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일에 올렸던 1편 글(링크)에서 이어지는 비변사 터 이야기입니다. 앞의 글 마지막에 살펴보았던 〈실측도(實測圖)〉에 한글로 주기(注記)를 달아 보면 아래와 같다. 한성부(漢城府) 중서(中署) 정선방(貞善坊)의 '니동(泥洞) 의정부조방지원도(議政府朝房之原圖)'가 도면의 제목이다. 축척은 200분의 1. (1:200) 조선시대 한성부의 주소 체계는 부(部)-방(坊)-계(契)-동(洞)-통(統)-호(戶) 순서로 되어 있었다. 오늘날의 구(區)에 해당하는 부는 중부(中部), 동부(東部), 서부(西部), 남부(南部), 북부(北部)의 5개로 되어 있었는데, 1894년(고종31)에 갑오개혁((甲午改革)) 당시 부를 서(署)로 개칭하여 중서(中署), 동서(東署), 서서(西署), 남서(南署), 북서(北署)가 되었다..
조선왕조의 대표적 궁궐 가운데 하나인 창덕궁(昌德宮), 그 정문인 돈화문(敦化門) 앞에 창덕궁 삼거리 교차로가 있다. 그리고 그 한편에 비변사(備邊司) 터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다. 주소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 5 또는 5-6번지이며, 기념표석에 새겨진 글귀는 아래와 같다. 비변사 터 備邊司 址 조선시대 외적의 방비와 국가 최고 정책을 논의하던 관아 터. 중종 때 창설되어 흥선대원군에 의해 폐지되었음. 비변사의 정확한 설치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존재하지만, 『중종실록(中宗實錄)』에 따르면 1510년(중종5)에 발생한 삼포왜란(三浦倭亂)을 기점으로 1510년 또는 1517년(중종12) 6월경에 설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후 1592년(선조25) 4월에 발발한 임진왜란(壬辰倭亂)을 기점으로 ..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대표적인 서울시내 관광 명소인 '인사동길(Insadong-gil)'은 남쪽으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仁寺洞), 북쪽으로 역시 종로구의 관훈동(寬勳洞)에 걸쳐 있다. 인사동길의 북단, 그러니까 율곡로(栗谷路)와 우정국로(郵政局路)가 만나는 안국동(安國洞) 사거리에 인접한 공간에 '북인사마당(北仁寺마당)'이 있는데, 그곳에 충훈부 터의 위치를 알리는 표지석과 해방병단 결단식 터 기념석이 설치되어 있다. (아래 지도 참고) 1번 지도 - 현재 지도상의 충훈부 터 위치 (Daum 지도) 충훈부(忠勳府)는 조선시대 관청의 하나로서, 나라에 공을 세운 신하를 지칭하는 공신(功臣)을 우대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본래는 한성부 북부(北部) 광화방(廣化坊, 현재의 종로구 원서동 일대, 즉 창..
지난 7월에 올린 '조선시대 공조 청사...' 제목의 글에서 조선왕조 공조(工曹) 당상대청(堂上大廳) - 대한제국 통신원(通信院) 청사의 촬영 사진을 살펴보았다. 당상대청은 말 그대로 공조의 당상관(堂上官, 국사를 논하는 정당 위에 올라 앉을 수 있는 고위 관료)인 판서(判書, 정2품, 오늘날의 장관), 참판(參判, 종2품, 차관), 참의(參議, 정3품 당상, 차관보) 관원이 근무하는, 대청(大廳, 큰 마루)을 갖춘 건물이다. 비록 건물 전면부의 대청과 주춧돌 및 기둥 부분이 대한제국 시기에 유리창호를 갖춘 벽면 형태로 개조되면서 외형이 많이 변하기는 했지만, 조선시대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 6개 청사의 중심 건물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정면에서 촬영된 사진 자료였다. 공조 당상대청 사진..
현재까지 확인 가능한 자료를 토대로 경복궁 광화문 앞길, 즉 세종로(世宗路, 세종대로, 광화문로)에 위치했던 조선왕조-대한제국 시기의 관청 건물 배치도를 만들어 보았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확대됨) 각 관청별 구역 및 건물의 위치 오차는 수 미터 이내라고 보면 된다. 참고로, 조선시대에는 이 길(세종로)을 육조거리[六曹街], 육조전로(六曹前路), 광화문전로(光化門前路, 광화문 앞길) 등의 명칭으로 불렀다. 이조(吏曹), 호조(戶曹), 예조(禮曹), 병조(兵曹), 형조(刑曹), 공조(工曹) 등 6개[六曹] 관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청사 배치도를 만들 때 참고한 주요 자료는 아래와 같다. 1) 광화문외제관아실측평면도(光化門外諸官衙實測平面圖), 1908년경 2) 경성광화문통관유지일람도(京城光化門通官有地一覽圖)..
이 사진은 대한제국 시기에 촬영된 한성부(漢城府) 관청의 청사 사진이다. (사진 제일 오른쪽에 등장한) 외국인이 한성부 청사를 방문한 후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데, 많은 자료나 논문, 문헌에서 이 사진을 광화문 세종대로(육조거리)에 있던 한성부 청사인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실제는 돈화문(敦化門, 서대문) 밖, 지금의 서울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3, 4번 출구 인근에 있던 경기감영(京畿監營)의 본청인 선화당(宣化堂) 건물이다. 즉, 한성부 청사가 (사진을 촬영하던 1902년부터 1908년 사이의 어느 시기에) 예전 경기감영이 있던 자리로 옮겨 있었던 것이다. 경기감영은 경기관찰부(京畿觀察府)로 개편되어 1896년(고종33)에 이미 수원(水原) 화성행궁(華城行宮)으로 이전한 상태였다. ※ 위 한성부 청사 사..
조선왕조 정치 행정의 중심 거리는 지금의 세종로(世宗路, 세종대로, 광화문로)였다. 이 거리는 조선시대에 이조(吏曹), 호조(戶曹), 예조(禮曹), 병조(兵曹), 형조(刑曹), 공조(工曹)의 6개 관청이 있었다고 해서 육조거리[六曹街] 또는 육조대로(六曹大路), 육조전로(六曹前路)라고 불렀으며, 광화문전로(光化門前路)라 호칭하기도 했다. 이들 6조 관청 이외에 의정부(議政府), 중추부(中樞府), 사헌부(司憲府) 청사가 있었고, 고종 연간에 경복궁을 중건한 직후에는 삼군부(三軍府) 청사가 자리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 구한말 - 대한제국기 - 일제강점기에 이 육조거리 일대를 촬영한 사진들이 제법 전해지고 있는데, 대부분 원거리에서 찍은 것들이거나 세종로 도로를 중심으로 찍은 것이기에 육조 관청의 실제 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