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6월에 올린 글에서 경복궁(景福宮) 서편에 있던 '사재감(司宰監) 관청의 청사 위치에 관한 내용'을 다룬 바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와 비슷한 역할과 규모의 조선시대 관청인 내섬시(內贍寺) 관아 터 자리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 내섬시(內贍寺)는 각 궁과 전[各宮各殿]에 올리던 공상(供上) 물품과 기름[油], 식초[醋], 소찬(素饌) 등의 공급을 담당하던 관청이다. 담당 업무를 보면 짐작할 수 있듯, 대체로 사소한 물자를 취급하던 관청이었기에 조선왕조 관직 체계에서 전형적인 한직(閑職)이었다. 관청 수장의 관직도 초기에는 정3품 정(正)이었으나 국가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불필요한 관원[冗官, 용관]을 축소하는 과정에서 종6품 주부(主簿)로 낮아졌다. 현대 공무원 직급으로 따지면 2급에 상당하는..
예전에 한국어 위키백과를 위해 제작하였던 조선시대 18세기 무렵의 한성부(漢城府, 서울)지도를 오랜만에 일부 보완하여 올려봅니다. 각 지명, 관청, 궁실의 위치와 형태를 대략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즉, 완벽한 고증을 거친 결과물이 아닙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열람할 수 있습니다. P.S. 2010년 10월에 본 블로그에 등록한 '조선시대 한성부 실측지도 (클릭)' 역시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웹 브라우저에서 플래시(Flash) 파일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으므로 링크를 해제합니다.
블로그 방문자 10만 명을 기념하는 글[十萬紀念序] 아정(雅亭)이 이곳 면남방담(綿南方談, tistory)에 터를 잡고 단장하여 천하 사람들에게 문을 연 지 어느덧 1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개설 3년만에 폐(閉)하였다가 8년을 기다린 후에 다시 빗장을 열었으니, 실제로 사람들이 드나든 기간은 5년 남짓이다. 지난 6월 초10일에 그 방문자 수가 10만을 헤아리게 되었으므로 대략 연간 2만가량이 찾은 것인데, 무술년(戊戌年, 2018) 이후가 월 1천 내외이니 상당수 적산(積算)이 개설 초기 3년 동안에 이룩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지금 이곳을 찾는 손님의 수가 초반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대략 게시하는 글의 주제가 '관아(官衙)'에 크게 치우치고 그동안 올렸던 여러 글을 비공개로 전환해..
※ 지난해 11월에 올렸던 동일한 제목의 1편, 그리고 지난 2월에 올린 2편에 이어지는 호조 관아 건물 배치에 관한 마지막 글입니다. 코로나19 이전의 시기가 요원한 때입니다. 여기에 이런저런 일이 더해져서 본편의 편집이 더 늦어졌습니다. 기다려 주신 분이 계신다면, 그저 감사드릴 뿐입니다. ※ 같은 제목의 글 2편(링크)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위 17번 이미지의 A 평면도는 1편과 2편 글에서 다뤘던 내용에 기반하여 추정한 조선시대 후기의 호조(戶曹) 청사 건물 배치도이다. 호조와 같이 육조거리(세종대로) 동쪽 편에 있었던 이조(吏曹), 한성부(漢城府), 농상공부(農商工部)의 대청(大廳) 건물이 위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육조거리 방향, 즉 서쪽 9시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과 비교할 때, 호조 청사..
조선시대 각 도(道)의 행정, 사법을 책임지던 관청이 감영(監營)이다. 감영은 오늘날의 도청(道廳)이라 할 수 있고, 감영의 수장(首長, 長官)이 바로 관찰사(觀察使)였다. 관찰사의 품계는 종2품으로 현재의 차관급에 해당하며,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겸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군사 권한까지 관찰사가 가지고 있었다. 감영의 정청(政廳)을 선화당(宣化堂)이라 하였는데, 이 명칭은 팔도(八道)의 모든 감영이 동일했다. 경기도의 행정을 맡고 있던 경기감영(京畿監營)의 선화당 건물에 관해서는 2018년 7월에 올린 '조선왕조-구한말-대한제국 시기 한성부 관청 편액(현판) 이야기' 문서에서 짧게나마 한 번 다룬 바 있다. 이번 글은 그 선화당 건물의 1902년경 모습에 관한 짧은 이야기이다. 위 사진은 대한제국 주재..
※ 1편 글을 올린 지 3개월여 시간이 지났습니다. 12월 말부터 한 달 가량은 평소처럼 움직이기 힘들었고, 그 이후로도 글 작성을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이렇게 2월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시절입니다. 이 시기를 잘 이겨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본 문서에 첨부하는 이미지 파일들의 최초 생성 날짜를 살펴보니 2018년 7월이었습니다. 글을 써나가는 동시에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대략 머릿속으로 어떻게 써야겠다고 생각한 상태에서 이미지를 먼저 제작하는 방식을 취하다 보니, 그 당시에 '이런 내용을 설명하려면 여기에 화살표를 넣고 이런 표시를 하고..' 했던 이유가 기억나지 않을 지경이 되었네요. 1년 반이 지났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그 때문에 글 쓰는 방식과 절차를 조금은 ..
※ 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안팎으로 조금은 바쁜 나날들이었습니다. 환절기 건강에 유의하세요~!! ※ 작년 6월에 블로그 운영을 재개하고 지금까지 주로 올린 글의 주제가 조선시대 및 대한제국 시기의 관청(官廳, 관아) 청사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이번에 다룰 '호조(戶曹) 관청 청사의 건물 배치 및 변천에 관한 소고(小考)'는 그러한 여러 편의 글 가운데 가장 중요한 내용이 될 것입니다. '언젠가는 호조 청사에 관한 글을 정리해 올려보겠다'는 마음을 가졌던 것이 불로그 재개의 원동력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짐과 기대가 컸던 것에 비해 내용이 많이 부실할 수 있지만, 하여간 2018년 여름에는 제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_~; ※ 본 글은 지난 2월에 올린 '광화문 앞 육조거리 6조 관청 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