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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로 광화문 앞길 육조거리 의정부 및 육조 관청 배치도조선시대 의정부, 6조, 사헌부 등 관청 건물 배치도 (클릭하면 확대됨)


현재까지 확인 가능한 자료를 토대로 경복궁 광화문 앞길, 즉 세종로(世宗路, 세종대로, 광화문로)에 위치했던 조선왕조-대한제국 시기의 관청 건물 배치도를 만들어 보았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확대됨)

각 관청별 구역 및 건물의 위치 오차는 수 미터 이내라고 보면 된다. 참고로, 조선시대에는 이 길(세종로)을 육조거리[六曹街], 육조전로(六曹前路), 광화문전로(光化門前路, 광화문 앞길) 등의 명칭으로 불렀다. 이조(吏曹), 호조(戶曹), 예조(禮曹), 병조(兵曹), 형조(刑曹), 공조(工曹) 등 6개[六曹] 관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청사 배치도를 만들 때 참고한 주요 자료는 아래와 같다.

1) 광화문외제관아실측평면도(光化門外諸官衙實測平面圖), 1908년경
2) 경성광화문통관유지일람도(京城光化門通官有地一覽圖), 1919년경
3) 경성부지적원도(京城府地積原圖), 1912년
4) 경성부일필매지형명세도(京城府壹筆每地形明細圖), 1929년
5) 본 블로그의 '조선시대 공조(工曹) 청사 배치도 및 당상대청 낭청대청' 글

현재 설치되어 있는 문화유적(사적지, 건물지) 동판과 표지석의 형태는 아래와 같다.

육조거리 병조 터 동판 및 사역원 기념표석


동판은 바닥부착형으로, 표지석(기념표석)은 별도의 푯돌로 만들어져 있다.

2009년에 광화문광장을 조성하면서 2000년경에 설치했던 기존의 표지석 위치를 새로 고증하여, 현재 위치로 옮기면서 동판으로 대체하였다. 예를 들면, 호조(戶曹) 터 표지석은 원래 (현재 동판 위치에서 약 200m 남쪽인) 지하철 광화문역 3번 출구 바로 옆에 있었다.

배치도 이미지를 보면 의정부, 이조, 한성부, 호조, 예조(삼군부), 중추부, 사헌부, 병조의 동판 위치는 대체로 정확하고, 형조와 공조 동판의 위치는 북쪽으로 많이 치우쳐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동판 위치를 건물 본청(本廳, 당상대청)이 있던 곳을 기준으로 하느냐, 아니면 관청의 대문(大門)이 있던 곳을 중심으로 하느냐 사이에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말이다.

특히, 기로소(耆老所) 동판은 위치가 한참 잘못되었다. 탁지부(호조) 청사 한켠에 설치하였던 양지아문(量地衙門, 1900)-지계아문(地契衙門, 1902)과 본래는 직방(直房) 또는 민가(民家) 공간이었다가 한성부(漢城府, 1870)-경무청(警務廳, 1895)-농상공부(農商工部, 1890)-법관양성소(法官養成所, 1908) 등이 연이어 들어섰던 곳 사이의 골목길 연장선상에 기로소 터 동판이 있다. 이 동판을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 우측면 정도 위치로 옮겨야 할 것이다.

사역원 터 표지석 아래의 전보총국(電報總局) 표지석은 1887년(고종24)부터 1894년(고종31)까지 예전 사역원 자리에 있었던 전보국(電報局, 朝鮮電報總局)을 가리킨다. 예전 공조 자리에 있었던 통신원(通信院) 경내의 전보총사(電報總司, 한성전보총사)는 1900년(고종37)부터 있었던, 전보국의 후속 기관이다. 전보국이 전우총국(電郵總局)을 거쳐 1896년(고종33)에 전보사로 개편 및 개칭되었다.



마지막으로 동판과 표지석 위치를 찾아 헤매다(?) 급히 찍은 경복궁 광화문 사진 한 장을 올려본다.

경복궁 광화문(光化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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