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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제목의 상편 글(링크)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이번 하편에서는 충청병마절도사영 부속 건물인 비장청과 병마영의 전체적인 건물 배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충청도 병마절도사영 비장청(裨將廳) 예나헌(禮羅軒)
4번 그림 - 충청도 병마절도사영 비장청 (청주경찰서 청사 시절)


위 4번 그림은 충청도 병마절도사영 동쪽에 있던 비장청(裨將廳) 건물 도면과 사진입니다. 상단 도면은 국가기록원에 있는 1919년 4월에 제작된 충청북도 청사 증축 공사 배치도의 일부이고, 하단 사진은 청주경찰서(淸州警察署) 및 청주지방재판소를 담은 사진엽서[繪葉書, 그림엽서]입니다.

왼쪽 위 도면에는 비장청 건물 평면이 직사각형 형태로 되어 있는데, 하단 사진을 보면 당시 경찰서 건물이 본래 엎어진 ㄷ 자 평면의 한옥 건물을 일부 확장한 상태(지붕 연장)이기 때문에 실제 건물(전통 한옥) 규모를 오른쪽 위 도면처럼 정면 7칸[間], 측면 3칸의 전체 18칸 정도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42.7평', '36.8평' 등의 숫자는 증축 공사 도면에 기초하여 추정한 면적입니다.

비장청은 1779년(정조3)에 간행된 『청영영지(淸營營誌)』에 의하면 22칸 규모였으며, '예나헌(禮羅軒)'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었습니다. 1760년경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 병마절도영 공해(公廨, 관아) 항목에는 비장청이 18칸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하단 사진의 분홍색 추정선을 참고하면 19세기 후반 및 대한제국 시기 비장청 건물은 18칸으로 판단됩니다. 150여 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는 동안 여러 차례 증축, 개축, 중건이 이루어졌을 것이기 때문에 1779년 영지(營誌)의 22칸 기록은 크게 문제 되지 않습니다.

청주경찰서는 1906년 7월에 충주경찰서 청주분서(淸州分署)로 개설되어 1908년 2월부터 병마절도사영 경내 건물에 소재하다가 1915년 12월에 신축 부지로 이전됩니다. 경찰서 사진 옆의 청주재판소는 1908년 3월에 설치되어 무심천(無心川) 서쪽의 용화사(龍華寺)를 임시 청사로 있다가 1909년 11월에 위 사진에 보이는 신축 청사로 이전하였기 때문에, 이 사진엽서는 경찰서와 재판소 위치가 겹치는 1909년 11월에서 1915년 12월 사이에 촬영 및 발행된 것으로 보입니다. 배경 나뭇잎을 감안하면 겨울철을 제외할 수 있겠네요. (용화사는 상편에서 언급된 1937년 병마영 운주헌 건물 낙찰 사찰입니다.)

비장청에 근무하던 비장(裨將)은 관찰사(觀察使), 절도사(節度使), 유수(留守) 등 고위 지방 관원이 거느리는 인원으로, 해당 장수(지휘관)을 보좌하는 일종의 참모(參謨)입니다. 명확한 업무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었고 관찰사, 절도사 등이 지시하는 이런저런 일을 담당하거나 특별한 사업, 행사 등이 있을 때 각 업무를 전담 또는 분담합니다. 비장청을 다른 말로 막부(幕府)라고 하였는데, 막료(幕僚, Staff)가 있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전주 전라감영, 해주 황해감영, 원주 강원감영, 함흥 함경감영 등의 비장청도 ㄷ 자 건물이었음을 보면, 건물 외형만 봐도 "여기가 비장청이로군" 라고 짐작할 수 있도록 대체로 비슷한 형태로 건축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닌 경우도 많지만요. 그런 면에서 동래도호부 동헌 건물 배치(링크) 글에서 살펴본 동래 비장청(찬주헌) 위치 및 평면도 추정의 정확도가 높아집니다.


청주 소재 충청북도 도청 일대 지적도 (1913년)
5번 그림 - 충청북도 청주 도청 인근 1913년 지적원도


위 5번 그림은 1913년 측량 청주 지역의 지적원도(地籍原圖) 위에 병마절도사영 및 청주 동헌(東軒) 건물군을 표기한 것입니다.

좌측 상단은 1917년 지형도입니다. 상편 글의 1번 그림 '청주 충북도청 건물 배치도'에 있는 운주헌, 통군루, 내아, 폐문루(정곡루), 비장청(예나헌) 등의 병마영 주요 건물이 모두 표시되어 있습니다. 노란색 화살표로 강조된 부분입니다. 운주헌 북쪽에는 충청북도 장관(長官, 도지사) 관사가 있었고 청주 동헌인 청녕각(淸寧閣)은 충북 경찰을 관장하던 충청북도 경무부(警務部)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당시 군청은 일제가 각 지방의 재정을 장악하기 위해 설립한 재무서(財務署)의 신축 건물에 있었습니다. 본래 동헌 관청(官廳, 관청 주방) 자리입니다. 참고로 경무부는 1919년에 경찰서가 있던 비장청 공간으로 이전됩니다.

병마영 일대 각 건물은 상편 글의 충청북도 도청 건물 배치도 및 『여지도서』 수록 지도, 18세기 후반 제작 「청주읍성도(淸州邑城圖)」, 기타 사진 자료 등을 참고하여 추정 배치한 것입니다. 비장청이 있는 옅은 노란색 채색 지역은 전술한 것처럼 1908년부터 1915년까지 경찰서로 활용된 구역이었습니다. '가' 지역에 있던 경찰서는 1915년 12월에 '나' 지역으로 신축 이전합니다. 용두사지(龍頭寺址) 철당간(鐵幢竿)이 신축 경찰서 부지 내에 있었으며, 경찰서 동쪽에 재판소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장관 관사가 들어서는 운주헌 북쪽 지역의 '대나무숲'은 이인좌(李麟佐, 1695-1728)의 난(亂) 기록을 감안한 추정입니다.


초록색 화살표로 표시된 회색 건물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0호인 망선루(望仙樓)입니다. 원래 동헌 북쪽에 있었는데, 일제가 그곳에 무덕전(武德殿)을 신축하자 다른 곳으로 이전되었다가 2000년에 병마절도사영, 즉 현재 청주 중앙공원(中央公園) 자리로 이전되었습니다. 망선루 누각 절반 정도가 원래 운주헌 터에 걸쳐 있습니다.

초록색 화살표 왼쪽의 검은색 화살표 표시 지점에는 내서문(內西門)이 있었습니다. 청주읍성 서문에서 병마영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던 작은 문입니다.

빨간색 화살표는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도청의 행랑입니다. 상편 1번 그림에서 이어진 (경찰서 구역의) 창고 부분으로, 병마절도사영 시절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파란색 화살표는 2011년 우리은행 청주지점 부지 유적 발굴조사 결과 드러난 제1호 우물 위치이며, 우물[井] 표시 바로 왼쪽 아래의 붉은 점은 제2호 우물 자리입니다. 발굴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제1호 우물은 조선시대, 제2호 우물은 고려시대 이전 축조입니다.


보통 군현(郡縣)에서는 동헌 앞에 2층 문루(폐문루)가 있었지만, 청주에는 동헌의 정3품 목사(牧使)보다 높은 품계의 종2품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가 있었기 때문에 폐문루(영문, 원문)가 병마절도영 앞에만 있고 동헌(청녕각)은 단층의 외삼문(外三門)만 갖추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충청북도 청주시 중앙공원 항공사진 (병마절도사영 주변)
6번 사진 - 충청북도 청주시 중앙공원 항공사진 (충청병마영 일대)


위 6번 사진은 5번 그림에서 추정한 주요 건물 배치도를 2021년 촬영 항공사진에 겹친 것입니다.

과거 충청도 병마절도사영 부지의 상당 부분이 현재 청주 중앙공원입니다. 압각수가 바로 보이고 그 아래에 충북 유형문화재 제15호 영문(營門)인 정곡루(正鵠樓)가 있습니다. 5번 그림에서 살펴본 초록색 화살표의 망선루 위치와 옛날 청주경찰서가 있던 곳의 철당간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파란색 화살표로 표시한 곳은 은행 건물 신축에 따른 우물 이전 장소(복원 전시 자리)입니다. 실제 발굴 위치는 바로 위 '井' 표시입니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2021년 8월부터 청주 동헌과 병마절도영을 연결하는 상당히 큰 규모로 '청주 중앙역사공원'을 조성하려는 계획이 추진되다가 위 사진 중앙에 보이는 KT 청주빌딩 부지 매입 문제가 예산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일시 중단되는 상황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900억이나 들여서 이런 공원을 조성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조선시대 관아를 복원한다고 해서 그 건물을 보려고 멀리에서 관광하려 방문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솔직히 회의적이기 때문입니다. 청주병영의 경우는 더군다나 운주헌 자리에 망선루가 이미 있고, 나머지 복원 예정 건물은 대개 추정 모습입니다.

조선시대 관청 부지를 확보한 다음 발굴조사를 잘 시행하고, 주변 경관을 해치지 않으면서 옛날 건축물이 절대 없었을 곳에 작은 전시관 또는 기념관을 만들어서 그 내부에 정밀 모형, 건물 배치도, 역사 자료 등을 비치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나머지 부지를 잔디밭이나 공원으로 둔 상태에서, 이 글에서 다룬 비장청 사진과 같은 관련 자료가 확보되면 면밀한 검토를 거쳐 하나씩 원위치에 제대로 짓는 것이죠. 그래야 '복원'입니다. (어쩌다 보니 또 관아 건물 복원 문제를 언급하게 되었네요. 전국 각지에 무분별한 복원 사업이 많아 답답한 현실입니다.)



이상 상편과 하편으로 나눠 등록한 청주 소재 충청도 병마절도영 이야기를 마칩니다. 본편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ㄱ) 충청도 병마절도영 비장청 위치, 사진 확인 (운주헌 및 청녕각에 필적할 정도의 큰 건물)
ㄴ) 기타 병마절도영 건물 배치 추정 (및 현재 망선루 소재지와 운주헌 위치가 겹치는 것에서 탄식)


※ 참고 자료 링크 : 사이버 조선왕조 충청병영 - 안내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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