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감영, 충청감영, 경상감영, 전라감영 내용을 다뤘던 같은 제목의 전편(새창 열기 링크)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예고했던 것처럼 이번 편에서는 황해감영, 강원감영, 평안감영, 함경감영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5. 황해감영황해감영(黃海監營)은 황해도 해주목(海州牧)에 있었습니다. 해주읍성 서문(西門)인 선위문(宣威門) 안쪽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감영 앞 연못에 있던 부용당(芙蓉堂)을 제외한 거의 모든 건물이 사라졌습니다. 특히 관찰사가 공식 업무를 보던 선화당(宣化堂) 건물은 1927년에 황해도청을 신축하는 과정에서 민간에 불하(拂下, 매각)되었는데, 1935년에 해주 시장 근처에서 선화당 건물을 바라본 감회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온전히 다른 곳으로 이전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정확..
※ 지난 9월 12일에 블로그 방문자 숫자가 30만을 돌파했습니다. 25만을 넘었던 것이 올해 초 1월 말이었으니, 불과(?) 9개월 사이에 다시 5만이 증가한 것이네요. 20만에서 25만을 경과할 때는 7개월이 걸렸던 것에 비하면 다소 느슨해진 감이 있기는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방문자는 블로그의 주 컨텐츠인 조선시대 관아 건축물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군사, 군대에 관한 게시물 때문에 찾아오신 분들이죠. 아무튼 누구라도 많이 찾아주고, 또 가끔이지만, 댓글이나 방명록을 써 주시면 운영자 입장에서는 즐거운 일입니다. 인사는 이만 마치고 본문으로 들어갑니다.2020년 9월에 올린 '조선시대 팔도 감영 및 한성부의 편액 이야기' 글(새창 열기 링크)에서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등 조선시대 팔도(八道) 감영..
약 100년 전에 촬영된 사진 한 장을 간략하게 조명하는 글 제6편입니다. 최근 조선시대 동래(東萊), 현재 부산광역시 지역에 있던 동래도호부(東萊都護府) 동헌(東軒), 부산포진(釜山浦鎭) 및 다대포진(多大浦鎭) 관아 건물에 관해 살펴봤는데, 이번 글 역시 동래에 있던 '만년대'라는 군사 시설물에 대한 짧은 글입니다.위 사진은 일제강점기 때 발행된 동래온천 근교 회엽서(繪葉書, 사진엽서) 시리즈 가운데 3번(東來溫泉近郊ノ三)인 만년대 사진이며, 오른쪽 위 컬러 그림은 1920년에 만년대를 그린 회화 작품 〈萬年台の夕(만년대의 저녁)〉 일부분입니다. 작가는 츠지 가코(都路華香, 1870-1931)입니다. 만년대(萬年臺)는 동래읍성(東來邑城) 서북쪽에 있던 군사훈련 공간이었습니다. 동래 지역의 육군 군부대인..
조선시대 또는 대한제국 시기 관아(官衙, 관청) 건물에 대한 내용을 자주 올리고 있습니다. 틈틈이 관련 자료를 검색하고 수집하고 있는데, 지난 3월 초에 일본 국립공문서관(國立公文書館, 国立公文書館) 사이트에서 공개하고 있는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관유재산목록(官有財産目錄)' 기록물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국립공문서관은 우리나라의 국가기록원(國家記錄院)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기관이라고 보면 됩니다.국립공문서관 사이트에서 검색되는 '관유재산목록'은 크게 일본 연호로 대정(大正) 11년인 1922년본, 그리고 소화(昭和) 7년인 1932년본의 2개로 나뉘는데, 본 글에서 중점적으로 다룰 내용은 1932년본보다 이른 시기에 제작된 자료인 대정11년본입니다. 1922년(1921년 3월 31일 기준)과 ..
잠시 격조했습니다. 마지막 글을 올린 지 어느덧 4개월, 그야말로 빠르게 흘러가는 물결 같은 시간의 연속입니다.본 블로그에서 걱정했던 삼척도호부 동헌(202번 글 새창 열기) 복원 공사가 당초 예정대로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삼척시청 입찰 공사 문서를 보니 복원 지역 위치가 여전히 성내동 14번지가 아닌 '12-1번지 일원'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죠. 소위 '어른들의 사정'이라는 것 때문인지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국민신문고 신청도 별다른 효과가 없었습니다. 문화재청 요구로 설계 보완이 이루어졌다고 하는 보도가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블로그에서 제기한 내용이 일부 반영되었을 수 있겠지만요. 그런 면에서 보면 얼마 전에 공개한 세종대로 광화문관장 옆 의정부지(議政府址, 의정부 터) 역사유적광장 개방은 매..
오늘 2월 29일, 4년마다 돌아오는 2월 마지막 날입니다. 본래 몇 달 전부터 예고하던 경상좌수영 수군진 글을 올려야 하나 시간이 여의찮고 추가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 있어 게재가 늦어지고 있습니다. 매달 한 편씩 짧은 글이나마 올리지 않을 수 없기에 간략한 다른 내용으로 대신합니다.약 120년 전에 이 땅에 존재하던 대한제국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신식 군대를 양성했습니다. 편성표 숫자를 기준으로 그 규모가 약 30개 대대(大隊) 2만 8천 명을 넘을 정도였죠. 물론, 외형적인 숫자만 그러했을 뿐입니다. 훈련과 무기 및 탄약 자체 조달에 있어 내실이 크게 부족하고 군대 양성과 유지 목적 자체가 외세 침략에 대한 대응보다는 내부 민란이나 반란을 막기 위한 용도가 강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1907년 군..
사진 한 장을 간략하게 살펴보는 글 제5편입니다. 1월도 어느덧 월말이네요. 바쁘게 지나간 한 달이 이처럼 열두 번 반복되면 2024년 한 해도 훌쩍 지나가지 않을까 합니다. 세월이 유수(流水, 흐르는 물)와 같다더니, 정말 빠릅니다.위 사진은 조선시대 평안도 북쪽 국경의 의주부(義州府) 읍성 남문(南門)을 안쪽에서 촬영한 사진엽서입니다. 의주는 본래 정3품 목사(牧使)가 있던 의주목(義州牧)이었는데 1603년(선조26)에 종2품 부윤(府尹)이 부임하는 곳으로 승격되었죠. 읍성 남문을 바깥에서 찍은 사진은 여러 판본이 전해지고 있는데, 성 내부에서 바라보고 찍은 사진은 이게 거의 유일한 것 같습니다.의주읍성 남문은 2중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위 사진은 일명 '내남문(內南門)'으로 의주성 남쪽에 있었던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