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석상 등에서 대통령를 호칭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 '대통령님'이다. 그런데 도통 이 호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냥 '대통령께서' 정도로 하면 어감도 좋고 뜻도 충분히 전달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대통령이라는 단어에 이미 최고 존칭으로서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물론, 일반적으로 '님' 자를 붙여 장관님, 국회의원님, 사장님, 선생님 하고 있기에, 대통령에게만 안 붙이면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혹은 지나친 격식 파괴라고 생각되어서 '님'을 붙인 것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제5공화국까지는 '각하(閣下)'라는 경칭을 붙여 '대통령 각하'라고 했고, 제6공화국, 즉 '보통사람'을 강조하던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면서 대외적으로 각하 호칭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대통령 비서실,..
개인적으로 관리하는 사이트에서 역사적 인물의 관직을 추증하는 데 필요한 자료를 만들 때 육조판서(六曹判書)의 서열이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정2품 판서로 추증(追贈)하더라도, 이조판서로 추증할 때와 공조판서로 추증할 때가 달랐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의 추증 관직이 판서급인 경우는 대개 '이조판서'였던 것에서 비롯된 궁금증과도 무관치 않다. 추증을 설명하자면, 어떤 인물이 죽은 후에 그 사람의 생전 관직(직함)을 올려주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의 계급, 훈장 추서(追敍)와 비슷한 일종의 포상(褒賞)이라고 할 수 있다. 증직(贈職)도 추증과 같은 의미의 단어인데, 생전에 관직이 있었던 경우는 증직, 관직에 진출하지 못했던 경우는 추증이라고 하는 것 같다(양자 사이에 명확한 구분이 있는 것은 아님..
1866년(고종3) 병인양요(丙寅洋擾) 조선측 전사자 광주별파진(廣州別破陣) 최장근(崔長根), 김달성(金達成), 오준성(吳俊成) 문수진(文殊鎭) 백성 오돌중(吳乭仲) 강화부 남문수장(南門守將) 이춘일(李春日) : 2품직 추증 포수영장(砲手領將) 오처렴(吳處濂) : 전사? 전사자 1명 (성명 미상) : 정족산성수성장(鼎足山城守城將) 양헌수(梁憲洙)의 보고 강화부 백성 노인석(魯仁石), 조광보(曺光甫) : 총 쏘며 성으로 접근하다 사망 1871년(고종8) 신미양요(辛未洋擾) 조선측 전사자 덕포포군(德浦砲軍) 오삼록(吳三祿) : 통진부사(通津府使) 보고 (04.15) 중군(中軍) 어재연(魚在淵) : 병조판서 지삼군부사 예겸 추증, 충장(忠壯) 증시 학생 어재순(魚在淳) : 어재연 동생, 이조참의 추증 대솔군관..
조선시대 '거북선[龜船]'의 정확한 형태가 어떤지에 관해서 아직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철갑을 두르고 있었느냐, 쇠못이라도 꼽고 있었느냐, 거북이 머리에서 연기를 뿜었는지 총통 설치했는지, 2층과 3층의 내부 구조는 어떻고, 크기와 승조원 규모 등은 또 어떠했는지. 이런 논란에 오늘날까지 가중되는 원인은, 실제 거북선의 형태를 확정해 줄 수 있는 사료가 현존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거북선을 촬영한 사진, 하다못해 실물을 보고 그린 정교한 그림이라도 한 장 전해지고 있다면 논쟁의 대부분이 종식되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여기에서 아쉬움이 크다. 일제강점기, 아니 해방 직후에라도 거북선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이 조선시대 수영(水營) 인근들 돌아다니며 관련 증언을 채록했더라면 오늘날처럼 의문이 꼬..
亦或有熟誦古書 言言引據 考其心術 則鄙諂狡詐 向所引據 只爲粉餙口角之資. 此等讀書雖多 奚以哉. 讀書而軟媚者 人莫不愛之 噫. 또한 옛글을 익히 외워 말끝마다 인용하는 자가 있으나 그 마음씨를 살피면 교활하고, 소위 인용하는 것도 한갓 입술 꾸미는 자료로 삼을 뿐이다. 이런 식이라면 글을 아무리 많이 읽더라도 어디에 쓰겠는가. 글 읽어서 아첨하는 태도를 짓는 자를 누구나 사랑하다니, 슬프다. - 출전, 아정(雅亭)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권29. 사소절3(士小節三) 사전(士典) 「교습(敎習)」
(전략) 척화(斥和)의 청론(淸論)은 위로는 명나라 조정[明朝]을 위하는 것이요, 아래로는 선비들의 여론[士論]을 부지하는 것으로서, 바로 천지(天地)간 불변의 도[常經]이고 고금(古今)을 관통하는 의리[通義]입니다. 그 정론으로 삼는 바는 비록 삼척동자(三尺童子)라고 하여도 다 아는 것이니, 우리들이 어찌 모르겠습니까. 다만, 우리는 이 조선[東國]의 신하이므로, 나의 군부(임금)는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중국 조정[中朝]만을 위하는 것은 정도를 넘어서는[越津] 혐의가 없지 않습니다. 만력(萬曆) 황제가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해 준 은덕[再造之恩]을 우리나라 군신[我東君臣) 가운데 어느 누가 감격하여 추대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우리나라[我國]가 생사의 위기를 당하여 어찌 옛날에 중흥시켜 준 것만을 ..
조정(朝廷)이 세워져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이 있다. 특히 유학(儒學)을 근본으로 하는 동양(東洋) 국가의 경우가 그러한데, 궁궐(宮闕)을 중심으로 좌묘우사(左廟右社) 체제를 취하고 관제(官制)와 법령(法令)을 세워 나라의 기틀을 안팎으로 확고히 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에 더하여 중시되는 것이 '역사(歷史)'이니, '천명(天命)을 받아 백성을 다스린다'고 하는 유교적 치도(治道) 개념에 가장 잘 부합되고 국초의 건국(建國) 이념이 오래 전승될 수 있도록 독려하고 견제하는 것이 바로 역사 기록이기 때문이다. 성곽(城郭), 법전(法典), 군신(君臣), 삼군(三軍) 등을 창업(創業)의 필수 요건이라 한다면, 역사는 선례(先例)와 포폄(褒貶)을 분명하게 새겨 후세(後世)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