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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0년 전에 촬영된 사진 한 장을 간략하게 조명하는 글 제6편입니다. 최근 조선시대 동래(東萊), 현재 부산광역시 지역에 있던 동래도호부(東萊都護府) 동헌(東軒), 부산포진(釜山浦鎭) 및 다대포진(多大浦鎭) 관아 건물에 관해 살펴봤는데, 이번 글 역시 동래에 있던 '만년대'라는 군사 시설물에 대한 짧은 글입니다.

조선시대 동래도호부 만년대(萬年臺)
동래도호부 읍성 서쪽 장대(將坮) - 만년대(萬年臺) 사진


위 사진은 일제강점기 때 발행된 동래온천 근교 회엽서(繪葉書, 사진엽서) 시리즈 가운데 3번(東來溫泉近郊ノ三)인 만년대 사진이며, 오른쪽 위 컬러 그림은 1920년에 만년대를 그린 회화 작품 〈萬年台の夕(만년대의 저녁)〉 일부분입니다. 작가는 츠지 가코(都路華香, 1870-1931)입니다.

만년대(萬年臺)는 동래읍성(東來邑城) 서북쪽에 있던 군사훈련 공간이었습니다. 동래 지역의 육군 군부대인 동래진(東萊鎭)은 금정산성(金井山城)을 중심으로 작전을 펼치던 독립 부대인 '독진(獨鎭)'으로 운영되었는데, 이들 군영(軍營)에 소속된 군사의 화포 발사, 활쏘기 훈련 등을 주관하고 지휘하는 장대(將坮) 역할을 했던 곳이 바로 만년대였습니다. 그리고 이곳 교장(敎場, 교련장)을 시소(試所), 즉 시험 장소로 삼아 무과(武科) 과거(科擧) 시험의 1단계 선발을 시행하기도 했으며, 때에 따라서는 동래도호부사 교체시 전임 부사(府使)와 신임 부사가 임무를 교대하던 장소로 활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만년대 건물은 정면 5칸[間], 3칸으로 전체 규모는 15칸이었습니다. 1922년판 『조선총독부 관유재산목록』에 따르면, 당시 교동리(校洞里)에 있던 만년대 부지 면적은 3,429.55평(약 11,318제곱미터), 건물 너비는 33.12평(약 109.3제곱미터)이었습니다. 만년대 건물의 형태와 면적이 사진 및 문헌을 통해 확인되었으므로 정확한 위치만 비정되면 건물 복원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 만년대(萬年臺) 소재지 지적원도 및 항공사진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 만년대 위치 지도


위 이미지의 왼쪽은 일제강점기 초기인 1912년경 측량된 동래군 교동리(校洞里) 지역 지적원도(地籍原圖)이며, 오른쪽은 현대 항공사진입니다. 교동리 또는 교동(校洞) 명칭은 관내에 있던 동래향교(東萊鄕校)에서 유래하였습니다.

현재 만년대 안내문이 새겨진 표석(標石, 표지석)이 동래구 명륜동 533-19번지 건물에 붙어 있습니다. 도로명 주소로는 동래구 충렬대로181번길 36이며, 부산 도시철도 1호선 동래역 2번 출구에서 약 120미터 떨어진 장소입니다.

그런데, 실제 만년대 터는 지적원도의 필지 구분상 소유주 '國(국유)' 및 지목(地目) '垈(대지)', 그리고 『관유재산목록』에 기재된 면적 등을 감안하면 1912년 당시 교동리 681번지 일대였습니다. 현재 지번 주소로 명륜동 753번지와 661번지 일부이며, 도로명 주소로는 동래로 53 명륜쌍용예가 아파트 부지(753번지) 및 왕복 4차선 동래로(東萊路) 도로, 그리고 동래중학교 부지(661번지) 일부분입니다. 표석 지점에서 직선거리로 약 500미터 떨어진 곳이죠. 만년교(萬年橋, 西川橋) 위치를 참작하였기 때문에 만년대 표석이 현재 자리에 설치된 것으로 보이는데 일단 표석 위치가 제대로 된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고찰 내지 연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만년대 건물터는 빨간색 화살표로 표시한 십자 부분이 유력하지 않을까 합니다. 국토지리정보원 사이트에서 제공하고 있는 1950년 촬영 항공사진을 보면 사각형으로 된 구역의 중앙 지대(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1930년대에 동래 읍내와 온천장(동래온천)을 연결하는 도로를 새로 개설할 때 이를 보도한 신문지면에 신작로 경로를 '만년대 뒤를 지나서'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때 개설된 신작로 일부 구간이 현재 동래로입니다.

만년대가 북북서 방향 건물이었다면 빨간색 화살표 위치가 적합하나, 만약 남향 건물이었으면 개설 도로가 만년대 뒤를 지나야 하므로 파란색 화살표가 가리키는 십자 표시 지점에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만년대 남쪽으로 서천교에서 만년대로 이어지는 길이 있고 그 좌우에 밭[田]이 넓게 펼쳐져 있었는데, 만년대가 남향이었으면 조선시대에는 이들 밭 지역이 추정컨대 주된 군사훈련 공간이었을 것입니다. 2006년 기준 초중고교 운동장 평균 면적이 초등학교 6,024제곱미터(1,822평), 중학교 7,001제곱미터(2,118평 ), 고등학교 8,185제곱미터(2,476평)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빨간색 십자 지점에 있던, 북향이었을 장대 건물을 중심으로 한 3천여 평 만년대 부지도 그리 비좁은 곳이 아닙니다. 빨간 화살표 자리에 만년대 건물이 있었더라도 포군(砲軍)이 발포하는 훈련을 위해서는 보다 넓은 장소가 필요했을 것이므로 남쪽 밭 지역이 훈련장으로 사용되었을 수 있습니다만.


이만 글을 마칩니다. 짧은(?) 글이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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