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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거리 의정부(議政府) 청사의 건물 배치 이야기


2016년에 광화문 육조거리(세종대로) 동쪽 상단에 있었던 의정부(議政府) 청사의 배치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있었다. 아래 사진은 그해 3월 초에 확인한 것으로, 의정부 본청의 건물인 정본당(政本堂) 사진이다. 출전은 콘스탄스 제인 도로시 테일러(Constance Jane Dorothy Tayler)[각주:1]의 1904년 간행 저작물 『Koreans at home; the impressions of a Scotswoman』.

의정부 본청 건물 정본당(政本堂)의정부 정본당(政本堂) - War Office, Koreans at Home (1904)


2016년 8월경 의정부 발굴 착수에 관한 기사가 쏟아질 때 기사에 등장했던 자료이기에 의정부 청사에 관심을 가진 사림이라면 이미 익숙한 사진이다. 『Koreans at home』의 16면에 'WAR OFFICE, SEOUL'이라고 실려 있지만, 군권을 담당하던 군부(軍部), 병조(兵曹), 원수부(元帥府), 예전 삼군부(三軍府) 등의 건물이 아닌, 의정부의 중심 건물인 정본당이다.

정본당의 또 다른 정면 촬영 사진인 '경기관찰부(京畿觀察府) 선화당(宣化堂)'[각주:2] 이미지와 비교하면 지붕의 서까래 숫자와 기왓골 수가 정확히 일치하며, 뜰(마당)에 심어진 묘목이 약 20~30년간 자란 모습도 서로 비교되기 때문이다. (이 사진은 바깥 기둥에 벽을 올리고 유리창호를 덧붙인 상태에서 찍은 후대의 사진이 아닌,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에 추후 정본당 복원시 결정적이면서도 거의 유일한 핵심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의정부 청사 배치 평면도 (광화문외제관아실측평면도)광화문외제관아실측평면도 (1908.01) - 조선시대 의정부 터 부분


위 이미지는 1908년 1월경 제작된 〈광화문외제관아실측평면도(光化門外諸官衙實測平面圖)〉의 의정부 청사 부분이다. 도면 제작 당시에는 문관 인사를 담당했던 이조(吏曹) 관청의 후신인 내부(內部) 청사였다.

의정부 발굴에 관한 기사가 나올 때 의정부 청사 배치에 관한 내용도 기사 본문에 실렸는데, 위 이미지의 '추정A'와 같은 형태의 건물 배치를 주장(?)하였다. 반면, 같은 시기에 의정부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던 필자는 '추정B' 형태로 결론을 내렸었다.


의정부 청사의 주요 건물은 정본당, 협선당, 석화당[각주:3]이며, 각각의 용도는 다음과 같다.

정본당(政本堂) : 영의정(領議政), 좌의정(左議政) 우의정(右議政) 공간
협선당(協宣堂) : 좌찬성(左贊成), 우찬성(右贊成), 좌참찬(左參贊), 우참찬(右參贊) 공간
석화당(石畫堂, 석획당) : 여러 재신[諸宰]의 공간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은 정1품 관직이며, 영의정은 조선시대에 가장 높은 관직으로 흔히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 표현된다. 오늘날 국무총리와 비슷하다. 좌찬성, 우찬성은 종1품(부총리급), 좌참찬, 우참찬은 정2품(장관급)으로, 이들 7개 직책은 의정부에 정식으로 설치된 관직이다. '제재(諸宰)', 즉 여러 재신(宰臣)에서 '재(宰)'는 통상 종2품 참판급(차관급) 이상의 신하를 의미한다. 1865년(고종2)에 비변사(備邊司)를 흡수 통합한 의정부에서 겸직으로 근무하던 고위 관료(종2품 또는 최소 정3품 당상관급 이상)[각주:4]를 위한 건물이 석화당이라고 보면 된다.


정본당은 중심 건물이었으므로 제일 위 사진에서처럼 가운데에 위치한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협선당, 석화당(석획당)의 배치가 된다.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협선당, 석화당의 위치를 고증할 수 하나의 근거가 바로 석화당을 건축할 때 남겨진 기록인 「석화당기(石畫堂記)」의 본문 중, '命重修議政府左建一堂名曰石畫諸宰之所'이라는 내용이다. 대략 풀어서 설명하면, '(주상전하께서) 명하여 의정부를 중수하고 좌측에 하나의 당(堂)을 세워 이름을 석화(石畫, 석획)라 하여 여러 재신의 처소로 삼았다' 정도가 된다. '의정부좌건(議政府左建)', '좌건일당(左建一堂)'이 바로 석화당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기에 어떤 건물의 '왼쪽[左]'이라고 하면 건물 앞(대문)에서 건물을 바라보며 왼쪽을 생각하기 쉽지만[위 이미지 '추정B'의 파란색 화살표와 글자 참고],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건물에 앉아서 건물 앞쪽(마당)을 바라볼 때의 왼쪽이 바로 좌(左)가 된다[위 이미지 '추정B'의 빨간색 화살표와 글자 참고].

정본당을 중심으로 하는 세 건물이 정확하게 서향이 아니라 남북 중심축을 기준으로 약 15도 정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북쪽 건물과 남쪽 건물이 각각 (약간이지만) 정본당의 서쪽과 동쪽에 위치하는 것도 좌건(左建)을 풀이하는데 약간 참고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즉, 학계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북쪽에서부터 석화당-정본당-협선당이라는 '추정A' 형태를 의정부 건물 배치라고 결론하고 있는데, 협선당-정본당-석화당의 '추정B' 체계가 보다 타당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2016년 당시 필자 생각이었다. 위 『석화당기』 기록 이외에 다른 문헌이나 발굴조사 결과 등과 같은 어떤 결정적인 증거가 있어서 세 건물의 배치를 '추정A'라고 결론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좌건(左建) 해석에 따라 좌우되는 위 내용과 더불어, 의정부 정본당, 협선당, 석화당 세 건물 배치에 관해 추가로 고려해야 할 점은 아래와 같다.

1) 육조거리(세종로) 동편의 다른 관청, 즉 이조, 한성부(漢城府), 호조(戶曹)의 경우에는 중심 건물(당상대청) 남쪽에 보조 건물(낭청대청)이 있었으므로, 의정부도 중심 건물(정본당) 남쪽에 제1보조 건물(협선당)이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제2보조 건물(석화당)은 북쪽이다. 육조거리 서편의 삼군부(三軍府), 사헌부(司憲府), 병조(兵曹), 형조(刑曹), 공조(工曹) 역시 중심 건물 남쪽에 보조 건물이 위치하고 있었다.

2) 각종 도면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정본당의 남쪽 건물 면적이 북쪽 건물보다 약간 넓었다. 협선당이 석화당보다 지체 높은 건물이었으므로, 남측에 있던 건물이 협선당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만, 협선당은 의정부 고위 관원 4명의 공간이고, 석화당은 이보다 많은 숫자의 여러 신하(20명 내외)가 필요에 따라 근무하는 곳이었으므로 요구 면적 자체는 석화당이 더 넓었을 수 있다. 즉, 건물 등급과 면적을 일치시킨다면 남쪽이 협선당이고, 건물 용도를 생각한다면 남쪽이 석화당이다.

3) 위 사진 '추정A'에서 빨간색 선으로 표시된 부분을 온전히 장대석 다층기단의 1층(하층 1단) 기단으로 간주한다면, 정본당 남쪽 건물 전면의 기단부 면적이 북쪽 건물의 앞의 기단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넓다. 남쪽 건물 앞의 월랑(月廊, 건물 앞 내삼문 부분의 L자 행랑)이 백관(百官)의 서계(誓戒)가 진행되는 공간으로 활용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비슷한 행사를 진행하기 위한 공간상의 필요에 따라 기단부를 넓게 만들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관원이 상주하는 건물(의정부 본직 관원의 협선당)이 그러한 행사 진행과 맞지 않다면 남쪽 건물이 석화당(겸직 관원들인 제재의 공간)이고, 건물 지체에 비례하여 각각의 기단부를 조성하였다면 남쪽 건물이 협선당일 것이다.

알성시은영연도(謁聖試恩榮宴圖)1580년 알성시은영연도(謁聖試恩榮宴圖) - 일본 경도(京都) 양명문고(陽明文庫)


위 그림은 1580년(선조13)는 과거 시험의 급제자를 축하는 연회 모습을 그린 〈알성시은영연도(謁聖試恩榮宴圖, 科擧恩榮宴圖)〉이다. 알성시(謁聖試)는 국왕이 성균관(成均館) 문묘(文廟)에 제례를 지낸 후에 시행하는 특별 과거시험이며, 이 시험에 합격한 급제자 50명의 축하 잔치를 당시 의정부 청사에서 열어 주었다.

건물 정면의 기단 위 동쪽에 문과(文科) 급제자 12명, 서쪽에 무과(武科) 급제자 38명이 각각의 급제 등위대로 앉아 있다. 중앙에 문과 갑과(甲科) 제1인, 무과 갑과 제1인 각 1명, 그리고 동쪽에 문과 을과(乙科) 3인, 병과(丙科) 8인, 서쪽에 무과 을과 6인, 병과 31인이 배치된 것이다. 본래 기단은 빨간색 화살표와 선으로 표시한 부분(2번 이미지의 추정A에도 표시)인데, 무과 급제자 숫자가 많아서 공간 제약상 모두 앉을 수 없었으므로 서쪽에만 받침대(노란색 화살표 부분)를 설치해서 기단부를 대문 방향으로 임시 확장한 것을 알 수 있다.

문과 급제자는 문관(文官)이 되고, 무과 급제자는 무관(武官)이 된다. 문관은 문반(文班), 무관은 무반(武班)이라고 하며, 이 둘을 아울러 양반(兩班)이라고 한다. 또 문관은 조회(朝會) 자리에서 동쪽에 자리하였기 때문에 동반(東班), 무관을 반대로 서반(西班)이라고도 하였다. 이 알성시의 은영연에서도 문과 급제자가 동쪽에, 무과 급제자가 서쪽에 앉아 있었는데, 의정부 건물 대청에서 앉아 정문을 바라볼 때의 좌우(동서) 위치에 들어맞는다.


중앙의 의정부 대청(大廳) 왼쪽에 파란색 화살표로 표시한 부분이 눈에 띈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이어주는 행각(行閣), 행랑(行廊)처럼 좁게 묘사하였지만, 건물 앞에 계단(녹색 화살표)이 보이므로 번듯한 건물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생략된 것일 가능성도 있지만) 대청 오른쪽에는 건물 묘사가 없다.

1592년(선조25) 4월 발발한 임진왜란(壬辰倭亂)으로 대부분의 궁궐, 관청이 손실되었는데, 의정부 청사도 이때 피해를 당하여 그림 중앙의 의정(議政)이 일하던 대청이 불타 사라지고 찬성(贊成)이 근무하던 건물만 남았다. 그래서 그 청사를 의정부 대신(大臣,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처소로 삼았다. 위 그림처럼 의정부의 중심 건물이 본래 두 채였다면, 즉 남쪽에 생략된 건물이 없었다면 전란 후에 남은 하나는 파란색 화살표 건물일 것이다.


1865년(고종2)에 의정부 청사를 중건할 때 각 건물의 건축과 관련한 기록이 『관각류집(館閣類集)』에 남아 있다. 앞서 살펴본 「석화당기」도 『관각류집』에 실린 기문이다. 의정부 건물에 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1) 「정본당중건기(政本堂重建記)」, 「정본당기(政本堂記)」, 「정본당상량문(政本堂上樑文)」
2) 「협선당중수기(協宣堂重修記)」
3) 「좌성당기(佐成堂記)」, 「좌성당상량문(佐成堂上樑文)」
4) 「숙야당기(夙夜堂記)」
5) 「석화당기(石畫堂記, 석획당기)

정본당은 중건(重建), 협선당은 중수(重修)로 구분된다. 중건은 예전 건물의 자리에 다시 짓는 것 또는 원래 건물을 해체 후 재건하는 것이고, 중수는 이미 있는 건물을 주요 구조부는 그대로 두고 일부분만 고쳐 짓는 것(=대규모 수리)이다.

관련 기록[각주:5]에 따르면 임진왜란 이후에 남아 있던 건물은 서벽당(西壁堂)이다. 동벽(東壁), 서벽(西壁)은 관직 서열에 따라 관원들이 앉아 있는 위치를 말하는 것으로, 좌석의 동쪽에 앉는 관직을 동벽, 서쪽에 앉는 관직을 서벽이라 하였다. 의정부의 동벽은 종1품 좌찬성, 우찬성이고, 셔벽은 정2품 좌참찬, 우참찬이다. 가운데 앉는 주벽(主壁)은 정1품 의정(議政).

협선당은 서벽당(西壁堂)을 중수한 것인데, 서벽이 비록 같은 방(房) 안에서 서열대로 앉는 위치를 말하는 것이지만, 건물 자체도 영의정과 좌의정, 우의정이 있던 본청의 서쪽에 있었기 때문에 서벽당이라 이름을 붙였을 약간의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협선당(서벽당)이 정본당 북쪽(우측)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기에. (남쪽 건물이 있었는데 그림에서 생략된 것이라면 그 이름은 동벽당일까?)

의정부 대청(大廳) 외형 추정의정부 대청(大廳) - 협선당, 석화당의 형태 추정


의정부 청사의 배치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확인하던 중, 가장 이상하게 느껴지던 것이 정본당 좌우 건물 2채의 형태였다.

위 이미지에서 1)번은 전통적인 형태의 한옥 건물이다. 용마루를 갖춘 팔작지붕(합각지붕)으로 가장 권위(지체, 위계)가 높은 건물에 주로 사용되었다. 육조거리 청사의 주요 건물(당상대청, 낭청대청)은 모두 팔작지붕 형태였다.

2)번은 1890년대에 의정부 일대를 촬영한 사진[각주:6]에서 정본당 좌우 건물에서만 보이는 형태이다. 당시 의정부를 원거리에서 촬영한 것밖에 없기에 해상도가 매우 낮아서 정확한 외형을 확인하기 쉽지 않지만, 1)번의 팔작지붕과는 분명히 다른 부분이 보인다. 1915년 촬영된 조선물산공진회(朝鮮物産共進會) 사진에도 이러한 지붕 형태가 뚜렷하게 보이는데, 본 문서 첫번 째 사진과 대조하여 건물 원형에 대한 면밀한 추론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참고로, 학계에서는 협선당과 석화당의 정면을 7칸[間] 규모로 추정하고 있지만, 사진 안에 표기한 빨간색 세로줄 숫자 살펴보면 6칸 규모로 보인다. 측면은 3~4칸일 것이다(3칸 유력).

3)번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총독부박물관 유리건판 중 '조선군사령부 부속청사 경기도 순사교습소' 사진 중 하나인 조선시대 사헌부(司憲府) 대청(大廳) 이미지를 참고하여 그려본 것이다. 빨간색 화살표로 표시된 부분이 그것으로, 일종의 가적지붕, 가첨지붕과 같은 형태로 양쪽 지붕에 처마 같은 것을 덧댄 모습이다. 중앙의 정본당과 이어지는 복도각(複道閣)을 위한 추가 구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여러 사진들로 인해 2)번과 비교하면 가능성이 매우 낮다.


의정부 정본당은 1)번 형태가 확실하고, 협선당과 석화당은 2)번 형태인 것으로 보인다. 2)번 형태가 일반적인 관아 건축물에서 보이지 않는 것이고, 대한제국 시기나 일제강점기 시기에 주요 관청의 건물 외형이 유리창호 방식으로 변형되기 이전인 1890년대에 촬영된 사진이기에 정본당 복원은 충분히 가능할지 몰라도 협선당과 석화당 복원은 (건물 순서는 차치하고서라도) 현재로서는 그 외형, 규모, 구조와 같은 실체를 확정하기 어려운 이상 극도로 신중하게 추진 여부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미군정 시기에 훼철된 정본당과 그 남측 건물(석화당?)에 대한 철거 기록(철거된 건물의 이전, 자재 활용, 관련 도면 등)이 미군 당국에 남아 있을 가능성도 있으니, 그에 대한 확인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어서 의정부 터 발굴조사에 대한 공식 결과 보고서가 나왔으면!



※ 가볍게 쓰기 위해 비교적 간단한 주제를 골랐지만, 역시나 글이 필요 이상으로 길어지고 주석도 몇 개 첨가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연습이 필요하네요. 다음에는 더욱 간결한 내용으로 찾아뵙겠습니다.

※ 참고 자료 링크 : 사이버 조선왕조 의정부(議政府) 홈페이지 - 의정부 안내 화면


2019.08.25 - 처음 등록
2019.09.03 - 2번 이미지 하단의 추가 고려 내용 추가 (추가로 고려해야 할 점 세 가지)



  1. 콘스탄스 J. D. 쿨슨(Constance J. D. Coulson)의 결혼 전 이름 [본문으로]
  2. 1934년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 발행 『경성부사(京城府史)』 제2권 72면 수록 사진 [본문으로]
  3. 석화당의 한자 '石畫堂'에서 '畫'는 그림 화, 그을 획의 두 가지 뜻을 지닌다. 본 문서에서는 어감이 자연스러운 석화당으로 표기하였으나, '치밀하고 원대한 계책' 한자의 어원을 참작하면 본래 명칭(한자음)은 석획당이었을 것이다. [본문으로]
  4.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의 판서와 3영(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의 대장, 총융사, 4도유수, 대제학, 호위대장, 좌우포장 등 시기에 따라 20명 내외 (정원은 없음) [본문으로]
  5. 「협선당중수기(協宣堂重修記)」, 「임총부기회(臨總府記懷)」, 「어제중서당술성사(御製中書堂述盛事)」,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考)』 경도(京都) 항목 등 [본문으로]
  6.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 Isabella Bird Bishop (1987) 및 『서울의 추억(Souvenir de Séoul, Corée : 1900)』, Maurice Courant (1900) [본문으로]
석화당, 석획당, 육조거리, 의정부, 정본당, 협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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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처럼 | 2019.09.28 10:14 | 수정/삭제 | 쪽글 달기
귀한 글 감사합니다. 찾는 자료가 있어 검색하다 들어와 읽게 되었어요. 의정부만큼은 정궁 안에 있을 줄 알았는데 육조등과 함께 외부에 있었군요! 16년에 의정부 청사 터가 발굴되었다니요!! 우와~~역시 서울은 특히 광화문 일대는 역사의 땅이네요!! 보존 발굴과 복원이 순조롭게 무엇보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잘 진행되길 바랍니다. 다시한번 귀한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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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역 장성, 예비역 장군이라는 표현

대한민국 육군 소장(少將) 녹색 지휘관 견장대한민국 육군 소장(少將) 계급장 - 녹색(지휘관) 견장


신문, 방송 등을 보면 '예비역(豫備役) 장성(將星)'이라는 단어가 종종 등장한다.

예비역 장성 모임 OO회, 예비역 장성 초청 토론회, 예비역 장군 인터뷰 등등. 그리고 재향군인회 이야기에도 자주 등장한다. 어떤 경우에는 구체적으로 계급까지 붙여 사용한다. 예비역 소장, 예비역 대장과 같이.

그런데 국군(國軍) 군인사법(軍人事法)과 병역법(兵役法)에서 규정하고 있는 예비역과 퇴역의 차이점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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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사법
[시행 2019. 07. 16.] [법률 제16224호, 2019. 01. 15., 일부개정]

제41조(퇴역)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장교, 준사관 및 부사관은 퇴역(退役)된다. 다만, 제4호에 해당하는 여군이 퇴역을 원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예비역에 지원할 수 있다.
1. 20년 이상 현역에 복무하고 퇴역을 원하는 사람
2. 연령정년에 도달한 사람
3. 전상ㆍ공상으로 인하여 군에 복무할 수 없는 사람
4. 여군으로서 현역을 마친 사람
[전문개정 2011. 05. 24.]

제42조(예비역 편입) 현역에서 전역되는 사람으로서 퇴역되지 아니하는 사람은 예비역에 편입한다.
[전문개정 2011. 0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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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법
[시행 2017. 8. 9.] [법률 제14555호, 2017. 2. 8., 일부개정]

제72조(병역의무의 종료)
① 현역·예비역·보충역의 병과 전시근로역의 병역의무는 40세까지로 하고, 예비역·보충역의 장교·준사관 및 부사관의 병역의무는 「군인사법」에 따른 그 계급의 연령정년이 되는 해까지로 한다. <개정 2016. 5. 29.>
② 제1항에 따른 병역의무기간을 마치면 장교·준사관 및 부사관의 경우는 퇴역이 되고, 병의 경우는 면역(免役)이 된다.
[전문개정 2009.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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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군인 신분이 종료될 때의 선택지는 '예비역 편입' 또는 '퇴역(면역)'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예비역(豫備役)은 현역(現役)을 마친 군인에게 일정한 기간 부여되는 병역(兵役)이다. 예비역에 편입되면 전쟁이 발발하거나 국가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또는 특별한 훈련 기간에 군부대에 다시 소집될 수 있다. 정기적으로 소집 훈련을 받기도 하는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예비군 훈련'이 바로 그것이다.

퇴역(退役)은 문자 그대로 군역(軍, 군 복무)에서 완전히 물러나는[退] 것이다. 병사의 퇴역은 면역(免役)이고 하며, 퇴역 군인은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다시 군대에 소집되지 않는다. (물론 이것은 원칙이 그렇다는 것이고, 절체절명의 국가적 위기 상황이 되면 관련 절차에 따라 다시 무기를 들게 될 수도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일반 병사는 퇴역이 없다. 전역(轉役), 즉 현역을 마치면 역종(種)이 현역에서 예비역으로 전환(煥)되는 것만 있을 뿐이다.

역종은 병역의 종류를 뜻하며, 크게 현역(現役), 예비역(豫備役), 보충역(補充役), 병역준비역(兵役準備役), 전시근로역(戰時勤勞役) 등이 있다.[각주:1] 예전에는 국민역(國民役), 후비역(後備役), 호국병역(護國兵役) 같은 것도 있었다.

1) 현역 : 현역 복무자 (장교, 준사관, 부사관, 징집 또는 자원 입영 병)
2) 예비역 : 현역을 마친 자 (군인사법과 병역법에 따른 예비역 편입자)
3) 보충역 : 현역 자원 중에서 병력 수급 사정에 따라 현역병 대상으로 포함되지 않은 사람
4) 병역준비역 : 징병검사 대기자, 현역 대상 중 입대 대기자 (종전의 제1국민역)
6) 전시근로역 : 현역, 보충역을 수행하기 어려우나 전시 근로소집(전쟁 상황에서의 군사지원 업무)은 가능한 사람 (종전의 제2국민역)

후비역은 예비역을 마친 사람에게 다시 주어지는 2차 예비역(제2예비역)과 같은 것이었고, 호국병역은 출퇴근하는 병사인 호국병을 말한다. 즉, 방위병(防衛兵)으로 널리 알려진 보충역(제1예비역)의 전신이 호국병역이다. 참고로, 예비군 읍면동대에서 근무하는 상근예비역은 현역이 아닌, 예비역 병사이다.[각주:2]


각설하고, 위 군인사법 제41조(퇴역)의 2호에서 '연령정년에 도달한 사람'은 퇴역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전역(현역 복무를 마침) → 퇴역 또는 예비역 편입 → 예비역 편입 후 퇴역 (연령정년 도달시)


직업군인의 정년은 연령정년, 근속정년, 계급정년의 3가지로 되어 있으며, 이들 가운데 어느 하나에 먼저 도달하면 정년이 다한 것으로 보고 (군인사법 제41조 2항에 따라) 퇴역시킨다.

군인사법 제8조의 정년 규정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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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조(현역정년) ① 현역에서 복무할 정년(停年)은 다음 각 호와 같다. 다만, 전시ㆍ사변 등의 국가비상시에는 예외로 한다.

1. 연령정년
원수: 종신(終身)
대장: 63세
중장: 61세
소장: 59세
준장: 58세
대령: 56세
중령: 53세
소령: 45세
대위, 중위, 소위: 43세
준위: 55세
원사: 55세
상사: 53세
중사: 45세
하사: 40세

2. 근속정년
대령: 35년
중령: 32년
소령: 24년
대위, 중위, 소위: 15년
준위: 32년

3. 계급정년
중장: 4년
소장: 6년
준장: 6년

... (중략) ...

[전문개정 2011. 05. 24.]

--------------------------------------------------


연령정년은 흔히 말하는 직장에서의 정년이다. 즉, 나이로 끊는 것이다. 피라미드 구조를 유지해야 하는 군대의 특성상 계급에 따라 연령 정년이 철저하게 차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근속정년은 대령 이하의 장교와 준사관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령 35년은 대령 계급으로 있는 사람은 임관 이후부터 계산해서 35년이 지났으면 (아직 연령정년인 만56세에 도달하지 않았더라도) 퇴역 또는 전역(예비역 편입)시킨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장교가 근속정년이 되기 전에 연령정년에 먼저 도달하기 때문에 거의 적용할 일이 없는 조항이다.

계급정년은 중장, 소장, 준장에게만 적용된다. 예를 들어, 중장 계급으로 있으면서 4년 이내에 상위 계급인 대장으로 진급하지 못하면 (역시 연령정년인 만61세에 도달하지 않았더라도) 퇴역 또는 전역(예비역 편입)시킨다는 뜻이다. 본인보다 늦게 임관한 후배가 먼저 진급하거나 자신보다 직책으로 부임하면 알아서 전역신청서를 내는 것이 일종의 관례이기 때문에 계급정년이 적용되는 경우도 그리 많지 않다.

직업군인은 연령정년과 근속정년(대령 이하 장교), 계급정년(준장 이상 장교)을 동시에 적용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연령정년, 계급정년 적용에는 몇 가지 예외 규정이 있으며, 군인 외에 경찰공무원, 소방공무원 등의 조직도 일부 계급에서 계급정년 제도를 두고 있다.)


여기에서 예비역 장성, 예비역 장군이라는 표현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상당수 직업군인들이 연령정년에 도달할 때까지 복무하다 비로소 전역하는 것이 현실이고, 본인의 뜻과 달리 근속정년, 계급정년 에 먼저 걸리거나 부득불 중간에 전역신청서를 내더라도 그 시점은 연령정년을 불과 몇 년 앞둔 시기이기 때문이다.

만약 예비역에 편입되어 예비역 대장, 예비역 중장, 예비역 소장, 예비역 준장과 같은 '예비역 장성'이 되더라도 현실적으로 1~3년 정도만 경과하면 자연스럽게 연령정년에 도달하여 퇴역된다. 따라서 더는 예비역 장성이라 자칭 혹은 타칭할 수 없게 되는 셈이다.

언론에서 흔히 말하는 '예비역 장성', '예비역 장성단'이란, 한때 잠시 예비역 장성이었던 사람 또는 사람들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대부분의 경우는 '퇴역 장성'이 맞는 말이니까. 출생년도를 하나하나 따져 보면 진짜 예비역 장성도 몇 명 있겠지만.


이번에도 간단한 내용을 참 길게 썼다.



  1. 병역법 제5조(2016년 5월 29일 개정)에 따른 병역의 종류 기준 [본문으로]
  2. 신병훈련소에서의 기초군사교육 기간(5주)에는 현역 신분으로 복무 [본문으로]
군인사법, 병역법, 예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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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필리(刀筆吏)란 무엇인가


도필리(刀筆吏)는 이 블로그의 필명(筆名)이다.

도필리는 칼 도(刀), 붓 필(筆), 아전 리(吏)의 조합이다. 종이가 발명되고 널리 보급되기 이전에 동양에서는 흔히 죽간(竹簡)에 붓으로 글을 썼다. 죽간은 대나무 조각을 말하는 것으로, 형태와 재질에 따라 죽책(竹冊) 또는 목간(木簡)이라고도 한다.

죽간은 대략 아래와 같은 모습이다.

죽간(竹簡) 두루마리죽간(竹簡) 목간(木簡) 두루마리


멀고 먼 옛날 시대를 그린 영화나 사극을 본 사람이라면, 혹은 삼국지(三國志) 게임을 해 본 사람이라면 위 이미지와 비슷한 소품이나 아이템을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죽간에 글을 쓰다가 오탈자가 났을 경우에, 그 글자 부분을 칼로 긁어내 삭제하는 일을 맡은 아전(衙前, 하급 관리)을 도필리라고 하였다. 도필리의 첫 글자 도(刀)가 바로 대나무 조각에 쓴 글자 부분을 긁는 도구를 뜻한다.

예를 들어, 글을 직접 쓰는 관원(상급 관리)이 "여기 잘못 썼네" 하면 도필리가 칼로 글자를 깎아내는 식이다. 또는 상급 관원의 명령을 불러주는 대로 죽간에 글자를 쓰다가 필요하면 고치고 다시 썼기에, 즉 칼과 붓을 모두 한 손에 다루었기에 도필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기록에 따르면 주로 형정(刑政) 업무를 맡은 하급 관리를 지칭한다고도 한다.


글자를 긁어낸 모습을 그려 보면 아래와 같다. 도필리의 칼이 어떤 모양이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깎아냈는지는 고증하지 않았다. 그저 상상으로 그린 것.

도필리(刀筆吏)도필리(刀筆吏)


내가 '도필리'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것은 사마천(司馬遷, BC145?-BC86?)이 각고의 노력 끝에 집필한 『사기(史記)』에서였다.

한(漢)의 전장군(前將軍) 이광(李廣)의 전기인 열전(列傳) 제49. 〈이장군열전(李將軍列傳)〉, 같은 한의 구경(九卿) 급암(汲黯)과 정당시(鄭當時)의 합전(合傳)인 열전 제60.〈급정열전(汲鄭列傳)〉 등에 나온다.

"(더군다나) 나는 이미 60여 세로, 새삼 지금에 와서 (나를 심문하는 자로) 도필리를 상대할 수 있겠는가."[각주:1] - 자결하기 직전 이광의 말, 〈이장군열전〉

"세상에서 흔히 말하기를, '도필리를 공경(公卿) 벼슬에 앉혀서는 안 된다'고 하였는데 과연 옳은 말이다."[각주:2] - 급암이 혹리(酷吏)[각주:3] 장탕(張湯)을 지목하여 한 말, 〈급정열전〉



이렇듯 도필리는 그저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원래부터 하던 일만 반복하는 하급 관리일 뿐, 스스로 어떤 이론을 세우거나 주장 또는 의견을 제시할 능력이 없는 사람을 의미한다.

내가 이러한 필명을 쓴 것은 스스로 겸손해서가 아니라, 실제 그러하기 때문이다. 검색만 하면 여기저기에서 모을 수 있는 자료를 가지고 상상의 나래를 펴며 가끔 몇 자 끄적일 뿐이기에.

더하여, 공직에 있었던 적이 없으면서 필명에 리(吏)를 넣게 되었으니 이것은 참칭(僭稱)이다.



  1. 且廣年六十餘矣 終不能復對刀筆之吏 [본문으로]
  2. 天下謂刀筆吏不可以爲公卿 果然 [본문으로]
  3. 가혹하고 무자비한 형벌을 위주로 백성을 다스린 관리 [본문으로]
刀筆吏, 도필리,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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