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군(丹陽郡) 읍치(邑治) 동쪽으로 상진(上津)이 있는 곳에 천(川)의 지류가 흐르는데, 그 상류에 사인암(舍人岩)이 있다. 또 읍치 서쪽으로 흐르는 지류에는 상선(上仙), 중선(中仙). 하선(下仙)의 세 바위가 있는데 모두 팔경(八景, 단양팔경)에 든다. 사인암과 상선암(上仙岩) 사이가 바로 운선구곡(雲仙九曲)으로, 이름하여 유곡(酉谷) 또는 운암(雲巖)이라 부르는 곳이다. 이 운선구곡의 혈치(血峙)를 바라보는 좌산(左山)에 갑좌경향(甲坐庚向)의 묘(墓)가 있으니, 곧 진사(進士) 운암(雲巖) 이공(李公)의 묘이다. 본관이 전주(全州)인데, 공의 대(代)에 이르러 비로소 적성(赤城)에 세거(世居)하였으므로 선대(先代)를 자세히 상고(上考)할 길이 없으나, 간략히 전(傳)하는 가첩(家牒)에 의하면 4대..
통신계의 선현이신 공자(工子)께서 이르시기를, '삼 년을 접속하고도 점수(點數, point)에 뜻을 두지 않는 자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三年接 不至於點 不易得也)' 하시고, 또 가로되 '아침에 점수를 얻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得點 夕死可矣)'라고 하시어 사이토(思以土, site) 접속과 점수 획득 사이의 불가분 관계를 일찍이 논파하셨다. 특히 전뇌(電腦, PC) 분야의 중원(中原)이라 할 수 있는 파고주(波高州)에서는 점수와 활동력에 따라 등급을 나누고 명칭을 차등하니, 남달리 점수에 뜻을 둔 회원이라면 점수 획득에 홀로 만족하며 순위 상승을 스스로 영예롭게 여긴다. 임오년 4월 초9일에 처음 파고주에 발을 들여놓았으니, 이제 3년 4개월 남짓 흘렀다. 오늘에 이르러 이만점(二萬點, 2만 점)를 달성..
암파소의 수편매일 폭주를 한탄함 일찍이 남명(南明) 조식(趙植, 1501-1572) 선생께서 이르기를, '포탈(浦脫, 포털 사이트)은 장차 수편매일(手便每日, 스팸 메일) 때문에 망하겠다.' 하시고, 다산(多山) 정약룡(鄭若龍, 1762-1836) 선생께서도 그의 저서 목민심서(目敏審書)에서 '수편매일은 나라를 망치는 근본'이라 하셨는데, 비로소 오늘에서야 그 말이 틀리지 않음을 알았다. 암파소(岩破所, empas.com)의 경우에 어찌하여 수편매일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것인가. 수백 번 차단 하여도 소용없고, 수천 번 신고 하여도 끝이 없구나. 다음(多音, daum.net), 너의벗(naver.com), 고려(高麗, korea.com), 야호(野虎, kr.yahoo.com), 구골(九骨, google...
『사기(史記)』에 이르기를, '사방 천 리(里)에 이르는 땅을 다스린 옛 제왕(帝王)이라도 반드시 강의 상류에 도읍을 정하고 그곳에서 기거하였다[古之帝者地方千里 必居上游]'고 하였다. 이는 세상에 큰 포부를 드러내 알리는 일에 있어 근거지가 확고하고 마땅해야 한다는 것을 지칭한 것으로, 처한 풍수(運數)와 지세(地勢)가 운수(運數), 역량(力量) 등과 무관하지 않음을 또한 의미한다. 무릇 통신계(界)에 있어 사이토(思以土, site)나 불로거(不路居, blog), 민이혼(民而魂, minihome)를 만들 때 주소와 계정이 얼마나 좋고 안정적인가 하는 것이 활성화의 중대 변수로 작용하므로, 이러한 원칙은 고금(古今)을 관통하여 그대로 적용된다. 이치가 이러하니, 어찌 유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천어통신망..
가끔 웹상에서 벌어지는 논란을 보면, 그 가운데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무과(武科) 과거 급제(합격)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늦게 급제했다 = 무관 소질이 없었다', '합격 등수가 낮았다 = 역시 별 볼일 없었다' 등의 내용인데, 어떤 사람들은 '최하위 등급으로 합격한 것이고, 오늘날 계급으로는 하사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군사편찬연구소에서 2003년 8월에 발행한 『군사(軍史)』 제49호에 「무과합격, 군관생활, 전술능력에 나타난 이순신의 무학연구(論.張學根)」라는 논문이 실려 있다. 이 논문의 내용을 토대로 몇 자 적어 본다. 1) 너무 늦게 급제했다는 논란 위 논문에서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이순신 장군이 급제(及第)한 해당 과거의 급제자 평균 연령은..
도필리(刀筆吏)의 새로운 거처 [아정(雅亭)]이 드디어 문을 열었습니다.