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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정(雅亭) 이덕무(李德懋) 선생의 글

亦或有熟誦古書 言言引據 考其心術 則鄙諂狡詐 向所引據 只爲粉餙口角之資. 此等讀書雖多 奚以哉. 讀書而軟媚者 人莫不愛之 噫.

또한 옛글을 익히 외워 말끝마다 인용하는 자가 있으나 그 마음씨를 살피면 교활하고, 소위 인용하는 것도 한갓 입술 꾸미는 자료로 삼을 뿐이다. 이런 식이라면 글을 아무리 많이 읽더라도 어디에 쓰겠는가. 글 읽어서 아첨하는 태도를 짓는 자를 누구나 사랑하다니, 슬프다.

- 출전, 아정(雅亭)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권29. 사소절3(士小節三) 사전(士典) 「교습(敎習)」

아정, 이덕무, 청장관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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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충공(文忠公) 최명길(崔鳴吉) 선생의 글

(전략)

척화(斥和)의 청론(淸論)은 위로는 명나라 조정[明朝]을 위하는 것이요, 아래로는 선비들의 여론[士論]을 부지하는 것으로서, 바로 천지(天地)간 불변의 도[常經]이고 고금(古今)을 관통하는 의리[通義]입니다. 그 정론으로 삼는 바는 비록 삼척동자(三尺童子)라고 하여도 다 아는 것이니, 우리들이 어찌 모르겠습니까.

다만, 우리는 이 조선[東國]의 신하이므로, 나의 군부(임금)는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중국 조정[中朝]만을 위하는 것은 정도를 넘어서는[越津] 혐의가 없지 않습니다. 만력(萬曆) 황제가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해 준 은덕[再造之恩]을 우리나라 군신[我東君臣) 가운데 어느 누가 감격하여 추대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우리나라[我國]가 생사의 위기를 당하여 어찌 옛날에 중흥시켜 준 것만을 생각하고 스스로 망하는 길로 나가야 하겠습니까.

조선을 위하는 신하라면[東方禮國之臣], 명나라[皇朝]를 위해 반드시 우리나라를 망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의리로서 당당하며, 또 실로 성현의 교훈에도 부합합니다. 그런데 김(김상헌:金尙憲, 1570-1652), 정(정온:鄭蘊, 1569-1641) 두 선생은 도리어 이 의리에 어두워서 나라를 보전한 후, 다만 청론만을 숭상하고 있으니 의리의 면에서 중도를 지키는 것이 과연 어렵습니다.

(후략)

- 출전, 지천(遲川) 최명길(崔鳴吉, 1586-1647)의 『지천유집(遲川遺集)』



평하여 말한다.

진정한 충신이라면 마땅히 최명길 같아야지, 어찌 김상헌 같아서야. 후세의 칭송은 김선생이 많이 받았지만, 그것은 명성을 얻기 쉬운 의리를 쫓아 얻은 영광이었다고 하겠다. 물론, 김선생 개인적으로는 병자호란 직후에 심신이 결코 편하지 않았겠지만.

실리와 명분이 충돌하므로 양시양비론(兩是兩非論)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조선시대가 아닌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대략 최선생의 행적과 고심을 김선생 앞에 두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조정에서 내린 시호가 최선생은 '문충(文忠)', 김선생은 '문정(文正)'이었던 것은 그 이유가 있고 한편으로 다행한 일이다. 비록 시호 글자에 있어 대개 '正' 자를 '忠' 자보다 높이 여기나 하나, 최선생과 김선생의 경우에는 '忠'이 결코 '正'에 밀리지 않는다. 단, 최선생께서 인조(仁祖)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지 못하였던 것은 일말의 유감.

문충공, 최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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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실록 제1책 서문

조정(朝廷)이 세워져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이 있다. 특히 유학(儒學)을 근본으로 하는 동양(東洋) 국가의 경우가 그러한데, 궁궐(宮闕)을 중심으로 좌묘우사(左廟右社) 체제를 취하고 관제(官制)와 법령(法令)을 세워 나라의 기틀을 안팎으로 확고히 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에 더하여 중시되는 것이 '역사(歷史)'이니, '천명(天命)을 받아 백성을 다스린다'고 하는 유교적 치도(治道) 개념에 가장 잘 부합되고 국초의 건국(建國) 이념이 오래 전승될 수 있도록 독려하고 견제하는 것이 바로 역사 기록이기 때문이다. 성곽(城郭), 법전(法典), 군신(君臣), 삼군(三軍) 등을 창업(創業)의 필수 요건이라 한다면, 역사는 선례(先例)와 포폄(褒貶)을 분명하게 새겨 후세(後世) 사람들에게 남기는 것이므로 나라를 반석(盤石) 위에 올려놓은 수성(守成)의 필수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정종조(定宗朝)에 "군주(君主)가 두려워할 것은 하늘과 사필(史筆)입니다. 사관(史官)이 인군(人君)의 선악(善惡)을 기록하여 만세(萬世)에 전하니, 두렵지 않겠습니까."라고 임금에게 아뢰었던 한 신하의 진언(進言)은, 역사가 국정(國政)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의미를 일깨우기에 충분하다. 즉, '직필(直筆)'과 '춘추필법(春秋筆法)'으로 대표되는 역사 기술은 국가 정책의 옳고 그름을 살피는 감시자인 동시에, 임금과 신하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나라가 영원히 지속하게 하는 동력원인 것이다. 역사를 통해 지금 행동이 당대 세인(世人)의 냉철한 평가를 받고, 오늘의 행적 하나하나가 후인(後人)의 엄중한 판결을 기다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역사 가운데 국가 차원에서 편찬하는 공식적인 사서(史書)가 바로 '실록(實錄)'이다. 국왕이 행한 정사(政事)를 중심으로 국가 행정 전반에 관한 내역을 연월일 순서로 기록한 편년체(編年體) 형식의 당대사(當代史)가 실록이며, 이 실록에 수록된 내용은 추후 기전체(紀傳體) 형태의 '정사(正史)' 편찬시 기초 사료(史料)가 된다.

본조(本朝)도 엄연한 국가이니, 조정에서 실록을 찬수(撰修)하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비록 왕의 재위 기간 내에 편찬되었고 승정원(承政院)이 찬술에 직접 관계하였다는 점에 있어 일부 미비점이 있기는 하나, 승지(承旨)도 또한 사신(史臣)이고 실록청(實錄廳)에서 제8권(第八卷)부터 찬수를 본격 전담하였으며, 교정(校正)과 교열(校閱)을 거쳐 인행(印行)하는 것은 비로소 왕이 승하(昇遐)한 이후이므로 초기에 편찬된 제1권부터 제7권까지의 실록 초본(草本)은 시정기(時政記)의 일종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다. 이제 그간 편찬된 실록과 문헌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후, 한 책(冊)으로 정서(正書)하여 간행(刊行)한다.

역사를 상세하게 기술하여 널릴 알릴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내용을 수록할 경우에, 사건 변화가 많고 전후 관계가 복잡하므로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래서 본조 5년 역사의 주요 사건을 간추려 '사조연표(似朝年表)'를 수록하였다.

실록 제1권부터 제20권까지를 제1책(冊)으로 간행하는데, 한 권이 10일간 기록에 해당하므로 약 6개월 보름 동안의 내역이다. 반년(半年)치 기록에 대체로 한 책이 되기에 맞춤인 분량이므로, 다음 인행을 기약할 수는 없으나 20권 단위로 펴내는 것이 여러모로 합당하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사조실록(似朝實錄)' 제1권부터 제20권까지 20편(篇)을 본문(本文)으로 수록하였다.

본래 실록이라는 것은 한 임금의 재위 기간의 사적(史籍)인데, 실록 제20권은 개국610년(開國六百十年) 3월 초10일자 기사(記事)가 마지막이다. 그래서 그 이후 대강의 역사를 파악할 수 있도록 교서(敎書)와 윤음(綸音) 전편(全篇)인 15편과 중요한 전교(傳敎) 2편을 뽑아 '교서윤음(敎書綸音)'이라 수록하였다. 연표와 대조하면 국정 방향, 역사 추이 등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법전의 조문(條文)은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나라를 구성하는 기틀 가운데 하나이다. 성종조(成宗朝)에 마련된 '경국대전(經國大典)'이 국가 체계와 정체성 확립에 중추적 영향력을 발휘하였다면, 창국(昌國)[각주:1] 이후에는 '창국대전(昌國大典)'이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래서 법전 시행 방침을 표명한 대전(大典) 서문(序文) 등 3편을 '창국대전서(昌國大典序)'에 수록하였다.

조정과 민간의 공론(公論)을 두루 수렴한 끝에 본조 제15대 국왕인 광해군(光海君)을 개국611년 11월 15일에 추복(追復) 후, 종묘(宗廟) 영녕전(永寧殿)에 신위(神位)를 모셨다. 묘호(廟號)를 '혜종(惠宗)'이라 하였는데, 혜종대왕 복위는 본조가 이룩한 대표적 사업이다. 그래서 행장(行狀), 시책문(諡冊文) 등 4편을 '혜종경렬대왕문서(惠宗景烈大王文書)'에 수록하였다.

본조에서 역사적 인물 2인(人)의 의기(義氣)와 충절(忠節)을 기려 시호(諡號)를 내리고 관직을 추증(追贈)하였으니, 충의공(忠毅公) 윤봉길(尹奉吉)과 충경공(忠敬公) 최익현(崔益鉉)이 그들이다. 시호를 의정(議定)하기에 앞서 반드시 행장(行狀)을 짓도록 하였으므로, 충의공과 충경공의 행장이 있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이 행장 2편을 '행장록(行狀錄)'에 수록하였다.

본조에서 을사오적(乙巳五賊)의 관작(官爵)을 추탈(追奪)하고 죄책비(罪責碑)를 경도(京都)에 세웠다. 을사오적 논죄(論罪)는 해당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인 동시에 본조 형정(刑政)의 개략을 보여준 것이다. 그래서 '을사오적신죄책비문(乙巳五賦臣罪責碑文)'을 수록하였다.

창국 이래 본조의 활성화와 조정 각급 사무에 노력한 신하들이 적지 않았다. 이들의 공로(功勞)를 살펴 개국612년 7월 28일에 정공신(正功臣) 11인과 원종공신(原從功臣) 15인을 책봉(冊封)하였다. 그래서 책봉 의미와 녹훈(錄勳) 명단을 담은 3편을 '창국공신(昌國功臣)'에 수록하였다.

창국 이래 만5년간 호적신고(戶籍申告)를 한 백성이 대략 2,800인이다. 그 가운데 사망(死亡) 후 소정의 신고를 마친 인원이 약 160인이며, 이들 중 드러나는 활동이 있었던 인물이 절반에 달했다. 그래서 생몰자(生沒者)의 간략한 전기(傳記) 82편을 '인물략전(人物略傳)'에 수록하였다.

창국 이래 관직에 진출한 백성이 모두 235인이다. 그 가운데 당상관(堂上官)의 지위에 직접 오르거나 사후 추증된 인물이 15인이다. 특히 정2품 이상의 신하에게는 시호를 내리는데, 시호를 위해서는 먼저 행장이 있다. 그래서 이 행장 3편을 '인물행장(人物行狀)'에 수록하였다.

어떤 인물의 평생 행적이 사적(史的) 혹은 사적(私的)으로 완결된 평가를 받는 것은 그 인물이 죽은 이후의 일이다. 업적이 있다면 칭송이 뒤따르는데, 생전 관직이 높고 흠모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층 빛을 발한다. 그래서 이 비문(碑文) 3편을 '신도비명(神道碑銘)'에 수록하였다.

이외에 방목(榜目), 현황, 기록, 후기(後記) 등 19편을 '부(附)'에 수록하였다. 따라서 본 서문[序]을 포함하여 전체 159편, 약 57만 자(字)로 '국조실록(國朝實錄)' 제1책을 인행한다.

개국615년 정월, 유사(有司) 선성후인(宣城后人) 김하은(金河銀) 근서(謹序)


  1. 나라의 창성(昌盛), 번창(繁昌). 개국609년 8월 15일의 고묘(告廟) 이후를 의미한다. 이하 주석은 생략.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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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5.25 00:28 | 수정/삭제 | 쪽글 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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