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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제20기갑여단(第二十機甲旅團)은 조금 특이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국군(國軍) 창설 초기에 편성된 연대급 부대로서 한국전쟁 이후 오래도록 제1야전군 직할 제11사단의 예하 '보병연대'로 기능하다가 '기계회여단'을 거쳐 현재는 제3군단 직할 '기갑여단'이 되어 있는 것이죠. 부대 명칭(독수리부대)과 번호(20)는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20보병연대는 전라남도 광주(光州) 지역의 향토 연대로 창설되었습니다. 남조선국방경비대 제4연대 창설 이후의 부대 연혁 연혁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946년 2월 15일, 전라남도 광산군 극락면 쌍촌리의 해군 예과련 병영에서 제4연대 A중대 창설 (국방경비대 제4연대)
1946년 4월, B중대 편성
1946년 5월, C중대 편성 (제4연대 제1대대장 정위 정일권 부임)
1946년 5월 12일, 참령(參領, 소령) 이한림(李翰林, 군번 56번, 일본육사 편입 출신, 만주군 복무) 연대장 부임
1946년 8월, D중대 편성 (4개 중대로 제1대대 편성 완료)
1947년 12월 1일, 제2여단 예속 (충청남도 대전에서 제2여단 창설)
1947년 3월, 2대대 편성
1948년 1월 10일, 3개 대대로 연대 편성 완료 (조선경비대 제4연대)
1948년 10월(11월?), 보병 제20연대로 개칭
1949년 5월 12일, 보병 제5사단 예속 전환 (제5여단 승격)
1950년 7월 5일, 보병 제2사단 예속 전환 (제2사단 재편성)
1950년 7월 24일, 보병 제1사단 예속 전환 (제2사단 해체)
1950년 8월 27일, 보병 제11사단 예속 전환 (제11사단 창설일)
1950년 9월 25일, 재창설 (삼량진 소재 제6훈련소 재편성)
2004년 12월 1일, 제20기계화보병여단으로 개편 (제11보병사단이 제11기계화보병사단으로 개편)
2019년 12월 1일, 제20기갑여단으로 개편 (제3군단으로 예속 전환)
참고로, 1990년에 들어서 공식 문서상에서 부대 명칭을 서수(序數, 숫자) + 병과 명칭 + 부대 단위(=제20보병연대)로 표기하기 전까지는 병과 명칭 + 서수 + 부대 단위(=보병 제20연대) 형태로 기재하는 것이 기본이었습니다. 이처럼 병과 명칭을 제일 앞에 쓰는 것은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대한제국 육군 시기까지 올라가지만, 대한제국 군대의 부대 명칭이 당시 일본 육군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1990년 무렵까지 그러한 체제 아래에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속은 항구적으로 특정 상급부대에 소속되는 것이고 배속은 작전, 전술 등의 필요에 의해 임시 소속되는 것입니다. 각설하고.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정규 군대를 만드는 과정에서 1946년 초에 미군정(美軍政) 주도하에 남조선국방경비대 이름으로 남한 8개 도(道) 도청 소재지에 각 1개 연대씩 모두 8개 연대가 창설되고 그해 말에 제주도에 9번째 연대가 만들어집니다.
1946년 1월 15일, 제1연대 창설 :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태릉, 정위(正尉, 대위) 채병덕(蔡秉德, 군번 2번, 일본육사 출신)
1946년 2월 28일, 제2연대 창설 : 충청남도 대전, 정위 이형근(李亨根, 군번 1번, 일본육사 출신)
1946년 2월 26일, 제3연대 창설 : 전라북도 이리, 부위(副尉, 중위) 김백일(金白一, 군번 55번, 만주군 장교 출신)
1946년 2월 15일, 제4연대 창설 : 전라남도 광주, 부위 김홍준(金洪俊, 군번 8번, 만주군 장교 출신)
1946년 1월 29일, 제5연대 창설 : 경상남도 부산, 참위(參尉, 소위) 박병권(朴炳權, 군번 20번, 일본군 학병 강제징집 출신)
1946년 2월 18일, 제6연대 창설 : 경상북도 대구, 참위 김영환(金英煥, 군번 16번, 일본군 학병 소위 출신)
1946년 2월 7일, 제7연대 창설 : 충청북도 청주, 참위 민기식(閔璣植, 군번 18번, 일본군 학병 소위 출신)
1946년 4월 1일, 제8연대 창설 : 강원도 춘천, 부위 김종갑(金鍾甲, 군번 30번, 일본 학병 소위 출신)
1946년 11월 16일, 제9연대 창설 : (전남) 제주, 정위 장창국(張昌國, 군번 13번, 일본육사 출신)
앞에서 부대 연혁을 살펴본 것처럼 제4연대는 광주 서쪽의 광산군(光山郡) 극락면(極樂面) 쌍촌리(雙村里)에 있던 구 일본군 해군 예과련(豫科練, 비행대 조종사 연습생 양성기관) 병영(兵營, 訓兵舍)에서 창설됩니다. 현재 제20기갑여단 창설 기념일이기도 합니다. 창설 부대장인 초대 중대장은 부위 김홍준입니다.
대한민국 육군 건군 시기에 4번째로 창설된 제4연대는 1948년 10월 19일에 발생한 소위 '여수·순천 반란사건'의 여파로 말미암아 제20연대로 개칭됩니다. 제4연대의 1개 대대 병력을 차출하여 1948년 5월에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창설된 제14연대가 사건을 주도했는데, 그 차출 병력 가운데 주모자가 있었고 4연대와 14연대가 모두 불길한 느낌을 주는 '죽을 사(死)'와 음이 같은 숫자[四]였기 때문에 사건 종결(진압) 후에 제14연대는 해체되고 제4연대는 제20연대로 개칭(해체 개편)되었던 것입니다.
제20연대는 제2여단 아래에 편성되어 있다가 1949년 5월에 제5단으로 예속 변경되었으며, 이후 1950년 6월 25일에 한국전쟁에 휘말리면서 다시 제2사단(제2여단 후신) 소속으로 변경됩니다. 그리고 그해 8월 27일에 경상북도 영천(永川)에서 창설된 보병 제11사단으로 예속 전환되었는데, 이때의 제20연대는 경상남도 삼랑진(三浪津)의 제6훈련소를 개편하여 새로 편성된 부대이며, 기존 20연대 전력은 제1사단 제12연대(1950년 7월 24일) 및 제3사단으로 분산 편입되었다고 합니다. 재창설은 삼랑진국민학교(삼랑진초등학교)에서 1,587명(장교 87명, 사병 1,500명) 병력으로 이루어졌으며, 제20연대장은 이전과 동일한 박기병(朴基丙, 일본군 지원병 준위 출신)이었습니다.
부대 번호를 승계하여 재창설된 제20연대가 속한 제11사단은 지리산 지역에서 공비 토벌 작전을 수행하였으며, 1951년 4월부터는 강원도 지역에서 작전에 참여하는 것으로 한국전쟁 참전을 마무리합니다. 11사단이 공비 토벌 과정에서 거창 양민 학살사건(719명 학살 등, 제9연대 3대대), 산천 함양 학살(705명 학살, 제9연대 3대대), 함평 민간인 학살(524명 학살, 제20연대 2대대 5중대), 남원 학살(150여 명 학살, 사단 직할 전차공격대대) 등을 일으켜 부대 역사에 오점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자랑스러운 전공만 아니라 흑역사도 분명한 기록으로 남겨 다시는 불행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경계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제20보병연대는 1970년대에 3각 편제에서 4각 편제로 개편됩니다. 3개 보병대대로 이루어진 부대에 제4대대를 증설하여 4개 대대 편성 체계를 갖춘 것입니다. 이는 1975년부터 시행된 보병사단 편성표에 따른 것인데, 통상 4각 편제 연대의 제4보병대대는 병력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동원부대처럼 감편(減編, 감소 편성)되었습니다.
2004년 12월 1일자로 제11보병사단이 제11기계화보병사단으로 개편되면서, 제20보병연대도 제20기계화보병연대로 개편되었습니다. 전차와 장갑차를 갖춘 기계화부대로 개편된 것입니다. 이때 제1대대가 제36전차대대(전차)로, 제2대대가 제37전차대대(전차)로, 제3대대가 제130기계화보병대대(보병전투차)로 개편 및 개칭되었습니다. 보병 병과 부대는 연대급 이상부터 고유 번호를 가지지만 기계화부대는 대대급부터 부대 번호가 부여됩니다. 각 대대의 자체 전력이 강화되었기 때문에 여단(연대) 직할대가 본부중대, 통신중대 정도만 남을 정도로 축소되었습니다.
과거 기계화보병사단은 전차대대 4개, 기보대대(기계화보병대대) 5개가 편성되어 사단 아래에 있는 3개 기보여단 중에 1개 여단은 2개 전차대대 + 1개 기보대대로, 나머지 2개 여단은 1개 전차 + 2개 기보대대로 구성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전차대대 2개를 갖춘 당시 제20기계화보병여단은 제11사단의 돌파 전투력 핵심 여단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19년 12월 1일에 다시 한번 부대 개편을 거치면서, 제20기계화보병여단이 제20기갑여단으로 승격되고 제11사단에서 제3군단으로 예속 전환됩니다. 제36전차대대는 제11기동사단의 제13기계화보병여단으로 전환되고 대신 제13여단에서 제59전차대대를 전환 받았는데, 이 59전차대대는 원래 제11보병사단의 사단 직할 전차대대였습니다. 제11사단이 보병사단에서 기계화보병사단으로 개편될 때 사단 직할에서 떨어져 나가 13여단 소속이 되었다가 다시 20여단으로 상급부대가 변경된 것이죠. 이러한 예속 변경은 부대 위치 및 작전 계획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제53포병대대는 제11보병사단 포병연대 소속 시절부터 제20연대와 함께 연대전투단을 이루던 전투지원부대(직접지원 포병대대)였습니다. 이외에 정비, 보급, 의무 기능을 수행하는 전투근무지원대대 및 중대와 대대 사이의 규모의 공병대, 방공대, 정보통신대, 그리고 기갑수색중대, 정보중대, 화생방중대 등의 여단 직할대가 준장(準將)이 지휘하는 독립 기갑여단 규모에 맞춰 증강 확충되었습니다.
이상으로 간략하게 제20기갑여단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아무래도 자세한 부대 연혁은 20여단 부대 역사관에 있지 않을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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