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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정치 행정의 중심 거리는 지금의 세종로(世宗路, 세종대로, 광화문로)였다.

이 거리는 조선시대에 이조(吏曹), 호조(戶曹), 예조(禮曹), 병조(兵曹), 형조(刑曹), 공조(工曹)의 6개 관청이 있었다고 해서 육조거리[六曹街] 또는 육조대로(六曹大路), 육조전로(六曹前路)라고 불렀으며, 광화문전로(光化門前路)라 호칭하기도 했다.

이들 6조 관청 이외에 의정부(議政府), 중추부(中樞府), 사헌부(司憲府) 청사가 있었고, 고종 연간에 경복궁을 중건한 직후에는 삼군부(三軍府) 청사가 자리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 구한말 - 대한제국기 - 일제강점기에 이 육조거리 일대를 촬영한 사진들이 제법 전해지고 있는데, 대부분 원거리에서 찍은 것들이거나 세종로 도로를 중심으로 찍은 것이기에 육조 관청의 실제 건물 사진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건물을 제대로 촬영한 사진으로는 의정부 본청 건물인 정본당(政本堂), 삼군부의 총무당(總武堂), 청헌당(淸憲堂), 덕의당(德義堂), 그리고 사헌부 대청(大廳)과 집의청(執義廳) 정도가 확인된다. 기타 부속 건물, 행랑, 대문 등을 찍은 사진도 몇 장 남아 있지만.

특히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 이렇게 6조의 중심 건물(당상대청, 낭청대청)에 대한 실물 사진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지금까지 알려져 있다. 예조가 있던 자리에 들어섰던 삼군부의 총무당과 청헌당이 예조의 당상대청, 낭청대청 건물 규모를 짐작하게 하지만, 1868년(고종5) 5월에 당상대청이 화재로 소실되어 다시 중건한 것이기에 옛날 그대로의 예조 건물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각 관아(官衙, 관청) 청사에 있던 당상대청(堂上大廳) 건물은 판서, 참판, 참의 등 해당 관청의 최고위급 관료(당상관)이 집무를 보던 공간이다. 당상청사(堂上廳事)라고도 하였으며, 간혹 당상청사(堂上廳舍)로 기재한 문헌도 있다. 즉, 이 당상대청이 육조 각 관아의 중심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당상대청 바로 옆에 위치하던 낭청대청(郎廳大廳, 郎廳廳事) 건물은 각 관청의 중간 관료(정5품 정랑, 정6품 좌랑 등 관원)이 근무하던 공간이다. 현대의 공무원 보직에서 국장, 과장 등의 실무 책임자급에 해당한다. 이들 당상대청과 낭청대청 2개의 건물을 중심으로 기타 여러 부속 건물과 창고, 행랑들이 흩어져 있었다.

우정총국(郵征總局) 사진(?)
1번 사진 - 우정총국(?)


위 사진은 1884년(고종21) 갑신정변(甲申政變)의 주요 무대가 되었던 우정총국(郵征總局) 또는 우정국(郵征局)이라고 알려져 있는 사진이다. 과연 그 설명이 정확한 것일까?

우정총국(위키백과)
2번 사진 - 우정총국(출처 위키백과)


위 사진은 위키백과 한국어판에 등록된 실제 우정총국(사적 제213호, 종로구 우정구로 59) 사진이다. 최소한 앞의 사진에서는 일치하는 건물이 없다.

한성우체총사(漢城郵遞總司)
3번 사진 - 한성우체총사


위 사진은 한성우체총사 또는 구한국우체총사로 알려진 사진이다. 어떤 자료에서는 우정총국을 설명하는 사진으로 인용되기도 한다.

건물 앞에 있는 나무가 위키백과 우정총국 사진의 나무와 비슷한 곳에 심어져 있고, 건물의 칸수[間數]가 전면 5칸으로 동일하기에 그러한 오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나무 위치가 다르고 건물 주춧돌, 기단, 창살 등을 비롯한 형태 전반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정총국으로 혼동하지 않도록 해야겠다.)


사실, 이 우체총사 사진은 제일 앞에 올린 '우청총국'이라는 1번 사진의 왼쪽 건물과 동일한 건물을 촬영한 것이다. 녹색 화살표 모양이 일부 다른데, 아마도 마루 부분을 확장하고 서양식 난방 시설을 건물 내부에 추가하면서 굴뚝과 기와 형태 일부 변형이 생긴 때문으로 보인다.

1번 사진의 좌측 건물과 3번 사진의 건물이 동일한 것이라고 추정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구한국 우체총사(舊韓國郵遞總司)
4번 사진 - 구한국 우체총사


위 사진은 구한국(舊韓國), 즉 대한제국 시기의 우체총사(郵遞總司) 건물로 알려진 사진이다. 3번 사진과 동일한 사진이지만, 나무 앞에 있는 우물 부분까지 보인다.

사진 출처는 『조선통신사업연혁소사(조선총독부체신국, 1914)』 21면.

구한국 전화소(舊韓國電話所)
5번 사진 - 구한국 전화소


위 사진은 구한국 전화소(電話所) 사진이다. 전화소는 전화를 걸거나 받는 곳이 아니라 전화교환대가 있고 전화교환원이 일하던 곳이다. 기와는 한옥이지만, 건물 본체는 벽돌로 지어진 양옥 형태를 보이고 있다.

사진 출처는 앞의 책 『조선통신사업연혁소사』 23면.

이 사진에서 4번 사진의 나무와 우물이 보인다. 즉, 같은 공간에 우체총사와 전화소가 위치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대한제국 통신원(通信院) 건물군
6번 사진 - 대한제국 통신원 건물들


앞에서 살펴본 우체총사, 전화소 사진과 (사진을 올리지 않았지만, 같은 책에 수록된) 통신원(通信院) 건물, 한성 정보총사(電報總司) 건물 사진들에서 서로 일치되는 부분을 중첩시켜 연결해 본 이미지는 위와 같다.

통신원, 전보총사, 우체총사, 전화소가 모두 같은 공간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대한제국 통신원(通信院) 전경 사진
7번 사진 - 대한제국 통신원 전경


우정총국이라고 알려진 1번 사진의 다른 판본이다.

1번 사진이 우정총국 건물이 아닌, 통신원 본청(本廳)과 전보총사, 우체총사 건물이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한성 전화소의 위치(붉은 색으로 칠한 부분)도 짐작할 수 있다.


이제 통신원(通信院)이라는 관청이 어디에 있었는지만 문헌 기록으로 점검하면 된다.

통신원은 농상공부(農商工部) 통신국(通信局)의 후신으로, 1900년(광무4) 3월에 농상공부에서 독립하여 별도의 중앙 행정 관청이 되었다. 농상공부 통신국은 예전 공무아문(工務衙門)의 청사를 1895년(고종32) 3월부터 전용(專用)하고 있었으며, 공무아문은 공조(工曹)의 후신이다.


결론을 말하지면, 위 사진의 통신원(通信院) 청사는 조선시대 공조(工曹)의 당상대청(堂上大廳) 건물이다. 좌측의 우체총사는 공조 낭청대청 청사이고, 우측의 전보총사는 본래 공터이던 곳에 1900년경 신축된 건물이다. 한성 전화소는 1902년(광무6)에 양옥으로 신축된 것으로 확인된다.

숙천제아도(宿踐諸衙圖) 공조(工曹) 청사
8번 그림 - 숙천제아도 공조


위 이미지는 『숙천제아도(宿踐諸衙圖)』에 실린 1878년(고종15) 무렵 공조 관청의 모습이다. 화살표로 표시한 담장이 4번 우체총사 사진에 등장했음을 알 수 있다.

당상대청의 건물 칸(정면 6칸)과 낭청대청의 건물 칸(정면 5칸), 그리고 사진을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위치(중문 근처)도 모두 일치한다.

조선시대 공조(工曹) 및 대한제국 통신원(通信院) 청사 도치 평면도
9번 그림 - 조선시대 공조 및 대한제국 통신원 청사


이러한 사진, 문헌, 평면도, 지적도 등의 자료를 토대로 조선왕조 공조(工曹) 및 대한제국 통신원(通信院) 청사의 배치도를 추정하면 위 이미지와 같다.

공조 청사 각 건물에 대한 상세 자료가 하나도 전해지는 것이 없기에, 주요 건물들의 위치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 비교적 위치 및 형태 정확도가 높은 것은 대문(육조거리 방향으로 난 솟을삼문), 남문, 당상대청, 낭청대청, 북문 정도가 되겠다.

대한제국 통신원 본청 (공조 당상대청 청사)
10번 사진 - 대한제국 통신원 본청 (공조 당상대청 건물)


마지막으로 통신원 건물 사진을 올려본다. 건물 전면에 다소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육조 관청 가운데 하나인 공조 관청의 중심 건물이 모습이 어떠하였는지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 사진이다. (통신원 현판이 걸려 있는 사진도 존재한다.)

건물 사진이 남아 있는 의정부, 삼군부는 정2품 관청인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보다 한층 격이 높은 정1품 관청이다. 따라서 건물의 지체가 다르다. 사헌부는 종2품 관청이므로 역시 격이 다르다. 사실상 이 사진이 유일하게 남은 정2품 육조(六曹) 청사의 당상대청 건물을 '정면에서' 촬영한 사진인 셈이다. (4번 사진에 있는 낭청대청 건물 사진도 육조 중에서 공조가 유일하다.)


- 요약
1) 우정총국이라고 널리 알려진 사진은 다름 아닌 통신원 청사 건물군(群)을 찍은 사진이다.
2) 통신원의 중앙 건물은 조선시대 공조 당상대청이고, 왼쪽 건물은 공조 낭청대청이다.
3) 대한제국 시기의 전보총사, 우체총사 위치를 확인하였다. (통신원 본청 좌우측에 있었음)
4) 한성전화소의 위치를 확인하였다. (전보총사 앞뜰, 즉 공조 낭청대청 앞에 있었음)
5) 위 내용을 토대로 조선시대 공조 청사의 배치도를 그려보았다. (100% 정확하지는 않음)

※ 참고 자료 링크 : 사이버 조선왕조 공조(工曹) 홈페이지 - 공조 안내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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