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산야(山野)에 무수히 존재하는 석비(石碑)에는 그 비석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글귀가 새겨져 있기 마련인데, 역사적으로 이름을 남긴 인물인 경우에는 대개 직함(職銜, 관직명)과 성명(姓名, 이름)이 함께 나란히 새겨져 있다. 한문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므로, 대부분 한자로 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비석의 인물이 조선시대 사람인 경우에는 대개 직함의 서두에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이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다. 신라 시대의 인물이면 '유당신라국(有唐新羅國)', 고려 시대 인물이면 '유원고려국(有元高麗國)'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식의 표기는 고위 관직을 지낸 사람의 신도비(神道碑)나 묘갈(墓碣)인 경우에 특히 많은데, 이 '유명(有明)', '유당(有唐)' 등의 단어와 관련하여 풀이가 ..
李忠武與鄧子龍 夾擊石曼子 滄海掀動 風雲失色, 終古水戰之壯 莫京於此. 嘗見其紀實之文 草草無可觀. 予欲製其碑 以鋪張之. 大抵我國人物 若數文武兼備者 忠武一人惟當之. 이충무공(李忠武公)이 등자룡(鄧子龍)과 함께 석만자(石曼子:島津義弘)를 협공할 때 창해(滄海)가 치솟아 오르고 풍운이 아연실색하였으니, 수전(水戰)의 장대함이 자고로 이보다 큰 적이 없었다. 일찍이 그에 대한 사실을 적은 글[紀實文]을 보았는데 초라하여 볼만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그의 비문을 지어 그의 공로를 기술하여 드러내려고 하였다. 대체로 우리나라의 인물 중에 문무(文武)를 겸비한 사람을 꼽는다면 충무공 한 사람만이 해당된다고 하겠다. 至於李舜臣 眞千古以來忠臣名將. 若使出於中原 漢之諸葛孔明 亦未知孰爲雄而孰爲雌也. 至於壬辰討倭之功 百世永..
무자년(2008) 2월 11일 술시(戌時, 19-21시)에 숭례문(崇禮門)에 화재가 일어나 이튿날 축시(丑時, 01-03시)에 문루(門樓)의 상당 부분이 소실되었다. 상당 부분이라 함은 전소(全燒)를 말하지 않는 것이니, 이는 중층(重層)이 붕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석축(石築) 부분과 홍예문(虹霓門)이 무사하고 1층 이하는 목부재(木部材)가 제법 남았기 때문이다. 편액(扁額, 현판) 역시 부분 파손되기는 하였으나 대체로 건재하다. 전각(殿閣)의 백미(白眉)와 점정(點睛)이 바로 액자(額字)이니,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그런데 이 숭례문 편액의 서자(書字)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설(說)이 적지 아니하다. 문헌에 따라 양녕대군(讓寧大君, 1394-1462), 안평대군(安平大君, 1418-1453),..
지금은 한성부에 속하는, 옛 양주목 노원면(蘆原面)의 한천(漢川) 오른편으로 태릉(泰陵)과 덕릉(德陵) 사이에 중종 연간에 세워진 한글영비(靈碑)가 서 있는 작은 길목이 있는데, 그 어귀에 즈음하여 충숙(忠肅) 이공(李公)의 묘(墓)가 있다. 충숙 이공의 신도비(神道碑)를 비롯한 여러 기(基)의 묘와 재사(齋舍) 동천재(東川齋)가 있고 그 주변에 몇 채의 가옥이 위치하니, 곧 성주(星州)에서 나온 벽진(碧珍) 이씨의 충숙공파 선조 묘역이다. 충숙 이공, 즉 충숙공(忠肅公)은 병자호란(丙子胡亂)을 당하여 강도(江都:강화도)에서 자결한 공조판서 이상길(李尙吉)이다. 자는 사우(士祐), 호는 동천(東川)이며, 명종 병진(1556)년에 태어나 선조 을유(1585)년에 문과(文科) 갑과(甲科) 제2인으로 급제하여..
임신년(1992)에 동양제과(東洋製菓)에서 포도과즙의 젤리형 사탕을 출시하였으니, 이름하여 '마이구미'이다. 당시 자못 인기가 있어 월 20억 원의 판매고를 올렸다. 이 마이구미 때문에 지명도를 올렸던 곳이 바로 '구미(龜尾)'인데, 구미는 경상도 대구부(大邱府)와 상주목(尙州牧) 사이에 있던 선산도호부(善山都護府) 일대의 지명으로서, 여러 차례 행정구역 변경을 거쳐 무오년(1978)에 구미읍이 선산군에서 분리되어 구미시(龜尾市)가 되었다. 이후 읍세(邑勢)를 확장하며 인근 지역을 점차 흡수하다 을해(1995) 정월 초1일에는 선산군을 거꾸로 통폐합하여 도농복합시 형태의 구미시가 되었으니, 세간에서는 이를 이르러 '구미가 당겼다'라고 하였다. 이 구미에 영조척(營造尺, 1척=31.22cm)으로 해발 삼천..
내 불로거(不路居, blog)의 이름이 '아정(雅亭)'인데, 면남방담(綿南方談)에 소재하고 있다. '면남방담'이란 무엇인가. '면남방'은 곧 '면(綿)으로 된 남방(南方)'을 말하는 것이니, 이를 서학(西學) 문자로 풀어서 쓰면 '남방풍의 셔츠(shirt)'가 된다. 왜어(倭語) 남만(南蠻, なんばん)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담'은 문자 그대로 '이야기(story)'를 뜻하므로, 면남방담은 즉 '티스토리(tistory)'의 한역(漢譯)이다. 본래 아정은 암파소(岩破所, empas)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의 자리가 협소하고 교통이 불편하여 장구한 뜻을 펼칠 곳이 되지 못하기에 다른 거처를 찾게 되었고, 그러던 중에 천하 사람들이 면남방담을 평하여 말하기를, '불로거의 새로운 지평을 연 곳'이라..
![](http://i1.daumcdn.net/thumb/C148x148/?fname=https://blog.kakaocdn.net/dn/bzzD0S/btsIyeIA1eM/dfKgaLkHPg9Vy29MUOzg90/img.jpg)
+ 본 관청 청사 배치도는 조선시대 지도, 읍지, 문헌 및 관련 논문, 전문 서적, 언론 보도 등의 자료를 토대로 제작함.+ 각 감영(監營, 관아)의 상세 배치도는 아래에 링크한 사이버 조선왕조(http://www.1392.org) 각 지역별 관청(감영)의 안내 메뉴에서 확인 가능.* 사조 - 한성부 홈페이지 : http://www.1392.org/hsb (경조 안내 메뉴 클릭)* 사조 - 경기감영 홈페이지 : http://www.1392.org/ggd (기영 안내 메뉴 클릭)* 사조 - 충청감영 홈페이지 : http://www.1392.org/ccd (금영 안내 메뉴 클릭)* 사조 - 경상감영 홈페이지 : http://www.1392.org/gsd (영영 안내 메뉴 클릭)* 사조 - 전라감영 홈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