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忠武與鄧子龍 夾擊石曼子 滄海掀動 風雲失色, 終古水戰之壯 莫京於此. 嘗見其紀實之文 草草無可觀. 予欲製其碑 以鋪張之. 大抵我國人物 若數文武兼備者 忠武一人惟當之. 이충무공(李忠武公)이 등자룡(鄧子龍)과 함께 석만자(石曼子:島津義弘)를 협공할 때 창해(滄海)가 치솟아 오르고 풍운이 아연실색하였으니, 수전(水戰)의 장대함이 자고로 이보다 큰 적이 없었다. 일찍이 그에 대한 사실을 적은 글[紀實文]을 보았는데 초라하여 볼만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그의 비문을 지어 그의 공로를 기술하여 드러내려고 하였다. 대체로 우리나라의 인물 중에 문무(文武)를 겸비한 사람을 꼽는다면 충무공 한 사람만이 해당된다고 하겠다. 至於李舜臣 眞千古以來忠臣名將. 若使出於中原 漢之諸葛孔明 亦未知孰爲雄而孰爲雌也. 至於壬辰討倭之功 百世永..
何嘗務勝夸博, 而爲無益之空言乎. 남을 이기거나 자신의 박식함을 자랑하기 위해 세상에 아무 도움이 안 되는 헛소리를 해서야 되겠는가. - 출전, 담헌(湛軒)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의 『담헌서내집(湛軒書內集)』 권3. 手不知洒掃之節, 而口談天上之理, 夷考其行, 則反不如無知之人. 손으로는 조그만 일도 할 줄 모르면서 입으로만 하늘의 이치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그 행실을 살펴보면 도리어 무지한 사람만 못하다. - 출전, 남명 조식(曺植, 1501-1572)의 『남명집(南冥集)』 권2. 서(書) - 「어사 오건(吳健)에게 준 글(與吳御史書)」 昔者, 或問止謗之道, 文中子曰. 莫如自修. 請益, 曰. 無辨. 此言可爲學者之法. 예전에 어떤 사람이 '남의 훼방을 그치게 하는 방법'을 묻자, 왕통(王通:文中..
亦或有熟誦古書 言言引據 考其心術 則鄙諂狡詐 向所引據 只爲粉餙口角之資. 此等讀書雖多 奚以哉. 讀書而軟媚者 人莫不愛之 噫. 또한 옛글을 익히 외워 말끝마다 인용하는 자가 있으나 그 마음씨를 살피면 교활하고, 소위 인용하는 것도 한갓 입술 꾸미는 자료로 삼을 뿐이다. 이런 식이라면 글을 아무리 많이 읽더라도 어디에 쓰겠는가. 글 읽어서 아첨하는 태도를 짓는 자를 누구나 사랑하다니, 슬프다. - 출전, 아정(雅亭)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권29. 사소절3(士小節三) 사전(士典) 「교습(敎習)」
(전략) 척화(斥和)의 청론(淸論)은 위로는 명나라 조정[明朝]을 위하는 것이요, 아래로는 선비들의 여론[士論]을 부지하는 것으로서, 바로 천지(天地)간 불변의 도[常經]이고 고금(古今)을 관통하는 의리[通義]입니다. 그 정론으로 삼는 바는 비록 삼척동자(三尺童子)라고 하여도 다 아는 것이니, 우리들이 어찌 모르겠습니까. 다만, 우리는 이 조선[東國]의 신하이므로, 나의 군부(임금)는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중국 조정[中朝]만을 위하는 것은 정도를 넘어서는[越津] 혐의가 없지 않습니다. 만력(萬曆) 황제가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해 준 은덕[再造之恩]을 우리나라 군신[我東君臣) 가운데 어느 누가 감격하여 추대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우리나라[我國]가 생사의 위기를 당하여 어찌 옛날에 중흥시켜 준 것만을 ..
夫以程朱之賢且智 而於其所著述 許使門人知舊任摘瑕纇 隨復磨瑩 則況在初學末流. 偶有箚記者 偏執固滯 不欲移易 精寫寶藏 遇人夸示 要取贊譽. 或遭鍼砭 艴然不樂 强言飾非. 內육外吝 漫환苟縫者 其視古先哲公天下之心 爲何如哉. 정자(程子)와 주자(朱子)처럼 훌륭하고 지혜로운 분도 자신의 저술에 대해서는 제자나 친구들에게 마음대로 잘못을 지적하게 하여 그에 따라 다듬고 수정하였거늘, 하물며 학문이 변변치 못한 자나 초학자(初學者)에 있어서랴. 학문이 변변치 못한 초학자는, 어쩌다가 쓴 글이 있으면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여 절대 바꾸려 하지 않으며, 깨끗이 옮겨써서 보물처럼 간직하고는 사람을 만나면 과시하여 칭찬을 들으려 한다. 혹 잘못을 지적받으면 발끈하여 언짢은 기색을 짓고, 억지로 틀린 점을 변명한다. 속으로는 부끄러워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