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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척화(斥和)의 청론(淸論)은 위로는 명나라 조정[明朝]을 위하는 것이요, 아래로는 선비들의 여론[士論]을 부지하는 것으로서, 바로 천지(天地)간 불변의 도[常經]이고 고금(古今)을 관통하는 의리[通義]입니다. 그 정론으로 삼는 바는 비록 삼척동자(三尺童子)라고 하여도 다 아는 것이니, 우리들이 어찌 모르겠습니까.

다만, 우리는 이 조선[東國]의 신하이므로, 나의 군부(임금)는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중국 조정[中朝]만을 위하는 것은 정도를 넘어서는[越津] 혐의가 없지 않습니다. 만력(萬曆) 황제가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해 준 은덕[再造之恩]을 우리나라 군신[我東君臣) 가운데 어느 누가 감격하여 추대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우리나라[我國]가 생사의 위기를 당하여 어찌 옛날에 중흥시켜 준 것만을 생각하고 스스로 망하는 길로 나가야 하겠습니까.

조선을 위하는 신하라면[東方禮國之臣], 명나라[皇朝]를 위해 반드시 우리나라를 망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의리로서 당당하며, 또 실로 성현의 교훈에도 부합합니다. 그런데 김(김상헌:金尙憲, 1570-1652), 정(정온:鄭蘊, 1569-1641) 두 선생은 도리어 이 의리에 어두워서 나라를 보전한 후, 다만 청론만을 숭상하고 있으니 의리의 면에서 중도를 지키는 것이 과연 어렵습니다.

(후략)

- 출전, 지천(遲川) 최명길(崔鳴吉, 1586-1647)의 『지천유집(遲川遺集)』



평하여 말한다.

진정한 충신이라면 마땅히 최명길 같아야지, 어찌 김상헌 같아서야. 후세의 칭송은 김선생이 많이 받았지만, 그것은 명성을 얻기 쉬운 의리를 쫓아 얻은 영광이었다고 하겠다. 물론, 김선생 개인적으로는 병자호란 직후에 심신이 결코 편하지 않았겠지만.

실리와 명분이 충돌하므로 양시양비론(兩是兩非論)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조선시대가 아닌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대략 최선생의 행적과 고심을 김선생 앞에 두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조정에서 내린 시호가 최선생은 '문충(文忠)', 김선생은 '문정(文正)'이었던 것은 그 이유가 있고 한편으로 다행한 일이다. 비록 시호 글자에 있어 대개 '正' 자를 '忠' 자보다 높이 여기나 하나, 최선생과 김선생의 경우에는 '忠'이 결코 '正'에 밀리지 않는다. 단, 최선생께서 인조(仁祖)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지 못하였던 것은 일말의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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