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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남도 은산군수 관인(官印)
평안남도(平安南道) 은산군수(殷山郡守) 관인(官印), 1897년~1908년

위 사진의 관인(官印), 즉 관청의 인장(印章. 도장)은 1897년 겨울 무렵부터 1908년 11월까지 약 11년간 사용되었던 평안남도 은산군(殷山郡)의 군수(郡守) 직인(職印)입니다.

은산군은 본래 종6품 현감이 부임하던 은산현(殷山縣)이었는데, 제2차 갑오개혁이 시행되던 중이던 1895년(고종32) 윤5월 1일자로 군수가 부임하는 은산군으로 승격됩니다. 다만, 이 당시 승격은 23부제 시행에 맞춰 전국 팔도의 부목군현(府牧郡縣)을 군(郡)으로 일괄 개편한 것이었기 때문에 명칭 변경 이외에 행정구역 조정과 같은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참고로 은산군은 평양부(平壤府, 평양관찰부)에 속한 27개 군 가운데 하나(군을 규모에 따라 나눈 5등급 가운데 4등군)였으며, 이듬해인 1896년 6월에 23부제가 13도제로 재차 개편되자 평안남도 23개 군에 속하게 됩니다. 1897년 5월 즈음의 인구는 11,597명이었습니다. 현대와 비교하면 작은 읍면동 규모입니다.


대한제국 은산군수 관인 인면(印面)
은산군수지장(殷山郡守之章) 인면(印面)

은산군수 관인의 도장이 찍히는 인면(印面)입니다. 인장 재질은 동(銅, 구리)이며, 관련 자료를 조사한 결과 이르면 대략 1897년(광무1년) 겨울인 12월부터, 늦어도 1898년 초부터 사용된 것으로 판단됩니다.

8도 체제에서 23부제로, 23부제에서 다시 13도제로 행정구역이 개편됨에 따라 중앙 관청에서 각 지방관리가 사용하는 인장을 새로 제작하여 내려보내는 작업이 1896년(계획)과 1897년(시행) 사이에 진행되는데, 지역에 따라 이르면 1897년 10월, 가장 빠른 곳은 1897년 3월에도 새로 만들어진 인장이 사용된 사례가 보이지만 대체로 12월 중순부터 새로 제작된 군수 인장 사용의 사용례가 확인되고 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평안남도 지역 군의 인장은 1898년 1월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1897년 11월 14일자 문헌에는 이 인장과 다른 예전 은산군수 인장이 찍혀 있는데, 이는 23부제 시행 이후 기존의 은산현감 인장을 대체하기 위해 은산군 차원에서 마련한 인장으로 판단됩니다. 즉, 당시 각 군마다 군수 인장의 형태가 제각각이었던 것을 보면 중앙에서 일괄 제작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2년 남짓 사용된 일종의 과도기 시절 군수 인장이었던 셈입니다. 재질은 아마도 목제(木製)였을듯 합니다.


은산군수 관인 인문(印文)
은산군수지장 인문(印文)

위 사진은 인장을 찍은 모습입니다. 인문(印文)을 보면 전서체로 '殷山郡守之章(은산군수지장, 은산군수의 인장)'이라고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관인은 크게 관청인(官廳印)과 관직인(官職印)으로 나뉘는데, 이 '은산군수지장'은 은산군수라는 관직에 부여된 관직인입니다. 은산군의 관청인은 '은산군인(殷山郡印)'으로 따로 존재하였습니다.


은산군수 관인 비교 (1899년 은산군읍지)
은산군수 관인 비교 : 1899년 은산군 읍지(邑誌)

위 사진은 1899년 간행된 『은산군읍지(殷山郡邑誌)』에 실린 당시 군수 인장의 날인입니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편찬된 『순천군읍지(順川郡邑誌, 순천군읍지여지도합부성책)』에도 같은 도장이 찍혀 있습니다. 오른쪽 인문을 보면, 가장자리가 일부 마모되어 외곽 부분이 다소 얇게 찍혔지만, 전체적인 크기와 형태가 읍지에 찍힌 것과 완전하게 일치하고 있습니다.

이미지를 보면 인장 크기가 꽤 커 보이지만, 이 군수 인장은 다른 높은 관직과 비교할 때 군수의 품계(계급)가 상대적으로 낮았던 탓에 관직인치고는 비교적 작은 크기인 가로 26mm, 세로 26mm로 제작되었습니다. 무게는 약 73g입니다.


국립고궁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등에는 조선시대, 대한제국 시대에 사용되었던 관인이 수백 점 보관 및 전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중앙 관청 또는 중앙 관청에 설치되었던 관직의 관인입니다. 1897년경에 311개가 만들어졌던 군수 인장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데, 왜 그런 것인지 작은 의문이 생깁니다. 군수 인장만 아니라 군(郡)의 관청인도 보이지 않습니다. 단지 공개하지 않은 상태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하나도 전해지는 것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 궁금한 시점입니다. 전자라면 어디 수장고나 창고에 잘 보관되어 있을 것이지만, 만약 후자라면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이후 기존에 사용했던 관인의 전문(篆文, 인면)을 깍아내는 식으로 파쇄하는 절차를 거친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은산군은 대한제국이 수명을 다하기 전인 1908년에 이웃한 순천군에 통폐합되었기 때문에 군수가 사용하던 관인도 용도가 자연스럽게 사라졌을 것이고, 그래서 이렇게 남아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냥 순천군 소재 군청이나 은산면사무소 같은 곳에 남아 있었을지, 아니면 관인 관리 규정에 따라 인면을 깍거나 인장을 폐기하기 위해 상급 관청으로 올려 보내진 이후에 우연찮게 살아남게 되었을지... 상상에 상상이 더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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