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忠武與鄧子龍 夾擊石曼子 滄海掀動 風雲失色, 終古水戰之壯 莫京於此. 嘗見其紀實之文 草草無可觀. 予欲製其碑 以鋪張之. 大抵我國人物 若數文武兼備者 忠武一人惟當之. 이충무공(李忠武公)이 등자룡(鄧子龍)과 함께 석만자(石曼子:島津義弘)를 협공할 때 창해(滄海)가 치솟아 오르고 풍운이 아연실색하였으니, 수전(水戰)의 장대함이 자고로 이보다 큰 적이 없었다. 일찍이 그에 대한 사실을 적은 글[紀實文]을 보았는데 초라하여 볼만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그의 비문을 지어 그의 공로를 기술하여 드러내려고 하였다. 대체로 우리나라의 인물 중에 문무(文武)를 겸비한 사람을 꼽는다면 충무공 한 사람만이 해당된다고 하겠다. 至於李舜臣 眞千古以來忠臣名將. 若使出於中原 漢之諸葛孔明 亦未知孰爲雄而孰爲雌也. 至於壬辰討倭之功 百世永..
가끔 웹상에서 벌어지는 논란을 보면, 그 가운데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무과(武科) 과거 급제(합격)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늦게 급제했다 = 무관 소질이 없었다', '합격 등수가 낮았다 = 역시 별 볼일 없었다' 등의 내용인데, 어떤 사람들은 '최하위 등급으로 합격한 것이고, 오늘날 계급으로는 하사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군사편찬연구소에서 2003년 8월에 발행한 『군사(軍史)』 제49호에 「무과합격, 군관생활, 전술능력에 나타난 이순신의 무학연구(論.張學根)」라는 논문이 실려 있다. 이 논문의 내용을 토대로 몇 자 적어 본다. 1) 너무 늦게 급제했다는 논란 위 논문에서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이순신 장군이 급제(及第)한 해당 과거의 급제자 평균 연령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