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史記)』에 이르기를, '사방 천 리(里)에 이르는 땅을 다스린 옛 제왕(帝王)이라도 반드시 강의 상류에 도읍을 정하고 그곳에서 기거하였다[古之帝者地方千里 必居上游]'고 하였다. 이는 세상에 큰 포부를 드러내 알리는 일에 있어 근거지가 확고하고 마땅해야 한다는 것을 지칭한 것으로, 처한 풍수(運數)와 지세(地勢)가 운수(運數), 역량(力量) 등과 무관하지 않음을 또한 의미한다. 무릇 통신계(界)에 있어 사이토(思以土, site)나 불로거(不路居, blog), 민이혼(民而魂, minihome)를 만들 때 주소와 계정이 얼마나 좋고 안정적인가 하는 것이 활성화의 중대 변수로 작용하므로, 이러한 원칙은 고금(古今)을 관통하여 그대로 적용된다. 이치가 이러하니, 어찌 유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천어통신망..
가끔 웹상에서 벌어지는 논란을 보면, 그 가운데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무과(武科) 과거 급제(합격)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늦게 급제했다 = 무관 소질이 없었다', '합격 등수가 낮았다 = 역시 별 볼일 없었다' 등의 내용인데, 어떤 사람들은 '최하위 등급으로 합격한 것이고, 오늘날 계급으로는 하사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군사편찬연구소에서 2003년 8월에 발행한 『군사(軍史)』 제49호에 「무과합격, 군관생활, 전술능력에 나타난 이순신의 무학연구(論.張學根)」라는 논문이 실려 있다. 이 논문의 내용을 토대로 몇 자 적어 본다. 1) 너무 늦게 급제했다는 논란 위 논문에서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이순신 장군이 급제(及第)한 해당 과거의 급제자 평균 연령은..
도필리(刀筆吏)의 새로운 거처 [아정(雅亭)]이 드디어 문을 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