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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문/서발

운암집서(雲巖集序)

도필리 2007. 5. 1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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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왕조(王朝)가 세워져 그 기틀이 반석(盤石) 위에 오르기까지는 국좌지재(國佐之材)[각주:1]의 재능을 가진 많은 인물이 국궁진력(鞠躬盡力)[각주:2]으로 힘써야 한다.

창업(創業)의 시기를 지나 종사(宗社)를 만세(萬世)에 전(傳)하는 수성(守成)의 시기에 이르러서도 역시 진충결사(盡忠決死)[각주:3]의 뜻으로 결심하고 호학애민(好學愛民)[각주:4]의 자세로 노력하는 인재들이 많이 요구되는데, 이러한 창업과 수성 사이에 필요한 인재들은 다른 시대에서 빌려올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반드시 당대(當代)에서 구(求)할 수밖에 없다.

한낱 초야(草野)에 묻혀 사는 선비의 말일지라도 사직(社稷)[각주:5]에 약간이나마 도움 되는 바가 있다면 조정(朝庭)에서 일체 듣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사서(史書)에 이르기를, '대개 나라가 망하는 것은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망할 때를 당하여 어진 사람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운암(雲巖) 이공(李公)이, 비록 출사(出仕)하여 재조(在朝)[각주:6]하지 아니한 관계로 변변한 관함(官銜)이 없고 또 그 품행이 크게 드러나지 못한 연유로 말미암아 청명(淸名)을 일세(一世)에 떨치지 못하였으나, 그래도 굳게 지켜 소신껏 나아간 바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으니, 조정 안에 맑은 기풍(氣風)을 진작하고 재야(在野)에 사풍(士風)을 도모하였으며 국가대계(國家大計)를 생각하여 조정에서 하는 일에 명분(名分)을 바르게 하고 기강(紀綱)과 분수(分數)를 분명하게 하려 노력한 것 등이 그것이다.

사정(私精)을 끊고 한 자(字) 한 자 초(草)한 소장(疏章)의 준열(峻烈)한 내용이 그것을 나타내고, 성의(誠意)로 한 자 한 자 새긴 비명(碑銘)의 간절한 내용이 그것을 말해준다. 세언(世諺)[각주:7]에 '세 살 아이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고 하였는데, 하물며 운암과 같은 이에게서 간직할 것이 조금도 없겠는가.

그러나 결국 뜻을 모두 펴지 못하고 유명(幽明)을 달리하고 말았으니, 서문(序文)을 짓는 자(者), 비록 외인(外人)에 불과하나 한탄스러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땅에 묻혀 한 권(卷) 문집(文集)만이 공의 생전 행적을 후대(後代)에 전할 뿐이니, 아마도 공이 마지막 순간에 느낀 심정(心情) 혹은 본심(本心)은 이보다 더 극(極)하였을 것이다.

갑신(2004년) 11월, 청암각(淸岩閣)에서 선성후인(宣城后人) 김하은(金河銀) 근서(謹序)[각주:8]


  1. 국좌지재(國佐之材) : 나라를 보좌할 만한 인재. 왕좌지재(王佐之材). [본문으로]
  2. 국궁진력(鞠躬盡力) : 몸을 돌보지 않고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함. 출전은 제갈량(諸葛亮)의 후출사표(後出師表). [본문으로]
  3. 진충결사(盡忠決死) : 충성을 다하고 죽음을 각오함. [본문으로]
  4. 호학애민(好學愛民) : 학문을 좋아하고 백성을 사랑함. [본문으로]
  5. 사직(社稷) : 땅의 신(神)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을 합친 단어. 즉, 나라에서 제사 지내는 사직단(社稷壇)을 의미하며, 종묘사직(宗廟社稷)과 뜻이 통한다. 조정(朝廷), 국가(國家)를 뜻함. [본문으로]
  6. 재조(在朝) : 조정에 봉직함. 즉 관직에 나아간 것을 말한다. 재야(在野)의 반대. [본문으로]
  7. 세언(世諺) : 구전되는 민간 격언. 속담(俗談). [본문으로]
  8. 근서(謹序) : 삼가 서문(序文)을 씀. 본 글은 이덕무(李德武) 선생의 문집 『운암집(雲巖集)』 서문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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