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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에 '경상좌수영 수군 진영에 관한 글(새창 열기 링크)'을 올린 후 어느덧 7개월이 지났습니다. 이어 좌수영에 소속된 여러 수군진(水軍鎭)에 관한 내용을 차례대로 올려볼 예정이었으나 영천읍성 남문, 전라감영 관풍각, 삼척도호부 관아지 등 시급한 이야기를 먼저 게재하느라 많이 늦어졌습니다. 좌수영 진영 터에 관한 고찰 제1편으로 다대포진(多大浦鎭) 관아 건물에 관한 글을 올려봅니다.


추가로 설명하자면, 2020년 10월에 올린 '경상좌수영, 동래도호부, 감리서, 부산진 및 다대포진 객사 이야기 글(새창 열기 링크, 이하 [전편])'에서 간략하게, 그리고 2021년 1월에 등록한 '동래 다대포진성 객사 동헌 이야기(새창 열기 링크, 이하 [중편])' 글에서 상세하게 동래 다대포진 진성(鎭城)의 동헌(東軒) 및 객사(客舍) 건물에 관해 살펴봤습니다.

[전편]에서 프랑스 장식미술관 소장 디지털 사진 자료를 토대로 다대포진 전경 및 객사 건물에 관해 11번 이미지를 중심으로 알아봤고, [중편]에서는 몰운대(沒雲臺) 지역에 현재 존재하는 부산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건물이 과연 다대포진 동헌일까 객사일까 하는 부분을 한층 심도 있게 추적했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현존 건물이 객사일 가능성을 타진하면서 반대 의문부호를 내거는 것으로 마지막 결론을 내렸었죠.

이번 글은 앞서 게재한 글의 연장선에 있는 다대진(多大鎭) 관아 건물, 즉 동헌과 객사 이야기에 관한 후속편이자 최종판(?)입니다.

다대진성 전경 - Village coréen 1889
1번 사진 - 경상좌수영 다대포진 1889년 전경


위 1번 사진은 프랑스 국립도서관 전자도서관(la Bibliothèque Numérique, 디지털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1889년(고종26) 다대포진 전경 사진입니다(사진 링크는 본문 마지막 참조). 사진 뒷면에 'Village coréen, 1889'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영어로는 'Korean village(한국 마을)'를 의미하며, [전편]과 [중편]에서 살펴봤던 프랑스 장식미술관 사진의 고해상도 버전입니다. 사진을 확대하면 기왓장 수를 헤아릴 수 있을 정도입니다. 유리건판 사진을 그대로 인화한 원본이 아닐까 하는데, 세계 어딘가에 건판도 실존하면 좋겠네요.

사진 중앙에 다대포진의 객사 '회원관(懷遠館)' 건물이 보입니다. 정면 5칸[間], 측면 3칸의 합계 15칸 건물이며, 문헌 자료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규모입니다. 객사 앞에 원문(轅門) '진남루(鎭南樓)'가 있고, 객사 뒤로 임진왜란 때 순절한 다대포수군첨절제사 윤흥신(尹興信, 1540-1592)의 제단인 윤공단(尹公壇) 정문과 비석(윤흥신 순절비)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원문은 군영의 정문인 영문(營門, 軍門)을 의미합니다.

빨간색 화살표는 다대진성의 북쪽 체성(體城)이며, 검은색 화살표는 (다대진 관아 건물 뒤로 북쪽 성가퀴와 이어지는) 비탈이 꽤 넓은 면적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경주객사 동경관 전라좌수영 객사 진남관 해주객사 안서관
2번 사진 - 조선시대 객사(客舍) 사진 및 도면


위 2번 사진은 조선시대 객사 자료입니다. 가장 위에 있는 경주객사(慶州客舍) 동경관(東京館)과 같은 형태가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객사(객관) 건물입니다. 지방 각급 고을에 있던 객사 대부분은 이러한 모습으로 건축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객사가 이처럼 중앙의 정청(正廳, 殿廳)을 중심으로 동익헌(東翼軒, 東翼廊), 서익헌(西翼軒, 西翼廊) 구조를 갖추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여수(麗水)에 있던 전라좌수영 객사인 진남관(鎭南館)이 동익헌, 서익헌을 두지 않는 정면 15칸, 측면 5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되어 있었습니다. 건물 내부적으로는 정청, 동익헌, 서익헌의 구역 및 용도 구분이 있었으며, 2017년부터 해체 복원 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전편] 글에서 살펴본 것처럼 경상좌수영 객사 망일관(望日館)도 ㄱ 글자 형태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처럼 지방 진영(鎭營, 군부대)에 마련된 객사는 전통적인 형태를 띠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품계가 상대적으로 낮은 첨사영, 만호영은 더욱 그랬고요. 대다수 진영이 변경, 변방에 있었으므로 아무래도 동익헌, 서익헌의 주된 용도라고 할 수 있는, 해당 지역을 방문한 조정 관원의 숙박 수요가 많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황해감영이 있던 해주(海州)의 안서관(安西館)은 종2품 관찰사가 있던 감영(監營)임에도 진남관과 비슷한 팔작지붕 객사 건물로 되어 있었습니다. 육군, 수군 등 군영과 달리 관찰사, 부사, 군수 등의 사또가 근무하던 일반 관아의 객사는 대부분 정청-동익헌-서익헌 형태로 되어 있었는데, 매우 특이한 사례입니다.

1번 사진의 중심 건물이 보통의 객사 형태와 다름에도 다대포진 객사가 분명하다는 내용을 보강하기 위해 몇 자 적어봤습니다. 만약 다대포 수군영 객사를 복원한다면, 위 1번 사진 속 건물 그대로 만들면 됩니다.

1872년 지방도 다대진지도(多大鎭地圖)
3번 이미지 - 1872년 다대진지도


위 3번 사진은 [중편]에서 한 번 살펴봤던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1872년(고종9) 제작 〈다대진지도(多大鎭地圖)〉의 일부분입니다.

당시 글에서도 녹색 점의 ㉠ 건물을 동헌으로 추정하였습니다. 빨간색 화살표를 보면 알 수 있지만 다대진 건물 가운데 '아랫부분'까지 그려진 건물은 이 ㉠ 건물과 객사 단 2동(棟)입니다. 관아 건물들 가운데 가장 위상이 높은 객사, 그리고 그다음의 동헌 건물을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록색 화살표는 동헌 정문인 삼문(三門, 내삼문)입니다. 이 역시 ㉠ 건물이 동헌임을 더 확실하게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헌 북쪽의 빨간색 점 건물은 다대포진 정3품 첨절제사가 생활하는 내아(內衙)로 추정합니다. 내아가 일반적으로 동헌 바로 옆에 위치했고 동헌 또는 동헌과 내아를 아울러 지칭하는 '아사(衙舍)'라는 글자가 표시되어 있기 때문이죠.

㉡, ㉢, ㉣ 등의 건물은 아래 사진에서 살펴볼 건물의 위치 및 모습과 대략 들어맞는 것을 표기한 것입니다. 고지도가 대충 그린 것처럼 보여도 눈에 띄는 부분은 그럭저럭 충실하게 묘사했습니다.


객사 건물이 2번 사진에서 살펴본 전형적인 객사 형태로 그려진 것은 실제 모습을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기호(부호) 내지 랜드마크 이미지로 보면 됩니다. 그 옛날에는 지도에 이런 건물이 그려져 있다면 따로 표시하지 않아도 누구나 '객사'라고 인식했으니까요.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던 옛 사람도 지도를 보면 "성 가운데 객사가 있네"라고 했을 겁니다.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포진 성터 옛 사진 분석
4번 사진 - 동래 다대포진 전경 사진 분석


위 4번 사진은 1번 사진을 확대하고 분석한 것입니다.


상단 사진에서 검은색 화살표로 표시한 부분을 보면 원문(轅門), 객사 외사문(外舍門), 객사 건물의 기와지붕이 모두 양성바름(석회반죽, 회반죽)으로 마감 처리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외 건물은 모두 일반 지붕입니다. 보기에 따라 이 외사문이 원문 오른쪽(동쪽)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지붕이 양성바름인 것을 볼 때 객사 정면 진입로 자리에 있는 객사 외사문 또는 내사문(內舍門, 내삼문)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본 글에서는 4칸짜리 외사문으로 추정합니다.

상단 사진에서 빨간색 화살표로 표시한 부분은, 하단 사진에서 초록색 화살표로 표시한 문이 동헌 삼문(三門)임을 보여주는 객사와 동헌 사이의 돌담장 부분입니다. [중편]에서는 이 문을 객사 외사문으로 추정했었습니다. 해상도 높은 사진으로 보니 아니었네요.


하단 사진은 각 건물의 지붕 크기(규모)를 추정한 것입니다. 암기와, 숫기와 숫자가 잘 식별되므로 이를 기재했는데, 사진 왼쪽 진한 부분은 다른 전경 사진과 합성한 것이라서 해상도가 떨어져 ㉣ 건물을 39에서 41 사이, ㉥ 건물을 37에서 39 사이로 추정합니다. 참고로 숫기와 숫자가 동일해도 숫기와 크기와 암기와 너비에 따라 건물 규모에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현재 몰운대 건물의 1920년대 사진을 보면 숫기와 숫자가 37이므로 ㉥ 건물과 대체로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진 속 한옥 가운데 지붕 용마루 곡선 형태가 몰운대 건물과 유일하게 일치하는 건물이 바로 ㉥입니다.

초록색 화살표는 3번 〈다대진지도〉에서 살펴봤던 동헌 삼문(내삼문)입니다. 이 문으로 들어가면 첨절제사가 공무를 보던 동헌 건물인 ㉠이 있습니다. 이 건물의 숫기와 숫자가 26개인 것을 볼 때 정면 4칸으로 보이고(기둥도 일부 관측됨), 화살표로 표시한 것처럼 지붕 길이가 긴 것을 보면 객사와 같은 측면 3칸 규모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4x3은 12칸인데, 문헌 기록에 다대진 동헌인 '수호각(睡虎閣)' 규모가 13칸으로 되어 있으므로 건물 뒤쪽으로 1칸 정도 돌출된 공간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아래 5번 그림 참조). 아니면 동서 양쪽 뒤로 반(半) 칸씩 퇴칸(退間, 後退)이 있었을 수 있죠(12+0.5+0.5).

동헌 왼쪽(서쪽) ㉡ 건물은 숫기와 숫자가 33개라서 정면 4칸에서 5칸 사이라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기둥 간격이 다소 좁은 5칸으로 추정하였습니다. ㉣ 건물은 ㉥ 건물과 비슷한 규모이므로 정면 5칸이었을 것입니다.

노란색 화살표는 상단 사진의 객사 외사문입니다. 노란색 객사 외사문과 초록색 동헌 내삼문 사이의 고저(高低) 차이에 유의합니다. 다대진성 부지 자체가 남저북고(南低北高)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어서 동헌과 객사가 상대적으로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원문은 객사 외사문보다 낮은 곳에 있었고요.

다대진 동헌은 ㉠ 건물이며, 현존하는 몰운대 소재 건물은 (㉠도, ㉡도, ㉣도 아닌) ㉥ 건물입니다.

현재 다대동 산 144번지 몰운대 유원지에 있는 건물은 1972년에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면서 '다대첨사청(다대첨사영)'으로 지칭되었고 1978년에 '다대포객사'로 개칭되었으며(일부 기록에는 처음 지정될 때부터 '다대포객사'로 명명), 2015년 3월에 '다대포 객사'로 변경되었다가 2020년 7월에 '다대진 동헌'으로 재차 개칭했지만 모두 실제와 달랐던 셈입니다.

현재 건물을 ㉥라고 추정한 정황 증거를 이어 나갑니다.

다대포진 건물 배치 추정 1번
5번 그림 - 동래 다대포진 건물 배치도 추정 #1


위 5번 그림은 1913년 측량 다대포 지역 지적원도(地籍原圖) 위에 다대진 건물 배치를 추정한 것입니다.

원문(轅門)이 노란색 화살표로 표시한 지역 근처에 있었다고 가정한 후, 1번 사진의 촬영 장소(소실점 위치)와 시선 방향을 감안하여 사진에 등장한 각 건물을 배치한 것입니다. 건물 기호는 4번 사진 기준입니다.

노란색 화살표로 표시한 필지(筆地)인 192번지 형태가 특이해서 원문을 그 자리에 배치한 것인데, 이 추정 배치도는 남문과 원문 사이 간격과 원문과 객사 사이 간격이 [중편]의 2번 이미지와 많은 차이를 보인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원문이 이 지점에 있으면 객사가 빨간색 화살표로 표시한 객사 내사문(내삼문) 지점에 가깝게 있어야 합니다. 객사 외사문이 도로 한복판에 있다는 문제점도 있고요.

동헌 ㉠ 건물이 4번 사진에서 살펴본 것처럼 객사 회원관 왼쪽 뒤 10시 방향에 있습니다. 성내(城內) 건물이 단 2채 그려진 부산대학교 소장 〈동래부산고지도(東萊釜山古地圖)〉를 보면 객사와 동헌이 이러한 형태로 배치되어 있기도 합니다.

㉥ 건물을 '군관청?'으로 기재한 것은 10칸 건물과 4칸 부속 건물을 가진 건물이 1893년(고종39) 『중기책(重記冊)』, 1899년(광무3) 『호수성책』 등의 문헌에 따르면 군관청(軍官廳)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10칸 건물은 군관청 외에도 장관청(將官廳), 이청(吏廳), 관청(官廳) 등이 있지만 4칸 행랑을 갖춘 건물은 군관청이 유일합니다. 또 여러 진영에서 동헌 삼문 또는 문루 바로 바깥에 군관청이 있기도 했습니다.

다대포진 건물 배치 추정 2번
6번 그림 - 동래 다대포진 건물 배치도 추정 #2


위 6번 그림은 원문 위치를 1번 전경 사진 및 4번 확대 사진에 맞춰 북쪽으로 조정한 후, 각 건물을 역시 사진 구도에 따라 배치한 추정도입니다. 몇몇 건물은 빨간색의 한옥 건물 칸으로 표시하지 않고 기와지붕 이미지로 표시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 건물은 현대 항공사진의 몰운대 건물 이미지를 1:1 사이즈로 옮겨 적용한 것입니다.

원문이 북쪽으로 이동하자 그에 맞춰 객사, 동헌 건물도 소폭 이동하였습니다. 용도 불명의 ㉨, ㉩ 건물 위치도 북쪽으로 약간 이동했습니다. 4번 확대 사진을 보면 언뜻 ㉦ 건물이 보이는데, 정확한 위치와 형태를 추정하기 어렵지만 위 배치도에서 ㉤건물 동서쪽 인근에 있었을 것 같습니다.


옅은 보라색으로 채색된 부분은 1913년 지적도 제작 당시 국유지(國有地)입니다. 조선시대 또는 대한제국 시기에는 관유지(官有地)였습니다. 이 국유지 필지에만 다대진 관아 건물이 존재했던 것은 아닙니다. 지적도 작성 시기보다 약 18년 전인 1895년(고종32) 7월에 구식 군대가 폐지되면서 다디진도 폐진(廢鎭)되었는데, 시간이 꽤 흘렀으므로 그동안 다대포진을 이루던 관아 건물이 차례대로 철거되고 일부 필지는 밭으로 전용되거나 민간에 매각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번 사진에서 보이는 기와집 건물은 예외 없이 1889년 당시 다대진 관아 건물이었다고 간주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즉, ㉨과 ㉩ 건물이 있던 곳도 모두 수군(水軍) 다대포진 시대에는 관유지였다고 보면 됩니다.


숫자는 주요 필지의 지번(번지)이며, 북쪽 성벽 아래에 '비탈'을 표시하였습니다. 1번 사진에서 검은색 화살표로 표시한 부분입니다. '샘'이라고 표시된 부분은 [중편] 7번 이미지에서 살펴봤던 '큰샘'입니다.

다대포진 전경 3D 모델링 이미지
7번 그림 - 다대포진 전경 3차원 모델링


위 7번 그림은 기초적인 3D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다대포진 건물 배치를 추정 조망한 것입니다. 1번 사진의 구도에 가깝게 화면 구도를 유지한 후, 사진과 흡사한 모습이 될 때까지 각 건물을 이동시켰습니다. 지극히 초보적인 모델링이라서 지형 고저 차이와 건물의 세부 형태가 미흡하게 적용되었으나 개별 건물의 사진상 위치를 확인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습니다.

건물 배치를 마친 후, 위에서 내려다본 평면도를 확인하면 하단 그림과 같습니다. 이 그림을 1913년 지적도 위에 배치하니 비슷하게 들어맞습니다. (3D 전문가 전문 프로그램을 사용해 모델링 한다면 더욱 충실하고 정확한 고증이 가능하겠지요.)

다대포진 건물 배치 추정 최종
8번 그림 - 동래 다대포진 건물 배치도 추정 #3


위 8번 그림은 7번의 3D 배치도를 참작하여 각 건물을 배치한 것입니다. 5번 그림의 배치도 '#1' 및 6번 그림의 배치도 '#2'를 추정할 때 적용하였던, 1번 사진에서 추정한 사진 촬영 장소(각도)도 약간 변경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에 맞춰 건물 위치와 거리를 조정했습니다.

배치도 '#2'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1139번지에 있던 ㉣ 건물과 1137번지에 있던 ㉥ 건물이 1240번지 필지로 옮겨졌고, 객사와 동헌을 비롯한 주요 건물이 모두 약간씩 북쪽으로 이동되었다는 것입니다. 동헌 삼문이 동헌 수호각 건물 중심과 직교하지 않는 것은 ㉥ 건물이 동헌 정면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 건물이 없었으면 삼문이 조금 왼쪽(서쪽)으로 옮겨져 세워졌을 것입니다.


왼쪽 아래 사진은 1920년대에 촬영된 것으로 알려진 다대사립실용학교 사진입니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태극기 문양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만일 태극기라면 일부 기록대로 1904년 4월 30일에 찍은 것일 수 있습니다. 이 사진을 찍은 장소는 형광색 화살표로 표시한 ㉨ 건물 위쪽으로 보입니다. 다대진포 진성을 찍은 사진을 보면 그 왼쪽 1137번지에는 별다른 건축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1920년대 사진에는 초가 지붕 건물이 있었고요. 다대진 당시에는 군관청 앞 훈련용 공지(空地)였거나 낮고 작은 건물이 여럿 있었던 관유지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사진의 건물 뒤로 돌담 축대가 보이는데, 이는 동헌 삼문 및 행랑채와 다대진 부속 건물이 있던 높은 지대를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윤공단 북쪽에 있는 건물에 '내아?'라고 적었지만 3번 그림의 〈다대진지도〉 내용을 감안하면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아무래도 내아는 동헌 서북쪽이 있었다고 봅니다. 윤공단 위에 있던 이 건물의 용도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네요.

원문 아래에 있는 노란색 마름모는 비각(碑閣)으로 보이는 구조물의 위치입니다. 원문 앞 거리가 다대진 첨사 선정비가 차례로 늘어져 있던 공간이었을 것입니다.

1137번지에 '洞(동)'이라고 표시된 보라색 사각형은 1970년대, 80년대 지도에서 동사무소가 있던 자리입니다. 1137번지 147평이 1922년에 민간에 불하(매각)되었다고 하는데, 어느 순간에 다시 관공서 부지로 사용되었던 것 같습니다. 현재는 이 필지 일부(1137-1)에 다대동부경로당이 있습니다. 지금도 국유지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네요.

경상좌수영 다대포진 터 촬영 항공사진
9번 사진 - 경상도 동래 다대포진 건물 배치도


위 9번 사진은 8번 그림의 다대포진 건물 배치 최종 추정도 '#3'을 최근 항공사진에 합성한 것입니다.

윤공단 터로 표시된 곳은 현재 '순절비 터 표지석'에서 수 미터 아래 지점입니다. 위 추정 배치도가 정확하다는 가정하에 상당히 가까운 위치에 표지석을 마련했음이 확인됩니다. 별포청(別砲廳)은 문헌상의 건물 칸수(건물 8칸, 행랑 4칸)를 참고한 추정이며, 남문 아래 '우물'은 1970년대 지도에 있던 우물 자리(198-1번지)입니다.


왼쪽 아래 사진은 1960년대 다대포 전경 사진 가운데 당시 다대국민학교 부분입니다. 하늘색 화살표로 표시한 건물이 항공사진 지도에서 하늘색으로 표시한 국민학교 시기 신본관(新本館) 및 구교사(舊校舍)입니다. 흰색 지붕이 구교사이며, 항공사진의 신본관, 구교사 위치는 1975년 항공사진에서 확인한 것입니다. 현재 다대초등학교는 2007년에 동북쪽 250미터 위치(다대로 499)로 신축 이전했습니다. 지금 이곳 학교 건물은 부산광역시교육청 유아교육진흥원이 사용하고 있죠.

이들 자료와 1960년대 촬영 다대포항 전경 정면 사진([중편] 글의 8번 이미지)을 참고하여 분석하면 현재 몰운대 소재 건물은 노란색 마름모로 표시한 자리에 있었습니다. 8번 다대진 건물 배치도의 군관청 추정 ㉥ 건물 자리와 겹치는 곳입니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다대진 객사는 다대진성 중앙에 있던 정면 5칸, 측면 3칸의 장대한 팔작지붕 건물이며. 일반 객사와는 다른 형태였다.
2) 다대진 사진, 삼문 위치, 다대진 고지도 등을 종합하면 다대진 동헌은 객사 옆 (정면 4칸, 측면 3칸의) ㉠ 건물이다.
3) 현재 부산광역시 사하구 몰운대 유원지에 있는 10칸 규모 '다대진 동헌' 건물은 다대진 군관청일 가능성이 높다.


여러 자료를 종합한 결과 이 정도로 데이터가 중첩되면 정확도가 꽤 높을 것 같습니다. 객사, 동헌 건물이 별도로 존재하였으며, 건물 규모(숫기와 수)와 용마루 곡선, 실존하던 장소 등이 모두 한 가지 결론으로 모아집니다. 즉, 몰운대 건물은 객사도 동헌도 아닌, 기타 다대진 관아에 속한 어떤 건물이라는 것이죠.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군관청일 가능성이 70%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장관청 25%, 기타 5%, 동헌 0%).

다대진 장교(將校)들이 윤공단 기제사를 주관했다는 『해은일록(海隱日錄)』 기록을 참작하면, 그리고 현재 건물이 다대포에서 몰운대로 이전되던 1970년에 그 건물에서 발견된 윤공단 제향 제복인 부산광역시 민속문화재 제2호 '다대첨사영(多大僉使營) 갑주(甲胄)'를 고려할 경우에는 장관청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부속 행랑 규모가 9칸으로 차이를 보이지만 장관청도 10칸이었기 때문이죠. 다만, 『다대진사례(多大鎭事例)』에는 군관(軍官)을 보내 윤공단에 제사를 지낸다고 되어 있습니다.  낮은 확률이지만 만약 현재 몰운대 건물이 군관청도 장관청도 아니라면, 본래 의례용 갑주가 군관청 또는 장관청에 소장되어 있었는데 이런저런 경로를 거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다대진 청사인 현재 건물에 보관된 것일 수도 있겠죠.


이제 '다대진동헌'이 다시 어떤 명칭으로 바뀌게 될지 기다려야겠네요. 관계 기관에서 언제쯤 이 문제를 인지할지 모르겠지만요. 동헌이 군관청 혹은 다른 명칭으로 바뀐다고 해도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라는 가치는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1825년(순조25)에 중수(重修)된 다대진 유일 건물임에 분명하고, 비슷한 동래도호부 장관청, 군관청이 각각 제8호, 제21호로 등재되어 있으니까요.


※ 다대진 전경 원본 사진 링크 : 프랑스 국립도서관 전자도서관 - 32 phot. vu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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