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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는 1908년(융희2/순종2) 1월 1일부터 대한제국 종언시까지 시행된 관직 증직(贈職) 규정이다. 포달(布達) 제175호에 의한 '증직규례' 개정으로, 이전 규례(1905년 증직규례)와 비교할 때 증직 시행 기준이 대폭 개정되어, 규장각 관직을 증직하는 것으로 제도가 간소화되었다. 1908년 5월 7일자 관보4067호에 실린 내용에 근거하였다. 이미 설명한 '주(註)'는 생략하였으므로, 이전 문서 '대한제국 광무4년 관직 추증규례 (클릭)' 및 '대한제국 광무9년 관직 증직규례 (클릭)'를 참고할 것.
증직규례(贈職規例)
제1조. 증직은 특증(特贈:특별 추증)과 추증(追贈)의 2종(種)으로 정한다.
제2조. 특증은 군공을 세운 자와 전사[軍功及戰亡]한 자와 충효(忠孝), 학행(學行)이 탁월한 자에 한하되, 본직(本職)에 따라 승품 또는 초품[陞品或超品]으로 상당(相當)한 관직[官]을 증직한다. 명을 받들어 사신(使臣)으로 나아가[奉命出彊] 외국에서 사망한 자[身歿異域者]도 또한 같다[亦同]. 단, 제1항의 공로와 행적이 있으되, 본직이 없는 자는 상당한 품계와 관직[品職]을 증직한다.
제3조. 추증은 현재[現] 친임관주1 및 칙임관[親任官及勅任官]의 직에 있는 자와 예전[曾]에 동일한 관직에서 공무를 수행한 자의 죽은 아버지 이상 3대[考以上三代]에 한하여 증직한다.
제4조. 친임관의 선대추영(先代追榮)은 다음의 갑표[左開甲表]에 의하고, 칙임관의 선대추영은 다음의 을표[左開乙表]에 의한다.
제5조. 출계(出繼)한 사람으로 입후된 집안의 선세[后家先世]가 자궁(資窮)주2한 경우에는 태어난 선대[本生先代]에 옮겨 시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제6조. 수증인(受贈人)의 처(妻)는 남편의 직에 따라[從夫職] 법전[典] 규정에 준해 시행한다.
부칙(附則). 제7조. 본령(本令)은 융희2년 1월 1일부터 시행한다. 제8조. 광무9년 4월 29일 주하(奏下) 증직규례는 본령 시행일로부터 폐지(廢止)한다.
다음(左開). 갑표(甲表). 고(考), 규장각대제학(奎章閣大提學). 조(祖), 규장각대제학. 증조(曾祖), 규장각제학(奎章閣提學), 부제학(副提學) 정1품 친임관의 추영은 대제학을 대광보국(大匡輔國) 품계, 대제학을 숭정(崇政) 품계, 제학을 자헌(資憲) 품계로, 종1품부터 정2품 친임관의 추영은 각 관직[已職]에 준하되 대제학을 숭정 또는 자헌 품계, 제학을 자헌 또는 가선(嘉善) 품계, 부제학을 가선 또는 통정(通政) 품계로 한다.
을표(乙表). 고. 규장각제학. 조. 규장각부제학. 증조. 규장각직각(奎章閣直閣). 정2품 이상 칙임관의 추영은 제학을 자헌 품계, 부제학을 가선 품계, 직각을 통정 품계로, 종2품부터 정3품 칙임관의 추영은 제학을 가선 푸몌, 부제학을 통정 품계, 직각을 통훈(通訓) 품계로 한다.
주1) 친임관(親任官)은 황제가 친히 임명하는 관원이다. 정1품에서 종2품 사이의 고위 관료군인 칙임관(勅任官) 중에서도 특별히 중요시되던 대신(大臣)급 관직을 말한다.
주2) 자궁(資窮)은 품계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는 뜻이다. 정3품 당하관 품계(통훈대부, 어모장군 등)를 말하나, 여기에서는 증직될 관직이 정2품일 경우에 생전에 정2품 관직을 지냈거나 증직으로 이미 정2품에 도달한 상황을 의미한다. 양자(養子)로 들어간 양부모[養父母] 집안의 선조에게 증직을 시행할 때 증직을 받는 수증인(受贈人)이 자궁이면 친부모[生父母] 선조에게 대신 증직을 시행한다는 조문 내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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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는 1905년(광무9/고종41) 4월 29일부터 1908년(융희1/순종1) 4월 2일까지 시행된 관직 증직(贈職) 규정이다. 종전에는 법령 명칭이 '추증규례(追贈規例)'였는데, '증직규례'로 개칭되었다. 1905년 6월 1일자 관보3154호에 실린 내용에 근거하였으며, 붉은 글자로 추가 및 삭제된 부분은 1907년(광무11) 4월 10일자 관보3736호의 정오(正誤)로 정정된 내용이다. 이미 한 번 설명한 '주(註)'는 생략하였으므로, 이전 문서 '대한제국 광무4년 관직 추증규례 (클릭)'를 참고할 것.
증직규례(贈職規例)
제1조. 정1품 대광(大匡)으로 의정대신(議政大臣)을 증경(曾經)한 자와 보국(輔國)으로 참정대신과 판돈녕(判敦寧)을 증경한 자는 다음[左開]에 의하여 증직한다[事]. 고(考), 의정부(議政府) 의정대신. 대광(大匡)의 고(考)는 대광 품계, 보국(輔國)의 고는 보국 품계. 조(祖), 의정부 참정대신. 종1품 숭정(崇政) 품계. 증조(曾祖), 각부(各部) 대신(大臣). 정2품 자헌(資憲) 품계.
제2조. 종1품으로 각부부(各府部) 대신, 내대신(內大臣)주1, 시종원경(侍從院卿), 의장(議長), 대학사(大學士)를 증경한 자는 다음에 의하여 증직한다. 고, 의정부 참정대신. 종1품 숭정 품계. 조, 각부 대신. 정2품 자헌 품계. 증조, 각부 협판(協辦). 종2품 가선(嘉善) 품계.
제3조. 정2품으로 첨사(詹事), 학사(學士), 부장(副將), 경(卿), 부의장(副議長)을 증경한 자는 다음에 의하여 부직(附職)한다. 고, 각부 대신. 정2품 자헌 품계. 조, 각부 협판. 종2품 가선 품계. 증조, 비서감승(秘書監丞). 정3품 통정(通政) 품계.
제4조. 종2품으로 부첨사(副詹事), 부경(副卿), 참장(參將), 협판(協辦), 총판(摠辦), 판윤(判尹), 관찰사(觀察使)를 증경한 자는 다음에 의하여 증직한다. 고, 각부 협판. 종2품 가선 품계. 조, 비서감승. 정3품 통정 품계. 증조, 예식원(禮式院) 좌장례(左掌禮). 종3품 통훈(通訓) 품계.
제5조. 수증인(受贈人)이 문과(文科) 급제자로서 홍문관[玉署], 세자시강원[春坊]을 증경한 자이면 대학사, 학사를 품계에 따라 예겸하고[隨品例兼], 산림(山林)주2으로 자의(諮議)주3와 남대(南臺)주4를 증경한 자는 경연관(經筵官)을 품계에 따라 예겸하고, 규장각[閣職]을 증경한 자는 규장각 직함[閣銜]을 품계에 따라 예겸하고, 군함(軍銜)주5을 증경한 자는 부장, 참장을 또한 품계에 따라 예겸한다.
제6조. 정3품으로 부첨사, 부경, 협판, 총판, 부윤, 관찰사를 증경한 자는 종2품 예(例)에 의해 증직한다.
제7조. 군공을 세워 전사한 자[軍功戰亡人]와 충효(忠孝), 학행(學行)이 탁월한 자[卓異者]는 그 본직에 따라[隨其本職] 승품, 증직한다. 명을 받들어 사신(使臣)으로 나아가 외국에서 사망한 자도 같다[奉命出彊身歿異域者同].
주1) 내대신(內大臣)은 궁내부(宮內府)에 속한 칙임관(勅任官) 관직이다. 궁내부 대신을 의미하기도 하나, 여기에서는 통상 시종원경(侍從院卿)이 겸직하는 궁내부 소속 내대신관제(內大臣官制)상의 별도 관직인 '궁내부 내대신'을 의미한다. 국새(國璽)와 어새(御璽) 등을 관리와 고문(顧問) 역할을 담당하였다.
주2) 산림(山林)은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재야에 숨어 사는 선비를 말한다. 특히 학문과 덕행이 뛰어나 국정이나 여론 방향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인물을 의미한다.
주3) 자의(諮議)는 산림을 우대하기 위해 설치한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정7품 관직이다.
주4) 남대(南臺)는 천거로 관직에 나아가 사헌부 관직에 임명된 경우를 말한다. 산림의 주요 출사 관직에 속한다.
주5) 군함(軍銜)은 군사 관계 관직이다. 즉, 무관직(武官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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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는 1900년(광무4/고종37) 6월 21일(양력)부터 1905년(광무9/고종42) 4월 29일까지 시행된 관직 추증(追贈) 규정이다. 보라색 글자 부분은 1903년(광무7/고종40) 10월 19일자 관보2647호의 정오(正誤)로 추가된 내용, 하늘색 글자 부분은 동년 동월 27일자 관보2654호로 추가된 내용, 갈색 글자 부분은 1904년(광무8/고종41) 8월 2일자 관보2894호로 추가된 내용.
별단(別單) 추증규례(追贈規例)
제1조. 정1품 증경(曾經)주1 의정(議政)주2인 자는 다음에 의하여 증직(贈職)한다. 증경 보국(輔國)주3 참정(輔國參政)과 판돈녕(判敦寧)인 자도 이에 의하여 증직한다. 고(考)주4, 의정(議政). 대광(大匡)주5의 고(考)는 대광 품계, 보국(輔國)의 고는 보국 품계를 증직한다. 조(祖)주6, 참정(參政). 종1품 품계. 증조(曾祖)주7, 찬정(贊政) 또는 각부(各部) 대신(大臣). 정2품 품계.
제2조. 종1품 증경 참정, 대신, 대학사(大學士), 의장(議長) 및 경(卿)과 판돈녕(判敦寧)인 자는 다음에 의하여 증직한다. 고, 참정. 종1품 품계. 조, 찬정 또는 각부 대신. 정2품 품계. 증조, 참찬(參贊) 또는 협판(協辦). 종2품 품계.
제3조 정2품 증경 대신, 찬정, 부장(副將), 관각학사(館閣學士)주8 및 경과 지돈녕(知敦寧)인 자는 다음에 의하여 증직한다. 고, 찬정 또는 각부 대신. 정2품 품계. 조, 참찬 또는 협판. 종2품 품계. 증조, 비서원승(秘書院丞). 정3품 품계.
제4조. 종2품 증경 참찬, 협판, 경, 첨사(詹事), 좌장례(左掌禮), 소경(少卿), 동돈녕(同敦寧), 참장(參將), 재판장(裁判長), 전권공사(全權公使), 판윤(判尹), 관찰사(觀察使)인 자는 다음에 의하여 증직한다. 고, 참찬 또는 협판. 종2품 품계. 조, 비서원승. 정3품 품계. 증조, 홍문관시독(弘文館試讀) 또는 장례. 종3품 품계.
제5조. 종2품 증경 찬정, 참찬(參贊), 정3품 증경 협판, 판윤, 관찰사인 자는 각각 그 거친 관직에 의하여 증직한다. 이상 수증인(受贈人)주9의 처(妻)는 남편의 관직에 따른다.
제6조. 수증인(受贈人)이 증경 관각(館閣) 직임자인 경우에는 품계에 따라 겸증(兼贈)한다. 추증 세칙(細則)은 통편(通編)주10을 참고하여 시행한다.
제7조. 증직안(贈職案)은 궁내부(宮內府)에서 주하(奏下)주11한다.
주1) 증경(曾經)은 관직 역임 경력을 말한다. 전직(前職)과 동의어로서, 여기에서의 '증경의정'은 '전현직 의정(議政)'을 의미한다.
주2) 의정(議政)은 의정부의 정1품 관직인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의미한다. 대한제국 시기에는 의정대신(議政大臣)이다.
주3) 보국(輔國)은 정1품 하계(下階)인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품계이다.
주4) 고(考)는 아버지이다. 즉, 증직 시행 대상자의 부(父).
주5) 대광(大匡)은 정1품 최고 품계인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를 말한다.
주6) 조(祖)는 할어버지이다. 즉, 증직 시행 대상자의 조부(祖父).
주7) 증조(曾祖)는 증조할아버지이다. 즉, 증직 시행 대상자의 증조부(曾祖父).
주9) 관각학사(館閣學士)은 규장각의 학사(學士)를 말한다. 관각(館閣)은 홍문관, 예문관, 규장각 관청의 통칭이나, 대한제국 시기에는 규장각 또는 홍문관을 지칭하는 단어로 쓰였다.
주8) 수증인(受贈人)은 증직을 받는 사람을 지칭한다. 즉, 위에서 열거된 의정 이하 증경자의 고(考), 조(祖), 증조(曾祖) 3대(代).
주10) 통편(通編)은 1785년(정조9) 9월에 반포된 [대전통편(大典通編)]이다.
주11) 주하(奏下)는 신하가 황제에게 보고하여 재가(裁可)를 얻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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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조선왕조(http://www.1392.org)에서 역사적 인물의 관직을 추증하는 데 필요한 자료('종합안내 관리편')를 만들 때 육조판서의 서열이 궁금했던 적이 있다.
정2품 판서로 추증(追贈)하더라도, 이조판서로 추증할 때와 공조판서로 추증할 때가 다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의 추증 관직이 판서급인 경우는 대개 '이조판서'였던 것에서 비롯된 궁금증과도 무관치 않다.
추증에 대해 설명하자면, 어떤 인물이 죽은 후에 그 사람의 생전 관직을 올려주는 것이 바로 추증이다. 증직(贈職)도 비슷한 단어인데, 생전에 관직이 있었던 경우는 증직, 관직에 진출하지 못했던 경우는 추증이라고 하는 것 같다(양자간에 명확한 구분이 있는 것은 아님). 가증(加贈)은 추증한 관직을 다시 올려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생전에 통정대부(정3품 품계) 이조참의(정3품 관직)에 있었던 사람을 자헌대부(정2품 품계) 이조판서(정2품 관직)로 추증하면 그 직함은 다음과 같게 된다.
증자헌대부이조판서 행통정대부이조참의 아무개 贈資憲大夫吏曹判書 行通政大夫吏曹參議
자헌대부 이조판서에 증직된[贈], 통정대부 이조참의를 지낸[行] 아무개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사용된 행(行) 자는 행수법(行守法)의 행 자와 용례가 다르다.
물론, 위 직함은 일반적인 표기이고, 문서나 묘비 등에 어떤 식으로 기록할 것인지는 쓰는 사람 마음이다.
통정대부이조참의 증자헌대부이조판서 아무개 이조참의 증자헌대부이조판서 아무개 이조참의 증이조판서 아무개 증자헌대부이조판서 아무개 증이조판서 아무개 증판서 아무개 등등...
아,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관직 표기법에 대해서는 다음에 기술할 날을 기약하기로 하고, 육조판서 서열 이야기로 돌아가 본다.
판서는 오늘날의 중앙 정부부처 장관(長官)에 해당한다. 물론, 그 비중이나 사회적 대우는 오늘날의 장관급 이상이다. 20여 개에 달하는 장관직, 대학 총장(국립대 총장은 장관급), 기타 장관급 위원장, 정무직 공무원 등, 지금은 장관급 자리가 한둘이 아니고 장관보다 더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기업, 기관, 단체장의 직위도 적지 않지만, 조선시대에는 판서급 관직이 달랑 9개에 불과했고 '관직이 출세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중요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정2품인 판서급 관직은 다음과 같다.
1) 의정부좌참찬 2) 의정부우참찬 3) 이조판서 4) 호조판서 5) 예조판서 6) 병조판서 7) 형조판서 8) 공조판서 9) 한성부판윤
이외에도 지돈녕부사, 지중추부사, 지의금부사, 지경연사, 도총관, 대제학 등이 있지만 이들은 대부분 명예직 아니면 겸직이다. 관료들을 우대하기 위해 만든 실무가 없는 관직이거나, 판서들이 의례 겸하는 관직이기 때문에, 통상 판서급이라고 하면 위 9개만 해당된다.
판서는 다른 말로 '정경(正卿)'이라고 하는데, '육경(六卿)'이라고 하면 육조판서이고, 여기에 의정부의 좌참찬과 우참찬, 한성부의 수장인 판윤(오늘날의 서울특별시장)을 더해 '구경(九卿)'이 된다. 판서 아래의, 오늘날의 차관에 해당하는 종2품 참판은 아경(亞卿)이라고 별칭하였다.
삼공육경(三公六卿)에서 비롯된 동양권 전제군주국의 재상 제도는 멀리 중국의 주나라, 한나라까지 그 전통이 소급된다. 사마천의 [사기]나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읽어 본 사람에게는 육경이나 구경이니 하는 단어가 기억에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도 하다 보면 길어지기 때문에 그만 끊고 넘어간다. -_-?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확인되는 구경의 서열은 위에 번호를 붙여 나열한 그대로이다. 실권이 별로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조정의 최고 관청인 의정부에 설치된 좌참찬과 우참찬을 육조판서보다는 앞에 두었고, 판윤은 판서의 한 등급 아래로 보았다.
문제는 동일한 관직 명칭('판서')을 가지고 있었던 육조 내에서의 서열인데, 조선시대 초기인 1418년(태종18)까지는 육조의 순서가 이조, 병조, 호조, 예조, 형조, 공조였으나 그 후부터는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로 굳어졌다.
최고 법전이었던 [경국대전]의 순서가 이전(吏典), 호전, 예전, 병전, 형전, 공전 순으로 되어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 등의 기록에서 조정 주요 관원의 명단을 나열할 때 위 순서대로 직함과 이름이 기록된 경우를 많이 관찰할 수 있다. 공식적인 서열, 즉 의전 서열이 그러했음은 분명하다.
따라서 육조판서의 서열에 관해 더 이상 쓸 내용이 없다. 앞에서 번호를 붙인대로 이/호/예/병/형/공조판서 순서였다고 하면 그만이기 때문.
그러나,
[정조실록] 권44. 1796년(정조20) 5월 28일 임신일 기사에서
이조판서는 서열이 정승 다음이고 호조판서[度支]와 병조판서[司馬]가 그 다음이다.
라는 정조 임금의 비답을 찾을 수 있었다.
예조가 빠지고 병조가 들어간 것인데, 이는 병조과 무관들에 대한 인사권을 지고 있었으므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이조는 문관 인사권을 맡고 있으므로 그 중요성은 다른 판서에 비할 바가 아니다. 호조 역시 막강한 재정권을 행사하므로 중요시되었을 것이다. 즉, 이조, 호조, 병조의 판서는 아무에게나 맡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조는 학업과 의례를 주관하는 관청으로서 문(文)을 중시하던 조선시대에 있어 그 중요성이 결코 낮지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조판서나 병조판서가 실세이기는 하지만, 명예상으로는 호조판서보다 예조판서가 높았어야 하는 것 아닐까?
다음은 [정조실록] 권54. 1800년(정조24) 4월 21일 계묘일 기사에 수록된 조항진(趙恒鎭:1738-?)의 상소문 가운데 일부이다.
옛날에는 명공거경(名公鉅卿:공경대신)의 자식이라도 증직하는 관직은 굳이 이조(吏曹)만 아니라 병/호/공/형조의 관직도 다 줬으며, 선조(先朝) 때 법을 정해 3대를 옥서(玉署:홍문관)에 벼슬한 집안으로 한계를 짓고 그 나머지는 명문거족[名家盛族]이라 해도 다 호/병조의 관직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이 법이 너무 한계가 없어, 품관(品官)을 지내지 못한 먼 시골 사람들도 수직(壽職)으로 동지(同知:동지중추부사)를 지냈을 경우 호/병조의 벼슬을 추증하면 오히려 영광으로 여기지 않으며, 명문가의 자손으로서 응당 증직을 받을 자는 호/병조를 수치로 생각하여 간혹 받지 않는 자도 있습니다.
상소의 요지는, 이조판서로 추증되는 것만을 영예롭게 여길 뿐, 호조판서나 병조판서 증직은 정계를 주름 잡던 명문가는 물론이고 일반 양반가에서도 그리 만족하게 여기지 않거나 오히려 꺼리고 있는 요즘 세태라는 내용이다. 조선 전기 때와 달라진 당시의 풍조를 꼬집고 있다.
헌데, 이 상소에서도 유독 예조만 언급되지 않고 있다. 예조판서는 당대의 지성으로 대표되는 대제학(大提學) 관직을 예겸(例兼:당연 겸직)으로 추증하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주지 않았기 때문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실제로 찾아 보면 예조판서에 증직된 사례도 적지 않고, 이조판서 증직시에도 대제학을 함께 추증하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궁금증만 더해 간다.
판서급의 서열을 추론해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은 신도비, 묘갈(묘비) 등에 기록된 내용을 추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조판서 아무개'라고 비석에 직함이 새겨진 인물이 실제로 어떤 관직을 지냈는지 세부적으로 살펴 보면 당시 각 관직의 사회적 위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예조판서, 형조판서, 좌참찬을 두루 지냈는데, 비액(碑額)이나 비제(碑題)에 대표 직함으로 '예조판서'가 기록된 것이 그 예이다.
아직 몇 건의 사례밖에 확인하지 못했지만, 의정부의 좌참찬이나 우참찬이 판서보다는 덜 영광스러운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던 것 같다. 좌/우찬성이 공식 서열은 판서보다 앞이었지만, 앞서 기술했던 것(의정부 관직이므로 판서보다는 서열을 앞에 두었다는 내용)과 달리 아무래도 직함의 무게가 여느 판서에 미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긴, 판서는 여엇한 한 관청의 장관(長官)이지만 좌/우참찬은 정1품인 영/좌/우의정과 종1품인 좌/우찬성의 뒤를 이어 의정부 관청의 서열 6-7위에 불과하니 그럴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이상의 내용을 조합해 보면, 대체로 육조판서의 의전상 서열이 아닌 실제 서열이나 사회적 지위는 다음과 같았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1) 이조판서 2) 병조판서 > 호조판서 3) 예조판서 4) 형조판서 > 공조판서
추증은 죽은 후에 관직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생전의 실권은 병조판서보다 호조판서가 앞섰을 수 있지만, 명예라는 측면에서는 병조판서가 호조판서 앞에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학식과 품행을 상징하는 예조판서가 그 다음이고, 형조와 공조가 마지막이다. 토목, 공업 분야를 담당하는 공조판서보다는 사법권을 행사하는 형조판서가 높았을 것이다. 판윤보다는 앞이지만.
참고로, 예조는 비록 청직(淸職)에는 들지 못하지만 그에 준하는 급으로 우대되었고, 호조는 많은 사례에 있어 형조, 공조와 같이 취급하여, 호/형/공조를 삼조(三曹)로 묶고 조선 후기에 문과 급제자가 아닌 사람에게도 널리 개방한 바 있다. 호조판서는 재정권을 쥐고 있었으므로 병조판서와 버금갈 정도의 사회적 명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하급 관원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예조판서를 호조판서와 비슷하게 놓거나 오히려 그 앞에 설정할 수도 있겠다.
나중에 다른 문헌이나 자료를 찾게 되면 그때 다시 고증하기로 하고, 이만 '날림글'을 마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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