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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탁지부) 관청 청사의 건물 배치 및 변천에 관한 소고(小考) - 1편

※ 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안팎으로 조금은 바쁜 나날들이었습니다. 환절기 건강에 유의하세요~!!

※ 작년 6월에 블로그 운영을 재개하고 지금까지 주로 올린 글의 주제가 조선시대 및 대한제국 시기의 관청(官廳, 관아) 청사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이번에 다룰 '호조(戶曹) 관청 청사의 건물 배치 및 변천에 관한 소고(小考)'는 그러한 여러 편의 글 가운데 가장 중요한 내용이 될 것입니다. '언젠가는 호조 청사에 관한 글을 정리해 올려보겠다'는 마음을 가졌던 것이 불로그 재개의 원동력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짐과 기대가 컸던 것에 비해 내용이 많이 부실할 수 있지만, 하여간 2018년 여름에는 제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 본 글은 지난 2월에 올린 '광화문 앞 육조거리 6조 관청 청사 실측 평면도' 문서에서 추정한 조선왕조(朝鮮王朝) 호조(戶曹) 및 대한제국(大韓帝國) 탁지부(度支部) 청사의 실체에 관해 조심스럽게 추적(?)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읽기 편하시도록 글을 쓰다 보니, 초안에서 주(注, 주석, 각주, 후주)를 상당수 삭제하고 문단 단위로 글을 짧게 끊어 전체적인 내용을 구성하였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더 세밀하게 기술했을 내용이 간략하게 처리되고, 일부 출처나 단어 풀이가 생략된 점 이해 부탁드립니다.


호조(탁지부) 청사 평면도1번 이미지 - 호조(탁지부) 청사 평면도 : 1908년(左) 1919년(右)


위 1번 이미지는 본래 조선시대 호조(戶曹) 관청이 있었던 지역의 1908년과 1919년 무렵 건물 배치도이다.

왼쪽은 〈광화문외제관아실측평면도(光化門外諸官衙實測平面圖)〉, 오른쪽은 〈경성광화문통관유지일람도(京城光化門通官有地一覽圖)〉이다. 지도에 표기된 것처럼 1908년 당시에는 호조 청사 위치에 호조의 후신인 탁지부(度支部)가 자리해 있었다. 호조 관청이 1894년(고종31) 6월에 갑오개혁(甲午改革)의 일환으로 탁지아문(度支衙問)이 되고, 이듬해 1895년 3월에 탁지부로 다시 개칭되었다.


호조 북쪽에는 원래 한성부(漢城府)가 있었으나, 1868년(고종4) 4월[각주:1] 삼군부(三軍府)에 청사를 내어주고 이전해 온 예조(禮曹)가 위치하다가 학무아문(學務衙門)을 거쳐 학부(學部)로 개편되어 존속하고 있었다.

호조 남쪽은 일반 민가(民家) 자리였는데 1870년(고종7) 5월에 (잠시 경희궁 앞의 훈련도감 신영 자리로 옮겨가 있었던) 한성부 청사가 육조거리 지역으로 돌아올 때 관아 부지로 편입(?)되어 한성부 청사가 신설되었다. 이후 1895년 5월에 한성부가 군기시(軍器寺) 자리로 이전하고, 이 자리에는 경무청(警務廳)이 들어섰다. 그리고 1900년 10월(윤8월)에 경무청이 경부(警部)로 승격되면서 농상공부(農商工部)와 처소를 맞교환하였고, 1907년 12월에 농상공부가 동현(銅峴,, 구리개)으로 이전해 가면서 빈터가 되었으며, 그 자리에는 1908년 2월에 법관양성소(法官養成所)가 들어섰다.

호조 청사와 호조 북쪽, 남쪽 지역의 변천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호조 북쪽 : 한성부 - 1868년(1866년?) 예조 - 1894년 학무아문 - 1895년 학부
2) 호조 자리 : 호조 - 1894년 탁지아문 - 1895년 탁지부 - 1908년 법부(法部)
3) 호조 남쪽 : 민가 - 1870년 한성부 - 1895년 경무청 - 1900년 농상공부 - 1908년 법관양성소


오른쪽 지도는 호조(탁지부)의 터가 나중에 2개 필지로 분할되었음을 보여준다. 양쪽에 붉은색 화살표로 표시된 부분이 작은 골목길의 좌우 입구인데, 이처럼 도로를 내면서 그 위를 82번지로 하고, 아래를 기존 법관양성소 부지와 합쳐 84번지로 하여 지번을 나눴다.

예조(학부)가 있던 곳은 82번지이며, 82번지 오른쪽 아래에 작은 (민가) 필지로 83번지가 있었다. 이러한 호조 터 중앙을 좌우로 가로지르는 도로 개설과 필지(지번) 통폐합은 분할은 1912년에 제작된 〈경성부지적원도(京城府地積原圖)〉에서 이미 나타난다.[각주:2]

이제 본격적으로 조선시대 호조 청사의 실체 추적에 들어간다. :)

탁지지(度支志) 본아전도(本衙全圖)2번 이미지 - 탁지지(度支志) 본아전도(本衙全圖), 1788년


위 2번 이미지는 호조 청사의 평면도를 추정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1788년(정조12) 간행 『탁지지(度支志)』 수록의 〈본아전도(本衙全圖)〉이다. 탁지(度支)는 호조 관청의 별칭이며, 본아전도의 본아(本衙)는 본 관청(관아)을 뜻한다.

호조의 장관(長官)인 정2품 호조판서(戶曹判書), 차관(次官)인 종2품 호조참판(戶曹參判), 그리고 오늘날의 차관보급에 상당하는 정3품 호조참의(戶曹參議)로 구성된 세 명의 당상관(堂上官)이 근무하는 당상대청(堂上大廳)[각주:3]이 보이고, 그 아래 4시 방향에 정5품(正郞), 정6품 좌랑(佐郞) 각 세 명으로 이루어진 여섯 낭청이 근무하는 낭청대청(郞廳大廳)[각주:4]이 있다.

붉은색 화살표로 표시한 가느다란 담장 부분을 기억해 두자.

숙천제아도(宿踐諸衙圖) 호조(戶曹)3번 이미지 - 숙천제아도(宿踐諸衙圖) 호조(戶曹), 1839년


위 3번 이미지는 1839년(헌종5)[각주:5] 무렵에 그려진 『숙천제아도(宿踐諸衙圖)』의 호조 청사 채색 그림이다. 한필교(韓弼敎, 1807-1878)[각주:6]라는 조선 후기 인물이 관직 생활을 하며 거쳐 갔던 여러 관청의 도면을 본인이 소장 차원에서 그려둔 화첩이다.

앞에서 살펴본 2번 이미지의 〈본아전도〉와 거의 같은 그림으로, 본아전도를 기반으로 모사하여 그린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림에 주요 건물과 문의 명칭이 표기된 것이 본아전도와 구별되는 특징이다. 당상삼문(堂上三門), 중대문(中大門), 연못[池] 등 백색 테두리의 글자는 『탁지지』 관사(館舍) 항목을 토대로 필자가 임의 기재한 것이다.

『탁지지』 관사 항목의 기록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관사(館舍)

본아(本衙, 호조)는 중부(中部) 징청방(澄淸坊)에 있다. 경복궁 광화문의 왼쪽이며, 북쪽에 한성부[京兆], 남쪽에 고예조동(古禮曹洞), 동쪽에 태복천(太僕川, 중학천)이 있고, 서쪽의 대로(大路, 육조대로) 문밖에 우물이 있다[門外有井].

당상청사(堂上廳事) 12칸[間]. 4면에 퇴가 있고[四面退] 을좌신향(乙坐辛向)이다. 좌우에 아방(兒房) 각 4칸이 있다. ...(중략)...

낭관청사(郎官廳事) 4칸. 앞에 퇴가 있고[前退] 자좌오향(子坐午向)이다. 입직방(入直房) 4칸. 앞에 퇴가 있다[前退]. 우방(右房) 2칸, 다주(茶廚, 부엌) 1칸, 마구간[馬廐] 1칸. ...(중략)...

고사(庫舍) 127칸. 판적사고(版籍司庫) 52간, 판별고(版別庫) 44간, 세폐고(歲幣庫) 9간, 잡물고(雜物庫) 11간, 은색고(銀色庫) 4간, 별례방고(別例房庫) 7간.

연정(蓮亭) 3칸. ...(중략)...

연지(蓮池). 동서(東西) 10보, 남북(南北) 13보. 당상청사 동쪽에 있다[在堂上廳事東].

주학청사(籌學廳事, 산학청사) 6칸. 입직방(入直房) 1칸반, 청(廳, 마루) 3칸, 행각(行閣) 20칸, 고사(庫舍) 8칸, 중문(中門) 1칸.

서리장방(書吏長房). 도장방청(都長房廳) 6칸, 방(房) 2간, 판적사청(版籍司廳) 3간, 방 4간, 문서고(文書庫) 3간, 판별방청(版別房廳) 3칸, 방 4칸, 문서고 5칸, 전례방청(前例房廳) 4간, 방 2칸, 문서고 2칸, 별례방청(別例房廳) 3칸, 방 2칸, 문서고 5칸, 은색방(銀色房) 1간, 청(廳) 1간, 요록색방(料祿色房) 1간, 청 1칸, 잡물색방(雜物色房) 1칸, 청 1칸, 세폐색방(歲幣色房) 2칸, 청 2칸, 응판색방(應辦色房) 2칸, 청 1칸, 별영방(別營房) 1칸, 청 1칸, 별고방(別庫房) 1칸.

서사방(書寫房) 1칸, 청(廳) 1칸.

고직상직방(庫直上直房) 2칸, 청(廳) 2칸.

사령방(使令房) 4칸.

당상삼문(堂上三門, 내삼문), 중문(中門) 1칸, 남협문(南挾門) 1칸, 북협문(北挾門) 1칸. 중대문(中大門) 1칸, 협문(挾門) 1칸.

대문(大門) 1칸. 편액은 지부아문이다[扁以地部衙門]. 후문(後門) 1칸. 편액은 탁지남문이다[扁以度支南門].


『숙천제아도(宿踐諸衙圖)』 및 『탁지지』의 〈본아전도〉에 수록된 호조 청사 그림의 묘사와 관사(館舍) 항목의 기록이 대체로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호조(戶曹) 청사 평면도 (건물 배치도)4번 이미지 - 호조(戶曹) 청사 평면도 추정


위 4번 이미지는 1번의 〈광화문외제관아실측평면도〉 탁지부(호조) 부분을 기초로 여러 기록을 참고하여 호조 청사의 건물 배치도를 만들어 본 것이다.

『탁지지』에 실린 관청 그림과 기록을 참고하였는데, 파란색 화살표로 표시된 건물이 〈본아전도〉의 그림과 (두드러지게) 맞지 않는다. 후문(탁지남문) 왼쪽으로 길게 이어진 건물 대신에 기역(ㄱ)자 형태의 대형 건물이 들어서 있는 것이다. 1908년(융희2) 1월경 실측된 평면도에서 본래의 호조 청사와 크게 다른 부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대대적인 건물 철거, 신축이 짐작되는 부분이다.

탁지부(度支部) 청사 실측도면5번 이미지 - 탁지부(度支部, 호조) 청사 실측도면, 1905년 8월


위 5번 이미지는 대한제국(大韓帝國) 시기의 측량기술자(測量技術者) 양성 과정에 있던 토지측량강습생(土地測量講習生)이 1905년(광무9) 8월경에 측량한 탁지부 청사의 실측도면이다.[각주:7]

왼쪽 도면은 전양지아문양무위원(前量地衙門量務委員) 김한표(金漢杓), 탁지부기수(度支部技手) 이원기(李源綺), 전탁지부양지국기수(前度支部量地局技手) 조명호(趙明鎬) 등 3인, 오른쪽 도면은 탁지부기수 강대성(姜大成), 前탁지부기수 6품 김윤하(金潤夏) 2인이 실측하였다. 이들 5인은 모두 탁지부 사세국(司稅局) 양지과(量地課)의 토지측량강습생 양성 과정에 있었던 삼각측량법(三角測量法) 및 쇄부측량법(碎部測量法) 양성강습 수료자 신분이었다.

이 두 장의 실측도면 중, 왼쪽 도면에서 4번 이미지의 파란색 화살표 부분과 다른 형태를 보이는 건물이 눈에 띈다.

탁지부(度支部) 청사 평면도 추정본6번 이미지 - 탁지부(度支部) 청사 평면도 추정, 1905년 8월


위 6번 이미지는 5번에서 살펴본 두 장의 도면을 합친 것이다. 5번의 왼쪽 도면은 연못 우측 부분(서무과, 문서과)이 생략되어 있고, 오른쪽 도면은 좌측(대문)과 하부(교환소, 후문 등)가 생략되어 있었다.

중앙의 대청(大廳)을 중심으로 왼쪽에 고문실(顧問室), 오른쪽에 연못[池)이 있고, 연못 건너로 서무과(庶務課), 문서과(文書課), 대청 아래에 금고(金庫), 출납국(出納局), 출납국 아래에 교환소(交換所), 교환소 왼쪽에 작은 연못[池]이 있다.[각주:8]


분석해 보면, 1905년 8월 도면에서는 파란색 화살표의 건물이 현존하고 있었는데, 1908년 1월 도면(4번 이미지)에서는 기역(ㄱ)자 건물로 변경되었다. ㄱ자 형태의 건물 재건축 부분은 다음 편에서 고찰하기로 하고, 일단 호조 청사의 본래 배치가 어떠했는지만 확인하고 넘어간다.


노란색 테두리로 표시된 고문실(顧問室)에 눈에 띈다. 4번 이미지에서는 정체불명의 건물이었는데, 건물 용도가 확인되는 순간이다.

붉은색 화살표로 표시된 두 개의 긴 담장도 특이하다. 탁지부(호조) 청사의 일부가 다른 용도로 활용되면서 탁지부 경내가 축소되었기 때문에 이를 구분하기 위해 후대에 설치했던 담장으로 보인다.

탁지부 재정고문 그림엽서7번 이미지 - 탁지부 재정고문 그림엽서, 1907년


위 7번 이미지는 탁지부의 재정고문(財政顧問)이었던 일본인 메가타 다네타로(目賀田種太郞, 목하전종태랑, 메가타 슈타로)의 그림엽서[繪葉書]이다.

러일전쟁(露日戰爭)의 여파로 1904년(광무8) 8월 22일에 제1차 한일협약(韓日協約)[각주:9]이 체결되면서 일제(日帝)의 고문정치(顧問政治)가 시작되었으며, 1904년 10월에 일본 대장성(大藏省)의 주세국장(主稅局長) 메가타 다네타로가 대한제국 탁지부의 재정고문으로 취임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07년 10월에 발행한 엽서이다.

엽서 오른쪽에 재정고문실(財政顧問室)[각주:10] 사진이 있는데, 고문실 우측에 탁지부 대청(당상청사)의 일부가 보인다. 이 탁지부 대청은 '병조 청사 당상대청 촬영 사진' 편에서 한 차례 살펴본 적이 있다.

엽서를 보면 일본이 파견한 재정고문이 탁지부 대신(大臣)이 근무하는 대청 바로 앞에 (사진상으로 볼 때) 조적조(벽돌집)로 추정되는 재정고문실 건물을 마련하고 업무를 보았음을 알 수 있다. 잘 보면 고문실과 대청을 직접 연결하는 난간을 갖춘 통로도 설치되어 있다.

대한제국 내부(內部) 및 군부(軍部) 청사 평면도8번 이미지 - 대한제국 내부(內部) 및 군부(軍部) 청사 평면도, 1908년


위 8번 이미지는 내부(內部), 군부(軍部) 청사의 도면이다. 탁지부 고문실과 비슷한 형태의 건물 평면이 보인다.

내부는 원래 의정부(議政府) 청사였다가 1895년(고종32)경부터 내부 청사로 사용되었으며, 군부는 기존의 병조(兵曹) 청사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내부고문실(內部顧問室)이 1907년(융희1) 8월에 폐지되어 내부경무고문실(內部警務顧問室)로 개편되었다가 곧 헌병사령부(憲兵司令部) 청사{조선시대 중추부(中樞府) 터}로 옮겨갔기 때문에 실측평면도가 그려진 1908년 1~2월 시점에는 (실제 고문실 건물이었다면) 다른 용도로 쓰였을 것이다. 군부고문실(軍部顧問室)로 추정되는 건물은 기단부가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는 점이 특이하다. 내부, 군부 등의 고문실에 대한 사항은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여겨진다.[각주:11]


- 본 1편의 요약
1) 호조 청사 평면도 추정 : 탁지지 관사 항목 기준 [4번 이미지]
2) 호조 남쪽 건물의 원형 추적 : 후문 왼쪽의 건물 평면, 작은 연못 위치 등 [6번 이미지]
2) 호조 대청 앞 건물의 용도 확인 : 탁지부 재정고문실 사진 [7번 이미지]


※ 다음에 올릴 2편으로 이어집니다.



  1. 또는 1866년(고종3) 5월. [본문으로]
  2. 1910년 10월경의 임시토지조사국(臨時土地調査局) 광화문분실(光化門分室) 설치 시기를 전후로 필지 분할을 추정한다. [본문으로]
  3. 『탁지지』 관사(館舍) 항목에는 당상청사(堂上廳事)로 기록되어 있다. 당상청(堂上廳), 당상청사(堂上廳舍)라고도 한다. [본문으로]
  4. 『탁지지』 관사(館舍) 항목에는 낭청청사(郞廳廳事)라고 기록되어 있다. 낭관청(郞廳廳), 낭청청사(郞廳廳舍), 낭관청사(郞官廳舍)라고도 한다. [본문으로]
  5. 책의 주인공인 한필교가 호조좌랑으로 부임한 연도가 1839년 6월 30일이기 때문이다. 그림 오른쪽 위에 부임 관직과 일자가 적혀 있는데, 좌랑과 참의 부임 두 차례의 필적이 서로 다르다. 좌랑으로 부임한 직후 호조 청사의 그림을 그렸고, 1876년 3월에 다시 호조참의가 되어 부임했을 때 추기한 때문으로 보인다. '평성을 거쳐 온 여러 관아의 그림'이라는 뜻의 숙천제아도(宿踐諸衙圖) 자체는 한필교의 관직 경력이 끝나는 1878년을 편찬 연도로 볼 수 있다. 한필교는 화첩의 서문을 1840년에 썼다. [본문으로]
  6. 본관 청주(淸州), 자 보경(輔卿), 호 하석(霞石). [본문으로]
  7. 『한국근대사료집성(韓國近代史資料集成)』 제7권 한일경제관계(韓日經濟關係) 2편 수록 자료. [본문으로]
  8.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도면을 확인했는데 책에 수록된 이미지의 해상도가 높지 않아서 서무과, 문서과 부분은 확실하지 않다. [본문으로]
  9. 협약의 정식 명칭은 〈한일외국인고문용빙에 관한 협정서(韓日外國人顧問傭聘에 關한 協定書)〉 [본문으로]
  10. 정부재정고문본부(政府財政顧問本部) 건물 [본문으로]
  11. 외부고문실 건축 도면인 외부고문실(外部顧問室) 건축도형(建築圖形)이 현존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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