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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만 존재하는 기차역이 있습니다. 바로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연박리에 있었다고 하는 전설 속의 철도역 연박역(硯朴驛)입니다.

제천시 봉양읍 충북선(忠北線) 연박역(硯朴驛) 지도
충북선 연박역 표시 지도


위 지도는 충북선(忠北線) 연박역(硯朴驛)이 표시된 국토지리정보원 제공 시대별 지형도입니다.

A 지도는 1970년대 지형도입니다. 아직 충북선이 연박리(硯朴里) 지역이 지나지 않았던 시절의 지도이기 때문에 연박역이 없습니다. 연박리 북서쪽의 원박리(院朴里) 지역을 지나던 충북선이 이곳 연박리 지역으로 옮겨진 것은 1980년 무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충북선 복선화 공사를 하면서 봉양역(鳳陽驛)과 공전역(公田驛) 사이의 선로를 최대한 직선화시키고 선로의 고저 차이에 의한 철도 운영상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이설 공사를 추진했던 것입니다. 경사도(선로 기울기)가 높아 긴 화물열차 운행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죠. 지도 중앙의 건물들이 모여 있는 곳이 당시 연박2리 중심 마을인 '벼루박달'입니다.

B 지도는 1980년대 지형도입니다. 충북선 이설 후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때 공식 지형도에 연박역이 표시됩니다. 하지만 연박역은 이처럼 지도상에만 존재하고 있었을 뿐, 실제 역사(驛舍)가 만들어지지 않았던 계획상의 역입니다. 이설 전 원박리에 충북선 원박역(院朴驛)이 존재했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원박역은 문헌에만 있고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았으나 역사 관련 시설(승강장, Platform)은 일부나마 마련되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1960년대, 70년대 항공사진에서는 특별히 보이는 것이 없었습니다. 즉, (위키백과에 기술된 것처럼) 충북선을 남동쪽으로 이전하면서 연박역을 만들 예정이었으나, 교통 수요 및 봉양역, 공전역 등 이웃역과의 거리 등을 참작한 현실적인 이유로 인해 실제 역이 건설되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개설 계획이 있었기에 이렇게 지형도에 등재되었던 것이겠지요.

C 지도는 1990년대, D 지도는 2000년대 지형도입니다. 1980년대 지형도와 다른 점은 연박역 위치가 제천천(提川川, 周浦川)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중심에 두고 남쪽 지점으로 옮겨졌다는 부분입니다. 지도를 자세히 보면 알 수 있지만, 연박리 주변의 포장도로, 교량 등의 변화 내용은 실제를 그때그때 반영하고 있습니다. 반면 실존하지 않던 연박역은 계속 표기하고 있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위 내용을 정리하면 충북선 이설 이후 30여 년이라는, 상당히 오랫동안 국가 지형도에 연박역이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그 결과 2000년대까지 발행된 각종 지리부도, 교통지도, 정밀도로지도에도 연박역이 대부분 표시되어 있었으며, 2011년 지형도에 와서야 연박역이 제외되고 이어서 차차 다른 민간 지도에도 반영됩니다.

제천시(提川市) 봉양읍(鳳陽邑) 연박리(硯朴里) 전경
충북선 연박역 소재지 전경 (1995년)


위 사진은 1995년 촬영된 연박리 전경 일부입니다. 충북선 철로가 마을 앞을 남북으로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1990년대 지형도에 보이는 교량이 보입니다. 빨간색 화살표는 먼저 이설된 선로이고, 파란색 화살표는 한참 후에 놓인 복선 선로입니다.

각종 기록과 언론 보도 자료에는 1980년 10월 17일에 충북선 복선화 개통식(준공식)을 했다고 되어 있는데, 마을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연박리 앞을 지나던 충북선은 1980년대 중후반(이르면 '87년?, 늦으면 '90년?)까지도 여전히 빨간색 선로 하나로 된 단선이었습니다. 1980년 10월 복선화 개통 이후에도 원박리 지역으로 돌아가는 기존 충북선을 일정 기간(2~3년?) 활용하는 형태로 충북선을 운영을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초록색 화살표는 지형도에 표시된 연박역 추정 위치입니다. 왼쪽 화살표는 1980년대 지형도, 오른쪽 화살표는 1990년대 이후 지형도의 연박역 소재지(?)입니다. 역사 건물, 승강장 등이 조금도 보이지 않으며, 그러한 시설을 구축할 부지도 미리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무런 터가 없이 철로만 있죠. 지도에만 존재하던 전설의 역으로서의 위상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첨언하면, 중앙선 및 충북선 고속화 작업과 2020년 수해로 심각한 손실을 입은 충북선 복구 공사 등이 연계되어 최근 봉양역 방향 선로를 재차 직선화하면서 연박리를 지나는 선로도 일부 조정(확장)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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