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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징상 평양대 시기 경기감영 선화당(宣化堂) 건물

조선시대 각 도(道)의 행정, 사법을 책임지던 관청이 감영(監營)이다. 감영은 오늘날의 도청(道廳)이라 할 수 있고, 감영의 수장(首長, 長官)[각주:1]이 바로 관찰사(觀察使)였다. 관찰사의 품계는 종2품으로 현재의 차관급에 해당하며[각주:2],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겸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군사 권한까지 관찰사가 가지고 있었다.

감영의 정청(政廳)을 선화당(宣化堂)이라 하였는데, 이 명칭은 팔도(八道)의 모든 감영이 동일했다. 경기도의 행정을 맡고 있던 경기감영(京畿監營)의 선화당 건물에 관해서는 2018년 7월에 올린 '조선왕조-구한말-대한제국 시기 한성부 관청 편액(현판) 이야기' 문서에서 짧게나마 한 번 다룬 바 있다. 이번 글은 그 선화당 건물의 1902년경 모습에 관한 짧은 이야기이다.


경기감영 선화당 건물 (징상 평양대 시기)1번 사진 - 경기감영 선화당 (징상 평양대 사진)


위 사진은 대한제국 주재 이탈리아 영사를 지낸 카를로 로세티(Carlo Rossetti, 魯士德, 1876-1948)가 1904년(1부)과 1905년(2부)에 간행한 『꼬레아 에 꼬레아니(Corea e Coreani, 한국 그리고 한국 사람들)』에 실린 것이다. 사진에는 '한국 장군과 장교'라고 설명되어 있다.[각주:3]

사진의 배경 건물은 경기감영 선화당이며, 사진에 등장하는 군인은 징상평양대(徵上平壤隊) 간부들이다. 징상평양대의 '징상(徵上)'은 '서울로 불러서 올린 것'을 의미하고, '평양대(平壤隊)'는 평양 지역에 주둔하던 지방군인 진위대(鎭衛隊)이다. 당시 고종 황제가 자신이 믿을 수 있는 평양 진위대 병력을 교대로 상경케 해서 일본 세력을 견제하고자 했는데, 기록에 따라 징상대(徵上隊), 평양대(平壤隊), 징상진위대(徵上鎭衛隊)라고도 했다.


건물 기단(월대)에 마련된 돌계단 3개를 보면 건물 왼쪽에서 4번째 칸[間]이 건물의 중심 대청(大廳)임을 알 수 있다. 각 화살표 설명은 아래와 같다.

1) 진홍색 화살표 : '한성부 관청 편액 이야기 (클릭)' 문서에서 확인했던 용마루의 얼룩이 보이지 않는다. (아래 2번 사진과 비교)

2) 파란색 화살표 : 경기감영이 징상평양대 주둔을 위한 군영(軍營, 營門)으로 개조된 상태임을 보여준다. 감영 외행랑(外行廊), 내부 부속 건물 등이 2층의 군인 숙소로 개조되었다.

3) 보라색 화살표 : 제일 왼쪽에 있던 돌계단이 화살표 위치로 이축되면서 건물의 중심이 한 칸 오른쪽으로 이동되었다. (아래 2번 사진과 비교)

4) 주황색 화살표 : 화살표 끝부분에 글자 비슷한 것이 보인다. 그중 한 글자는 '隊(대)'처럼 보인다.

경기감영 선화당 (한성부 청사 시기)2번 사진 - 경기감영 선화당 (한성부 청사 사진)


위 사진은 이전 글에서 살펴봤던 것이다. 1번 사진과 비교를 위해 다시 올려본다.

기단부 돌계단 3개가 원래 자리에 있고, 편액(현판) 위치를 봐도 왼쪽부터 3번째 칸이 건물 중심임을 알 수 있다. 각 화살표 설명은 아래와 같다.

1) 진홍색 화살표 : 용마루 얼룩이 보인다. 1번 사진이 이 사진보다 뒤에 촬영된 것일 텐데, 1번 사진에서 얼룩이 안 보인 것은 조명, 노출 등의 촬영 조건에 따른 차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2) 녹색 화살표 : 건물 기단에서 내삼문(內三門)으로 이어지는 길에 바닥돌이 있고, 그 바닥돌 삼도(三道) 바로 옆에 가석(嘉石)[각주:4]이 세워져 있다. 1번 사진에서 바닥돌이 제거되어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돌계단 위치가 바뀌면서 바닥돌을 그대로 둘 수 없었을 것이고(=가석과 겹쳐짐), 행정 관청이 아닌 군영으로 건물 용도가 개편되면서 바닥돌이 있을 필요성도 감소했기 때문일 것이다.

3) 노란색 화살표 : 건물 오른쪽의 1칸만 온돌방 형태의 외형을 보인다. 반면 1번 사진에서는 7번부터 이러한 형태를 보인다. 대청에 설치된 분합문(分閤門)[각주:5]을 모두 개방 시켜 열어 놓은 상태에 따른 차이일 수 있다. 그러나 위 사진에 고창(高窓)[각주:6] 또는 교창(交窓)[각주:7]으로 보이는 부분(화살표 끝 지점)이 있고, 바닥 부분의 높이도 약간 다르기 때문에 어떻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고창은 아래쪽의 문이나 창문과 목재로 분리되어 있기에 분합문을 들어 올리는 것만으로는 다른 칸처럼 보일 수 없다. 위 사진에서는 8번의 1칸만, 1번 사진에서는 7번과 8번의 2칸이 대청(마루) 아닌 방 구조일 가능성이 높다.[각주:8]

경기감영도(京畿監營圖) 선화당(宣化堂)3번 이미지 - 경기감영도(京畿監營圖) 선화당(宣化堂) 건물의 변화


위 이미지는 1번 사진, 2번 사진을 기반으로 19세기에 제작된 〈경기감영도(京畿監營圖)〉의 선화당 부분을 편집한 것이다.

왼쪽이 2번 사진(한성부 입주), 오른쪽이 1번 사진(진상평양대 주둔) 상태를 보여준다. 변경된 점은 아래와 같다.

1) 빨간색 화살표 및 초록색 화살표 : 돌계단이 이동되면서 건물의 중심이 3번 칸에서 4번 칸으로 옮겨졌다. 이후 1914년에 고양군청(高陽郡廳)이 경기감영 선화당 건물에 들어섰을 때도 (그 사이에 돌계단이 2개로 축소되고 건물 외형에 변형이 있었으나) 4번 칸이 중심이었다.

2) 건물 전면 마당의 바닥돌(디딤석)이 철거되었다.


하나 남는 의문점은 사진 촬영 시기에 관한 것이다. 2번 사진의 촬영 시기가 1번 사진보다 빠를 것으로 추정하는데, 그 이유는 〈경기감영도〉에서 보이는 돌계단의 위치 이동, 바닥돌의 철거 때문이다. 옮기고 철거했다가 다시 옮기고 깔았다고 추정하기 어렵다. 그런데 2번 사진에서 노란색 화살표로 표시한 부분은 촬영 추정 시점을 역행한다. 〈경기감영도〉 선화당 그림에는 1번 사진처럼 7번과 8번 칸이 방 형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1) 2번 사진 촬영 후 1번 사진 촬영 : 돌계단 위치 변경, 바닥돌 철거가 자연스러움 (7번 칸 용도 문제 발생)

2) 1번 사진 촬영 후 2번 사진 촬영 : 7번 칸이 대청으로 개조되었다고 이해 가능함 (돌계단 원위치 및 바닥돌 재설치 문제 발생)

2번 사진의 촬영 시점에 대한 의문은 '한성부 관청 편액 이야기 (클릭)' 문서에서 이마 제기한 바 있다. 1902년 5월경 진행되었던 당시 한성부(漢城府) 청사의 대대적인 정비와도 관련 있지 않을까 싶다.


경기감영 자리에 들어섰던 한성부 청사,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그 공간을 같이 점유했던 징상 평양진위대.[각주:9] 그 시기를 전후로 한 한성부 청사의 잦은 이전 시도와 감영 및 선화당 구역의 외형 변화. 그 관계를 보여주는 두 장의 사진. 전문가에 의한 보다 면밀한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1. 조선시대에는 주로 행수관(行首官), 행수장무관(行首掌務官) 등으로 호칭. [본문으로]
  2. 중앙 관청의 장관인 판서(判書)는 정2품, 그 아래 차관급인 참판(參判)이 종2품이다. 선거로 뽑은 현재의 광역지방자치단체장(도지사)도 차관급 예우를 받고 있다. 한성부 판윤이 정2품으로 장관급, 현재의 서울특별시장도 도지사보다는 한 등급 높은 장관급 예우이다. 즉, 조선시대와 현재의 주요 관직 등급이 비슷하다. [본문으로]
  3. 서울학연구소 번역, 숲과 나무, 1996년 초판 1쇄 271면. (이탈리아어 원서 미확인) [본문으로]
  4. 가석(嘉石)은 죄인으로 하여금 죄를 뉘우치도록 하는 돌이다. 형조, 한성부, 감영 등의 관아에 두었다. [본문으로]
  5. 분합문(分閤門)은 접거나 펼 수 있는 문이다. 보통 상태에서는 창호지문 형태의 얇은 벽이 되고, 모두 접어서 위로 고정하면 공간이 개방된다. [본문으로]
  6. 창문 위에 낸 작은 창 [본문으로]
  7. 분합문 위에 낸 채광창 [본문으로]
  8. 분합문은 통상 대청 또는 대청과 방 사이에 설치한다. 전면에 분합문으로 보이는 창 4개가 있으므로 단순한 방이 아닌, 대청일 수 있지만, 역시 고창(高窓) 부분이 걸린다. [본문으로]
  9. 『꼬레아 에 꼬레아니(Corea e Coreani)』에 '서울 군부대'라고 설명된 사진이 실려 있는데, 경기감영 정문을 찍은 것이고 '漢城府(한성부)' 편액이 걸려 있었다. 각종 기록에도 이 시기에 한성부, 한성재판소, 진상 평양대가 경기감영(빈관) 자리를 공유하고 있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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