 일자가 연기되었다는 등의 추가 공지가 없으니, 주소 수집 기한이 11일이라는 것은 하늘이 여덟 쪽이 나도 피자(pizza) 한 판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분명한 사실이다. 더군다나 안내 서찰에는 '불가능'이라는 단정적인 표현까지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찌하여 이미 기한으로부터 3일이나 경과된 14일 되었는데도 내게 주소를 알려 달라는 것인가. 혹여 탄식하고 투정하는 자에게만 다시금 다시 기회를 주는 것인가. 절차도 원칙도 없는가. 백일장에 내기 위해 썼던 기문(記文)을 파기하고 싶을 정도로 한심한 일이다.

정해년 11월 14일, 선성(宣城) 김하은(金河銀)
TISTORY 백일장, 이벤트, 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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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Icon CeeKay | 2007/11/15 15:33 | 수정/삭제 | 쪽글 달기
저도 작년에 다르지만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티스토리 달력건이었는데 저는 미국에 살고 있어서 미국으로 보내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미국으로는 못 보내준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항의성(?) 포스팅 하나 올렸더니 다시 보내줄테니 주소가르쳐 달라는 것 받은셈 치겠다고 넘어간 적 있었죠.
올해도 책도장 받을수 있을지 아직 모르겠네요.
BlogIcon 도필리 | 2007/11/15 22:38 | 수정/삭제
CeeKay님이 이미 제기하셨던 전례가 있고, 대회 안내문이나 결과 발표문에 '국내 거주자만 줍니다'라는 내용이 없으니 아마 받으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와는 달리, 잘 마무리 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BlogIcon 시로 | 2007/11/27 01:08 | 수정/삭제 | 쪽글 달기
옷,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저는 공지 뜨자마자 그냥 주소와 전화번호 보내버려 문제 없었는데...

BlogIcon TISTORY | 2007/11/27 11:39 | 수정/삭제 | 쪽글 달기
안녕하세요, TISTORY 이벤트 담당자입니다.
도필리님과 여러 회원님들께 메일을 확인하실 기간을 충분히 드리지 못하여 불편을 끼쳐 드린 점 사과드립니다.
도필리님 메일에 대한 답장시 다시 한 번 주소를 요청드렸던 것은 안내메일을 기간 중 확인하시지 못하거나 주소를 보내주셨는데 반송, 누락되신 분들을 위해 2차로 도장을 제작할 계획이어서 사과 말씀과 함께 주소 요청을 드렸었습니다. 해당 내용을 어제 공지로 올려서 도필리님 외에 다른 분들도 지금 주소를 다시 한 번 취합하고 있으니(<http://notice.tistory.com/894>) 지금 주소를 알려주시면 2차 도장 제작시 제작하여 보내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당첨 메일의 발송이 늦어져 불편을 끼쳐 드린 점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BlogIcon 도필리 | 2007/11/29 03:51 | 수정/삭제
이벤트 담당자님께서는 이러한 리플을 달 수밖에 없으셨겠지만, 저 역시 이미 글로 써 남긴 바가 있는데 어찌 지금에서야 주소를 넘겨 도장 하나를 달라고 감히 청할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주소 재취합 공지글(http://notice.tistory.com/894)'의 '책도장 당첨자 중 주소 누락되신 분' 항목에, 이곳 아정의 주소를 기재하지 않으셨다가 이 리플을 달면서 뒤늦게 추가하셨으니, 그 본의가 무엇인지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책도장 수령을 거부한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밝힌 바가 있고, 그것이 적절히 수용되어 당초 재취합 대상자 명부에 수록되지 않았던 것이 아닙니까.

이 또한 어설픈 진행이 가중된 것입니다. 이에 더하여, 도장 하나를 끝내 얻어볼 심산으로 이러한 한탄글을 남긴 것이라는 오해가 있을 수 있기에 더더욱 말을 바꿔 구차하게 도장을 보내달라 청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절감된 몇 푼의 비용은 해외 배송자의 우송료로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니면 회식비로 쓰시던지.

BlogIcon 발톱냥 | 2007/12/03 20:03 | 수정/삭제 | 쪽글 달기
아이고... 트랙백 타고 날아와서 보니 이러한 경우도 있었군요...

제 경우에는 추가 주소를 접수한다는 제 블로그의 글을 보고 당첨된 사실만 좋아했는데.. 생각해보니 제게는 당첨 안내 메일이 오지 않았습니다. ^^;;
그래서 당첨 사실도 전혀 몰랐고요.

에고... 왠지 이 글을 읽고 나니 씁쓸해지네요. 부디 마음 상하신 것 조속한 시일 내에 풀어지셨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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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코즈 2만 점을 자축하는 글

통신계의 선현이신 공자(工子)주1께서 이르시기를, '3년을 접속하고도 점수(點數:point)에 뜻을 두지 않는 자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三年接 不至於點 不易得也)' 하시고, 또 가로되 '아침에 점수를 얻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得點 夕死可矣)'라고 하시어 사이토(思以土:site) 접속과 점수 획득 사이의 불가분 관계를 일찍이 논파하셨다. 특히 전뇌(電腦:PC) 분야의 중원(中原)이라 할 수 있는 파고주(波高州)주2에서는 점수와 활동력에 따라 등급을 나누고 명칭을 차등하니, 남달리 점수에 뜻을 둔 회원이라면 점수 획득에 홀로 만족하며 순위 상승을 스스로 영예롭게 여긴다.

임오년(2002년) 4월 초9일에 처음 파고주에 발을 들여 놓았으니, 이제 3년 4개월 남짓 흘렀다. 오늘에 이르러 이만점(二萬點:2만 점)를 달성함에 이렇듯 자축의 글을 남기는 것은 그 감격이 실로 남다른 때문이기도 하지만, 작성글 252건, 댓글 12,757건, 추천 2,357건으로 1일 평균 16점을 획득한 사실과 로그인(路求印:login) 횟수가 853회에 이른 것을 직접 셈한 후 기록으로 남겨 두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등급은 4급(LV 4)이니 운영진의 바로 아래이고, 칭호는 최상급(eXtremeBrother)이니 곧 선홍색이다. 시(詩)를 남기기를,

북쪽 나무(northwood) 열 여섯 그루주3를 베어 작은 집을 짓고, 남쪽으로 하나 길(hanaro)주4을 내었도다.
발길이 이어져 파고주로 통하는 길목이 되니, 천하 사람들이 즐겨 찾기주5를 피씨(皮氏)의 방주6처럼 하였다.
지나는 사람마다 붓을 들어 한 점, 두 점 찍기를 3년 4개월에 이르니 어느덧 그 수가 2만 점이라.
뒤를 돌아 봄에 즐겁고 좋은 기억들이 적지 않았으니, 장차 10만 점을 기약한들 오히려 기쁠 일이다.

을유(2005년) 8월 초7일, 김하은(金河銀)


주1) 공자(工子) : 인터넷 선각자. 본명은 공대(工大)이며, 공자는 공대의 존칭이다. 공자가 이끈 학파를 이공계(理工界)라 하는데, 자못 추종자가 많고 그 혜택이 천하에 두루 미쳤으나, 사회적 지위와 대우가 인문계나 예능계에 비해 좋지 못했다.

주2) 파고주(波高州) : PC 하드웨어 전문 지역(parkoz.com)

주3) 북쪽 나무 열 여섯 그루 : 인텔 노스우드 1.6A CPU

주4) 하나 길 : 하나로 통신 서비스

주5) 즐겨 찾기 : MS 인터넷 익스플로러 즐겨찾기(bookmark)

주6) 피씨의 방 : PC방

파코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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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파스의 스팸 메일 폭주를 한탄함

암파소의 수편매일 폭주를 한탄함

일찍이 남명(南明) 조식(趙植:1501-1572) 선생께서 이르기를, "포탈(浦脫:포탈 사이트)은 장차 수편매일(手便每日:스팸 메일)주1 때문에 망하겠다" 하시고, 다산(多山) 정약룡(鄭若龍:1762-1836) 선생께서도 그의 저서 '목민심서(目敏審書)주2'에서 "수편매일은 나라를 망치는 근본"이라 하셨는데, 비로소 오늘에서야 그 말이 틀리지 않음을 알았다. 암파소(岩破所:empas.com)의 경우에 어찌하여 수편매일이 끊임 없이 흘러 나오는 것인가. 수백 번 차단 하여도 소용 없고, 수천 번 신고 하여도 끝이 없구나.

다음(多音:daum.net), 너의벗(naver.com), 고려(高麗:korea.com), 야호(野虎:kr.yahoo.com), 구골(九骨:google.com) 등은 지속적으로 차단하거나 신고하면 그래도 나아지는 기미가 있고 수편매일함으로 알아서 분류하는 기능이 그럭저럭 작동하는 편이지만, 암파소는 전자서찰(電子書札:E-Mail) 주소를 특별히 공개한 적도 없는데 어찌하여 이처럼 극심한 것인가. 하루 수십 통이 기본이니, 접속 후에 삭제하고 신고하는 일로 날이 저물 지경이다. 조금도 개선의 기미가 없으니, 차단 목록에 등재한들 무슨 소용이며, 포탈 운영자에게 신고한들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불로거(不路居:blog)가 그나마 쓸 만하다고는 하나, 한심한 일이다.

'수편매일'이 쏟아지고 '불량답문(不良答文:불량 댓글)'이 난무하며 '십팔금(十八禁:18금 내용)'이 통제되지 않는 것이 이른바 '삼정(三淨)의 문란'인데, 그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이 바로 수편이다. 정조 시대의 학자 윤함(尹緘:1744-?)은 "지금 인토내토(人土內土:인터넷)에 세 가지 고르지 못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조회(照會:열람수)와 추점(推點:추천수)과 첨문(添文:댓글수)이다. 이는 모두가 호적법(戶籍法:실명제)이 문란한 데서 그 병폐를 찾을 수 있다."고 하여 통신계(通信界) 문란의 근원을 '익명(匿名)'에서 찾았지만, 실명제를 도입한다고 하여 즉시 해결되지 않는 것이 곧 수편 문제이다. 오로지 포탈의 정화 및 차단 노력이 최우선 해결책일 것인데, 암파소는 도통 이것을 도외시하고 있으니 필시 위태롭지 않겠는가.

을유(2005년) 8월 초3일, 김하은(金河銀)


주1) '매일처럼 (손으로) 전달되는 편지'라는 뜻이다. 또는 '편지가 물처럼 매일 쏟아진다'라는 의미에서 '수편매일(水便每日)'이라고도 한다.

주2) 다산의 대표적 저서 1표(票) 2서(書) 중에 하나이다. '목민심서(目敏審書)'는 '눈을 민첩하게 서찰을 살핀다'는 뜻으로 전자우편에 대한 고찰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나머지 책은 '경세유표(競勢有票:선거유세 경쟁에서 표를 챙긴다)', '흠흠신서(欠欠申書:하품을 하며 책을 펼치다)'이다.

삼정의 문란, 스팸메일, 엠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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